뻐꾸기의 심술

2020.07.16 13:26

한성덕 조회 수:0

뻐꾸기의 심술

                                                            한성덕

 

 

 

  전주시 인후동에는 130m 높이의 도당산이 있다. 그 산을 중심으로 인후공원이 조성되었으며, 공원 안에 인후배수지가 있다. 우리는 우아동의 우아 럭키아파트에서 산다. 우리 아파트의 자랑은, 인후공원을 오르내리는 너른 산책로의 시작점이고, 배수지 덕에 수돗물이 펑펑 쏟아져 명품아파트라고 뽐낼 만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인후공원을 산책한다. 갖가지 새들이 각각의 소리로 환영해주니 귀도 마음도 즐겁다. 그 중에서도 뻐꾸기는 동심을 건드리고, 향수를 달래주며, 명쾌한 소리로 반긴다. 뻐꾸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며느리가 떡국을 퍼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개가 게 눈 감추듯 그 떡국을 먹어치웠다. 시어머니는, 떡국을 저 혼자 먹었나 싶어서 잔뜩 화가 났다.  몽둥이로 사정없이 며느리를 두들겼다. 많이 맞은 건지, 잘 못 맞은 건지 그 며느리가 죽어버렸다. 며느리의 넋은 새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그때부터 “떡국, 떡국 개개”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떡국은 내가 먹은 게 아니고 개가 먹었다’며, 그 억울함을 울음으로 하소연한다 하여, ‘떡국 새’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다.

  독일에서는 뻐꾸기를 ‘행운의 새’라고 부른다. 봄에 첫 울음을 들었을 때 지갑을 두드리거나 풀 속에서 떼굴떼굴 구르면, 일 년 내내 돈이 부족하지 않으며 등의 통증에서 해방된다고 믿는다. 또한,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어 하늘의 뜻을 점치는 새요, 봄에 잘 울면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봄이 되면 각지에서 날아든 철새들로 인후공원은 분주하다. 그 중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5월에서 8월까지 제 세상이다. 봄이 깊어지고 더위가 고개를 내밀면, 숲속에서는 나뭇잎들이 절정을 이루고, 뻐꾸기는 아침부터 매혹적인 울음을 터뜨린다. 몸 전체가 회색인 비둘기와 비슷해 식별이 어렵지만, 뻐꾸기는 날렵한 몸매가 특징이며 높은 나무에서도 지상의 벌레를 잡아먹을 만큼 시력이 탁월하다. 수컷이 “뻐꾹 뻐꾹” 우는데, 그 소리가 400m까지 들린다고 한다. 뻐꾸기는 봄날의 정서를 표현하는 문학(文學)새로 손꼽힌다. 뻐꾸기소리에 윤석중 선생님의 동요를 흥얼거렸는데, 2절까지 부르기는 최근의 일이다.

  “뻐꾹 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 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꾹 뻐꾹 여름 오네. 뻐꾸기 소리 첫 여름인사 잎이 새로 돋아나네.    

  그 매혹적인 소리만큼이나 착한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세계가 온전치 못하듯이 조류세계도 그렇다. 두메산골 무주에서 자란 터라 뻐꾸기소리가 정겹고 봄이 오면 은근히 기다렸다. 허나, 그 실체를 안 뒤로는 반가움보다 ‘심술쟁이’ 이미지가 강하고, ‘지랄 맞은 새’라는 거친 말이 나오기도 한다.

  뻐꾸기는 자기가 둥지를 만들지 않고, 남의 둥지에 위탁해서 포란(抱卵)시키는 소위 탁란(托卵)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새보다 작은 ‘붉은 머리오목눈이’라는 뱁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의 그 새를 말한다.

 

  뻐꾸기나 뱁새 알은 파란색이다. 뻐꾸기가 뱁새둥지에서 알 하나를 물어내고 제 것으로 채우면, 뱁새는 알이 큰 줄 알면서도 자기 것으로 착각한다. 뻐꾸기의 산란은 뱁새보다 늦지만, 부화만큼은 2~3일 빠르다. 뻐꾸기 몸속에서 24시간 알을 품는, 이른바 ‘체내부화’ 능력 탓이다. 알에서 먼저 깨어난 새끼는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어미를 닮아서 심술딱지가 붙었나? 태어나자마자 요망(妖妄)한 짓을 한다. 뱁새보다 훨씬 큰 뻐꾸기 새끼가 허기증으로 앙앙대니 먹이를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뱁새가 물어다주는 양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먹이를 넣어주려고 그 큰 입속으로 쏙 들어가니 뻐꾸기 새끼에게 먹힐까 걱정이다. 이런 판국에, 아빠 뻐꾸기는 자기 소리를 새끼에게 각인시키려고 목청을 돋운다.

 사람도, 짐승도 울어대면 먹을 것을 먼저 준다. 적자생존(適者生存)에 따른 자연법칙이려니 싶다. 실은, 내 배가 든든해야 여유가 생기고, 남을 돌아볼 마음이 우러나지 않겠는가? 뻐꾸기의 심술은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진리를 일러주는 것 같다.

                                         (2020. 7.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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