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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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우리는 날아가나이다

2004.01.08 08:02

최영숙 조회 수:1040 추천:185

우리는 날아가나이다



                                                                   최 영숙

    큰댁 사랑채는 남향이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남쪽으로 나있는 쪽마루에서 장죽을 물고 해바라기를 하시고는 했다.  봄철이면 한없이 꽃잎을 떨구는 황매화를 바라보는 낙으로 여름이면 화단에 피어있는 분꽃, 봉숭아를 들여다 보면서 가을이면 대추 나무의 붉으스름해진 열매를 올려다보며, 그리고 겨울 이맘때면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는 방안에서 옛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눈이 어두웠던 할아버지가 애쓰며 소리내어 읽는 책들은 장화홍련뎐, 홍길동뎐, 그런 것들이었다.

  책들은 전혀 띄어쓰기가 없는 데다 세로쓰기였으므로 할아버지는 자주 읽은 곳을 또 읽고 계셨다. 그럴때 마침 내가 큰댁 마당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할아버지는 의례히 사랑채 문을 열고 몸을 반쯤이나 내밀며 얼른 돋보기를 벗으셨다. 언문은 언문식으로 읽어야 맛이 난다는 게 그 분의 변명이었다. 그런날 내가 할 일은 할아버지 장죽에 불을 붙여 드리고 소리내어 책을 읽어 드리는 일이었다.

열번도 더 읽었을 그 책들을 할아버지는 언제나 재미있어 했다. 읽다가 힘이들면 나도 할아버지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천자문을 읽듯이 음율에 맞춰 읽었다.  그러다가 나는 저절로 책속에 빠져 들어가고 할아버지는 목침을 베고 잠이 드시고는 했다.  할아버지는 그다지 고집이 있던 분이 아니었는데도 나들이를 할 때면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막신을 신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길에 나서면 구경거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는 할아버지를 피해 숨기도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냥 잠자듯이 돌아 가셨다.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었고 문상을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가 좋은데 가셨을 거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여든 아홉 수를 다하고 떠난 혼백이니 갈 곳으로 당연히 가셨으려니 하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숙희 때는 그러지 않았다.  동네에 하나 밖에 없던 동갑내기 였던 그 아이가 열 한살 때 장티프스로 죽었다.  어른들이 그 집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숙희네 문간에 숨어서서 집안을 기웃거렸다.  나하고 같은 나이의 아이가 죽어서 땅속에 묻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숙희가 없어졌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집안은 음침해 보였고 곱슬머리 그 아이랑 뛰어 놀던 마루, 마당, 우물가에 까지 이끼가 피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숙희네 집 앞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수를 다 못하고 죽은 사람의 혼이 흰나비가 된다고 해서 아이들은 흰나비를 잡지 못했다. 냉이꽃이 한참 필 때 가볍게 나는 작은 흰나비를 보면 그 말이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고 싶은 곳 ,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 나선 듯이 이곳 저곳을 부유하는 나비의 몸짓이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숙희가 죽은 뒤에는 흰나비를 보기만 해도 섬칫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 아이의 영혼이라면 너무 불쌍하지 싶어서 가만히 이름을 불러 보기도 했다.

“ 너.... 숙희니?  숙희 맞으면..... 저기 노란 꽃위에 앉아 볼래? ”
내가 꽃을 가리키는 그 사이에 나비는 벌써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사람의 혼이 나비 속에 갇혀 있는 걸까. 그래서 살던 곳을 찾아 다닌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기가 사람인 줄도 모르고 나비가 되어서 나비처럼 생각하고 나비처럼 살다가 또 한 생애를 마감하는 걸까.  그것이 어떻든 내가 죽어서 흰나비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줄도 알고 또 보고 듣는 것들. 나만이 느끼고 나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어떤 것들. 차가운 것 뜨거운 것 부드러운 것을 분별하는 이런 것들. 아프고 배고프고 슬프고 기쁘고 .  이런 내 안의 내 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이십여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이미 세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에 들렀다가 큰댁을 찾아갔다.  찾아갈 때마다 퇴락해 가는 사랑채가 마음에 걸렸는데 그 때는 집모양이 아주 변해 있었다.  황매화가 심겨 있던 화단은 없어지고 새로 들어선 공장 일군들에게 세를 준 여나믄 개의 방들이 마당을 덮고 있었다.  시늉 뿐인 마당은 굵은 모래알들이 잔뜩 일어나 있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마당을 부뚜막처럼 반질하게 쓸고 닦는 버릇이 있었다. 비가 온 후에도 모래알이 보이지 않을만큼  마당은 늘 비질이 되어 있었다.

  깨끗한 마당에 황매화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마음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두어도 좋으련만 할아버지의 비질은 가차 없으셨기 때문이었다. 그 마당이 없어지다니...... 사랑방을 차지하고 있는 당숙을 못내 섭섭해 하며 이구석 저구석을 돌아보다가 나는 사랑채에 붙은 헛간 선반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안경집이었다. 할아버지의 돋보기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안경 다리 한쪽이 부러졌지만 까만테에 동그란 모양의 안경알은 그대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경을 써 보았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한 싸한 내음이 손 끝에 묻어났다. 부옇게 흐려 보였다. 벗어서 안경알을 옷깃으로 열심히 문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내도 세월의 얼룩은 지울 수가 없었다.

가방에 안경을 집어넣고 나서 나는 헛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할아버지의 장죽을 찾아냈다.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담뱃대에서는 할아버지가 기거하시던 사랑방 냄새가 났다. 사랑채를 돌아보니 마루밑에 놓여 있는 나막신이 보이고 그 위 마루에 앉아서 장죽을 물고 계신 할아버지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사랑방도 남아있고 나막신도 장죽도 남아 있지만 할아버지는 사라져 버렸다. 읽을 거리가 귀해서 한 번 구해들인 책을 외울 정도로 읽으시던 할아버지. 그 때 누군가 복음서 한 장이라도 사랑방에 놓고 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할아버지를 위해 읽어드렸을테고 하나 밖에 없던 내 친구 숙희에게도 들려 주었을텐데.
숙희는 죽음을 앞두고 무섭지 않았을까, 적어도 사람이 죽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장화홍련뎐,홍길동뎐을 그렇게 읽었어도 할아버지는 당신이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셨다. 먼저 아셨다면 분명히 내게 일러 주셨으련만. 돋보기, 나막신만큼도 담뱃대만치도 못한 유한한 인생을 살다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면서 떠나가는 할아버지의 심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리 먹어도 수저만한 수명도 못되는 것을 아무리 입어대도 옷가지만도 못한 인생인 것을 그 분은 아셨을까? 수를 다하고 떠났어도 그리 못살고 일찍 떠났어도 결국 잊혀지고 흘러가 버린 것을.  이땅의 삶이란 살았어도 안 살았던 것처럼 아니면 잠간 살았던 것처럼  어느새 날아가 버리고 계절의 끝에 서서 뒤돌아 볼일만 남은 듯 싶다. 그래도 허전허전 하지 않은 것은 돌아갈 곳을 알고 그 곳에 대한 소망을 나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이 땅에서 역할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그리운 주를 얼굴을 맞대고 볼것이며  그곳에서 나는 날아가버린 시간들을 붙잡고 영원히 머무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편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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