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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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불꺼진 창 (꽁트)

2004.09.21 05:19

최영숙 조회 수:1587 추천:301

                          불 꺼진 창                    

                                             최 영숙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거센 빗줄기가 그나마 남아있는 가로등 불빛을 삼키고는 재빠르게 길바닥을 휩쓸고 있었다. 덕분에 내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는 바로 자동차 코앞에서 멈춰 버렸고 몸뚱이가 무거운 차는 번들거리는 길을 따라 차선도 무시한 채 기어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차는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갔고 나는 무사히 집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차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번개와 천둥소리가 마치 집이라도 두들겨 부술 것 같은 기세로 지붕 위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독일 가문비나무 꼭대기로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여섯 채가 함께 붙어있는 붉은 벽돌의 타운 하우스는 순간 형광색이 되었다가는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패대기쳐지고 있었다. 아홉시 삼십분, 그러고 보니 차속에 삼십분 째 갇혀 있는 중이었다. 메릴랜드 동부에 폭우 경보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서서히 천둥소리가 잦아든다 싶더니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목을 길게 빼고 차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확실히 번개는 멀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두둥 거리며 천둥소리는 울려왔지만 이제 머리 위에서 때릴 염려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집을 바라보면서 차 문을 열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들 방 창문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였다. 청소년 캠프에 참석하는 두 아이를 집합 장소인 교회 마당에  내려놓고 차를 돌리려는데 작은 아들이 뛰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집 열쇠를 안 가져 왔다는 말이었다. 그때 아이에게 열쇠를 건네준 장면이 눈앞으로 확 지나갔다. 가슴이 덜컹했다. 그렇다면 남편을 깨워야 할 판이었다. 집은 어두웠다. 나는 차 속에 막막하게 앉아 있었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릉우릉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빗줄기는 세차게 변해갔다.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갈 큰 아들애가 머리카락에 하이라이트를 했던 날이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쑥스러운 얼굴로 들어서는 아이를 보고 나와 작은 애는 환성을 질렀다.

“ 어머!  얘!  너 이 동건 같다.”
“ 아냐,  엄마, 원빈이야.”
녀석은 그 말이 싫지 않은 듯 입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씨익 웃었다.
그때 내 호들갑이 좀 심했던지 위층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뜨악한 얼굴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 쟤, 멋있지요? ”
남편이 흘낏 아이를 쳐다보더니 금방 안색이 변했다. 눈치가 빠른 작은 애는 얼른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리고 나는 남편과 아이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남편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면서 아이를 향해 말했다.
“ 너, 당장 나가서 그 머리  짤라 버리고 와!”
아들애는 말없이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소파에 던져 놓았던  가방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디다 말고 몸을 돌려 세웠다.
“ ...... 아버지, 이젠 그렇게 못해요!  그렇게 안 할 꺼에요”

내가 놀란 것은  아이의 말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들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 대신에 아버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큰애가 자기 말과는 반대로 머리를 박박 밀고 집에 돌아 왔던 날, 나와 남편은 서로 눈길을 피했다. 게다가 아이가 대학을 안가고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해오자 남편은 두통약을 먹기 시작했고 나는 소화제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저 때문에 그렇게 일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아들애는 굳은 얼굴로 군대에 가면 대학 공부를 무료로 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인지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모으고 있었다. 아이들 방에서는 웅웅거리며 알아들을 수도 없는 한국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라를 떠나온 지 칠년이 되었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그 언저리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미국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한국 아이들하고 놀기를 좋아하고 여전히 김치찌개를 즐겨 먹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저러니까 미국 적응이 느린 거라고 화를 내었다. 난 그게 한국교회를 다니기 때문이라고 우겨댔지만 사실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냥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훨씬 더 긴 아이들이었으니까.

어느 날, 남편은 집안에서 비디오를 아예 치워 버렸고 아이들 방에서 씨디를 몽땅 쓸어다 내어버렸다. 그런 다음 아이들 방문 안쪽에 붙어있던 그룹 ‘신화’의 포스터를 떼어 버리고 그곳에다 미국 지도를 붙여 놓았다.
내가 알래스카 지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에스키모, 오로라, 빙하, 백야와 같은 시원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곳이 웬지 이 대륙의 끄트머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땅 끝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서라면 매일 같이 뜨는 태양에서도, 지는 해와 평원의 바람 속에서 자라난 자작나무 한그루에서도 새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텐데. 내 안에서 알래스카는 상상하는 만큼의 넓이로 나를 조금씩 점령해 가고 있었다. 빙산 조각이 떠다니는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낭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추위와 싸워야만 되는 육신의 한계와 얼음 밑에서 숨쉬고 있는 산 것들의 숨소리를 듣지 못하면 돌아버릴 것 같은 정적들이 이미 나를 누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대한 미련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 생각들은 바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시작된 내 안의 불안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는 버릇은 마치 흔들리는 이빨을 혀끝으로 슬쩍 건드려 볼 때의 긴장과 같았다. 어차피 빠져 나갈 이빨 하나를 달래듯이 조금씩 밀어보다가 어느 날, 결심을 하고 확 밀어서 뽑아내 버리고 싶은 심정, 나는 그 실체와 한번 맞닥뜨리고 싶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뒤, 청소를 마치고 빨래까지 건조대에 널어놓고 나면 몰려오던 개운하고 아늑하던 느낌. 그 시간에 흘러나오던 클래식 음악,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던 노란 햇살. 전화만 들면 들려오던 반가운 목소리들. 버스만 타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던 그리운 사람들. 이제는 그것들이 아픈 이빨이 되어서 나를 흔들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어 지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나무의 잔가지와 잎사귀들이 바람에 날렸다. 비바람을 헤치고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차는 왼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쓰러뜨리며 차의 불빛을 피했다. 얼굴이 드러나는 게 어쩐지 겸연쩍었다. 잠간이었지만 더 이상은 몸을 꺾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핸들이 가슴께를 눌러댔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슬며시 들어보니 피자 배달부였다. 그는 차 안에서 주소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고개를 수그리기를 몇 번이나 거듭한 끝에 그가 차에서 내려 34호 집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4호에서 밤색 치와와를 데리고 혼자 사는 그 여자는 뚱뚱한 편이었다. 그녀는 아침 여섯시 삼십분 경이면 영락없이 강아지를 끌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 가끔은 새벽에 배달된 신문 뭉치 위에 오줌을 누기도 하는 그 녀석은 사람들만 보면 사력을 다해 짖어 대는 독종이었다. 하지만 왜소한 몸뚱이로 턱이 빠져나갈 듯이 앙칼지게 짖는 녀석을 보면 측은해 보였다.
34호 집 문이 열리자 노란 전등 불빛이 빗줄기 사이로 흘러 나왔다.

동시에 강아지가 머리를 내밀었고 여자는 두 다리로 강아지의 탈출을 가로 막으면서 피자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녀석은 용케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서 짖어 대었다. 주먹만한 작은 머리통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걸 보니 꽤나 흥분한 모양이었다. 돈을 받아든 남자가 뒤돌아 나오자 뒤에서 문이 닫혔다. 불빛은 다시 커텐 뒤로  숨어 버리고  34호 집 여자가 거실의 램프 옆에서 강아지와 함께 피자를 먹고 있을 동안 밖에서는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른 쪽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아주 느린 속도로 내 곁으로 막 들어서는 중이었다. 운전석 옆에 앉은 여자는 옆집 28호 니키 엄마였다. 이혼을 하고 친정 엄마와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그녀는 빨간 머리였는데 나는 그녀가 스커트를 입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체격에 비해 월등하게 엉덩이가 크건만 그녀는 언제나 꼭 끼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느라고 뒷마당에서 수선을  피우는 날에도 그녀는 야외용 의자에 길게 누워 이 쪽은 아랑곳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차콜 연기가 그 쪽으로 날아가도 자세를 바꾸지 않는 바람에 우리 집 남자들은 부채질을 해대며 야단을 피워야만 했다. 니키는 엄마가 출근할 때면 악을 쓰며 울어댔다.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뒤뚱거리는 동안 니키 엄마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시동을 걸고 몇 분을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그 때까지도 울고 있는 아이는 차가 독일 가문비나무 울타리를 지나서 돌아 나간 후에야 울음을 그치고 집안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혹시나 알아볼세라 의자 뒤에 머리를 바싹 붙이고 있던 나는 니키 엄마가 운전석의 남자와 키스를 하는 바람에 더욱 의자에  몸을 밀어 붙여야만 했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그들의 차 지붕 위에 그리고 차창에 떨어지고 있었고 번개는 그들을 탈색된 빛으로 순간 비춰 흑백 사진을 찍어 내는 것 같았다. 그들이 포옹을 풀고 니키 엄마가 차에서 내려 집 앞으로 뛰어갈 때까지 내게는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열쇠로 문을 열었고 문 안쪽에서는 엄마를 발견한 니키가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차를 향해 손을 흔들자 차는 서서히 후진을 했다.

다시 주차장에는 나만 홀로 남아 있었다. 다행히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나는 차문을 열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갔다. 벨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나중에는 아예 손을 떼지 않은 채 눌러댔다.  순식간에 머리가 젖었고 빗물은 어깨 위로 가슴 안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번개가 한 번 번쩍이더니 거의 동시에 천둥이 머리 위에서 나를 표적으로 삼은 것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덮쳐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차 안으로 뛰어 들었다. 집은 여전히 어두웠다. 새벽부터 홀 세일 창고에서 일하는 남편은 항상 잠이 부족해서 얼굴이 부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 돌보는 일을 내게 맡기고 잔업근무까지 하는 바람에 그는 늘 녹초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 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때는 입을 여는 대로 역정이었다. 그의 불안은 도를 넘었지만 그는 한번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시적인 일로 그렇게 묶여 살꺼야?  그까짓, 세끼 먹고 사는 일.
투덜거리는 내 소리에 남편은 양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것 봐, 그 원시적인 일이 해결 안되는 게 얼마나 비참한 줄 알아?
남편의 잠을 방해하는 일은 애초에 금지 되어 있었으므로 우리 방에는 아예 전화도 들여놓지 않았다. 게다가 방이 안쪽에 들어가 있으니 문을 닫고 있으면 주방에 있는 전화벨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천둥소리와 함께 아래층 거실에서 울리는 딩동 소리를 알아듣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나는 다시 집 앞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벨을 눌러대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벨소리는 여전히 빗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이제는 완전히 젖어버려서 옷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차안도 엉망이었다. 나는 핸들에 머리를 얹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추웠다. 남편에게 다시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교회 캠프에 보낸 일이 남편에게는 불만이었다. 요즈음은 교회 캠프도 변질이 되었기 때문에 잘 알아서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그곳에 가서 돼먹지 않은 여자애라도 사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남편의 불안이었다. 급기야 나는 먹은 밥이 얹혀서 소화제를 찾아야만 했다.
남편이 방으로 올라가버리자 나는 들으라는 듯 세차게 문을 소리 내어 닫고는 집을 나왔다. 달랑 지갑하나 들고 떠나기에 알래스카는 너무 멀었고 아직은 준비가 되질 않았다. 언젠가 그곳에 가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텐데. 맥킨리 산 속에 있는 산장이라도 찾아가서 청소라도 하지. 아니면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해서 보란 듯이 한달에 얼마씩 보내주지 뭐. 그리고는 한 마디 쓰는 거야. 나는 땅 끝에 와 있으니 찾지 마세요. 여기서 더 가야 한다면 나는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 때를 위해서 이만한 혈기쯤은 눌러야 하지만 그래도 오늘, 만만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맘과는 달리 기껏해야 월마트를 한 시간 정도 뒤지고 나니까 더 이상 갈 곳도 시간을 보낼 일도 없어져 버렸다.

몇 시쯤 되었을까, 번개도 물러가고 바람도 잔잔해져 가고 있었다. 비는 멈추지 않고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그때 집안에 불이 켜졌다. 주방 쪽이었다. 나는 월마트에서 산 샴푸, 향기 나는 초, 남편의 일회용 면도기가 들어 있는 비닐 봉투를 얼른 움켜쥐고 문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벨을 눌렀다.

그제야 문이 열리고 희미한 불빛 사이로 남편이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었다. 남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비에 홈빡 젖은 내 몰골과 손에 들려있는 봉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열린 문 틈새로 집안에서 낯익은 냄새가 풍겨 나왔다. 저녁에 튀겨 먹은 조기와 김치 볶은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휘지근하게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남편이 비켜서자 나는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의 온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고 수건을 꺼내 왔다. 그리고나서 거실의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나는 너무 낯익어서 마치 내 얼굴 같은 남편을 향해 말했다.
“.......열쇠가 없어서.... 밖에서 한 시간이나...”

목소리가 목에 걸려서 웅얼웅얼 거렸다. 남편은 덜 닫힌 문사이로 비 내리는 바깥을 잠간 내다보고는 문을 닫았다. 철커덕,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환하게 불이 켜진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층계를 하나씩 오를 때마다 잠적해 버린 두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비닐 봉투가 흔들리면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