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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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어떤 진혼제 (단편 소설)

2004.01.08 18:49

최영숙 조회 수:2148 추천:237

어 떤   진 혼 제 (鎭 魂 祭)

                                                                                                     최  영숙 (崔  英淑)


  11월의 하늘 밑은 싸늘했다. 영단 방앗간 쪽에서 참새떼가 날아 왔다. 그것들은 온몸에 들러붙은 냉기를 털어버리려는 듯이 야단스럽게 날개를 팔락이며 굴다리를 넘어갔다.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길게 울었다.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굴다리를 넘어왔다.그 소리는 큰길가로 나서려는 나를 흔들어댔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급히 머리를 저었다. 그럴수록  기차 소리는 더욱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아버지는 이틀 째 집에 들어 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식구는 없었다. 오늘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야만 하는 전기 요금이 더 급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저녁 부터 촛불 신세를 져야만 할 판이었다.

제지 공장 굴뚝에서 흰연기가  피어 올랐다. 꼬리를 길게 단 연기는  새파란 하늘 속으로 천천히 녹아 들어갔다. 잠시 서서 그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맨 얼굴위로 찬공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시린 어깨를 웅크리고 인도를 따라 걸었다. 치마 밑으로 파고든 찬바람이 아랫배 까지 기어 올라왔다. 소름이 돋았다. 걸음을 빨리했다. 굴다리로 들어서자  습습한 공기가 바람에 묻혀 왔다.

칙칙한 벽에는 이미 지난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우산 속에서 발뒤꿈치를 간신히 들고 입맞춤을 하고 있는 여배우의 얼굴 반쪽이 찢겨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그래도 이미 십분이나 늦어 있었다. 이내 군청 사거리에 도착했다. 사거리 한쪽, 횡단 보도 앞에 서서 건너편에 있는 상점을 슬며시 살폈다. 어제도 지각을 했다. 덕분에 나는 종일  벌을 서는 심정이었다.

김 춘태는 걸레질조차 내게 맡기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그의 수법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내발로 스스로 나가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잠시 주춤거렸다. 상점 문앞에 서기만 하면 늘 뒤돌아 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일년내 실직 상태였다. 벌써 다섯 번째의 실직을 기록하고 있는 아버지 밑에 여섯 식구가 배배 말라 가고 있었다. 실직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내 참 드러워서, 왼정신 가진 놈은 못해 먹어.”
이 말뒤에는 스스로 깨끗이 물러났음을 밝히려는 아버지의 안간힘이 숨어 있었다. 아버지는 저녁 때면 슬그머니 나갔다가 다 늘어진 아침이 되어서야 송장 같은 얼굴로 돌아와, 엇 추워 소리를 연발하며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 갔다. 그리고는 진종일 담배 연기에 절은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해가 뉘엿해지면 아버지가 낮동안 뽑아낸 가래침과 부글거리는 오줌이 사기 요강에서 지린내를 풍겨 댔다. 그나마 며칠씩 집에 돌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내보내서 슬며시 아버지의 행선지를 탐문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일에 질린 동생이 노골적으로 어머니에게 대들고난 뒤로는 아무도 아버지의 밤길에 대해 묻는 식구들은 없었다. 도리어 그런 아버지를 우리들은 서서히 잊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벗어 던진 양말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뻣뻣해진 채로 삐져 왔다. 우리들은 무심하게 그것들을 먼지와 함께 쓸어 냈고 어머니만이  가끔씩 멀쩡한 양말이라는 이유로 쓰레기 더미에서 끄집어 낼 뿐이었다. 시멘트로 싸바른 냉랭한 부뚜막에 걸터 앉아서 꾸둑해진 찬밥에 장아찌 몇 쪽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나서는 아버지를, 다섯이나 되는 딸자식들은 여전히 옆집 불강아지 보듯 했다. 아버지는 그런 대우에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 오히려 무릎이 반질거리는 바지를 추키면서 조심스레 대문을 닫고 나갔다.

어머니는 시장 길목에서 서너평 짜리 인조 꽃가게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느 날 꽃장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는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굶어  죽어도 장사는 안하겠다던 어머니의 고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왕이면 꽃장사 같은 거 말고 먹는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는 무섭게 화를 냈다. 꽃장사와 고기 장사 그리고 밥장사가 뭐가 어떻게 다른지, 어째서 꽃장사는 할 수 있어도 그좋은 먹는 장사를 못하겠다는 건지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꽃가게지 들여 놓은 인조꽃들이란 게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도매 시장에서 배달된 화분 속에는 수국 잎사귀에 초롱꽃이 매달려 있다든지 난초잎에 금잔화를 닮은 꽃들이 매달려 있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그나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꽃대궁을 뽑아서 이쪽 저쪽 잎사귀 틈새에 인심 좋게 꽂아 주기도 했다. 그것들은 어머니 말대로 결코 죽지 않는 대신 걸핏하면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알게 모르게 바래 갔다. 덕분에 사흘에 한번쯤은 통째로 뽑아서 비눗물에 목욕을 시켜야만 했다. 장사라고는 난생 처음 손대본 어머니는 손님을 족족 놓치는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냄새나는 발을 펌프 물에 문질러 닦으면서 궁시렁궁시렁 욕질이었다.

  .“..드러운 연놈들,그러구 나앉었으니까 내가 뭣같이 보이나 벼. 사지두 않으면섬 하는 말들 하고는........”
하긴 그런 인조꽃을 누가 사간다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서향받이  가게 안에서 긴 햇살에 녹아 내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는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여 내간 김치 찌개와 잡곡밥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길바닥만 바라보다 아랫 동생들이 제멋대로 챙겨 먹고 뱃구레를 허옇게 드러낸 채로 잠들었을 때서야 허정거리고 들어왔다.

그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연탄 한장 값도 못벌어 오는 날이 허다했다. 가끔 신색이 훤해서 들어 오는 날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아버지 친구들이 인사삼아 화분 몇개를 팔아준 덕에 쌀말이나 살 수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곳에 들르는 걸 싫어했다. 길바닥만 간신히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 얼굴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그런 형편에  김집사가  마련해준 자리는 감지덕지였다. 그런데도 나는 도무지 낯설고 서툴렀다. 김집사는 입원 중이었다. 먹기만 하면 속이 끕끕하다고 하더니 결국 토사까지 해대고 갱신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으로 실려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애써 개업한 자신의 상점에 발도 디뎌 보지  못한 채  깊어가는  병과 싸우고 있었다.

김 춘태가 진열대 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나를 흘낏 쳐다보고는 들고 있던 마른 걸레를 양동이 속에다 던져 버렸다. 바싹 마른 그의 등줄기 위에서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벽돌색 스웨터가 헐렁거리다 못해 겉돌고 있었다. 나는 양동이 속에서 걸레를 집어 들어 밤새 그릇들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우선 유리컵 셋트를 부지런히 닦은 후  모조 크리스탈 양주잔을 하나씩 문질러 닦았다. 그런 다음  선반  가운데 칸에 가득차 있는 캐시미론 이불을 툭툭쳐서 부풀려 놓았다. 호랑이 무늬가 든 담요는 좀 더 잘 보이도록 약간의 각도를 주어서 틀어 놓았다.  이제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손목 시계들을 들어내서 점검해 보고는 다시 집어 넣기만 하면 아침 일은 대충 끝날 것이다. 반석 소비 조합이란 거창한 간판을 보고 호기심 때문에 들렀던 사람들은 우선 진열된 상품이 다소 구색이 안맞는데 의아해 했다. 한술 더떠 시큰둥한  김 춘태의 응대에 쭈뼛거리다간 그냥 나가 버리곤 했다.

일을 마치고 나자 상점 안은 어제와 다름 없는 시간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바람든 무우 같은 시간이 정말 견디기 힘든 멍한 권태를 슬며시 몰고 왔다. 가까이에서 기적 소리가 들렸다.  기차 바퀴는 모든 일상을 위협하듯이 쿵쿵 울리면서 굴러왔다. 그 소리는 이 작은 도시의 어느 구석이나 파고 들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쇠바퀴 소리를 들었고 또 언제나 곧 잊었다. 우릉우릉 방안으로 달려드는 무참한 소리에도 그들은 끄떡없이 잠들 수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고 가는 그것들의 굉음은 오히려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바로 철로변에 있는 학교에서 삼년을 공부했지만 귓속으로 늘 기차 소리가 뛰어 들어 왔다. 친구들은 물어볼 때마다 한번도 못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서야 아, 지금 지나간다 하고 무심히 끄떡거렸다.


기찻길을 조심조심 건너고 있었다. 아무리 눈여겨 봐도 눈에 뭐가 씌면 달려 오는 기차가 안보이는 법이라고 아버지는 노상 말했다. 마악 꺼먼 기름으로 범벅이 된 침목을 디디고 올라섰을 때였다. 양쪽에서 외눈박이 괴물 같은 기관차가 왜액 소리를 질러대며 달려 왔다. 순간 회오리 바람에 휘익 말려든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 가기 시작했다. 질러도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구멍을 비틀어 잡고 발버둥을 쳐댔다.

그새 졸았던 모양이었다. 입구에 서있는 사내를 멀건이 바라보는 머리 속은 수세미 처럼 엉크러져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엎드려 있던 책상과 희부연 유리문이 한결같이 낯설었다. 마치 유기된 기분이었다.  사내는 서슴 없이 안으로 들어 섰다.

“ 댁이 미쓰 정이시우? ”
배때벗은 말투에 비해 외모는 훨씬 어려 보이는 사내였다. 잘해야 스무살 언저리나 됐을까?  사내는 세상 살이에 닳고 닳아서 볼 것 못볼 것 다 봤다는 투의 뻔뻔한 눈길로 나를 쳐다 보았다. 김춘태가 유능한 직원 하나를 간신히 끌어 왔다더니 바로 그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는 메고 있던 검정색 비닐 가방을 진열대 구석 저 편 의자에 팽개치듯 내던졌다. 그리고 그가 내게로 곧장 걸어 왔을 때 나는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를 짖찧으며 벌떡 일어섰다. 나는 단지 수치심 때문에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한껏 사내를 노려 보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갖춰 입은 검정색 양복은 그의 누르팅팅한 얼굴로 인해 상복 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길을 무시하고는 김춘태 곁으로 다가갔다. 김춘태는 마직천을 덮어 씌운 썰렁한 쏘파에서 고개를 구겨박은 채로 졸고 있었다.  상점 안은 갓칠한 페인트 냄새로 꽉 차 있었다. 가끔씩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모공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냄새로 질식해 버릴 지경이었다.

“이보셔, 김혀엉! 제길헐, 아무리 누나네 장사라구 해두 그르치...팔짜 한번 늘어졌군....”
김춘태가 여전한 자세로 잠에 빠져 있자 그는 대뜸 내게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 맨날들 이러슈? 이래두 월급줘요?”
사내는 애초 대답 같은 건 기대하지 않은 듯, 빈자리에 풀썩 소리를 내고 주저 앉았다. 그 서슬에 김춘태가 좁은 눈을 치켜떴다. 사내는 김춘태의 눈곱낀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 쯧쯧! 이래두 되는거유? 누군 발바닥이 까지두룩 돌아 댕기구,누구는 침흘리면서 낮잠 자구 말유, 응? ”

김춘태가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머리를 득득 긁고 나서 그는 손톱 밑에 낀 때를 후벼 냈다.
“ 헤잉, 아니 총각 처녀가 마주 앉어서 눈 맞춰도 시원찮을 텐데 벌건 대낮에 무신 낮잠들이려어? ”
사내가 갑자기 몸을 틀어 댔다.
“왜 찔려? 내말 틀려?”
사내가 나를 보고 킬킬 웃었다.
“잔말말구 갔다온 얘기나 해봐, 그래 으땠어?”
김춘태가 고객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내는 손바닥만한 수첩을 마주 들고 앉아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동말에 뚱땡이 아줌마 말유, 발써 은성에서 손쓴 것 같든데? 날보구 으찌나 콧방귀
를 풍풍 뀌는지,쉰 냄새가 날 지경이었대니까“
“뭐어야? 그러게 내가 멫번이나 말했어? 엉? 그 예펜네 놓치면 다 틀린단 말야.”
“ 차암,형두 딱하시우, 글쎄, 오메가 다섯개 팔아주면 저한테 한개씩을 쳐 달래는 거라. 첨에 일곱개에 하나 쳐준다구 했을때만 해두 입이 헤벌어졌는데 말여. 암만해두 은성 놈들이 물 멕이는 거 같어”.
“ 흐응 촌년들이 까질대루 까져 갖구는. 그래 갑수, 넌 뭐라고 그랬어?”
“ 난 모른다. 아무튼 우리 사장한테 직접 나와봐라. 물건을 보구 다시 얘기하자. 우리 꺼는 다른데  하고 달르다. 대충 얼버무려 놨으니까 오늘 낼 안으루들 들를꺼여”.
“ 잘했어. 아무튼 그건 그렇구 벌터 쪽은 으때?”
“ 거긴 아직 안들어간 눈치긴 한데... 말이우,계오야들을 한번 죄다 불러다가 점심 한번 사는게 좋을꺼 같어.”
“ 그거야  날만 잡어라, 지깟것들이 끽해야 불백이면 나가 떨어질텐데 뭘.” “  건 그렇다치구, 물건이나 좀 제대루 갖다 놓으라구. 여자들은 현물에 약한거 아녀?”
“ 야아,그렇게 많은 걸 무슨 수로 다 갖다 놓냐? 다 카타로그로 해 먹는 거지.”
“ 헹이, 형은 암것두 몰러, 아, 당장 집어 간대봐. 양잿물도 갖구 간다. 안그래 미쓰 저엉?”

다음 날, 상점 안은 그야말로 늦은 여름 날, 쓰르라미들이 모여든 꼴이었다. 여섯 명의 여자들은 문을 밀고 들어 서면서부터 떠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오글오글 볶아댄 모습은 새빨간 입술연지로 해서 더욱 갑갑해 보였다.

한눈에 뚱땡이 아줌마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쏘파에 퍼질러 앉아서 상점 안을 훑어 보았다. 시쁘다는 표정이 주근깨가 새카만 얼굴 위에 떠올랐다. 그녀는 짤막한 목을 뒤로 젖히면서 말했다.
  “여긴 뭐 마실 것 좀 안줘어?”
  “아이구 사모님,무슨 말씀을요. 이봐, 미쓰 정 !”
김춘태가 내게 눈짓을 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미처 나가기도 전에 한 여자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쟤,멫살이래? 아직 영계 같은데? 흐흐흣! 혹시 김사장이 털도 안뽑구 꿀꺽 한거 아녀?”

뒷통수에서 깔깔 대는 소리가 들렸다. 문밖으로 나서자 휘웅 찬바람이 몰아쳤다. 기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식료품 가게에서 한참을 쩔쩔매던 나는 초콜렛 우유와 딸기 우유를 대충 섞어서 사들고 왔다. 그네들은 꺼내 놓은 우유를 흘낏 쳐다 보았다. 그중에서 안그래도 탱탱한 아랫배를 잔뜩 내밀고 앉아 있던 청바지 여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 아니 그래, 반석 상회 수준은 끽해야 음매젖이여?”
그 말에 여자들이 와르르 웃었다. 김춘태는 얼굴이 벌개져서 벌컥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맥주와 오징어, 땅콩이 듬뿍 들려 있었다. 그는 뱃덧난 얼굴로 돌아 서서 내내 나를 쳐다 보지도 않았다.


갑수라고 불린 사내는 김춘태의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었다. 동말 뚱땡이 아줌마는 오메가 시계를 스물 네개나 끌어 안고 갔고 청바지 여자는 이불과 담요를 용달차에 싣고 갔다. 갑수가 수금해 오는 돈을 카드에 찍는 일은 간단했다. 할부금액과 잔금을 계산해 놓고 확인 도장만 찍으면 되었다. 그 외에 내가 할일이라고는 변함 없이 먼지 닦고 졸고 하품하는 일이었다. 외근이 없는 날, 갑수는 온종일 상점 안에서 노닥 거렸다.

김춘태는 그즈음 개업한 바로 옆의 인삼 찻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나는 갑수의 포마드로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냄새와 휘감겨 오는 시선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자위가 유독 노란 그를 쳐다보면 속이 느글거릴 지경이었다. 유난히 불룩한 내 앞가슴은 동생한테 빌려 입은 꼭 끼는 스웨터 덕분에 더욱 터질 듯 했다. 갑수의 시선이  자꾸 앞가슴으로 몰려 오자 나는 민망하다 못해 비참한 심정이 되어 갔다. 그는 의자를 내 앞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얼굴을 바싹 쳐들고 말을 꺼냈다.

“ ....나 같은 깽비린 말예요, 어딜가나 고자 취급이예요. 맨날 아줌씨들 발바닥이나 긁어 주고 헤헤대니깐 이건 순 남자루 뵈질 않는 모양이예요...미쓰 정두...그르케 생각해요? ”
갑수는 언제나 찰싹 늘어 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아랫도리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때, 진열장 너머로 낯익은 노란 옷자락이 어른거렸다. 막내 동생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기웃대고 있던 모양이었다. 동생은 긴장으로 온통 뻣뻣해 있었다.
“크,큰 언니....빨리 집에 가...아부지가...”
동생은 후두둑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마루 한 가운데에 재봉틀 의자를 갖다 놓고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집안에서 아버지는 석고상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 있었다. 부연 어둠을 통해 아버지 발바닥에 흥건하게 흐른 피가 보였다. 요강을 걷어 찼는지 여기저기 사기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지린내가 훅 풍겨 왔다.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우선 마루에 전기불을 켜려고 스윗치를 올렸다. 그때서야 단전에 대한 마지막 경고가 오늘까지였음을 기억했다.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관둿! 나하나 읎어지면 될꺼 아녓!”
나는 못들은 척, 요강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걸레질을 하는 팔목에서는 스르르 힘이 빠져 나갔다. 쿵쿵 마룻 바닥을 울리면서 기차가 지나갔다. 꿀꺽 침을 삼켰다. 목안에서 단내가 물큰 올라 왔다. 그날 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헤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무엇이 되든 좋았다. 그저 여기만 아니면, 이 황량한 도시만 아니라면  어디가서 무엇이 되든 나는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다. 밤늦게 들어온 어머니는 우물둑에 앉아서 반울음으로 중얼거렸다.  미닫이문 너머로 들려 오는 어머니의 메마른 음성을 듣지 않으려고 나는 귀를 틀어 막았다. 하지만 그 말들은 송곳처럼 꽂혀왔다.

“저 인간 저르케 돈에 환장한 걸 보니깐 노름빚두 웬간찮은가 벼...에이구 그놈의 손모가지 썩어 문드러져야 그짓 그만둘꺼여.”
아버지는 마작판에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밤길은 그래서 시작 되었다. 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의 행정 책임자였다. 그것은 다섯번 째의 직장이었다.

직장을 따라 옮겨 오던 날, 우리 형제들은 냉동차와 같이 생긴 유개차 뒷쪽에 짐짝과 함께 실렸다. 그런데 밖에서 빗장을 질러 잠그게 되어 있는 문짝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슬금슬금열리기 시작했다. 바로 문앞에 앉아 있던 나는 빗장이 벗어 지기만 하면 영락 없이 굴러 떨어질 판이었다. 조수석에 막내를 안고 앉아있을 어머니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 대도 그 외침은 컴컴한 쇳상자 속을 때리고 그냥 사라질 뿐이었다.

나는 동생들의 손을 사슬처럼 엮었다. 곧이어 거짓말 처럼 문이 활짝 열렸을 때 굴러 떨어진 것은 검댕이 잔뜩 늘어 붙은 양은 솥이었다. 솥 구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차가 섰다. 내려선 아버지가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를 들여다 보았다. 밭고랑에서 주워온 솥을 아버지가 디밀었을 때 나는 할 수 없이 그것을 끌어 안았다. 컴컴한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동생들이 움직거렸다. 하나 같이 엄마 옆에 앉겠다고 칭얼대자 아버지는 야멸차게 문을 닫고 나서 이번에는 빗장을 단단히 질렀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빗장은 다시 벗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은 솥은 차가 출썩거릴 때마다 얼굴을 때리고 팔뚝에 부딪치며 요동을 쳤다. 그렇게 해서 찾아온 소도시는 내게 황량하기만 했다.

철길이 이 소읍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데다 강만큼이나 넓어 보이는  시내가 그나마  남은 도시를 남북으로 또한번 나누고 있었다. 논을 사이에 둔 동쪽 끄트머리에는 경부 고속 도로 마저 지나 가고 있어 파고 드는 황량함은 비만 오면 물이 나는 연탄 아궁이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 소읍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도 위안이 있다면 아버지가 다시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과 우리 형제들이 읍내에서는 어딜가도 콧대를 세우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삼년이 되기도 전에 끝나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벌인 배수로 공사 때문이었다. 읍내 골목들은 비만 오면 진창이었다. 걸핏하면 하수도 물이 역류하고  그 속에서 죽은 쥐들이 둥둥 떠오르기도 했다.  장화가 없으면 두부 한모도 사다 먹지 못할만큼 형편 없는 사정이었다.  어쨌든 이곳의 숙원 사업이긴 했지만 무리한 일이었다.  전임자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일이었다. 공사가 지지부진해지던 어느 날, 공사를 맡은 업자가 감쪽 같이 사라졌다. 그것도 공금에서 나간 공사 대금은 챙길대로 챙긴 다음이었다.

납품업자들은 어음을 들고 찾아와 아우성을 쳤다. 법적으로 공사 책임자였던 아버지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우리가 살던 집을 내주고도 집 한 채 값의 부채를  더 짊어져야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친지가 빌려준 기찻길 옆의 외진 공터에 부슬부슬한 블록으로 집을 짓고  애옥한 살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설겆이를 할 때마다 막히는 하수구 때문에 뻔찔나게 개골창을 파헤쳐야 했다.

밖으로 난 수챗구멍을 통해서는 시궁쥐가 집안으로 기어 들어 왔다. 투실투실한 시궁쥐가 부뚜막에 올라 앉아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불렀다. 살생을 할 수없다는게  어머니의 변명이었다. 나는 연탄 집게로 쥐를 때려 잡으면서  멀어져 가는 꿈들을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다음 날, 나는 부석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괜찮어요? ”
갑수는 근심스레 물었다. 그는 하루만에 부썩 커버린 사람처럼 달라진 말투로 다시 말했다.
“ 미쓰 정, 내가 혹시 잘못봤는지는 몰러두.....딴 생각은 애시당초 말어요...난 눈빛만 봐두 알어요.”
갑수의 얼굴이 낯설만큼 변해갔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가 느껴졌다.
“ 내가 고향에 돌아온 건 사년전이에요....”
그의 입매가 한 쪽으로 씰그러져갔다.
“ 나만 갠신히 중학굘 졸업허구 그 밑에 동생놈들 셋은 흐지부지 하다가 졸업장두 못받았에요....울 아부지는 돌아 가시는 게 차라리 나았에요. 정신이 헷가닥해서 닥치는 대루 불을 지르구 다니구...한마디로 발광이었지요.”
갑수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 낭중에는 아무한테나 매질 칼질이니 증말 미칠 노릇이었에요. 그일 나기 을마전에는 냇갈에다 움막을 지어 놓구 거기다가 묶어 놓을 형편이었죠. 그러구 난 바루 집을 나가 버렸에요. 빈둥빈둥 놀구 있다가 동네형이 서울루 간다기에 뻐쓰 값만 훔쳐 갖구 그냥 튄거죠, 뭐.  근데 그 해 여름이었에요.

장마가 길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글쎄 큰물이 졌더라구요.  한강이 넘친다고 해서 밤새 잠두 못자구 있었지요  그때 여기두 굉장했나봐요.  붉덩물이 벌창을 허구.... 암튼  한 밤중에 윗방죽이 터진다구 읍사무소에선 싸이렌을 분다,방송을 한다, 생각을 해봐요. 을마나 난리였겠어요?  사람들은 자다말구 청학산으루 죄다 도망쳤대요. 동생 놈들두 죽을둥 살둥 뛰었겠지요.

근데 엄멈, 가서 보니깐 엄마가 읎드래요.  허긴 걔네들이 뭘 알겠에요. 난 영등포에 있다가 소식을 들었에요.  증말 환장허겄드라구요.  움막이 있던 자리를 찾아 갔을 때 ....그 심정, 미쓰 정은 상상두 못할꺼예요. 그래두 움막을 버티고 있던 기둥하난 남아 있대요. 거기에 짚푸래기, 무슨 넝마 쪼가리 풀뿌락지들이 뭉텡이루  엉켜 붙어 있는데, 이건 눈물두 안나오구...”
갑수의 눈자위가 휘주근해졌다.

“남들은 다 서해루 쓸려 갔을 꺼라구 그랬지만 난 그게 아니드라구요. 암만해두 근처 어디쯤에 파묻혀 있을 꺼 같앴에요. 그래서 쇠 꼬챙이를 하나 길게 맨들었지요. 그걸루 모랫 바닥을 쑤셔 댔에요. 먹지두 못허구 땡볕에서 종일 그 짓을 했으니,어질어질 해서 쓰러진 적두 있었에요. 그치만 그때 뭐, 그딴게 문제겠에요....”

“그래,어떻게 찾긴 했어요?”
갑수는 머리를 저었다.
“ 어쩌믄 그때 못찾은 게 다행인지두 몰러요. 가끔씩은 두 양반덜이 어딘가 살어기시지 않나 허구 엉뚱한 상상이락두 해볼 수 있잖어요? ”
나는 갑수의 눈시울에서 켜켜이 내려 앉은 시름을 보았다.
“ 그래,동생들 때문에 헐수 없이 이 짓을 시작했에요. 말이 외판이지 이건 간쓸개 다 빼 놓지 않으면 신발 값두 안나와요.... 으떡해서락두 땅 한뙈기 장만 하면 다 때려치구 개장사나 해볼까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근데 미쓰 정,”
갑수가 정색을 했다.
“ 내가 만일 여기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 부모님덜이 살어 기시지 않었을까요?”
그는 울고 있었다. 내게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때리고 있었다.

그때 , 김 춘태가 들어 왔다.
  “이봐, 미쓰 정 나 좀 봐!”
김춘태는 잔뜩 굳은 얼굴로 쏘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어, 다른게 아니고...... 누님이... 위암 말기라는군.”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두 장사도 안되고 또 세사람씩 붙어서 할만큼 일이 많은 것도 아니구 말야....
그가 탁자 위에 돈을 올려 놓았다. 지폐는 굴러다닐대로 굴러다닌 탓에 더럽기 짝이 없었다.
  앞으로 좀 놀러 오기두 하구 그러라구 응?
나는 고개를 발딱 젖히고 건네준 돈을 손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짐짓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한달 월급이 만 오천원, 해고 당한 퇴직금이 또 한달치. 이 돈이면 충분했다. 밤차를 타면, 그러면 새벽에 부산에 가닿는다.  그 다음 일은 운명일 뿐이었다. 지난 여름 속리산에서 주소를 적어준 다리 저는 사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연고였다.

이미 길 위에는 두더쥐빛 어둠이 내려 서고 있었다. 상점의 형광등에서는 날이선 냉기가 보도 위로 흘러 나왔다. 사람들이 바삐 스쳐 갔다. 저들은 길들여진 탓일까? 아니면 정말 돌아 가고 싶은걸까?  버스가 섰다. 차창에 머리를 부딪쳐 가며 졸고 있던 남자가 깜짝 놀란 눈으로 밖을 두리번 거렸다. 저들은 정말 돌아 가고 싶었을까?

이제 보이는 것이라고는 번져 보이는 불빛과 차츰 짙어 가는 포도빛 어둠이었다. 발길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 등뒤에서 급히 달려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갑수였다. 그는 철지난 윗옷을 잔뜩 싸 안은 채 웅숭그리고 다가섰다.
“ 맘 같어서는 저녁이락두 같이 했으면 좋겄는데, 뭐 그럴 기분이겠에요? 더군다나 나허구요. 그치요? ”
갑수는 히죽이 웃었다.
“ 근데 증말 엉뚱한 생각은 맙시다, 예에? ”
말끝에 그는 불쑥 만원 짜리 지폐 한장을 내밀었다.
“ 대신 꼭 나와서 점심 한번 사야 돼요.”
나는 엉겹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얼른 돌아 섰다. 갑수의 무거운 시선이 뒷통수에 실려 왔지만 나는 끝까지 뒤돌아 보지 않았다.

새마을호를 타려면 수원역으로 가야만 했다. 서둘러야 간신히 밤차에 닿을 수 있었다. 학교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무심코 나무 울타리를 손으로 쓸었다. 따끔했다. 가시 향나무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 왔다. 나무 울타리가 끝나고 야채 실습지를 구분하고 있는 철조망이 시작 되는 곳에 이르자 우리집 지붕 한 쪽이 보였다.슬레이트 위에 칠한 붉은 색은 어둠에 파묻혀 그저 칙칙하게 보일 뿐이었다.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테다. 눈 두개에 달려 있는 세상의 의미. 질끈 감아 버리자. 거추장스런 시선도 손가락질도 숨어서 저지른 내죄에 대해서도. 나는 쉬지 않고 웅얼거렸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기분이었다. 대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짧은 신음을 토했다.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문 저 편, 전봇대에 매달린 외등 불빛 속으로 뛰어 오는 동생들을 보았다.

“ 큰언니이! 아부지가 기차에 갈렸어!”
  나는 귓속까지 때리는 엄청난 기적 소리를 들었다. 동생들은 내게로 엎어졌다.

몸이 불편해서 일찍 들어 온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곧장 돈을 요구했다.
“ 지서장이 새로 왔는데 말야, 오늘 환영식 겸해서 소방대장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있는대로 다 내놔봐, 이건 암만해두 예사 꿈이 아니야.”
“ 뭐요오? 으쩌믄 당신은 이 판국에도 그래 벽돌이나 쌓으러 간단 말이우?.  그까짓 개꿈 백날 꾸믄 뭐하우. 당신 증말 미쳤우? 새끼들이 쫄쫄 굶구 있는게 뵈지두 않우?
....에익 그 놈의 인간 망태기덜  내가 죄다 고발해 버릴꺼엿!“

어머니가 퍼붓는 말에 아버지 눈빛이 번뜩였다. 그길로 아버지는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맏동생이 예사롭지 않은 아버지 눈빛이 맘에 걸려 부리나케 뒤쫓아 갔다. 철길 위에 올라선 아버지를 보았을 때였다 서울행과   부산행 열차가 교차하면서 아버지 한테 대들었다.  아버지 모습이 불빛에 확 드러났다.

“그담은 몰라, 눈을 꽉 감았어. 언니! 어떡해!”
동생은 부들부들 떨었다. 막내는 선채로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 엄마는?”
“ 누워있어.”
“ 그 말했니?”
“ 응, 그랬더니 죽어두 괜찮대”.
“ 아냐, 엄마 막 울구 있어.”
“ 너희들은 들어가 있어. 그리고 엄마한텐 더 이상 암말두 하지 말고.”
“ 언니 혼자 어떡할라구?”
“ 글쎄 걱정마, 여긴 절대루 기웃거리지 마! 알았지?”

나는 전지불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철로변으로 다가갔다.  철길로 올라섰다. 좀전에 아버지가 그곳에서 생사를 매듭지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곳은 고즈넉했다. 가슴 속에서 활랑이는 슬픔 같은, 어쩌면 분노 같기도한 응어리 때문에 나는 담박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전지불을 켰다. 밤안개에 가려진 가로등은 선로에 인색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선로는 마치 흑사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그것은 저 편 어디선가 대가리를 곧게 쳐들고 추스르기라도 하면 단번에 쉬쉬 소리를 내고 달려들 듯이 오싹했다.  그것의 몸뚱이는 번질거렸다. 발밑에서 자갈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아버지는 튕겨 나가 어디쯤에서 죽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서둘러 철길에서 내려 섰다. 우선 구지렁물이 갇혀 있는 고랑창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씩 희끄무레한 신발짝이나 비닐 조각에 급한 숨을 들이켰을 뿐이었다. 무우를 뽑아낸 밭에서 흘린 시래기들이 진창에 묻혀서 걸을 때마다 발 끝에 걸렸다. 전지불을 휘둘러 훑어본 밭둑에는 잎사귀를 뜯긴 아주까리가 을씨년스럽게 서있었다.

잠시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려 왔다. 아니다. 어쩌면 바퀴에 끌려서...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시 철길로 올라섰다. 코스모스를 심었던 분리대를 따라 냇가 쪽으로 걸어 올라 갔다. 하행선 열차가 지나갔다. 차창의 불빛이 나를 후더듬었다.  어둠 속에 서있던 나를, 그것은 모욕이라도 하듯 불빛에 드러냈다가는 곧 어둠 속으로 다시 떠다 밀었다. 나는 자갈을 들어 꼬리만 보이는 열차 꽁무니에 턱도 없는 돌팔매질을 했다.  전지불은 이제 발등만 비출뿐, 농밀한 안개는 검은 선로를 꿀꺽 삼킨 채 나를 야금먹어 들어왔다.  나는 완전히 밤에 갇혀 버렸다.

뜨막해진 열차의 운행은 되려  나를 두렵게 했다.  안개를 비집고 들어와 더듬이 같은 눈끝으로 나를 훔쳐 보고 있는  도시의 뿌연 불빛들. 그래도 그것들만이 선로를 뒤지고 있는 내가 몽환 속에 빠져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저만큼이었을까? 나는 문득 갑수를 떠올렸다. 쇠꼬챙이를 들고 모랫바닥을 뒤지고 다녔을 갑수의 젖은 등판. 노랗게 몰려드는 현기증을 이겨 내며 물여뀌가 속도 없이 비쭉 자란 냇가에서 죽음의 실체와 맞닥뜨릴지도 모를 순간을 갑수는 어떻게 견뎌 내려 했을까? 어쩌면 아버지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의 눈이 착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었다. 강렬한 불빛이 맞부딪치며 얽혀드는 찰나에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빛의 공백 세계가 있을 수 있다.

물가에는 습도 높은 밤공기가 가득차 있었다. 철교는 물안개 위에서 교각을 감춘 채 부웅 떠 있었다. 나는 어림짐작으로도 철교 위 어디쯤에 대피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아버지는 깊은 물속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 갔는지도 모른다. 모래밭은 어둠 속에서도 희부윰하게 드러났다.  갑수는 그곳에 솟아 있던 기둥을 붙들고 울었을까? 아니면 그것을 뽑아 버렸을까?  갑수 아버지는 기둥에 묶인 채로 흙탕물이 밀려 오던 바로 그 순간에 무얼 생각 했을까?  개어귀 까지 쓸려 갔을 때는?  벌써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물에 불은 육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을까?  아! 아버지는 순간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뒤돌아 서고 싶지 않았을까?  변명도 후회도 도망도 칠 수없는 망자일지도  모를 아버지를 나는 추억이란 그물까지 들고 얽어매고 싶지 않았다. 너무 추웠고 게다가 나는 내장 속의 융모까지 곤두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런데도 돌아서질 못했다.

음습한 공기는 청학산이 웅크리고 있는 그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물고기 등지느러미를 닮은 능선은 거무끄름한 하늘과 맞닿은 모습으로 완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전지 불빛은 차차 흐려 갔다. 전지불을 껐다.
나는 이제 어둠과 동료였다. 똑같은 맥박과 체온으로 숨어 있을 수 있었다.  어둠은 넉넉한 품을 갖고 있었다. 나는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정지해 준다면 나는 이만큼의 외로움쯤은 영원히 감당할 수도 있을텐데...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정말 이렇게 나에게 짐지울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도망치고야 말것이다. 비겁했던 사람을 위해 내가 평생 박제 될 수는 없었다. 화물 열차가 철교 위를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모래 바람이 심하게 일어났다.

몇시나 됐을까? 열차가 지나가고 난뒤 갑작스런 고요가 나를 휩쌌다.  그때, 새삼스럽게 가방 속에 든 돈의 무게가 실감나기시작했다. 갑수가 준돈까지 합해서 4만원, 쇠고기로는 약 30근, 연탄으로 치면 7백여장, 쌀은 한가마니 반, 아니면 동생들 스웨터 하나씩. 그것으로는  고작해야 이들 중에서 한가지만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하루를, 일년을 그리고 평생을 책임진다는 일은? 그건 형벌이었다.

경부 고속도로에는 화물 트럭이 경적을 길게 남기면서 깊어 가는 밤을 좇아 달려 갔다.  부우웅 뱃고동 소리와도 흡사한 경적은 들판을 지나고 잠들어 있는 지붕을 넘어서 냇물을 건너 왔다.  그 뒤를 이어 웅웅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단절음이 건널목 저 편, 자전거포 고물상, 구두 수선집이 늘어서 있는 냇둑에서부터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차소리보다 더 크게, 화물차의 경적보다 더욱 길게 끄는 듯 마는 듯 계속되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건널목을 가로 질러 뛰어갔다. 아버지의 형편 없는 애수의 소야곡을 알아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멈칫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 버드나무 뒷편에 몸을 숨겼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냇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곁을 아버지는 미끄러지듯 무게를 느낄 수 없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안개는 어둠을 밀어 내고 마악 아버지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과는 달리 내 발은 아버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잠깐 어? 하고 알은체 했을 뿐이었다.  나는 말없이 서서 아버지가 앞서 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 이 짜식이, 너 뭐 알구 왔구나?  허허! 내가 말이다, 오늘 새로온 지서장 주머니를 싸악 훑었지 않았냐?  소방 대장은 눈을 찡긋대고 난리였지만 말이다.  나두 이번만큼은 안면에 철판 좀 깔았지. 야아, 이것 좀 받아라, 문닫은 고깃간을 두들겨 깨워서 돼지 고기 댓근 샀다!”

아버지는 신문지로 둘둘 말은 뭉치를 내게 건네주었다. 기웃뚱 내려 앉은 한쪽 어깨가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아버지의 콧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그 소리는  석유처럼 검게 보이는 냇물위로  흩어져 갔다.  나는 손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손을 집어 넣었다. 지폐뭉치가 손에 잡혔다.  싸늘한 손끝에 돈의 무게가 실려 왔다. 그와 함께 담뱃내와 흡사한 돈냄새가  코끝을 쏘았다. 아버지를 부지런히 따라 잡았다.그런 다음 늘어진 어깨에 걸친 윗옷 주머니에 사만원을 찔러 넣었다.

“ 으응? 이게 뭐냐? ”
아버지의 말꼬리는 철교를 건너 오는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 바퀴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열차는 디디고 선 땅을 흔들어 댔다. 뱃속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심한 공복을 느꼈다.  열차는 새벽에 도착할 부산역을 향해 밤바람을 가르며 달려 가고 있었다.


                                      1992년 문예사조 신인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