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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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하늘의 다리

2004.01.10 11:45

최영숙 조회 수:1580 추천:255

"  하늘의 다리-최인훈 작 "

-우리에게 배달된 실종소식-

' 살바도르 달리'는 바닷가 모래밭에 형체를 잃고 늘어져 있는 시계를 그렸다. 삽화로 예술을 팔아먹는다는 준구가 드러내 보고 싶었던 하늘의 다리가 내게 그와 비슷한 영상으로 떠올랐다. 우선 현실과 초현실의 공간에 물렁물렁한 시계가 늘어져 있는 모습과 지붕들 위에 떠있는 다리의 환상이 똑같이 기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들고 웃고 마시고 배설하는 도시의 지붕 위에 둥실
떠있는 다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준구. 시어로 채워진  준구의 오브제는 옷을 벗기도 하고 공허한 관념어를 동반하기도 하고 색칠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상징적인 언어의 미술로 캔버스 위에서 산고를 일으켜 나간다. 그일은 생각지도 않은 편지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의 스승이었던 한동순 선생의 편지를 받고 준구는 한선생의 가출한 딸 성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일러준대로 청량리의 OK 비어홀을 찾아가 그곳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성희가 바로 자신의 비참의 증거임을 깨달으면서 준구의 괴로움은 심도를 더해간다.

L.S.T 를 타고 원산항을 떠나온 뒤로 잊고자 애를 썼던 온갖 고초와 회한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더우기 한동순 선생의 집 울타리를 넘어오던 오르간 소리의 회상은 준구를 혼자만의 아파트에서 추위에 떨게했다.
'예술이란 불러내는 것, 먼데 것을 불러내는 것. 가라앉은 것을 인양하는 것'이라고 준구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그러나 '슬픔의 무게에도 가라앉지 않는 지구'에서 '익사자가 되어' 도시의 한복판에 홀로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는 준구의 고독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몫은 아닐런지.
창작이란 그러한 높은 지향을 갖고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서서히 빈곤해져 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 속에 녹아도 안되고 하늘 위에 얹혀도 안되는 것. 오직 다리는 하늘을 밟아야 하는데 억지로 누르면 발가락들은 초처럼 녹아 버린다.'
그러므로 붓은 미완성의 그림 위에서 헛되게 서성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미지의 형상화에 실패한 예술가는 또다시 L.S.T를 타고 떠날 유랑에의 필연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전에 떠난 진실이라 칭의하던 허다한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에 닿아 있을 것인가? 더불어 떠나버린 희망과 푸른 시대는?

'사람은 자기가 걸어나온 고향과는 다른 무엇이 됐어'라는 준구의 독백은 이런 의문에 희미하게 답을 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집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붓을 가진 익명의 예술가'는 아마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누구나 아름다움으로 위장할 수 있다. 더우기 위장은 그것을 합리화시킬 환상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환상이 부서지는 자리에 위장의 옷을 벗기며 나타나는 법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배달 되어 온 의문의 부호 하나.
"당신은 이 실종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늘에 떠있는 채로 하늘을 밟고 있는 끊어진 다리의 모티브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정말이다.또다시 물난리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밥통을 들고 국솥을 들고 이부자리를 들고 그들에게로 갔다. 그러나 흙탕물이 내려다보이는 골프장에서는 기름진 웃음들이 '하늘의 다리'를 향해 경박한 치아를 드러내며 깔깔 대었다.

성큼 뛰어온 가을이 웬지 야속하기만한 것은 하늘에 떠있는 채로  나의 캔버스 위에 태어나지 못한 '다리'때문이리라. 그리고 끝없이 날아오는 실종소식. 그러나 찾앗다는 광고가 한번도 눈에 띄지 않음은 우리가 너무 복잡한 부조리의 미궁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원고를 습작품들 사이에서 찾았습니다.
이 글은 이백자 원고지 아홉장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컴퓨터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삼십대 후반에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시절. 현학적이고 냉소적이 아니면 글이 안되는 줄 알았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좋았지요. 넘쳐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들로 산으로 바다로 미친듯이 헤매고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그 때는 눈발 하나가 흩날려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