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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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실종 (단편 소설)

2004.12.08 02:14

최영숙 조회 수:1549 추천:299

       실 종


    케빈은 오늘도 집 앞을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테일러를 안고 있었다. 테일러는 그의 왼쪽 팔에 상반신을 걸치고 혀를 빼문 채 방심한 얼굴로 이곳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삼십 파운드는 족히 나갈 것 같은 그 독일산 셰퍼드는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사실 너무 컸다.

턱이 짧게 흘러내린 탓에 머리통의 윗부분이 넓어 보이는 강아지는 뒷발을 움직여 남자의 불쑥 나온 배위에 엉덩이를 붙이려고 애를 썼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강아지는 차를 향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차하면 뛰어 내리기라도 할 자세였다. 그 참에 꺾여 있던 오른 쪽 귀가 곧추 세워지면서 목덜미의 갈색 털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나는 그 셰퍼드의 목덜미가 갈색에서 검은 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케빈이 강아지를 추스르며 가슴께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가 녀석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자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려 올려 간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그는 흘러내린 앞머리 몇 가닥을  한 손으로 애써 치켜 올리며 지나갔고 집 앞은 다시금 무더운 여름날 아침의 햇살로 채워지고 있었다.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의 틈새로 기세 좋게 솟아오른 잡초가 서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언덕 아래로 그들이 사라지고나자  어거스틴 애비뉴는 조용하다 못해 적적해져 갔다. 지나가는 차외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창문 앞에 서있는 체리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뿐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오히려 무더위로 차오르는 골목길에, 심심하고 나른한, 그래서 늘어질 대로 늘어진 기운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어딘지 시간을 거꾸로 하여 오십 년 대쯤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그래서 잊혀져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어거스틴 애비뉴로 이사 온지 오 개월 동안 나는 하얀 벽에 초록색 창문틀이 붙어 있는 내 집만 바라보면서 골목길을 드나들었다. 그래, 그건 말대로 비록 셋집이었지만 내 집이었다. 차고가 없는 방 두개짜리의 성냥갑 같은 집에 그래도 앞뒤로 작은 정원이 달려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집과 우리 전화,  우리 은행 구좌를 갖고 있었다. 지금 내게는 우리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다. 그건 내가 차고에 있던 남편의 차를 골프채로 두드려 부수던 날부터 사라진 말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재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여러 가닥으로 총총히 땋아 내린 옆집 아이였다. 아이는 까맣다 못해 반질거리는 이마에 늦은 아침 해를 얹고 언덕길을 뒤뚱거리며 달려 내려왔다. 양팔을 잔뜩 벌리고 뛰어오는 아이의 입에서 연신 까룩까룩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타다닥거리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창가에서 돌아 서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앗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발을 디뎌 놓았기 때문이었다.
“ 셜리! 거기 멈췃! ”
낮고 굵은 목소리가 아이의 발자국 소리를 누르면서 향나무 울타리를 넘어 왔다.

급하게 쫓아 나온 셜리 엄마는 면장갑을 낀 손에 모종삽을 들고 서서 아이를 향해 발을 탕 굴렀다. 동시에 여자의 몸에 붙어 있는 군살들이 가슴께에서부터 후르르 흔들렸다. 그제서야 아이는 멈칫 서서 뒤를 돌아보다가 아쉬운 듯이 몸을 돌렸다. 머리 가닥마다 매달려 있는 핑크색 구슬들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마치 자르륵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케냐 사람들이었다. 그들 내외는 일요일이면 꽃무늬가 프린트 된 자루 옷에 터번을 쓰고 교회에 갔다. 아이 엄마는 인근 종합 병원의 간호원이었다. 낮 근무를 할 때는 길 건너편 백인 여자에게 아이를 맡기고는 했다. 엄마를 떨어지며 아이는 악을 쓰고 울어댔고 언제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백인 여자는 한쪽 팔로 아이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집, 하얀 나무 울타리 안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셜리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정원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글라디올라스나 옥잠화, 장미, 그리고 국화라든지 베고니아 꽃들이 여기 저기 심겨 있어서 마치 주인 없이 버려진 화단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열심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대었지만 마음대로 솟아난 잡초 같은 장미를 보면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그 화단에서 꽃들은 얽히고 비틀린 채로 시름없이 피었다 지고는 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언덕진 그 집의 주차장을 깎아 내린 흙더미에서 흘러내린 모래알이 바로 아래 있는 내 집 앞에 까지 쌓이는 바람에 나는 여자가 케냐 산 차를 한상자 주면서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내심 언짢게 생각하고 있었다.

   셜리가 사라진 골목은 더욱 한적해졌다. 나는 문을 열고 집 앞으로 나섰다. 막상 나와 보니 한낮으로 치달리는 열기치고는 견딜만한 선선한 바람이 있었다. 이제 옆집 여자는 나무토막을 두 줄 올려 쌓아 만든 창문 밑의 화단가에 서서 화초들을 향해 영양제를 뿌리고 있었다.
“ 하이!”
내가 인사를 하자 화단가에 붙들려 있던 셜리가 먼저 팔딱 뛰어 올랐다. 아이는 똑 부러질 듯이 가느다란 손목을 나를 향해 내밀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끈적하니 땀이 묻어 나왔다. 셜리가 쫑알거리는 말을 나는 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반가워서 하는 말이려니 하고 빙그레 웃어줄 뿐이었다. 키가 웃자라 버린 글라디올라스가 호오스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반이나 쓰러져 가고 있었다. 정작 그 꽃에 필요한 것은 영양제가 아니라 북을 돋워주고 지주를 세워 주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꾸욱 참았다. 꽃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번져 있는 미소 때문이었다.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 당신이 내게 준  케냐 차가 아주 나이스해요.”
여자는 두툼한 입술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우리는 그 차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 한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셜리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언덕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금방 숨이 막혀 왔다. 생각보다는 더웠다. 목백일홍이 만들어 놓은 그늘에 서서 어깨까지 닿아있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동여맸다. 언덕 아래는  어느새 부옇게 달아오른 열기가 붉은색 지붕들 위로 퍼져 올라가고 있었다. 늘어진 가지에서 진홍색 꽃잎이 내게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나는 긴 숨을 토해냈다.
덥기도 했지만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아이가 있었다면 남편은 내 옆에 머물러 있었을까.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다려도 끝내 아이는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 가정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다. 그건 어느 하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니면 모태에서부터 길들여진 대로 작으나 크나 우리는 선택을 하면서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를 사랑한다. 샤워를 끝낸 그의 차가운 살갗에 내 가슴을 갖다대고 귓불을 잡아당기며 그의 젖꼭지를 잡아 비튼다. 그가 옆에 없는 지금도 나는 그를 느낀다. 아마 그가 죽어 이 땅위에서 없어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느낌은 대상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내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상대를 향해 내뿜어진 사랑이란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는 단지 그 느낌을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

   남편의 차는 공항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이 그 사실로 전화를 걸어온 시간에 나는 남편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었다. 너한테 미안해. 그 이상의 추측은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이라고, 이건 적어도 자기에게는 충동이 아니었다고, 그는 초록색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쓰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나는 지쳤어. 남편은  마지막 다섯 글자 아래에 밑줄을 긋고 편지를 끝내고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 편지 내용을 알렸다.

경찰은 부드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요즈음 그 나이의 남자들에게 자주 있는 일이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갖고 기다려라. 대충 그런 말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일단 남편을 마약 중독자나 동성연애자로  취급하던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나는 그의 위로의 말을 들으며, 내 맨발에 신겨 있는 검은 색 슬리퍼 위의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챔피언인가 샴페인인가 아니면 거꾸로 읽고 있는가, 하얀 건 글자인데 도대체 뭐라고 써있는 건지, 허리를 굽혀 슬리퍼 위의 알파벳을 읽으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왔다. 가슴이 압박을 느끼면서 숨쉬기가 거북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챔피언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니었다. 하와이였다.  

“ 헬로우!  맴, 아유 오우케이?”              
경찰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허리를 펴고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아임 오케이”
고맙다고 내가 인사를 하자 그러면 남편에게 연락이 오는 대로 알려달라고 하면서 그는 전화를 끊었다.

   빨래를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었지만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워 집어넣지 못했던 소매 긴 옷들을 모두 꺼내어서 세탁기에 돌렸다. 스웨터 종류는 손으로 빨았다. 나는 오후가 지나고 저녁때가 되어서도 빨래뭉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 씨트와 이불까지 빨고 나니 새벽 세시가 되고 있었다.
남편의 옷가지를 가지런히 정리해서 비닐 백에 담았다. 그가 남기고 간 신발도 챙겼다. 화장실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청소기를 들이대려다가 나는 문득 그 머리카락을 집어 들었다. 땅속에서 몇 년이 지나야 썩는다든가,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변기에 집어넣고 손잡이를 눌렀다. 머리카락은 뱅뱅 돌며 물줄기를 따라 삽시간에 사라졌다.  

나는 화장대 위, 흰색 액자에 끼워 놓았던 이름모를 아기 사진을 빼어 버렸다. 뺨이 붉은 노란 머리 아기가 볼우물을 지으면서 함박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아기는 그 속에서도 나를 향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때마침 넘어간 달력에서 보라색 도라지 꽃 그림을 오려내어 액자 속에  대신 집어넣었다. 한 가지 일이 또 남았지,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서랍장을 열었다. 맨 아래 서랍에 간직하고 있던 아기 옷들을 끄집어냈다. 분홍색과 파란색 옷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져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분홍색 배냇저고리를 꺼내들고 냄새를 맡았다. 크기가 양 손바닥만한 옷이었다. 요만한 것이 사람이라고 뱃속에 들어가 있다니, 가끔씩 배에 대어 보았던 옷이었다.

베이비파우더를 한쪽에 넣어 두어서인지 옷에서는 아기들이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상표도 떼지 않은 그 옷들을 남편의 옷가지들과 함께 구세군 도네이션 센터에 가져다 내려놓은 다음 나는 그곳 건물의 꼭대기에 그려진 빨간 방패를 바라보면서 주차장 한구석에 하염없이 머물러 있었다. 상상 속에서 날마다 내 품에 안겨 있던, 그래서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것 같았던 내 아이들.  만나지 못한 내 아기들을 마치  영결식이나 하는 것처럼 나는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과 살았던 집을 떠나기로 했다. 서향집을 고집하던 그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오후에 그래도 집안에 햇살이 남아 있기를 바라서였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지 당신은 모르네.

마지막으로 뒤뜰에 있던 앵두나무를 옮겨 심은 화분을 싣고 나자, 이삿짐센터 차는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차를 운전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짐을 실은 차가 큰길로 돌아나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차피 서두를 일도 없었다. 길가에는 체리나무들이 꽃을 떨구고 난 뒤 연초록색 잎사귀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나무 잎사귀를 들여다본 것은. 아직 기지개를 펴지 못한 노란 햇살이 잎사귀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가 그곳에 음영을 더 하고 있었다.

                              
                               *

  지방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나는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왔다. 월요일이 되어 다시 집을 떠나 학교로 돌아오는 날이면 아무리 서둘러도 지각을 하곤 했다. 고속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배차되었기 때문이었다. 첫 차를 놓치면 영락없이 첫 시간 강의를 빼먹게 되었다. 교문에서 강의실까지는 제법 걸어 들어가야만 했는데 그래도 그 길을 좋아했던 건 좌우에 늘어선 은백양 나무 때문이었다. 지각을 하는 날이면 정적에 빠진 캠퍼스가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낯설었지만, 은백양 나무들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가녀린 바람에도 온 몸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는 그 너머 어디선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유혹이, 서글픈 듯한 어조로 내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 너는 언젠가 여기를 벗어나야 돼.
반짝거리며 나무 잎사귀가 바람 속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하얗게 흔들리는 나뭇잎을 향해  대답했다.
정말이야, 이건 아니야, 난 꼭 벗어날 거야.

서울에서는 연일 학생들 데모가 이어졌지만 이곳은 잠잠했다.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하긴 관심이 있었다 해도 길거리로 뛰쳐나갈 의욕들이 없었다는 말이 옳았다. 입시에 실패한 경험이 머리 뒷꼭지에 매달려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깨는 물론 걸음새까지도 늘어져 있는 판이었다.  학생회장이 사흘 째 경찰서에 감금 되어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미리 잡아 들였대.
그리고 그게 다였다. 축제가 취소되고 써클 활동은 지도교수가 참석하지 않고는 허락이 되질 않았다. 매일같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또래들의 함성 속에 파묻혀 젊은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남학생이 강의 시간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과 동시에 이어 경찰에서 배후를 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킬킬대고 웃었다.
영웅 됐네.

모모한 집안의 막내로 재수생이라는 딱지를 몇 년 째 달고 다니다가 군대를 피해 할 수 없이 대학이라는 글자가 붙은 곳으로 보내진 아이라는 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바로 발견된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가 후유증으로 말더듬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곧이어 퍼져 나왔다. 음독의 원인이 실연이라는 측과 집안에서 쟁쟁한 형제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당한 차별 때문이었다는 설이 반반이었지만 그 이야기조차도 곧 시들해져 버린 어느 날, 나는 자그마한 키의 그가 머리에 무스를 발라 머리를 잔뜩 세운 채,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집을 오고 갈 때 간혹 같은 시간에 고속버스를 타는 그와는 눈인사만 건네는 사이였다. 그는 오른 손에 책 한권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를 가까이 스쳐 지나가면서 책 제목을 훑어 봤다. 어쩜 그 때 그가 사상서적 하나쯤 읽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경계심과 기대가 동시에 발동했던 것 같다.  책은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였다. 하얀 표지에는 노란 색 옷을 입고 긴 머플러를 바람에 날리며 작은 별 위에 서있는 어린 왕자의 그림이 있었다.
멍하니 서있던 그가 갑자기 지나가는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난 이걸 배 배..백번 읽을 끄어..예요, 그..그 다음에 거..거기한테 비..빌려 주울..께요”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아니, 괜찮아요, 저도 사서 볼께요”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보고 있는지 아닌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내뱉은 말인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말을 던졌을 뿐 이었는지. 부옇게 먼지가 일고 있는 정류장에서 그는 그렇게 막막하게 서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그에게 손을 내밀 뻔 하였다. 아니 그랬으면 좋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화구를 양손에 들고 있던 나는 멈칫거리다가 그냥 그를 지나쳐 버렸다. 모퉁이를 돌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도 그는 여전히 그곳에 서있었다. 숨이 막히고 몸이 윽죄여 왔다. 언젠가는 나도 그가 빠져 버린 늪에 하루하루 침몰해 갈 것 같았다. 싫어,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결국 내게 그 책을 빌려 주지 못하고 또 한번의 음독으로 우주 공간 어느 곳인가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은백양 나무는 여전히 잎사귀를 딸각딸각 소리를 내며 흔들어댔다.
그래, 벗어나야해!
    

나는 졸업 작품의 제목을 ‘어린 왕자’라고 정했다.
말더듬이가 되었던 그는 파도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파도는 음울하고 성이 나있었다. 그리고 나는 파도 안에 은백양 나무 한그루를 깔아 놓았다. 나는 은백양 나무를  캔버스 위에 한 그루 그릴 때만해도 이 작품을 어떻게 마쳐야 할지 난감했었다. 이미지는 잡혔지만 형상화가 되지 않는 탓에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캔버스의 여백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어느 날, ‘어린 왕자’를 백번 읽고 난 뒤에 내게 그 책을 빌려 주겠다던 그가 생각났다. 가슴에 한줄기 통증이 지나갔다. 나는 나무 위에 파도를 레이어드 하고 그 앞에 그를 세워 놓았다. 머리를 바싹 세우고 파르스름한 입술을 가진 그는 내 작품 속에서 파도 안에 숨겨 놓은 은백양 나무를 바라보고 서있는 어린 왕자로 다시 태어났다. 대단히 호평을 받은 그 작품을 나는 학교에 기증 했다. 덕분에 어린 왕자는 언덕 위에 있는 도서관 복도에서 은백양 나무를 내려다보고 서있게 되었다.  

나는 졸업 작품을 마치자마자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슬라이드를 뜨고 작품에 대한 제목을 붙였다. 그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은 주제가 작품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 탓에 이미 주어진 제목이 겉돌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였다. 나는 겨우 내내 목이 탔고 여위어갔다.      
미국에 와서 언어 연수가 끝나고 전공과목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뭔가 상당히 잘못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시간이 갈수록 다가오는, 그래서 나를 조여 오는 느낌은 정류장에서 말더듬이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와 유사한 것이었다. 러시아계 교수는 때로 한마디만 던지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무브먼트를 이용해서, 네 고유한 생각을 사용해서..... 나는 한없이 넓어 보이는 화폭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속 깊은 곳, 어디엔가 뭉쳐져 있는 응혈, 그것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난 내가 붙들고 있는 색채를 그곳에다 토해내듯 문질러대고 싶었다.  
일곱 살 때, 내가 단지 다른 아이들처럼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그리지 않고 흙속에 묻혀 있는 뿌리까지 드러낸 나무를 그렸다는 사실 하나로 미술을 전공할 운명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가끔 웃음이 났다. 그건 단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걸 모방했던 것뿐인데, 그걸 본 학원 선생이 나를 타고난 미술가로 어머니께 보고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술가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대로 실기를 따라가는 바람에 나도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타고난 재질이 있는 줄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넓기만 해 보이는 화폭 앞에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 그건 이제 내게 짐이었다. 그게 짐이 된다면..... 나는 이미 실패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목을 조여 왔다. 은백양 나무는 더 이상 나뭇잎을 뒤채지도 않았고 유혹의 목소리를 건네 오지도 않았다. 나는 점차 붉고 푸른 파도에 삼켜가는 몰골이 되어갔다.
유학을 온 지 만 오년 째 되던 해에 한국에서 송금이 끊어졌다.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마지막 협박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건 그림을 포기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세탁소의 카운터로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영주권을 얻기 위해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남편을 만났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처지였다. 그의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희망이라도 되듯이 만날 때마다 미친 듯이 살을 비벼 댔다. 그건 외로움이었다. 결국 우리는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물오리가 떼를 지어 찾아오는 공원의 물가에서 그가 내게 반지를 끼워 주는 거로 시작했고,  추위로 차가워진 입술을 포개면서 결혼식은 끝났다.      
    
                                   *

  
  남편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열심히 들어다보는 건, 만화였다. 만화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마치 만화 볼 시간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오후의 햇살이 남아있는 시간에 집에 들어오기는커녕 그것들이 남겨주고 간 열기마저 식어버린 시간에 그는 물에 빨아 놓은 생선처럼 핏기가 빠진 채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그런 사람이 컴퓨터 앞에서는  신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난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난 그걸 한번도 말해 본 적이 없었지, 언젠가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나면 만활 그려볼 거야”

세탁소 주인이 된 남편에게 일에서 벗어난다는 것만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만화가라니.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분야가 다르기는 했어도 내가 만화를 달리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만화가를 존경했다. 그들이 스토리 텔링에 얼마나 천부적인지.
“말야, 칫솔도 삼키고 칼도 삼키는 괴물이 있어, 사람도 삼키구, 나중에는 숲도 삼키지, 그러고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다 토해 놓거든.....그것들의 새로운 조합이 어떨 꺼 같애?”
시작도 끝도 모르는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는 그대로 골똘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입만 커다랗게 달려있는 공 같아 보이는 괴물이 보이는 대로 삼키는 장면과 그 입에서 이미 쏟아 놓은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버린 괴물을 상상했다.
“쓰레기들이겠지 뭐, 뱃속에서 다시 나온 게 오죽해”
“넌....도대체....생각이 없어....”
남편이 이맛전을 찡그리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 이 괴물은 그걸 뱃속에서 리후레쉬 해서 내보내거든.”      

그는 손을 열 번도 더 씻고 손이 건조해졌다고 로션을 바르고 또 씻어내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벗어 들고 온 옷에서는 살비듬이 떨어지고 때로는 지린내나 땀 냄새가 빨래를 마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를 위해 보습 효과가 높은 핸드 로션을 찾아내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였는데 나는 타히티 섬에서 공수해 왔다는 타마누 오일을 찾아냄으로써 당분간 로션 쇼핑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다 좋은데 냄새가 별루야.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다시 남편의 불평이 시작되었다. 나는 향수 로션을 찾아내어 거기에다 오일을 한 방울씩 떨어 뜨려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남편은 기어이 손에서 나는 향수냄새 때문에 햄버거를 못 먹었다고 또 불평이었다. 결국 베이비 로션을 사와서 그가 냄새를 시험해 보고 나서야 다시 오일을 쓰기 시작했다.
“이 로션은 처음엔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왜 시큼한 냄새가 나지?”
남편이 얼마 후에 그렇게 말해 왔을 때 나는 불현듯 그의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손목을 붙잡고 싶어서, 그래서 보내고 싶질 않아서 안타까워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 손목이 지겨웠다.    
                            
                              *

  셜리네 집을 지나친 나는 언덕 바로 아랫집의 잔디밭을 곁눈질 하며 지나갔다. 거기는 여전히 토끼풀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토끼풀 꽃이든 민들레꽃이든 그런대로 보기에 좋은데 왜 그리 야단스럽게 잔디를 가꿔야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웃자란 강아지풀 무더기 속에 신문뭉치가 며칠씩 쌓여 있기도 한 그 집 앞을 지나자마자 나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테일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목덜미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힘차게 땅을 차대며 달려왔다.

다행히 끄엉끄엉, 녀석이 내는 소리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며칠 전, 마당 끝에 서있는 우편함을 열다가 테일러를 처음 마주쳤을 때 내가 먼저 본 것은 아몬드 모양의 눈이었다. 짙은 갈색이었다. 낯설어서였는지 호기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눈은 나를 향해 크게 열려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우편함 기둥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 때 개를 안고 있던 남자가 한쪽 팔로 나를 얼른 잡아 주면서 웃었다. 순간이었지만 나는 남자의 앞니 사이가 약간 벌어진 걸 보았다.
“쏘리, 안 물어요. 얘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보세요. 헤이,테일러! 쌔이 하이! ”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음절을 정확하게 구별을 안 하는 통에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다. 게다가 그는 말을 입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셰퍼드는 남자에게 안긴 채 앞발을 들었다. 동시에 목덜미에 주름이 잡히고 눈동자가 눈 속에 가득 차 오르면서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만일에 사람들에게도 꼬리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그 꼬리가 좋은 사람 앞에서는 감출 수 없이 흔들리고 싫은 사람 앞에서는 저절로 사려지게 된다면. 어쩜 사는 일이 단순해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는 대머리였다. 앞이마를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 몇 올을 귀 쪽에서 끌어다 붙여 놓았는데 그나마 그것도 파스스 하게 갈라진 탓에 움직일 때마다 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때마다 얼른 머리카락을 다시 집어 올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이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이 개를 안고 다니는 남자는. 남자는 사람에게 눈의 초점을 안 맞추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도 테일러를 쳐다보든가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체형으로 봐서는 대충 사십대쯤 될 텐데. 검은 머리카락으로 봐서는 포루투갈계 인 것 같았다.  하지만 순간 남자가 내 눈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인지 하려고 할 때 나는 그의 눈빛에서 일렁이는 호기심과 함께 경계하는 푸르른 눈빛이 동시에 떠오르는 걸 보았다. 그의 눈은 심한 사시였다.
“........당신은 이곳에 산지 얼마나 되었어요?”
남자가 물었을 때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얼마나 되었지......
“지난봄에 이사 왔어요.”
나는 그가 궁금해 하는 게 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난 코리안이예요”
“아! 그랬군요. 반갑습니다. 나는 케빈입니다”
“난 쑤키예요 ”
이곳 사람들은 내 이름 숙희를 그렇게 발음했다.

   테일러는 용케 며칠 전의 해후를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녀석은 내 앞에 도착하자 혀를 길게 빼문 채 오른 쪽 앞발로 내 다리를 긁어댔다. “하이,테일러!”
내가 테일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케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일러! 이리왓!”
케빈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것도 잊은 채 뛰어왔다.  
“ 미안해요, 내가 비료 흙을 옮기느라고 울타리 문을 잠시 열었는데.....”
케빈은 테일러를 끌어안았다. 테일러는 케빈의 얼굴을 열심히 핥았다. 케빈은 곧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테일러를 다독 거렸다. 그가 염려한 것은 내가 아니라 테일러였다. 사실 언제 달려올지 모르는 언덕 아래의 차들은 그의 집 앞에서는 보이질 않았다.
“.....아! 아 유 오케?”
케빈의 목소리가 떨면서 흘러 나왔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히려 내가 그에게 물어봐야 될 말이었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우린 서로 인사 했을 뿐인 걸요.”
하지만 케빈은 아무래도 진정이 되질 않는지 입술을 떨고 있었다. 테일러는 그의 품에 안겨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가 표정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눈에는 테일러가 만족한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입가에 웃음을 띄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볕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 꽂히고 그곳에서 되쏘이는 열이 내 등판을 달구어 댔다.

강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녀석의 타고난 짧은 수명을 생각했다. 테일러는 그걸 아는지.
케빈은 정성스럽게 테일러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내렸다. 달리 그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는 것처럼 그의 손길은 계속 강아지의 머리통에서 목덜미로 옮겨 가고 있었다. 케빈은 내가 옆에 서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아지를 그렇게 안고 다녀요?  이렇게 더운 날에도?”
케빈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다시 얇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강아지 머리통에 턱을 갖다대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왜 그런지, 쑤키, 당신은 알 줄 알았어요.....”
나는 그가 너무 극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순간 얼떨떨했다.

“아무도 그걸 내게 물어 온 사람이 없었어요. 내 엄마는 나인 일레븐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난 아무에게도 내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딘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지요. 엄마는 언제나 내 말을 잘 알아들었어요. ”
“어머! 참 안됐네요. 어머님이 맨하튼에서 일을 하셨군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나인 일레븐 바로 전에 돌아가셨지요. 그래도 다행이지요. 그걸 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었겠어요.”    
“어머니는 뉴욕에 사셨나보죠?”
“아니 참, 미안해요. 설명이 부족해서, 엄마는 캔사스에 살고 계셨어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알았다. 그의 얼굴에는 나이가 없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그의 얼굴 위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아이가 그 위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케빈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테일러는 나하고 무슨 얘기든 다 해요. 뭘 먹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말예요. 그리고 내가 슬픈지 기쁜지도 다 알지요. 내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으면 깜짝 놀라서 내 얼굴을 핥아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아무데나 쉬를 하고 나면 내 눈치도 본답니다. 그러면 난 일부러 화난 목소리로 말을 하지요. 테일러!
넌 나빠! 그러면 이 애는 슬픈 표정이 되어서 구석으로 가요. 그리고 내가 용서 해 줄 때까지 움직이지 않지요. 테일러는 노력을 많이 해요. 내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안하려고 말예요. 근데 난 이 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선물을 사 주고 싶지만 테일러한테 뭐가 필요한지를 모르겠어요. 모자도 싫어하고 스웨터도 필요 없잖아요. 크리스마스 때 난 참 미안했어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를 난 알았어요.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안아주는 거예요. 그래서 난 좀 힘들어도 안고 다녀요. 테일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요.”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나는 남편의 귀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좋아했다. 이마 위에서부터 콧날을 지나 입술에 이르는 선을 좋아했다. 더듬어 내려가다가 그의 입술에 다다르면 나는 손가락을 그의 입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질색을 했다. 내 손가락을 잘라내듯이 탁 치워버리는 시점이 그때였다. 대신에 나는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남편의 귓불을 잡고 복수삼아 뚫어져라 눌러 버렸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나는 그 말을 그의 입에서도 듣고 싶었다.  
대신에 그는 내게 물었다.
“그 손 닦았어?”  
나는 외로웠다.      


            
  케빈은 테일러를 안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체리나무 아래에서 둘은 마치 그곳에 서있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것처럼 그렇게 서있었다. 오히려 내가 어쩐지 커피라도 끓여 내와야 하는 주인처럼 초조해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 주변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나는 끌리듯이 그의 집을 향해 발자국을 떼어 놓았다.
노란 맨드라미, 노란 글라디올라스, 노란 다알리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소국도 노란 색이 틀림없을 테고 울타리를 뒤덮은 푸른 가지는 분명 개나리였다.
우편함 아래에는 금송화가, 집 옆쪽의 빈터에는 원추리 무더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케빈은 문을 열어 테일러를 집안에 집어넣고 유리 덧문을 닫았다. 강아지가 앞발을 들어 유리문을 긁어댔다. 간간이 테일러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장갑을 손에 끼워 넣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 참에 그의 배를 간신히 가리고 있던 크림색 셔츠가 들려 올라갔다. 흰 속살이 드러나면서 배 아래에 걸쳐있던 카키 바지가 보였다. 엎드리면 곧 엉덩이가 드러날 정도로 바지는 위태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화단가에 서서 글라디올라스가 틀고 올라간 꽃자루 부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아! 이 개미들! 이걸 어쩌나!”
케빈은 개미를 한 마리씩 잡아냈다.

              
케빈은 캔사스에서 자라났다. 끝도 없는 옥수수 밭과 밀밭이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집 앞에는 커다란 해바라기 밭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해가 어스름해지면 포오치에 놓여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바에서 일하던 젊은 여자를 따라 뉴욕으로 가버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저 해바라기 꽃을 보고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케빈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장성하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도 역시 그곳을 떠나왔다. 온통 옥수수 밭과 밀 밭 뿐인 그곳이 언젠가부터 지겨워졌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을 때에 더 이상 그는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마치 해바라기 밭에다 어머니를 버리고 오는 것 같았지요.....근데 이상하지요.
나도 언제부턴지 어머니처럼 포오치에 앉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마치 캔사스에 있는 것처럼 맘이 편해져요. 난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 노란 색이 어지러워서,  아니 어쩜 너무 지루해져서 떠난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얀 해바라기, 아니면 분홍색 해바라기 밭이었다면 안 떠났을 지도 모를 텐데..... 아무튼 난 그 노란색이 싫었어요.....그런데도 눈만 감으면 어머니의 모습에 해바라기 밭이 겹쳐서 나타나곤 했어요. 난 꿈속에서도 해바라기 밭 안에서 어머니를 찾고 있었어요.”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해바라기 밭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추억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어지럽던 노란색과 화해를 했다.
“우습죠. 나도 어머니처럼 이 노란 꽃을 바라보면서 포오치에 앉아 있으니까요.
이제는 어머니를 알 것 같아요. 아버지를 기다린 건 아버지를 이미 용서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나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용서했어요.”

나는 케빈의 작은 화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조금치의 틈도 없이 들어찬 노란 꽃들로 화단은 마치 노란 무더기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테일러가 문을 박차고 쏜살같이 튀어 나왔다. 길에는 어느 새 붉은 포도주색 지프가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소리가 요란했다. 속도를 받은 차가 케빈의 집 앞으로 다가오자 테일러가 짖어대며 달려 나갔다. 차는 개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꺾었고 속수무책으로 맞은 편 집의 오래된 단풍나무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그리고 나는 길 반대쪽으로 튕겨 나간 테일러가 다리를 허부적거리다 축 늘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케빈이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테일러는 재가 되어서 케빈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나는 케빈이 작은 은색 상자를 안고 아침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배는 더욱 불러지고 머리카락은 날로 부수수해져 갔다. 나는 그 시간이면 창가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상자를 안고 땅이 꺼질세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동선을 잡기 위해 목을 길게 빼보지만 그의 옆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연필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쓸쓸한 것만도 아닌, 알 수 없는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마침내 그를 스케치 북 위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그의 주변에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려서 그를 감싸게 해놓고 주변의 나무나 집, 심지어는 소음까지도 막아줘야 할 것 같아서 그 원들을 열심히 손가락으로 문질러댔다. 그것들이 그를 위한 완벽한 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서야 나는 손을 떼었다. 그는 오로지 그 동심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어거스틴 애비뉴를 매일 지나가고 있었다. 또 하나, 다른 별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였다.
나는 오래간만에 화구를 꺼냈다. 오일 페인트로 얼룩진 이젤을 창가에 세워 놓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오기로 가득했던 젊은 날의 향기가 이젤을 덮고 있는 묵은 페인트에서 스며 나왔다. 군데군데 묻어 있는 인디언 레드 칼라는 내가 즐겨 쓰던 색이었다.  나는 그 색을 하늘에도 칠한 적이 있었다.

음울하지만 신비스럽게 보이기 위해, 때로는 들떠 있는 다른 색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인디언 레드 칼라를 고집스럽게 쓰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란 색을 골라잡았다. 팔레트에서 만들어낸 색은 늦가을 해바라기였다. 깊숙이 익어간 해바라기가 화폭 위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케빈의 구부정한 어깨처럼 그렇게 서있는 해바라기는 날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서로 조금씩 다른 색으로 화폭을 채워갔다. 마지막으로 나는 해바라기 밭 앞에 포오치의 한쪽을 집어넣고 테일러와 함께 앉아있는 케빈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저녁 무렵, 노을 지는 하늘 아래 그들은 단지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같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역할도 주지 않았다. 둘이 기대고 앉아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거로 족했다.

나는 또 하나의 그림을 시작했다. 같은 해바라기 밭을 그렸다. 그리고 나는 은백양 나무 한 그루를 오른 쪽 구석에 자그맣게 세워 놓았다. 어린 은백양 나무는 그 속에서 자라갈 것이다. 아직 딸각거리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훌쩍 자라서 내게 다시 손을 흔들 때가 올 것이다. 그림 안에서 나는 해바라기 속에 파묻힌 채 고개를 길게 빼고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폭우라도 쏟아질 것처럼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이미 아침부터 올라가 있는 열기 때문에 나무 잎 사이에서도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창문을 닫으려고 창가로 다가갔다. 그 때, 바깥에서 차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언덕 아래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잠시 정적이 지나갔다. 창문 앞에 서자 창밖에서 후끈한 바람이 얼굴을 덮어왔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악 창문틀에 손이 닿았을 때였다.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셜리 엄마였다. 나는 급히 달려 나갔다. 자줏빛 지프가 셜리네 집 건너편에 있는 흰 울타리 쪽을 향해 방향을 꺾고 멈춰 있었다. 케빈이었다.

나는 먼저 그의 구부정한 등을 보았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곳으로 셜리 엄마가 뛰어 들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케빈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옆으로 밀쳐냈다. 케빈이 한 팔로 바닥을 짚으면서 보도 쪽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셜리의 작은 몸뚱이가 보였다. 셜리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구슬로 땋아 내린 머리가닥이 아이의 반질거리던 이마를 덮고 있었다. 셜리 엄마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신음 같은 낮은 소리로 셜리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지프 운전자가 선글라스를 바닥에 내던지며 다가왔다.

“지저스! 저, 저 남자가, 당신이 말얏! 얘를 찻길로 떠다밀었단 말얏! 난 어쩔 수가 없었어! 갑자기 애가 차 앞으로 굴러왔어! 난 당신이 얘를 떠다미는 걸 봤어. 아주 똑똑히 말얏!”
남자는 케빈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의 콧수염이 오르락내리락 흔들렸다. 케빈은 바닥에 쓰러진 채 남자를 향해 손을 저었다.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케빈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케빈의 말소리는 웅웅거리며 입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왓?”
운전자가 배에 힘을 주고 한껏 소리를 질렀다.

반바지를 입고 있는 건너편 집 여자는 휴대폰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셜리에게 달려와 숨소리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셜리 엄마는 쉬지 않고 심장 압박을 하고 있었다.
“오 마이갓! 빨리 와줘욧! 모르겠어요. 아니, 피는 안흘려요”
양쪽에서 오던 차들이 멈춰서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케빈은 바닥에 떨어진 은색 상자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 넌 말야!”
갑자기 셜리 엄마가 케빈을 향해 몸을 돌리며 눈을 부릅떴다. 그 서슬에 그녀의 온몸이 흔들렸다. 그녀는 모여든 사람들을 쳐다보며 악을 썼다.

“넌, 미친놈이야! 이봐욧! 이 놈은 미친놈이라구요! 전에는 다 큰 셰퍼드를 안고 이 어거스틴 애비뉴를 매일 걸어 다녔어요. 지금은, 저것 봐요. 죽은 개의 뼛가루를 안고 다녀요. 이 놈은 돌았어요. 그것만이 아니라구요. 이 놈은 노란 옷 입고 노란 꽃만 심어요. 앞뒤로 온통 노랑꽃 뿐 이예요. 이 놈은 미쳤다구요!  알겠어?  너 같은 건, 지옥에나 가야햇!”

그녀의 발악은 광기에 가까웠지만 그녀의 얼굴은 절망과 공포로 뒤덮여서 검붉게 질려 있었다. 셜리의 가느다란 손목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늘어진 채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케빈은 은색 상자를 가슴께에 끌어안고 입을 반쯤 벌린 채로 길가에 서있었다.  구부정한 어깨위로 습기 찬 바람이 지나가자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머리 속에서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왓 해픈.
당신이 어떻게 했어요, 왓 디쥬 두.
떠밀지 않았지요, 유 디든트 푸쉬 허.  
그 애를 멈추게 하려고 했지요. 유 워 트라잉 투 스탚 허.
테일러처럼, 져스트 라이크 테일러.  
서너 발자국을 떼는 순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러자 나는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버렸다. 얼굴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쓸쓸함도 두려움도 없이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스케치북 위에 그를 위해 그려 주었던 동심원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처럼, 주위를 모두 지워버린 듯이 그는 홀로 서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없는 곳으로, 뜨거운 햇빛이 없는 곳으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래서 어디에 서있어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으로, 마치 캔사스의 옥수수 밭을 지나 해바라기 밭 속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해바라기가 너무 커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그렇게 그는 조그맣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2004년 미주 문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