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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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반지 연가 (단편 소설)

2009.01.19 09:31

최영숙 조회 수:1731 추천:290

      반지 연가
                                             
  며느리가 식탁에 앉아서, 들고 들어 온 종이봉투를 부욱 찢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순임 씨가 앉아있는 거실까지 퍼져 나왔다.
“엄니, 햄버거 드실래요?”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아이구, 이 밤에 노인네, 햄버거 드시구 탈나시면 어쩔려구 당신, 그래요?”
순임 씨는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면서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식탁으로 다가서면서 오른 팔을 홰홰 저었다.
“내 나이 여든이여, 탈이 나면 죽기밖에 더 허겄냐? 괜찮다”
며느리가 입을 꾸욱 다물고 일어났다.
“아녀, 이거 당신 먹어, 난 밥이 더 좋아.”
아들이 앞에 놓여 있던 햄버거를 급히 며느리 쪽으로 밀었다.

그 참에 종이 케이스에 들어있던 감자튀김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며느리는 그래도
못들은 척, 햄버거 하나를 움켜쥐고 주방으로 돌아섰다.
며느리가 다시 들고 나온 햄버거는 반으로 잘려 양상추가 너덜거리고 양파 조각마저 떨어질 듯이 위태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용케 포장지까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순임 씨는 얼른 한 쪽을 집어 들었다.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베어 물었다.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이 고소한 맛은 갈비 맛 하고도 다르고 불고기 맛은 더욱 아니다.

목구멍을 넘어 가면서 남기는 뒷맛은 항상 아쉽다. 양파까지도 고소했다. 뱃속의 허기증을 가라앉히는 데는 이 햄버거가 제일이었다. 금방 든든해지고 반나절은 밥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밥이란 먹고 돌아서는 대로 내려가서 뭔가 군것질을 해야만 다음 끼니때까지 견디는데 이걸 먹고 나면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먹어도 흡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쇠한 장기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먹은 것들이 또 제대로 빠져 나가느냐하면 그렇지도 못하는 게 탈이었다. 뱃속은 늘 부글거리는 것 같고 덕분에 걸을 때마다 나타나는 생리적 현상 때문에 난처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뱃속에서 생성된 가스가 새어나오는 게 마치 장에 구멍이라도 난 듯했다. 순임 씨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도저히 자제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방광도 뒤틀렸는지 어느 때는 앉고 일어설 때도 그곳에 가두어 놓지를 못하고 조금씩 흘려보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어디 나가기도 겁이 나고 아예 나가기도 싫다. 서글픈 심정은 벌써 옛날이야기이다.

순임 씨는 다시 햄버거를 베어 물면서 이십년 전에 병명도 모른 채 바짝 말라서 죽어가던 남편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예전에 백약이 무효한 채 시름시름 앓던 병들이라는 게 다 암이었지 싶었다.
그런 병을 앓다가도 지나가던 선승이 주고 간 약초를 얻어먹고 벌떡 일어나 앉아서 남은 수를 누렸다는 옛날이야기도 종종 있더라만 복도 지지리도 없지, 병명도 모르고 링겔만 맞다가 죽어 버렸으니. 의사가 암 인 것 같다는 얘기를 했을 때는 그건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처럼 절망적인 선고였지, 지금처럼 째고 잘라내고 방사선을 쬐어서 고쳐 낼 수도 있단 얘기가 아녔어.

순임 씨는 지금껏 혼자 살아남아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까지 온 거며, 그래서 큰 집 조카들한테 남편의 산소 벌초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떻든 이곳에 와서 이런 것도 먹어 가면서 여든 살이 되도록 살고 있는 것이, 남편의 못다 한 수를 물려받아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밤이 긴 동지에 그 양반은 속이 헛헛해서 늘 밤참을 찾고는 했는데, 김장 김치에 밥을 볶아 먹다가 원, 그것만으로도 채워지질 않아서 그 밤에 찹쌀을 불려 인절미를 해 먹은 적도 있었어. 새벽 한시에 동네 사람들 듣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아를 찧느라고 부엌문을 걸어 닫고 그랬지....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 순임 씨는 목구멍에 미끈하게 감기는 기름기를 넘기면서도 목이 콰악 메어왔다.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며느리가 얼른 콜라가 든 종이컵을 채갔다.
“밤새도록 화장실 갈려구 그러세요?”

아들이 김 부스러기를 입술에 붙인 채 힐끗 며느리를 향해 눈을 흘기면서 앞에 있던 콜라 컵을 순임 씨 앞으로 옮겨 놓았다.
“사람 차암, 느끼하니까 그러시지....”
순임 씨는 네 말이 맞는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컵을 들어 올렸다. 콜라를 삼키자 달큰하고 톡 쏘는 맛이 혓바닥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목울대를 넘어 뱃속으로 가볍게 내려갔다. 그것도 그랬다. 남편은 여름 날, 들판에서 미친 듯이 흙을 파헤치다가 지쳐서 돌아오면 설탕물을 찾았다. 순임 씨는 두레박을 깊이 내려서 찬물을 끌어 올린 다음 사발에다 그 물을 붓고 흑설탕을 녹여서 남편에게 내밀었다.

목 줄기에 핏줄이 불끈 솟도록 벌컥벌컥 들이 마시던 사람. 멋대가리 없이 뚝뚝해도 속정이 깊었는데, 게다가 부지런하고.  생전에 남 욕할 줄도 모르고 용해 빠져서 공술 한번 얻어먹을 줄도 모르던 사람이었지.

그새 다 먹었는지 며느리가 벌떡 일어났다. 아들 몫이었던 햄버거를 냉동실에 집어넣고는 식탁 위에 너절하게 흩어져 있던 햄버거 포장지를 오른 손으로 확 구겨 잡았다. 며느리의 두툼한 손가락 사이에서 감자튀김 몇 개가 식탁 위로 삐져나오자 순임 씨는 그 서슬에 잠시 어깨를 움찔했다. 아들은 마지막 한 숟갈 남은 밥에 맹물을 들어붓고는 훌훌 입에 퍼 넣고 나서 싱크대 속에 빈 그릇을 집어넣었다. 아들은 부석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순임 씨를 향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먼저 잘게요, 엄니, 오늘은 일이 많았에요”  
다운타운에서 잡화점을 하며 저렇게 늙어가는 아들이 안됐지만 그 나이에 뾰족한 수 없는 미국생활이었다.  

  순임 씨는 텔레비전을 켰다. 오늘은 모처럼 거실에서 커다란 테레비로 연속극을 봐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비디오테이프를 뒤적거렸다. 순임 씨 방에 있는 텔레비전은 화면이 깨끗하질 않았다. 이것저것 스무여 개의 테이프가 들어있는 비닐 봉투 속에서 한 개를 찾아 들고는 아들을 불렀다. 어떻게 비디오를 켜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방안에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정작 마루에 나온 것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였다. 베개에다 이불까지 들고 나오는 폼이 밤을 새며 비디오를 보려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테레비 보시게요? 엄니 방에 있는 거 고장 났어요?”
며느리는 소파 위에 베개를 내려놓으며 이불을 튼튼한 팔뚝에다 둘둘 감는다. 어쩌시려구?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아니, 아범이 일찍 잔다구 하길래....”
“아녜요, 전 지금 못 자요. 지금 자면요, 시간마다 깨서 아침에 얼굴이 퉁퉁 부어요.”
며느리는 순임 씨가 들고 있는 테이프를 흘낏 쳐다보고는 테이프가 들어 있는 비닐 봉투를 들고 소파 위에 풀썩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전, 이십 삼회 봐야 돼요”

며느리의 말은 단호했다. 순임 씨는 손에 들고 있던 이 십 회편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비디오에 테이프를 집어넣고 아들이 번호를 붙여 준대로 순서를 따라 눌렀다.  
화면이 잘 나가다가 몇 초에 한 번씩 지지직 소리를 내며 줄이 생기는 병이 있는데, 오늘따라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순임 씨는 꼭 자신의 가슴에 줄이 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가슴 속도 그랬다.
여든이란 나이는 거저먹은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어도 칼을 삼켜야만 하고, 망치를, 대못을, 그리고 바늘도 삼켜온 시간들인 것이다.

순임 씨는 자신의 가슴 속이 이런 것들로 생채기가 나서 건드리지 않아도 늘 쓰라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가슴 속 생채기는 묵으면 묵을수록  더 아린 모양이여...인저는 딱쟁이가 앉을 만두 하구먼...얘덜아,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가슴에 모진 아픔들을 안고 사는 거여. 그래서 내가 슬프고 니가 슬프고 ....그 인생이 다들 슬픈 거라는 걸 알게 되지. 느이덜두 언젠가는 그리 될 겨... 그것이 딱하다는 거여. 지금이야 느이덜이 아직 힘이 있는 줄 알구 그런다만... 그래서 그냥, 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넘어 가 주는 거여...쯧쯧...  
순임 씨는, 걸핏하면 보따리를 이고 집을 나서던 노년의 시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무명 적삼을 깨끗이 빨아 입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신작로로 나서는 시어머님을 주저앉히느라고 첨에는 생난리를 쳐댔지...아니 엄니, 어딜 가시는 거요? 하고 물어보면, 그때마다 영락없이 친정 가는 거라고 하시는 거여. 걸어서 삼십 리도 넘는 길인데 말여. 거기 뭐하러 가시냐구 하면, 울엄니 생신이라구두 했다가 아부지 지삿날이라구두 하구, 남동생 장가간다구두 하구... 그러고는 냅다 내빼시는 거여. 어떤 땐가, 그 물색 보따리를 몰래 뒤져 봤더니, 텃밭에서 딴 오이도 들어있고 가지도 들어있고, 여물지도 않은 새파란 포도송이꺼정 있는 거여. 아참, 그려, 내가 쓰던 구지뻬니도 집어넣었잖어...시상에나...노인네가, 그잘난걸 누굴 주겠다구...

그때는 남우세스러워서 얼른 빼서 감췄는데... 에이그, 내가 나이만 먹었지, 생각이 어렸어. 진달래 색, 아주 고운 거로 하나 사서 눠 드릴걸...허긴 뭐, 그것뿐 이여?, 치약이구 비누구 사다 놓기만 하믄 그걸 다 챙기셨으니까. 그러고 얼마큼 가다간 또 매칼없이 집으로 돌아오시지. 그래, 내가 또 왜 그러신 대여...친정엔 안 가시구? 하고 물으면 내가 가긴 어딜 간다구 그러냐구, 떡배추 옮겨 심어야 한다나, 뭐, 고추밭을 매야한대나, 그러면서 보따리를 내려놓으시는 거여.  
내가 우리 시엄니, 왜 그러셨는지 이 나이 돼서야 알겄어... 엄니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여, 그저 친정 가는 길에나 잠시 잊을 수 있었겄지.

그치만 으떡허겄어. 친정 가다보면 또 밭일이랑 집식구들이 뒷꼭지를 끄댕기는 걸...쯧쯧...평생을 들밭에서 일에 치어 사신 양반 아녀... 정신 놓으셨을 땐, 친정 가는 길이 좋았던 생각만 붙들고 기셨던 모양이여. 울엄니 생전에 좋은 거라는 건, 그것 뿐이셨던 거여... 그렇게 신작로를 마냥 오고가며 지내시다가 어느 날,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는데 그놈의 보따리를 꼭 끌어안고.... 아이고, 을마나 청승맞던지...엄니 얼굴은 인저 잘 생각 안나도 그 시퍼런 나이롱 보재기는 지금도 생각난대니까...        
순임 씨는 머리를 흔들었다.

말하믄 뭐해...그땐 나두 울엄니 생채기가 을마나 깊었는지 몰랐는데...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순임 씨는 텔레비전을 끄고, 침대 발치께에 놓여 있는 서랍장을 열었다.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을 열고 켜켜이 접어놓은 속옷을 들추었다. 그 속에서 휴지로 꼭꼭 싸고 신문지로 다시 싸놓은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왼손의 약지에 끼어본다. 약지에 반지를 끼면 자신의 심장에 직접 사랑의 전파를 보낸다고 하잖든가...무슨 드라마에서였던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손가락이 무지근해 지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순임 씨는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를 쓸어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평소 멋대가리도 없는 남편이, 읍내 장터에서 빨간 알이 박힌 반지를 사들고 들어 왔던 날이었다. 손가락 굵기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사들고 와서는 순임 씨 손가락에 끼워 주는 것이었다. 약간 헐렁하긴 했지만 가슴이 둥당댈 만큼 행복했다. 그런데 웬걸, 그 날 저녁에 칼국수를 한다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난 뒤에 반지 알맹이가 쏙 빠져 버리고 말았다. 반지 알은, 칼국수를 먹은 사람들 입안에서도 씹히지 않았고, 주위를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하루도 못 견디고 사라져 버린 반지 알 때문에 섭섭하던 심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이 손에 끼워 준 그때만큼은 그렇게 행복해서 가슴이 뛰더니 반지 알이 빠져 나간 후에는 자신이 그런 싸구려 취급을 받은 것 같아 영 섭섭한 것이었다.

혹시나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간직하고 있던 반지마저 녹이 슬어서 할 수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때는 참담하기 까지 했다. 반지를 끼고 밀가루 반죽을 하는 칠뜨기가 어디 있느냐고 남편이 궁시렁 대는 말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까짓 것, 싸구려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려해도 가슴 한 쪽이 베어지는 것처럼 서늘해지고는 했다. 나중에는 그런 싸구려 반지도 간직 못한 자신의 인생이 구차스럽고 찌질 해서 눈물까지 났다.
그러고 보니 그 일후로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본 적이 없었다.

순임 씨는 반지를 불빛으로 가져가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비싼 반지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백금 반지에 세 개의 맑은 유리알을 앉혔는데 가운데 것은 콩알만 해 보였다. 게다가 하얀 눈 위에 햇빛이 내리꽂힐 때처럼 쩡하게 빛나는 모양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다이아 반지인가.....
핏줄이 튀어 나온 데다 주름투성이 손이라 반지와 격이 맞지는 않는다만, 덕분에 손마저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이는구먼....
반지를 끼고 자리에 누웠다. 몸뚱이를 뒤챌 때마다 찌그덕 소리를 내는 침대 위에서도 가슴이 터억 펴지면서 뱃속에서부터 힘이 솟아올랐다. 마치 갈비탕이라도 한 그릇 먹은 뒤처럼 든든했다. 요상한 물건이었다. 손가락에서 가슴으로 무슨 기운이 옮겨오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기쁨과 힘의 근원이 있다는 사실이 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순임 씨는 곧 단잠에 빠져 들어갔다.

“엄머! 엄니, 거기 그 반지가 웬일이세요?”
아침 밥상에서 며느리가 큰소리로 물었다. 순임 씨는 아차 싶었다. 아침마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빼놓고는 했는데 어젯밤 자는 동안에 그새 익숙해져서 깜빡 했던 것이다. 순임 씨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으응, 이거 말여? 조오기, 공원에서 주운 거다. 왜? 이쁘냐? 유리알만 크다랗지, 별거 아녀....”
“유리알이요? 아이참, 엄니는 다이아 같은데, 왜 그러셔어? ”
며느리의 눈은 동그랗다 못해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했다. 며느리가 은근한 표정을 지으면서 순임 씨 옆으로 옮겨 앉았다.

“엄니는... 세상에 이런 다이아 반지를 어디서 주워요....언제 사신 거예요? 한 번도 못 봤는데.....”  
“아이고, 진짜여, 이게 다이아 반지라믄 내가 이걸 으떠케 사, 시상에나....“  
아들은 뜨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며느리가 얼굴이 굳어져서 순임 씨를 쏘아 보았다.
“엄니, 이리 좀 줘봐요”
순임 씨는 머뭇거리다가 반지를 빼냈다.
“주운 것 치고는 신기하게도 엄니 손가락에 따악 맞으시구만요....”
며느리는 비아냥거리듯 말하고, 암상낸 얼굴로 반지를 받아들었다.  

“세상에나.... 이거 이 캐럿도 넘겠네....이게 이 캐럿이면 얼마짜리래...으응?”
며느리는 퉁퉁한 손가락에 억지로 끼워 넣어 보려고 애를 쓰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홀린 듯이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아, 엄니가 그런 비싼 반지를 갖고 기실 리가 없지, 은제 우리가 해드린 적도 없는데.....거기다 누가 그렇게 비싼 걸 흘리고 다니겠어? 유리알맹이겠지....”  
“당신은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내가 다이아하고 유리도 구별 못할까봐? 유리는 아녀도 다이아는 저절로 알게 되는 거라구, 지가 나 다이아야 하고 말한다니깐....당신도 봐봐, 이 색 좀 봐아, 유리가 이렇게 맑고 깊은 빛이 나냐구?”
‘그을쎄, 뭐가 다르다는 거여, 내 눈에는 그냥 유리나 수정 같아 보이는데....“
“엄니, 진짜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한국에서부터 갖고 계셨어요? 여기서 사셨어요? 얼마 주셨어요?”
며느리는 숨도 쉬지 않고 연신 물어댔다.

“아이고오, 댓새 전에 공원 나갔다가 거기서 주운 거라니까. 얘가 왜 이려....거기 나무 의자 밑에 떨어져 있는 걸 집은겨... 첨에는 칙칙했는데 그나마 닦아서 이렇게 된거여”
순임 씨는 아무도 없는 초저녁을 기다렸다가 반지를 닦았던 것이다. 우선 따뜻한 비눗물에 담가 보았다. 그리고는 칫솔로 살살 문지르고 보드라운 천으로 조심스럽게 물기를 닦아냈다. 물속에서도 말간 유리알은 은은한 광을 내면서 순임 씨의 눈을 끌었다. 약간 거무틱해 보이던 백금반지도 제 색이 살아났다.  

며느리는 영 미심쩍은 표정으로 순임 씨를 살피다가는 마지못해 반지를 돌려주었다. 야단스런 시간은 지나갔지만 덕분에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마음 편히 반지를 끼고 있을 수 있게 되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끼는 순간, 사위가 잔잔해지며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첫애를 낳던 날, 음력으로 동짓달 스무이레였지.... 눈도, 눈도 그런 눈이 없었어....배보다 허리가 더 아파서 방바닥을 벌벌 기다가 꼭 죽는 줄만 알았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없는 방안이 무서워서,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글쎄 애기 주먹만 한 눈송이가 내 얼굴에 처억 달라붙었지.

순임씨는 마치 그 눈송이가 얼굴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얼굴을 쓰다듬어 내렸다. 눈더미를 밀어낸 안마당에 태반을 태워버리기 위해 피우던 겻불 냄새가 지금, 집안에 자욱이 번져 오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시작이었고 모든 것이 새 세상처럼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오십년도 넘은 일이 이렇게 또렷이 생각나다니.....그때는 남편의 다리가 나뭇동이 만큼이나 굵고 단단했지. 손가락으로 눌러도 들어가지 않던 남편의 장딴지가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느껴졌다.

젊은 날, 겁대가리 없던 시절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고, 이제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조차 무서우니...누가 알어, 다음 날 아침엔 영 못 일어날 지도 모르잖어...
순임 씨는 식은 국물을 다 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주말이 되었다. 워싱턴 시내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손녀가 집에 오는 날이었다. 손녀는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먼 거리이라 시내의 아파트에 방 하나를 세 얻어 살고 있다. 손녀가 오는 날이면 집안에 훈기가 돈다. 순임 씨는 아침부터 손녀를 기다렸다. 늘 점심때가 한참 기울어서야 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목을 빼고 창밖을 내다본다.

제 오빠를 닮지 않은 그 아이는 언제나 생글거리며 순임 씨 품을 파고들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러려니 생각해도 순임 씨에게는 남다른 아이였다. 스물아홉 살에 죽은 작은 아들을 닮아서인 지도 모른다. 예쁘장한 얼굴이며 쌍꺼풀진 눈, 긴 다리에 노래를 잘 부르고 감자 국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은 아이였다. 누구를 닮아서였는지 여리여리했던 작은 아들처럼 손녀도 그랬다.
해가 기울어 가는가 싶을 때, 문소리가 나고 손녀가 탁구공처럼 튀어 들어왔다. 집안은 금방 사람 사는 집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할머니이! 안녕! 오빠 네는? 오늘 안온대요?”
“지난번에 다녀갔는데 뭘 또 와, 지네 살림이 있잖냐...”
“그래두, 일주일에 한번 씩은 봐야지”
“그럼 오라구 전화해 봐”
순임 씨는 벌써 얼굴이 활짝 펴졌다. 어느새, 아이가 좋아하는 해물파전 부치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파전을 부치던 며느리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며 손녀를 향해 손짓을 했다.  
“엄니, 여기 잠깐, 파전 좀 봐 주실래요!”
순임 씨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며느리가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손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진희야, 너, 이리 좀 와봐”
“왜 그래? 엄마! 손 아퍼”
순임 씨는 두 사람을 살펴보다가 파전을 뒤집었다. 손녀를 잡아끄는 며느리의 눈치가 영 이상했다. 아무려나, 기름 냄새는 사람을 참 호기롭게 만든다. 더군다나 비라도 꾸물거리는 날에 어디선가 부침개 부치는 냄새가 풍겨오면 덩달아 기분 좋지 않던가.  
“할머니, 내가 할께”
얼마 지나지 않아, 손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총총한 눈길로 순임 씨를 한 번 싸악 훑어 내렸다. 그 눈길을 못 본 척 하면서 순임 씨는 뒤집개를 넘겨주었다. 필시 아이한테 반지 이야기를 했겠지. 순임 씨가 서둘러 주방을 빠져 나오려는데 손녀가 순임 씨를 붙들었다.
“할머니, 그 반지, 내가 좀 봐도 돼?”
“왜애? 내가 훔치기라도 했을까봐 그려?”
손녀는 순임 씨에게 눈을 흘기며 응석조로 말했다.

“아이 참, 할머닌...그게 아니고오, 내가 주얼리는 좀 볼 줄 알거든.... 진짠지 아닌지 봐줄게...할머니, 잠깐만 빼봐”  
순임 씨는 반지를 빼어서 손녀에게 건네주었다. 손가락이 허전했다. 손가락은 간사하게도, 꼭 그 자리에서 그만한 무게로 반지와 평생을 같이 살아온 듯이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었다.
손녀는 파전 부치는 일은 팽개치고 창가로 가서 반지를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있었다. 순임 씨는 다시 뒤집개를 집어 들었다.
“......어머머! 이거 머비스 다이아네..... 할머니! 아니 엄마아! 빨리 와봐!”
손녀의 호들갑에 며느리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엄마, 이거 진짜야, 머비스 다이아라고! 내 오피스에서 얼마 안가면 머비스 스토어가 있는데, 이거 거기 꺼야, 여기 속안에 머비스라고 새겨져 있잖아, 보여? 난 거기 스토어 안에도 못 들어가 봤지만....엄마, 거기 쇼케이스 안의 쥬얼리 홀더 색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아? 엄마가 그걸 봐야해, 오, 그 오렌지레드 칼라, 그리구 거기에 다이아몬드가 올려져 있다고 상상해 봐,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난, 프린세스가 된 것처럼 행복해지던데... 아휴, 이 정도면 삼 캐럿은 되겠다. 엄청 비쌀 꺼야...아무리 안 되어도 삼만 불은 넘을 것 같은데....그냥 제너럴한 반지는 아닌 것 같애, 무슨 특별한 날, 의미가 있는 반지 같잖아? 근데 할머니, 이거 정말 주은 거야? 아님, 돈 많은 애인이라도 생기셨나아? 우와 우리할머니, 정말 럭키다!”

순임 씨는 가슴이 덜컹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이러다가는 아무래도 반지와의 인연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며느리와 손녀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 되어서 반지를 교대로 끼어보고 있었다. 며느리는 여전히 손가락에 맞지 않는지 애를 쓰다가 새끼손가락에까지 맞춰보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순임 씨는 헛기침을 하고 힘주어 말했다.

“이리 내놔라”    
“아이, 할머니, 이거 나 줘어...으응?”
“그래요, 엄니, 진희한테 악간 크긴 하지만 그거야 줄이면 되니까....”
순임 씨는 굳은 얼굴로 손녀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다 시피 해서 왼손 약지에 다시 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곧 마음에 평정이 찾아오고 참참이 아랫배께 에서부터  힘이 올라왔다. 이내 며느리와 손녀의 얼굴이 부루퉁해졌지만 순임 씨는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러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고, 진희가 전화를 했는지 손자 내외가 허겁지겁 서두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순임 씨는 주방에서 나와 양손을 앞에 모으고 거실에 서 있었다.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자니 속이 보이는 것 같고, 주방에 있자니 며느리가 손녀 애와 수군거리는 눈치가 맘에 걸렸던 것이다.

“어, 할머니, 거기 계셨어요? 엄마는요? 진희는 어디 있어요?”
“다들 이 안에 있다”
손자는 순임 씨가 가리키는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엄마! 잠간만 이리 나와 보세요!”
손자가 방금 들어 온 제 아버지를 떠밀면서 식구들과 함께 큰방으로 몰려간 다음에도 순임 씨는 우두커니 거실에 서있었다.
“큰일은 큰일인가보네, 반지 하나 주워 들여온 게...”
순임 씨는 반지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비싼 반지라고 하니 왠지 손가락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순임 씨가 하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방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아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식구들이 거실로 몰려 나왔다. 식구들은 순임 씨를 가운데에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할머니, 이제부터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셔야 해요”
손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 내뱉은 말이었다. 손자는 순임 씨 손가락을 들어 올려 반지를 세심히 살폈다.

“이 반지, 어디에서 나셨어요?”
“요 앞, 공원에서 주웠다니까”
“언제요?”
“댓새 전에.... 어멈아, 비 많이 온 날이 언제냐? 고 다음날이었으니까”
“이게, 어디에 있었어요?”
“거기 놀이터 가기 전에, 잠자리채로 공치는 데 있는 나무 의자 말여, 거기 밑에 떨어져 있었어.”
순임 씨는 손자에게 잡혀 있던 손을 슬그머니 잡아 뺐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어요?”“아녀, 주차장에 차들은 몇 대 있더라만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들 안 뵈고 나 혼자였지, 근데 왜들 이려? 이 반질 내가 훔치기라도 했단 말여?”
“아녀요, 엄니, 얘들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진수야, 너도 그렇고 인저 다들 그만해라, 할머니가 주운 거니까 할머니가 결정하시도록 해라”    
“하지만 아버지, 주운 게 확실하다면 그거 주인한테 돌려 줘야 하지 않아요?”
“아 글쎄, 그걸 어떻게 찾아내냐?”
"아니, 잠깐, 그러지 말고, 팔아서... 엄니 돈 해드리면 안될까요?“
며느리가 순임 씨 손가락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걸로 엄니 테레비도 하나 사고, 침대도 새 거로 바꾸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순임 씨는 얼른 오른 손으로 반지를 가렸다.
손자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판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센터 다이아가 저 정도 크기에다 싸이드스톤 두 개를 올렸고...크기도 그렇지만 색을 보세요, 투명한 게...대단하잖아요...  못가도 아마 사만불은 갈 텐데... 그 정도 값이라면  몇 년이 지났어도 분명히 머비스 고객 리스트에 이름이 있을 거예요.”
“그럼, 오빠는 진짜로 주인 찾아 주자는 거야? 그러려면 경찰서에 갖다 주지, 그걸 우리가 왜 찾아줘? ”
손녀가 볼멘소리로 내뱉었다.

이러나저러나 모두들 당장이라도 순임 씨 손에서 반지를 벗겨갈 태세였다. 순임 씨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삼만 불에서 사만 불짜리 반지가 되었다. 삼만 불짜리이든, 사만 불짜리이든 순임 씨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일 바에야 차라리 유리 반지였더라면 좋을 뻔했다. 아니다. 애초에 집어 오지를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의자 밑에서 반지를 처음 보았을 때를 생각하면 다 입에 발린 소리였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뻗어나가던 그 순간이 떠오르자 순임 씨는 씁쓸해졌다.
으이그, 누군들 그걸 봤으면 안 집었겄어.... 그게 다이아인지 뭔지 몰라봤어두 보자마자 가슴이 쿵하더구먼...  
“엄니, 어떻게 허시겠어요?”
아들이 아무 표정도 떠오르지 않는 얼굴로 순임 씨에게 물었다.

“뭘 어떡해. 이게 비싸거나 말거나 무슨 대수라구 이 야단들이여. 이 반지가 그렇게 비싼 게 아니라믄 아무 문제없는 거 잖여? 난, 그냥 유리 반지라구 생각허니까, 다 덜 걱정 말어. 느덜두 그렇게 치부해라!”
“할머니, 그러시면 안 되지요. 그렇게 비싼 반지를 잃어버린 사람 생각도 하셔야지요”
입을 꼭 다물고 앉아있던 손자며느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임 씨에게 대들었다.
“아니, 밥 덜 안 먹어?”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 서슬에 나머지 식구들이 몸을 움찔했다. 순임 씨는 속으로 슬며시 웃었다. 주변머리 없다고 노상 끌탕을 해댄 아들의 도움으로 잠시 위기를 모면한 셈이었다. 순임 씨에게는 다이아반지이든 유리 반지이든, 사실 다를 게 없었다. 보여 줄 사람도 없고 봐 줄 사람도 없는데다 사만불이 나가는 반지라 하더라고 그만한 돈의 가치조차도 이제는 흥미가 없는 터였다. 아마 반지가 지긋이 가슴께를 눌러주는 편안함과 기쁨을 주지 않았더라면 진작 며느리 손에 넘겨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날 밤, 순임 씨는 반지를 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당기고 양다리를 쭈욱 폈다. 잠자기에 딱 좋은 피로가 몰려왔다. 눈을 감았던가, 아니면 비몽사몽이었던가, 순임 씨는 까무룩이 잠에 끌려 들어가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작은 아들이 생시처럼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아니었나. 아들은 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순임 씨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꿈치고는 너무 생생해서 순임 씨는 방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나쁜 놈, 못되고 못된 놈이여, 니가....아마도 니가 날 데리러 왔나부다....”
가슴이 사금파리에 베인 듯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산청리 방죽가에 산다는 과부를 데리고 온 날이었다. 얼굴이 뽀얗다 못해 핏줄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하얀 여자였다. 딸 둘을 데리고 사는 여자라 했다.
“그래서어?”
남편이 말꼬리를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숨을 꿀꺽 삼키고 단숨에 말을 해댔다.
“저, 이 여자랑 결혼하려고 해요, 아부지”

그 후로, 여섯 살이 위인, 거기에다 애까지 딸린 과부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선포한 작은 아들로 인해 집안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순임 씨는 물론, 큰아들도 밥상에서 조차 동생과는 눈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르케 못혀! ”
그렇게 버티던 남편이, 작은 애가 눈물로 애걸하는 앞에서 결국 도끼로 대청마루를 찍어댄 그날, 작은 아들은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 잡았어야 했는데.... 순임 씨는 새삼스럽게 이불깃을 움켜잡았다.

남편 몰래, 한 달 째 소식이 없는 아들을 찾아 나선 날, 우라지게도 비가 왔었지....길을 나선지 을마나 됐을까....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치고 바람 불고....나뭇가지가 우두둑 부러져 나가고....산길은 또 을마나 무섭든지....산에서 흘러내린 황토 물에 신발은 빠지고, 치맛자락은 빗물에 젖어 다리에 척척 달라붙고, 나중에는 흙탕물에 개더기가 돼가지고, 으이그, 내 꼬락서니하고는, 그 꼴로 찾아갔으니... 방죽가에 새로 지은 일자집이라 해서 금새 찾기는 했어.

근데 상고머리 기집애 둘이서만 집에 있는 거여.... 엄만 어디 기시냐 했더니, 지 엄말 닮은 큰 년이 날보고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며, 왜요? 하고 묻잖어. 열 살이나 됐을까. 즈이 엄마한테 장가들면 내 아들이 맡아서 길러야 할 기집앤데, 그냥 그 뒤집어 까는 눈자위에 만정이 떨어졌어. 그래, 암말도 안하고 마루 끝에 앉아서 비 그치기를 기다렸지. 잔뜩 별렀어. 들어오기만 하면 모가지를 묶어서라두 끌구 갈 참이었어.  

살림은 그냥 그럭저럭 어르고 사는 모양이데. 마루 한쪽에 있는 살강에는 언제 먹다 남은 건지, 오이지 썬 게 뿔그릇에 담겨서 허옇게 바래 있더라구... 어쩜 내 아들이 먹다 남긴 건지도 모르잖어. 근데, 그걸 보고 왜 눈물이 그르케 나던지.... 쿨쩍거리고 앉아있는데 그 놈이 넓적한 가방을 들고 들어 왔지. 얼굴이 하얀 과부도 같이 가방 하나 들고. 그게 뭐냐고 대짜고짜 물었더니, 미친 놈....구리무 장사하러 다닌다는 거였어. 무신 구리무냐고 했더니, 아들이 살랑 웃으면서 엄니, 한번 발라보실래요? 하는 거여. 그리구선 가방을 열고 구리무 곽을 나한테 주대, 대체, 그게 사내 녀석이 할 짓이여?

난 그냥 구리무곽을 마당에다 내동댕이 치고 싶었지만 그르케 할 순 없는 거지.....그놈의 모가지를 잡아끌기는 뭘 끌어, 꼬락지도 보기 싫어서 진지 드시고 가라고 과부댁이 부득부득 붙드는데도 난 그 길로 매몰차게 돌아왔어. 그놈이 엄니, 치마나 말리구 가시지 하는데, 왜 그땐 그게 염장 지르는 소리로 들리는 겨. 일이 그르케 될라니까 다 그런 거였어.

비는 그쳤더라구, 또랑물은 넘치고, 풀줄기가 발목에 걸리는 바람에 한번 넘어졌구만. 너무 분했어. 어릴 때부터 사내 녀석이 이쁘게 생겨서 기집년들 따르겠다고 남들이 말했지만, 그거야  샘내서 그런 줄 알았지. 짜장, 애 딸린 과부가 붙을 줄 알았겄어....

그래도 그때, 허락 했어야 되는 건데.... 작은 아들이 약을 먹고 자살을 하고 나서야 순임 씨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냥 살아있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을 텐데. 과부가 아니라 과부 할머니와 살았더라도 내 새끼 얼굴보고 살 수 있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겄어. 미련 곰탱이여, 내가. 그땐 왜 그르케 내 생각만 했을까....한번 물어보기라도 할 껄 그랬어, 야, 니가 을마나 그 여잘 사랑하냐?  그랬으믄, 나 그 여자 없이 못 살어, 뭐 그르케 말했을꺼 아니겄어.... 그러믄 내가 지 맘을 알았을 꺼 아녀....
순임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남편도 그 끝으로 병이 났을 것이다.
자식 앞세운 일이 내 탓이라고 하면 암병이 안 생기고 배기겄어, 다 지 생각해서 한 일이지만...  
다 지나간 일이었다. 순임 씨는 아들이 이제야 좋은 데로 갔나보다고 생각했다. 오매불망, 꿈속에서나마 보고 싶어 해도 아들은 한 번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이 에미한테 섭섭했던 게지....
그랬는데 생시처럼 환한 얼굴로 순임 씨를 돌아보던 아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려, 나도 금방 갈 거니까, 천천히 가란 말여, 멀리가지는 말구.

순임 씨는 서랍 한 쪽에 접어 두었던 가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반지를 빼어서 손수건으로 그것을 몇 겹이고 쌌다. 온 식구가 탐을 내던 반지였다. 순임 씨는 내일 아침에 며느리 손에 넘겨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고 보니 지나 내나 없는 집에 시집와서 좋은 날보다 궂은 날이 더 많았지.... 첨부터 쟤가 저렇게 심퉁 맞지는 않았어.

지 아부지 닮아서 말 한마디 살갑게 못하는 우리 아들 탓이지.... 그놈의 속들을 으찌 알어, 말 안하는 그 속을 말여, 우리가 귀신이여....
반지를 서랍에 넣고 나자, 얼음이 동동 떠있는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싶었다. 가슴속이 불이 나는 것처럼 홧홧 거렸기 때문이었다.
별일이여, 왜 이르케 입이 바작바작 탄대여.
순임 씨는 동치미 대신 물 한 컵을 마시고는 오래간만에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 것 같은데, 거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며느리가 전화를 받는가 싶더니 화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여보오! 아이구! 엄니, 엄니! 빨리 나와봐욧!”
순임 씨가 허둥대며 나가보니 텔레비전이 켜 있고 며느리는 수화기를 들고 그 앞에 서있었다. 아들이 뒤따라 머리를 쓸어내리며 방에서 나왔다.
“여보, 여보, 이 뉴스 좀 보래! 진수가 전화 했어!... 진수야! 그래, 그래, 지금 우리두 보고 있어”  
텔레비전 속에 공원 같은 장소가 비춰지고 있었다. 한 쪽에 노란 줄을 띄워놓고 머리가 긴 동양계 여자 리포터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낯익은 장소였다. 순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요기 우리 동네 공원이잖어?”

리포터가 서있는 곳은, 시내를 건너는 나무다리 부근이었다. 물은 깊지 않지만 물가로 내려가기에는 언덕의 경사가 급하고, 더군다나 물가에 우거진 숲에는 뱀이라도 나올 듯해서 다리만 몇 번 건너가 보고는 했다. 다리를 건너가 바라보는 이쪽 공원의 숲이 아름다워서 순임 씨도 가보기는 했지만, 팔십 나이 걸음으로 걷기에는 좀 숨이 차는 거리이라 곧 포기해 버린 장소였다.
그리고 난 뒤, 리포터는 커다란 집 앞에서 중년의 뚱뚱한 남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곧, 그 화면이 사라지고 웬 여자 노인의 사진이 크게 나타났다. 순임 씨는 자기도 모르게 에그머니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과 며느리의 눈이 크게 열리며 순임 씨를 바라보았다.

“아시는 분이에요?”
아들이 부성부성한 눈을 비비며 물었다.
“안다기보다, 공원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여, 근데 저 양반이 으떠케 된거여?”
“일주일 전에 실종 되었는데, 저기서 시체가 발견 되었대요”
“아니, 요 앞 공원에서 죽었단 말여?”
화면이 바뀌고 죽은 여자 노인이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찍은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내외는 금슬이 퍽 좋았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활짝 펴진 얼굴에서 마치 빛이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남자 노인의 얼굴도 낯설지 않았다.

  동네에 가까이 있는 공원의 낮 시간에는 주로 노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순임 씨는 날이 궂으면 온 몸이 쑤셔서 집안에 들어앉아 있다가 화창한 날에나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굳이 공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동네가 모두 나무숲이기는 했지만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있노라면 산 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가 풍겨오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공원 안, 숲길에서 시금치보다 더 크게 자란 민들레 잎사귀를 뜯어서 집에 갖고 갔다가 아들에게 무안을 당했다.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쌉쌀한 게 반찬으로 한 몫 하는데, 공원에서 나물 뜯는 것이 위법이라는 아들의 설명이었다. 더욱이 소독을 자주 하기 때문에 먹지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순임 씨가 입구를 지나 걸어 들어가다가 늘 앉아서 쉬는 자리에 백인 여자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의자라고는 그곳에 한 개 뿐이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만한 거리에도 숨은 턱에 차고, 다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나이는 순임 씨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근데, 으쩌면 저리 곱게 늙었을까.

순임 씨는 그녀가 입고 있는 하늘 색 바지와 수가 놓인 흰색 블라우스에 감탄을 했다. 은색의 머리를 얌전히 빗어 올린 솜씨며 손을 움직이는 태까지 고운 여자였다.  
아무튼 그 자리에서 자주 만나게 되자, 처음의 서먹하던 기분은 사라지고 머지않아 웃음으로 인사를 하게끔 되었다. 순임 씨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가슴에 한 손을 얹고 순임 씨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던 첫날,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천천히 반복해서 같은 말을 했다.
베티, 베티, 베티.

순임 씨는 베티가 그녀의 이름이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하지만 순임 씨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뭐라고 알려줘야 할지 몰라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을 빼고는 순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해서는 새댁으로, 아니면 큰애기로 불리다가, 큰아이가 태어나자 장손이라 해서 장손엄마, 그러다가 진수할머니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렇게 불렸다. 자신의 이름은 주민등록증에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식구들은커녕 남편조차도 그 이름을 불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긴, 이름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 그저 누구의 마누라로,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할머니로 살다가 죽은 후에 비석에서나 제 이름을 겨우 찾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그런 세상을 뒤집어엎어, 제 이름으로 불릴 권리를 찾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잊고 있던 이름 석 자를 끄집어내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유감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순임, 순임, 지는 순임이요.
그녀는 야속하게도 끝내 순임 씨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아무리 애를 써서 말을 해도 순임 씨 귀에는 자신의 이름이 쑤니라고 들렸다.
아이구, 그려, 미국 왔으니까 이름도 살짝 바꾸지, 뭐어. 괜찮어, 쑤니, 쑤니. 순임 씨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들었으면 똥강아지 이름 같다고 퉁박을 주겄네... 쑤긴 뭘 쒀, 크흐흐, 나보고 죽을 쑤냐고?

그렇다고 순임 씨가 그녀의 이름을 또 제대로 발음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베티하고 배티하고 뭐가 좀 다르겠지만, 베티라고 부르기가 영 쉽지 않았다. 순임 씨는 피장파장이니까 입에서 편히 나오는 대로 배티라고 부르기로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나이로는 통하는 법이었던지, 그녀는 순임 씨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캔디도 나누어 주고는 했다.

손자손녀 사진에, 아들 사진에, 그런 것들을 시시콜콜히 보여주며 뭐라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하면 순임 씨는 한국말로, 이뻐요, 아주 이뻐요, 하면서 열심히 칭찬을 해줬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유난히 창백해 보이던 날이었다. 순임 씨는 근심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의자에서 일어서기라도 하면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손이었다. 그녀는 손을 잡힌 채, 미소를 띠고 순임 씨를 바라보았다.  

“쯧쯧, 조심해요, 배티씨, 이 손 좀 봐....이봐요, 우리 나이 땐 말이우, 아침만큼은 뜨듯한 국물을 먹어야 하는 법이라우. 아무리 미국사람이라고 해도, 그 나이에 뻣뻣한 빵에다 커피 한 잔 마셔가지구선 속이 안 풀려요. 한번 해봐요, 시험 삼아서. 그러믄 얼굴 혈색부터 달라진다우...암튼...커피는 노굿이여”
순임 씨가 오른 손으로 국물을 떠먹는 시늉을 하자,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녀는 그 날, 들고 온 책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의 남편인 것 같았다.

그녀는 사진을 보여 주면서 정맥이 파랗게 돋아난 손으로 연신 사진을 쓰다듬어 내렸다. 볼수록 메마른 손이었다. 순임 씨 눈에는, 비록 거칠기는 해도 적당한 살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손이 훨씬 건강해 보였다. 대머리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고, 이마가 넓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나이든 남자가 빨간 철쭉꽃 숲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자의 뒤쪽에는 아름드리 은단풍 나무가, 큰 가지 한쪽이 잘라져 나간 채 버티고 서있었다. 덕분에 나무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내,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순임 씨는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적어도 십년은 지나가야 가끔씩 생각나지, 그 전에는 매일, 매순간 생각나는 법이라고 순임 씨는 조근조근 말했다. 그녀가 마치 알아들은 듯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순임 씨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헤어진 지가 열흘이나 되었을까. 그녀가 죽다니, 그것도 공원에서 변사라니.
며느리가 손자와 한참을 통화하고 나서, 한숨과 함께 이맛전을 잔뜩 찌푸리고 순임 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유심히 순임 씨의 손가락을 살폈다.

“어머! 엄니, 그 반지, 어디 있어요?”
“으응, 그거... 서랍에 눠놨다... 그렇잖아도 그 반지 너한테 줄려구 어제 밤에 잘 싸놓았어.”
“네에? 그 반질요?”
“그런 반지 내가 갖고 있음 뭐하냐, 느이덜이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던지, 아님, 진희 시집갈 때 주던지 그려....”
“아유, 엄니! 그게 아녀요, 큰일 났어요! 그 반지 있잖아요, 글쎄, 경찰이 그걸 찾고 있대요. 아까 뉴스에 나온 할머니가 끼고 있던 거래요, 그 비싼 반지가 없어진 거로 봐서 혹시 강도가 한 짓이 아닌가 하고 추적하고 있대잖아요.....“
“무슨 소리여? 누가 반지를, 강도라고?”

아들이 벌떡 일어나 며느리에게 되묻는 소리를 들으며 순임 씨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벌벌 떨려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머리가 피잉 돌면서 피가 발치께로 다 몰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그랬구먼, 그랬던 것이었어...
“여보, 흥분하지 말고 더 좀 들어봐! 진수가 그러는데, 아침 뉴스에 속보로 계속 나오더래, 어제 오후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남자가 다리 옆 숲에서 그 할머니 시체를 발견했다네.

개가  하도 짖어대어서 그 사람이 숲으로 들어가 봤나봐. 아유, 끔찍해! 얼마나 놀랬을까... 진수가 첨에는 우리 동네라니까 바쁜데도 눈여겨봤든가 봐. 그래도 뭐, 남 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뉴스를 보다가 나중에는 기절할 뻔 했대요.

글쎄, 엄니, 그 할머니가 삼 캐럿짜리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반지가 사라졌다고 하더래요. 그 반지는 남편이 오십 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해 준 거래요. 그러고 나서 바로 남편이 죽었다네요. 아들이 나와서 눈물로 그 얘기를 하더래잖아. 남편이 죽은 뒤로는 통 끼지 않고 있다가 웬일인지 실종되기 전 날에 반지를 다시 끼더래..... 전에 남편하고 자주 다니던 공원에 그 후로도 가끔 나가는 걸 알아서, 공원도 몇 번 뒤져 보기는 했지만 숲이 깊은데다가 또 좀 넓어... 그것보담 설마 했던가 봐. 가족들은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버려서 집을 못 찾아오는 줄 알고, 외려 병원이나 쉘터 그런 데를 찾아 다녔던가 보더라구.....”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소리여.....”
아들이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며느리가 한숨을 폭 내쉬며 싸늘하게 말했다.
“잘못하면 엄니가 반지 뺏은 살인강도 되는 거지, 뭐”
“아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뭘...하도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안 그래요, 엄니? 이판에 그거 주웠다고 신고하면 경찰이 믿겠어요? 더군다나 동양인이... 나중에야 밝혀지겠지만 그동안에 온 식구가 불려 다니고 테레비 뉴스에 얼굴 나오고 난리가 날 텐데...아무 소리들 말고 입 다물고 있어야지...아유! 그나저나 팔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 했어 ....”
“사람 참, 말하는 뽄새하고는... 근데 진수는 뭐래?”
“걔야, 당장이라도 경찰에 갖다 주라고 야단이지”

순임 씨는 입안이 바작 타다 못해 마치 항생제를 털어 넣기라도 한 것처럼 쓰디썼다. 나중에는 속도 뒤집히고, 온몸에서 기운이란 기운은 몽창 빠져 나갔는지 숟가락을 들어 올리기도 힘이 들 지경이 되었다. 그날로 순임 씨는 앓아누웠다. 손자 내외가 와서, 순임 씨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본 다음, 며느리와 방밖에서 수런거리다가 돌아가고, 아들이 번번이 고개를 직수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가고, 손녀가 머리맡에 복숭아 통조림 두 개를 내려놓고 순임 씨 손을 한 번 잡아 주고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순임 씨는 꼭 닷새를 앓고 일어나 앉았다.  
“엄니! 이제 정신 좀 나셔어?”
아들이 놀란 눈으로 순임 씨를 바라보았다.

“그려, 별일 아녀어....근데....내가 이참에 기운 차리면 댕겨 올 데가 좀 있다.”
“그러세요, 무리하진 마시고..... 애덜 한테 전화 좀 넣을께요.”
흐음, 니덜이 내 장례 준비 했구먼... 순임 씨는 비죽 웃으며, 아들이 쏟아준 복숭아 통조림 속의 단물을 주욱 들이켰다.
며칠이 지나갔다.

“진짜 혼자 나가셔도 되겠어요? 지가 같이 간다니깐.....”
“아녀, 성가시러워, 요 앞에 가는데 뭘 그려.....”
화창한 날이었다. 웬일인지 아들 부부는 순임 씨가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로 반지의 반자도 얘길 꺼내지 않고 있었다. 무슨 묵계인지 모르지만 순임 씨는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순임 씨는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반지를 꺼냈다.  단단히 싸 두었던 가제 손수건을 빼내고 휴지에 여러 번 싼 다음, 바지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물 한 병을 들고 길을 나섰다. 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나무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한국에서 살던 집, 뒷산에서 맡던 냄새였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섯이 홈빡 솟아오르는 산이었다. 소쿠리를 들고 어둑새벽에 뒷산에 올라가면 이런 냄새가 났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오십 여 년 전 일이건만 어째 이렇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지 모를 일이었다.

입구를 들어서서 주차장에 도착하면 공원 안내도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테니스장 앞에 친절하게도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집에서부터 공원 입구까지 가다보면 적당히 지치게 되는데, 딱 알맞은 자리에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이 순임 씨에게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 자리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순임 씨는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가서 앉았다.

순임 씨는, 향수가 은은하게 풍겨오던 은발의 그녀가 늘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반지가 떨어져 있던 의자 아래도 내려다보았다.
변사라니 웬말이여....그녀의 곱던 은발과 때마다 입고 나오던 화사한 색의 옷가지들,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던 그녀의 조용하던 목소리, 그리고 남편의 사진을 쓰다듬던 그녀의 정맥 돋은 하얀 손...손...그 손이....
순임 씨는 얼른 왼손을 펴 보았다. 약지를 눈여겨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순임 씨보다 훨씬 가늘었다.

그래서 메말라보이던 손이었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맘고생해서 살이 쪼옥 빠진 거여... 필시 그렇게 됐을 거여. 그런 손가락에 반지를 끼었으니 빠져나갈 수밖에.....    
순임 씨는 의자에서 일어나, 농구장을 지나고 놀이터를 비껴서 지나갔다. 그곳에서부터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길옆, 나무 그늘 아래에는 여전히 민들레가 탐스럽게 솟아있었다. 마치 마차가 다닌 것처럼 두 줄이 나있는 흙 길 가운데에 딱새를 닮은 잿빛 새가 호르르 날아와 앉았다.
나를 보지 마렴, 보았어도 못 본 것처럼 그냥 앉아 있거라. 하늘을 나르자니 너도 좀 고단허겄냐...

하지만 새는 놀랐다는 듯이 길 위에서 한 걸음 톡 튀어갔다가는 이내 숲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길 위로 나오던 다람쥐가 두발로 서서 사방을 살피다가 순임 씨를 보고는 전 속력으로 길을 가로질러갔다.  
쯧쯧! 나이가 들면 자연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사람 냄새가 빠져 나가고,그래서, 산에 가면 나무가 되구 새가 되구 풀이 되려니 했는데, 여전히 새들도 피해가구 다람쥐꺼정 기겁을 하는구먼.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자라서 마치 나란히 줄서기를 한 듯하였다. 그쯤에 동그랗게 길이 모여 있는 그곳에도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다.

순임 씨는 그곳에 가서 앉았다. 저만치 시냇가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보였다.
다리가 놓인 곳에는 햇살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이 비켜선 곳이라 하늘이 열리고 햇살은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순임 씨는 먹먹히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양다리가 맥이 빠지고 어깨가 처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순임 씨는 애를 쓰고 다시 일어났다.

시냇가에 도착하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날 텔레비전에 나왔던 장소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였다. 천천히 다리 위를 걸어갔다. 쇠로 되어있는 난간이 사람 키를 훨씬 넘었다. 순임 씨는 잠시 서서, 난간을 붙들고 물가를 내려다보았다.
저쯤인가 벼...
움쑥 풀이 베어져 나간 곳이 눈에 들어왔다. 물속의 돌멩이들은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순임 씨는 다리를 건넜다. 건너자마자 돌아서서 숲을 바라보았다. 계절마다 얼굴을 바꾸는 숲이었지만 여름이 마악 들어서고 있는 이즈음의 나무색들이 가장 아름다웠다. 잎사귀들이 겹치고 겹쳐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축축한 회색의 나무 몸피와 연록의 나뭇잎의 조화, 무엇보다도 깊은 숲의 냄새가 그랬다.
그러다가 순임 씨는 갑자기 숨을 멈췄다.
저 나무.... 꽃은 떨어졌지만 철쭉이 사람크기 만큼이나 자라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너머로, 약간 옆으로 기웃둥 하게 서있는 은단풍 나무가 순임 씨 눈 속을 파고 들어왔던 것이다. 오래 전에 가지 한 쪽이 잘라져 나간 모양이었는지, 잘라진 자리가 푸르스름하게 이끼로 덮여 있었다.  

으찌 된일이여, 저 나무를 사진에서 봤어, 그땐 저 철쭉에 꽃이 피어있었던 거구...저 단풍나무가 지금은 잎사구가 많이 자랐어두, 필시, 저 나무여....  
순임 씨는 사진 속의 장면을 애써 떠올리며 발을 조금씩 옆으로, 뒤로 움직여 보았다. 다리에서 왼쪽으로 사 미터 정도 옮겨 갔을 때, 순임 씨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려, 여기 같어, 여기서 찍은 모양이여.
꼭 사진에서 보았던 나무 가지 모양이 앞에 있었다. 머리가 약간 벗어진 노년의 건장한 남자가 그곳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순임 씨는 심호흡을 했다.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왜 이곳에서 일을 당했는지. 길 아래는 잡풀이 잔뜩 자라있었다. 만일에 그녀가 자칫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면 풀숲을 뒤져 보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소였다.  
십년만 참지...그르케 애를 썼어...그러믄 견딜만하구먼.. 십년만 지나믄, 가슴에 묻은 자식도 띄엄띄엄 생각나는 걸, 우째 그걸 모른겨....
순임 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휴지를 벗겨 내고 반지를 손에 들었다.
맘 같아서는 절이라도 한 번 했으면 좋으련만....
순임 씨는 마지막으로 반지를 지긋이 움켜쥐었다.

배티씨! 이거, 주인한테 돌려주려고 왔수. 헌데, 당신 내외가 평생 살아온 얘기를 이 반지 속에 담아 놓은 거 아니우? 사랑 얘기 같은 거 말이우. 내가 덕 봤다오. 이제는 편히 가시우. 우리가 몸뚱이는 여기다 두고 가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 아니우... 인저, 내가 고대 올라갈 테니, 우리 다시 만납시다. 그땐 한국말 하기우. 원 차암, 그동안, 말 안 통해서 답답했수.
순임 씨는 반지를 건너편 냇가 숲에다 힘껏 던졌다.
반지야, 숨어라, 꼭꼭.

투욱, 소리를 내며 반지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풀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임 씨는 발길을 돌렸다. 천천히 나무다리를 건너고 은단풍나무가 서있는 숲을 지나쳤다.  
내 나이가 여든이여...탐나는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고, 가보고 싶은 데가 있기를 허나... 뭐, 그다지 받치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게다가 죽을 듯이 슬픈 것도 없지, 좋다고 뒤집어지게 깔깔 거릴 일도 없고... 그러니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단 말여...그치만 한가지...지난 일들이 어제 일 같이 생생허게 떠오르는 건 말여...힘든겨...짜장, 힘들고 무서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