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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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무너지는 그대

2009.05.28 06:30

최영숙 조회 수:1287 추천:268

 

“여기 좀 읽어봐! 이거 진짜 우스워!” 

나는 남편의 등판을 팡팡 때리면서 계속 웃어댔다. 

“또 그런다. 혼자 다 웃어, 보나마나 싱거운 얘기지?” 

 

박완서씨의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의 후기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녀가 남편과 만나기로 한 찻집에서의 장면이었다. 

딸이 알려준 대로 "파바로티 찻집"에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인 남편을 기다리던 여자는,

마침 남편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일어서서 손짓을 하려고 하는데, 먼저 그의 메마른 고성이 넓은 홀안에 고루 퍼진다.

 

“여기가 페스타롯치 다방, 맞소?” 

 

나는 남편에게 웃음을 섞어가며 줄거리를 들려주다가 이 대목만큼은 원문대로 크게 읽어주었다.

“페스타롯치 다방 맞소?... 진짜 우습지? 응? ....어떻게 파바로티가...페스타롯치가 되냐구!” 

“남편이 교육자랬지? 그러니까 그런 거지, ”

시쿤둥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도 그 대목에서는 소리를 내고 웃었다.

“ 거기다가 커피를 육개장 국물 들이 마시듯이 마셨대!”

 

작가가 표현한 대로, 불그죽죽한 넥타이로 목을 잔뜩 졸라맨 정장차림의 교장 선생님이, 반들반들 벗겨진 구릿빛 정수리에서 샘솟듯 흘러내리는 땀을 꾀죄죄한 손수건으로 연신 닦으면서 후룩후룩 블랙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자, 나는 아예 배를 잡고 뒹굴었다. 

너무 심하게 웃어서 나중에는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근데 나도 다방 얘기하면 창피한 일 있어.” 

내가 생전 처음 다방이라는 곳을 갔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방을 학생출입금지 구역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런지 성인 신고식이라도 치르는 장소처럼 어둡고 컴컴한 그곳을 기피하던 나는, 졸업을 하고도 한참 후에야 그것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야만 했다. 

“거기서 내가 아는 게 홍차 밖에 더 있어야지, 그땐 커피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니까.

그리고 그 남자는 계란 반숙을 시켰어. 

홍차를 써서 어떻게 그냥 마셔. 그래서 두리번거리고 설탕을 찾다가 한 스푼 떠 넣었지. 

아주 얌전하게. 근데 그 남자가 깜짝 놀라는 거야.

알고 보니까 계란 반숙에 딸려 나온 소금을 내가 집어넣은 거 있지!” 

 

 우리는 이래저래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난 다음에 말했다.

“....아니, 그 얘긴 말야... 생각할수록 우습네, 파바로티가....어떻게 노스탈쟈가 되냐...”

 

%&*#$*@#%^&*%&*! 

 

오! 너무도 쓸쓸한 내 앞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 그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을 흔들며 무너지고 있는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