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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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현령비현령 3부 (중편소설)

2009.07.20 11:41

최영숙 조회 수:1726 추천:280

  나는 데이지 순이 새파랗게 올라온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강의실로 가는 길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에 적응을 할 때처럼, 나는 또 뜨개질과 재봉, 식단을 짜기 위한 칼로리 계산과 육아와 아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 발을 디뎌 놓고 공부를 계속해야만 했다.

그런데 뜨개질 중에서도 대바늘뜨기만큼은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너무 느린데다 여차하면 코를 빠뜨려서 나중에는 넓이가 작아져 버리거나 가장자리가 비뚤비뚤 거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코를 줄이고 늘이는 원리를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산수문제 하나를 끝까지 풀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를 적용해야하는 경우를 구별하지 못해서였다. 나는 지금도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 라, 가장조 바, 나, 마단조,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이럴 때는 이런 음을 내고, 샾과 플랫에 따라 반음을 내리고 올리고 해야 한다는 약속을 도무지 이해 못해서 음악시간 공포증에 걸렸던 이유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아버지와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왜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종이에다 일일이 연도를 써가며 나이 대조표를 만들어서 설명을 해줘서야 겨우 알아들었던 일도 있다.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하긴,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도 제법 있지 않은가. 그렇게 초조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뜨개질만큼은 그런 시간에 맡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불행하게도 봉제시간에 포함된 전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뜨개질이 전공과목 점수에 반영되는 세상이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더군다나 조리시간에 사과 깎기나 무생채 썰기가 중요한 기본기가 된다는 일은 기이하기까지 했다. 사과 깎기 실기 시험을 위해 과도를 들고 교수 앞에 섰을 때, 나는 수치와 자괴감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섯 명 속에 서있는데도 사과와 과도를 든 양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과에 칼을 대었다....라프 길 호수 속의 이니스프리 섬. 빛나는 예지와 황혼의 불확실한 세계, 모드 곤은 왜 예이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수줍은 엘리어트여, 더 웨이스트 랜드, 황무지, 사자의 매장, 에즈라 파운드에게 바쳐진 에피그라프. 쿠마의 무녀.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한 청춘을 요구하길 잊었던 무녀는 개미처럼 작아져서 항아리 속에 달려 있었다지,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난 죽고 싶어. 사과 껍질이 끊어져 접시에 떨어졌고 껍질은 떨어지면서 내 가슴 속을 툭툭 쳐댔다.

껍질 두께가 너무 두꺼웠다는 교수의 평과 함께 그저 그런 점수를 받았음에도 나는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적어도 세상을 향해 자존심 하나로 대항하는 나이에는, 자존심을 내려 깎으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두려울 것이 없는 분노가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지없이 이현령비현령의 딸랑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죄 없는 황지아이를 향해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아울러 나는 굳이 뜨개질의 원리도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까짓 것 가지고 애쓰지 마라, 이런 것 못해도 시집가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으니까, 우물우물 코를 잡으며 나가는 나의 뜨개질을 보다 못해 어머니가 내 손에서 대바늘을 채가며 씩씩하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어차피 내 인생의 어느 구석에 소리 없이 처박혀 있게 될 대바늘과 털실의 의미쯤은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가정과 실습실로 가는 길옆에 온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일 년이 다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친 건, 길보다 움푹 내려간 실습지 옆에 엎드려 있는 온실이 나하고는 무관한 건물이었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봄기운 때문인지 자욱하게 김이 서린 유리창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동작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머릿속에 온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그때서야 온실이 예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 온실이었구나.

그렇게 무관했던 건물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나는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곳을 바라보고는 했다. 때로는 몇 발자국 내려가 그곳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저, 온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후욱 끼쳐 오는 열기와 습기, 그리고 그곳에 가득 차 있을 화초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를 도전하고 그래서 새로 시작해야하고, 또 적응해야 하는 일들이, 권태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걸어 다니는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당시 내게는, 그림자 연극처럼 온실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모습이라든지, 습기로 부옇게 흐려진 유리창 안에서 숨 쉬고 있을 이국의 화초들과 윤기 흐르는 관엽 식물들, 그런 것들이  무료한 교정 안에서 그나마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마네의 ‘검은 모자의 베르뜨 모리조’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차마 눈을 떼지 못하던 그녀와의 첫 만남, 그 후로 얼마나 그 그림에 집착을 했는지, 심지어 나는 그녀의 동그란 눈과 입술을 닮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까지 했다.

마네가 사랑하는 모리조를 곁에 두기 위해 그의 동생과 결혼하도록 했다는 스토리는, 사춘기를 막 보낸 나에게 있어 불순이 아니라 환상, 그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머잖아 고흐에 밀려나고, 또 고흐를 지난 후, 마티스에 빠져 있을 때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온실도 내게는 어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무료함으로 늘어진 길목에서 그냥 붙들고 있어야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지난 가을에 캐내어 온실에서 겨울을 난 파초들이 정원으로 다시 옮겨지고, 그 외 달리아와 글라디오스 구근들이 거름 좋은 땅위에 심겨지는 등, 분주해 보이는 봄맞이를 마치고 난 뒤, 온실의 창문들이 일제히 열려있던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유쾌한 공기가 밀려들어가고, 그래도 아직 유리창 안쪽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투두둑 관엽 식물들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온실로 다가갔다.

온실 밖에서는 원예과 전공생들이 쉴 새 없이 실습지로 거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카트와 함께 흙으로 범벅이 된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나는 곧 발길을 돌려 온실이 내려다보이는 테니스 코트 언덕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버렸다. 그림자 연극 같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그들의 수고가 너무 고단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봄바람이 흙냄새를 몰고 왔다. 이렇게 새 봄은 다시 왔으나, 어차피 학창 시절의 낭만 같은 것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이제는 내 인생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얼른 나이 먹어서 삼십이 되고 사십이 되었으면....사십이 되면....그 때는 내가 무언가가 되어있겠지... 무언가 이름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겠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면서 일어서려던 나는 등 뒤에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너, 온실에 관심 있어?”
베이지 색 캡을 꾹 눌러 쓴 키 큰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아, 네에... 그런 것보다도...그냥....무슨 꽃들이 안에 있나 해서....”
“그동안 네가 몇 번씩 기웃거리는 것, 내가 봤거든.”
남자는 말끝에 활짝 웃었다.  

누구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로 나오는 그는, 학생이라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고 또 그렇다고 아니라고 볼 근거도 없는 일이었다.
“들어가 볼래?”
“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갈게요.”

하지만 남자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할 수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온실에 들어서자 안에 있던 몇 명의 전공생들이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그가 원예과의 한조교라는 것을 그들의 짧은 대화 속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온도계를 점검하고 나서 창문을 닫으라고 지시를 한 다음 열 개 정도 되는 단풍나무 분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리들 와봐, 이 정도로는 물이 충분하지 않아, 한번 줄 때는 아주 흠뻑 주어야해. 그리고 이건 이제부터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안 된다. 잎사귀가 잘 타니까 반그늘에 놓도록 하고. ”

전공생들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를 흘끔거렸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하고 서 있었다.

“이봐, 자네도 이리와 봐!”

그가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가 물 호스에 달린 스프레이건으로, 붉은 새 순이 가시처럼 오소소 솟아 있는 단풍나무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줄기가 안개를 뿜으며 퍼져 나왔다. 물주기를 끝내고 그가 단풍나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 새순 좀 봐라. 녀석들....그래도 겨울 잘 지냈다고 이렇게 인사 하네....야아, 너희들 아냐, 이 맛에 단풍을 키운다는 거.”

나는 어리둥절했다. 온실에는 겨울을 밖에서 나지 못하는 열대식물이나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온실 안을 자세히 돌아 볼 수 있었다.

겉에서 보기보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온실이었다. 관음죽 몇 개와 멋없이 키 만 큰 몬스테라가 시들한 모습으로 나무토막을 의지하고 서있고, 누렇게 잎사귀가 변한 보스턴 부시 화분들이 철사 줄에 매달려 있는 아래로, 깨진 화분들의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지금은 이렇지만 이제 곧  아열대식물들로 가득 차게 될 거야. 어때? 양란 좋아하니? 거기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여기 이 누런 잎들 좀 따 주시지?”

나는 그가 가리키는 대로 보스턴 부시 화분에 손을 대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누런 잎을 따주고 나니 화초가 훨씬 생기가 있어 보였다. 화분에 튄 흙까지 깨끗이 닦아주고 보니 연록색이 싱싱하게 돋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양란이 들어올 거라는 그의 말에 나는 벌써 숨이 탁 막혀왔다. 향기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처럼 화사하고 밝고 건강한 꽃들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만만하고 기개가 강해보이는 그 꽃들이 열대 아시아나, 남아프리카, 중미 고원에 있는 바위, 나무에 기생하거나 습지 바닥에서 자라는 화초라는 게 영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보스턴 부시 화분을 다시 철사 줄에 걸어 놓으며 한조교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는 단풍나무에 무슨 벌레라도 생겼는지 나무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었다. 약간 마른 탓에 그의 턱 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저어, 조교님, 이거 다 했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가방을 들어 올리며 꾸벅 인사를 하자 한 조교가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놀란 듯이 말했다.

“그냥 가면 미안하지, 내가 짜장 사줄게 기다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서둘렀다.
“차 시간이 다 돼서 가봐야 해요.”
“그러니? 아, 그럼 말이야, 이건 특별대우인데, 시간 나는 대로  온실에 들러, 꽃에 관심이 많은가 본데, 아마 앞으로 배울 게 많을 거야.”  

나는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온실을 나섰다. 나오다가 잠시 서서 온실을 돌아보았다. 그 속에서 한 조교와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나른하고 한적한 교정을 바쁜 듯이 가로질러 갔다.

약속을 지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온실 통행증을 얻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그곳을 드나들게 되었다. 제법 단풍나무 분재에 액비주기, 물주기 등을 익히고 나서는, 막 들여 온 다섯 개의 양란에 열중하게 되었다.  
  
내가 양란의 전부인 줄 알았던 꽃은, 양란 품종 중의 하나인 심비디움이었다. 아열대 아시아가 원산지라는 심비디움처럼 양란이 모두 그렇게 화사한 줄만 알았는데, 그 중에는 이끼에 붙어서 처량하도록 희고 가느다란 꽃을 피우는 품종도 있었다. 원종의 수 만해도 이천여 종에 달한다는 한 조교의 설명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좁은 세계만큼이나 좁은 지식을 갖고 있는 나를 인정하는 일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잎줄기에 붙어있는 깍지벌레를 손으로 잡아내는데 까지 양란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품게 되자, 그 외에 품종의 수가 얼마가 되던, 또한 품종의 종류가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이론적 지식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너, 아예 원예과로 와라.”
전공생들이 반농담으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생각해 볼게요.”

나는 다시 종이 모자이크를 시작했다.  
한 조교에게 부탁해서 얻은 심비디움, 덴드로비움, 풍란, 석곡들의 사진 위에 습자지를 올려놓고 세밀하게 복사를 한 다음, 습자지 밑에 먹지를 깔고, 두꺼운 도화지  위에 다시 한 번 복사를 한다.

그 위에 종잇조각이 붙어가면서 꽃 모양이 비슷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역시 정희언니의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아마 언니라면 분명 사진을 찍은 것처럼 음영과 원근을 갖춘 은은한 양란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또 시작이냐? 아유, 징그러, 이 놈의 종잇조각들, 치우면서 하면 어디가 덧나냐? 온 방에 난리구나, 난리. 이러다가 밥그릇에 날아 들어갈까 봐 걱정이다. 근데, 넌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이렇게 정신을 쏟는 거니?”

어머니는 빗자루를 내게 툭 던지며 양말바닥에 붙은 종잇조각을 떼어냈다.  방구석으로 내몰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조교의 모습을 떠올리며 잘디 잔 종잇조각을 붙여 나가는 중이었다.

기다란 몸체가 비슷하게 완성되고 나서 위로 올라가 야구모자를 만들어 씌우고 얼굴로 손이 내려갔을 때였다. 거기에서 손이 멈칫하고 서버렸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질 않아서였다. 그냥 눈이다, 코다, 입이다고 생각하며 진도를 나가려고 했으나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너, 오늘 이상하다, 왜 그렇게 날 유심히 보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매일 모자 쓰고 계시니까,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바깥에서 만나면 어머, 너 누구였더라, 굉장히 낯익다, 얘! 하고 어깨 툭 칠 것 같아서 그래요.”
“그으래?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아 그럼 잘 봐라, 내가 얼마나 핸섬한지 말이야.”
  
그가 모자를 벗었다. 모자 자국이 나있는 앞이마에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와 있었다. 나는 순간,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마터면 손을 뻗을 뻔 했는데 그 때 그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자 반듯하고 가뭇한 이마가 드러났다.

“잘 봐둬!”
그가 내게로 바싹 얼굴을 들이댔다. 나는 순간 몸을 뒤로 젖히면서 반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의 커다랗게 뜬 눈이 바로 내 눈앞에 와서 멈추었다. 눈 속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 안쪽에서 섬광 같은 것이 번득이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입매가 전체 얼굴의 균형을 깰 만큼 커보였다.

“내가 오늘 너한테 보너스 좀 줄까 하는데, 어때? 시간 있어? 멀리 가는 거 아니고 요 앞에 있는 실습림에 데려가려고 한다. 거긴 아무나 들어가는 데가 아니야.”

한조교는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걸어 두었던 재킷을 들어 주머니에서 열쇠를 확인한 다음 앞장을 섰다. 실습지를 지나고 인공 연못을 돌아나가 오솔길로 들어섰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었다.

“여기 와봤어?”
“아니요,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럴 거다, 일부러 오기 전에는 이 쪽으로 올 일들이 없을 테지. 강의 끝나자마자 다들 교문 밖으로 달아나 버리니까.”

철조망 울타리와 함께 길을 막고 있는 철망 문이 나타났다. 그 문에는 체인으로 채워진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여기에는 풀 같이 보이지만 아주 희귀한 식물들도 있거든. 그걸 모르는 사람들한테 훼손 당할까봐 이렇게 잠가 놓고 있는 거야. 덕분에 아주 자연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사실은 자연 생태원을 만드는 게 내 꿈이야..... 그래서 아버지한테 돈을 빌려서 땅을 좀 샀어. 여기에서 한 시간 더 동쪽으로 들어가는 장소인데, 시냇물도 흐르고 암석들도 섞여있어서 생태 환경이 복합적이라, 생태원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야. 언제 한 번 놀러 와라.... 누가 알겠어,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저렇게 흔한 망초대나 쇠비름, 누구라도 싫어하는 엉겅퀴나 명아주 같은 잡초들이 다 희귀해지는 세상이 될지....”

그가 양미간을 좁히며 햇볕이 밝게 내리쪼이는 잡초 밭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잡초들을 뽑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보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그런 풀들하고는 무관하게 하루 종일 건물 안, 희미한 조도 아래에서 실오라기와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쥐 가죽으로 모자,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몇 백 마리 쥐의 내장을 긁어내는 사람들도 있고, 백수정을 연수정으로 가공하기 위해 연마기에서 손가락이 쥐가 나도록 수정 돌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가 풀포기를 가리키며 해 주는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가 무어라고 물었는데 언뜻 알아듣지 못한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졸업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졸업하면....그거야말로 나의 질문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게 바로 제 고민이지요.... 뭘 하면 좋을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가 백양나무 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한테 와라.”  
내가 흠칫하자 그가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뭘 놀래? 한국말 못 알아들어? 나한테 오라니까....임마, 너 말야, 네 안에 작은 악어새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거  내가 다 알아, 맹랑한 고놈이 이빨 나기 전에 잡아 버려야 된다, 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까지 결혼을 한 번도 나의 진로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멀고 먼 얘기, 그래서 남의 일 같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얘기였다. 나는 픽 웃었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 봐. 근데 말이야, 너, 왜 이렇게 청교도 같이 옷을 입는 거냐? 응? 이 긴 생머리도 그렇고, 꼭 우리엄마 미션 스쿨 다닐 때 사진 보는 것 같다.”

그가 내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겨주며 쿡쿡 웃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갈 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온실에 가지 않았다. 가끔 한 조교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딱 그만한 거리에 멈추어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이라 할지라도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편할 때도 있다. 어느 때, 뒤통수가 부담스러워서 뒤돌아보면 그가 캡 속에 얼굴을 묻은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그 무렵은 자매회가 거의 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대부분의 자매들이 타 지방으로 직장을 구해 나가고, 진희언니마저 결혼으로 머잖아 자매회를 떠나게 되었다.

성자언니가 진희언니를 대신해서 자매회를 인도하고 근숙언니와 정희언니는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다가 말없이 돌아가곤 했다. 피곤에 찌든 근숙언니가 주일학교 반사를 그만둔 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융판 교재는 그럭저럭 소화해 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율동이 문제였다. 게다가 선생이 바뀐 탓인지 아이들은 제멋대로 떠들고 서로 엉키고 싸우기도 했다.

어린애들 중에는 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지리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머리 큰 아이들이 얘, 오줌 쌌어요오, 하고 놀려대고 오줌을 싼 아이는 아니라고 우기면서 울었다.

아무튼 주일학교는 난장판이 되어갔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언제나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먼저 소동을 일으켜 대는 것이었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입술이 얇은 그 아이는 아이들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벌떡 일어나 꼽추 춤을 추거나,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밟고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끝나고 나서 붙들어 타이르려고 하면 아이는 어느 새 없어져 버리곤 했다. 나는 성자언니와 함께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 하지만 기도의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
  그날은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말썽은 그날따라 더 심했다. 초인적인 인내로 견디고 있던 나는, 아이가 다른 아이 등 뒤에 숨어서, 동태눈깔 말똥말똥 마루 밑에 달기똥, 하면서 애국가 곡조에 맞춰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끝내 터져 버리고야 말았다.

“너! 저리 나갓! 못 나갓?”

순간 성자언니가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아이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끌어낼 판이었다. 그래도 이기죽거리며 끝까지 버티던 아이는, 마치는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신발을 찾아 신고 문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미리 얘기해 두었던 대로 성자 언니에게 눈짓을 하고 아이를 쫓아갔다. 바깥에서 그제야 신발을 제대로 꿰어 신느라고 뒤뚱거리던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었는지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영악한 아이는 시장 통으로 내달렸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나는 잠시 주저했지만, 나도 오늘은 절대로 포기 하지 않으려고 나선 길이었다.

꼬불꼬불한 시장 길을 달리는 아이는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말없이 아이를 따라 뛰었다. 잡힐 듯 가까워지면 죽을힘을 다해 또 달아나는 아이 덕분에 나는 약이 잔뜩 올랐다. 숨이 턱에 닿았다. 폭넓은 치맛자락이 자꾸 감기어 드는 통에 속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길을 몇 바퀴 돌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사람들의 웃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가 달리면 그냥 나도 달린다는 단순논리가 나를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골목 안쪽 야채가게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뒤따라 들어서니 아이가 엄마, 엄마 소리를 지르며 숨을 곳을 찾아 비좁은 가게 안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가게 안쪽에 붙어 있는 쪽방에 앉아 있다가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또 무슨 짓을 했어?”

그리고는 몽당 수수 빗자루를 집어 들고 뛰어 나왔다. 아이는 이제 내 쪽으로 몸을 피했다. 나는 얼결에 아이를 내 뒤로 보내고 아이의 어머니를 말렸다. 그 새에 호흡을 가다듬느라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교회에서요오? 너 거기서도 그 모양이냐?”

말렸지만 결국 등판을 몇 대 맞고 난 아이는 훌쩍거리고 울었다. 곧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고, 시장을 몇 바퀴 돌고 난 아이는 기진해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이 놈의 자식아, 이제 다시는 교회 가지 마라, 나도 지겨운데 너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하겠니...아유, 선생님, 죄송해요. 아무리 때려도 저 모양이니 정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파마머리가 바스스 일어선 아이의 어머니가 땟국에 절은 앞치마를 들어 눈물을 찍어댔다.

“집에 무서운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애 아부지가 없거든요, 병들어서 일찍 세상을 떠서....”

아이는 이 때다 싶었는지 나를 흘깃 거리며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든지 오늘은 결판을 내리라 하던 생각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나는 손수건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일어섰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아이가 고개를 웅크리고 피하는 척 하면서 싱긋 웃었다.

“너 교회 안 나오면 또 쫓아온다, 알았지?”
아이의 그렁그렁한 눈이 함쭉 웃었다.
그렇게 주일학교가 평정되고 난 후였다.

그 날 이후로 소식이 없던 김성남씨를 나는 우리 집 앞에서 만났다. 그는 푸른 색 남방셔츠를 입고 집으로 꺾어지는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부졌던 몸이 홀쭉해 보일 정도로 야윈 그가 힘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집 앞을 떠나 나는 그와 함께 냇가 둑길을 걸었다. 반달이 떠있는 밤하늘에서는 은은한 빛이 내려오고, 오월의 바람은 훈훈했다.

“떠나기 전에...한 번 만나고 싶어서요...미안합니다, 그 때 너무 무례하게 대해서....사실 자매님의 말에 많이 찔렸거든요. 그럴 때, 제 본래 성격이 나온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분노를 조절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탓이지요.”

“아녜요, 저도 많이 미안했어요. 남의 입장에서 배려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그런데 떠나신다니... 어떻게 지내시는 거예요?”

“임금 인상은 구 퍼센트로 간신히 조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해고자 복직 운동은 실패했어요. 오히려 그 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쳤지요. 마침 현장에 있던 동료 두 사람은 잡혀 들어갔고요, 다른 동료하고 저는 주동자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곳에 가서도 취직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도 아니지요...그냥 이제는 내 자신이 두렵고 싫습니다....사람들도 두렵고... 교회...자매회에도 타격이 크지요?”
  
“잊어버리세요. 힘들겠지만...다른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또 나름대로 시작하고 있을 거예요. 이제 김 반장님도 새로 시작하셔야지요.”
“그럼요, 그래야겠지요. 언젠가는 그게 다 희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부딪치고 깨질 줄 알면서도 달려간 게... 다 그 희망 때문 아니겠습니까...”  

김성남씨가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둑길에 앉히고 나도 그 곁에 앉았다. 그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빈대떡 집에서 울던 그를 바라볼 때와는 다른 마음이 속에서부터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를 피해 시장 바닥을 한없이 돌면서 도망치다가, 결국 자기 어머니한테 뛰어들던 말썽장이 아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던 아이와 야채 물든 아이 어머니의 앞치마가 눈앞에 떠오르고 아이 얼굴에 흐르던 눈물, 싱긋 웃자 얼룩진 얼굴로 뚜르르 굴러 내리던 눈물방울이 생각났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달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문득 손등에 도드라져 보이던 상처가 생각났다.

나는 그 상처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손바닥 아래에서 이물감이 느껴질 정도로 튀어나온 상처였다. 그곳에서 피가 나고 아물고 하는 동안 많이 아팠겠지....나는 한 손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울지 마세요, 이제 그만 울어요.”
나는 그를 내 어깨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래서 나이를 알 수없는 얼굴이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그의 메말라서 버석 이는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가 흐윽 흐느끼는가 싶더니 나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의 입술이 불에 덴 듯이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그의 숨결에서 해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의 몰아쉬는 숨소리가 내 귓불에 닿았다. 그의 입술이 내 목덜미를 더듬고 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입술이 주춤하면서 가슴께에서 머물렀다. 순간 나는 그를 위하여 무엇이든 되어 주고 싶었다. 아니 무엇이든 돼 주어야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그가 걸어온 길에서 비켜섰던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나는 내 손으로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나는 달빛에 홀리고 봄바람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분명 내 손이었는데도, 다른 누구의 손에 의해 열리는 느낌으로 블라우스의 마지막 단추를 열었다. 그리고 그를 내 무릎에 조심스럽게 뉘었다.

나는 한 쪽 가슴을 그에게 수유 하듯이 입에 물렸다. 블라우스를 헤치고 나온 내 젖가슴이 달빛을 받고 하얗게 떠올랐다. 나는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마치 허기진 아기처럼 내 가슴에 매달렸다. 한 손으로는 다른 쪽 젖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바람은 여전히 훈훈했다. 달도 반 조각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쓸쓸했다. 달빛에 비친 내 희디 흰 젖가슴과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그를 바라볼수록 나는 그만, 쓸쓸해지는 것이었다.

가슴 속에는 슬픔이 차오르고 머릿속에서는 내가, 또 다른 나를 그곳에 유기한 거라는 심리상태가 되면서, 지금의 배역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혼미해 지고, 그때부터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현실감을 잃고 부옇게 흐려 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달이 떠있는 밤하늘 어디쯤인가, 그저 공백뿐인 그곳을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그가 내 무릎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비탈진 냇가 둑에 비스듬히 앉아서, 레이스로 잔뜩 어깨를 부풀린 내 흰색 블라우스를 말없이 여며 주었다. 단추를 하나씩 닫아주고 난 뒤, 그가 말했다.

“신자매....지금 이런 말이....정말 우습지만....머릿속으로는 딴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라도 자신이 기다리는 대답은 아닐 거라는 불안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누구였을까.... 문득 한 조교가 떠올랐지만, 아니었다. 그가 내 안에 차지한 자리에 비해 내가 느낀 공허감은 너무 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성남씨가 가늘게 한숨을 쉬면서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신자매...아녜요, 고마웠어요.”

  대문 앞에서 우리는 서먹하게 헤어졌다. 흘깃 뒤돌아보니 어느 새 그는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었다. 잔뜩 웅크린 그의 모습이 여전히 작은 아이 같았다.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김성남씨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연민과 더불어, 내 몸의 한 부분이 이제 내 영혼과 함께 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혐오스런 세상이어서 그것과 분리 되어있었다고 믿었던 내 안의 세계는, 이미 저만큼에서 나를 향해 약간의 동정과 어두움과 우울과 조소를 가지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한 조교와는 인사 한마디 없이 교정을 떠나왔다. 벌써부터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난감했다. 아버지는 내가 졸업 후 들어갈 은행 자리를 알아보느라고 바쁜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까지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그냥, 고등학교 마치자마자 들어갔으면 되레 좋을 뻔 했어. 나이 때문에 걸린다지 뭐냐, 전문대 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던데, 너, 지금 학교 관두고 들어가면 어떻겠어? 요즘 은행 직원들, 시집도 잘 간대요. 너도 알지? 새 시장 안에 있는, 가방 집 큰 딸 말이야, 걘 인물도 없는데, 무슨 회사 과장인가가 싸가지고 데려갔다더라. 너처럼 교회에 미쳐 쏘다니다가는 가난하고 처량한 인생 만나서 평생 고생하게 된다니까, 교회 나가는 남자 애들이 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뭐 그렇지 않아?”
  
“엄마, 그럼, 나 피아노 좀 배우면 안 될까? 이래 가지고 우아하게 시집 좋은 데로 가겠어? 내놓을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하긴 나도 앞날이 걱정이었다. 이 년제는 참으로 애매했다. 직장을 잡기에도 결혼을 하기에도 어중간한 나이에 졸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학을 맞아 심심하다고 투정할 겨를도 없이 교회에서 문제가 터졌다. 정희언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임신 소식이 어느 경로로 교회에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이 문제를 놓고 교회에서 징계위원회를 연다는 말도 함께 들려왔다. 징계 위원회는 남자 어른들을 중심으로 열린다. 당사자를 앞에 놓고 청문회를 하듯이 묻고 답해야 하는 법을, 대부분이 당사자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처리하기 때문에 출교 될 경우가 많았다.

“애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을 해야 말이지, 하도 말을 안하길래,  난 가슴이 철렁했어. 사고로 생겼는지도 모르잖아...그럼, 어떡해, 늦기 전에 애를 지우러 가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무슨 속인지 모르겠다.”  

  근숙언니가 얼굴이 하얘져서 말했다.
  자매들 누구도 정희 언니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징계 위원회가 열리는 날짜가 잡혔다. 나는 정희언니가 징계 위원회에 참석하게 되면 또 다시 받을 상처에 대해서 염려 되었다.

“성자 언니, 그래도 언니가 한 번 더 말해봐, 나오지 말라고 해.”
하지만 정희 언니가 참석하기로 결심했다고 성자언니가 말했다.
“바보 같은 년, 어떡하자는 거야.”
성자언니는 눈물을 찍어내면서 후루룩 라면을 먹었다.

나중에 성자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희, 그 애가 얼마나 당당했는지, 내가 아무리 말해도 너희들 믿지 못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 아이 가졌다. 그게 죄가 될 수 있는 거냐. 나는 당당하게 낳아 키울 작정이다. 아이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잘 키워낼 자신이 있다. 그랬다는 거 아냐. 아예 그 말하려고 결심하고 나온 거 같더라니까”

  교회 건물에 살고 있는 성자언니 덕분에 현장을 그대로 전해들을 수 있기는 했지만, 결국 모두의 관심은 알려지지 않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예상대로 출교조치가 내려지고 모든 교인들에게는 정희언니를 이방인 대하듯이 하라는 금칙이 발표되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희 언니한테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정말로 몇 달 만에 정희언니를 찾아갔다. 작은 방 속의 언니는 생각보다 밝고 씩씩해 보였다. 언니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벽지도 푸른색 그대로였고 게발선인장도 그 자리에, 장미꽃이 그려진 접시세트도  여전히 삼단짜리 책장 안에 들어가 있는데도 방안의 공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밀착되고 따스한 바람이, 또 그 바람이 몰고 온 사과 향기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바닥에는 사방 일 미터가 되어 보이는 베니어판이 놓여있었다. 창호지로 초벌해 놓은 판위에다 언니는 종이 모자이크를 하고 있었다. 방바닥에 샘플로 보이는 액자 속의 그림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었다.

주로 푸른색과 붉은색의 옷을 입은 열두 명의 제자들이 십자가의 주인공이 될 예수를 중심으로 앉아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논쟁으로 분을 내고 있을 때였다. 그 주제는 .....배신이었다.

우리들 중의 누가 선생님을 팔아넘긴다는 말인가....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아 밀치며 상체를 내밀고 선생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새벽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그것도 나중에는 저주하며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건만. 그의 자신 있는 부정의 태도. 나는 결코 아닙니다!

정희 언니가 그림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떼었다.
“이 그림에는 포도주 잔이 없지? 분명히 잔을 들고 축복하셨다고 했는데...원래는 예수님 손에 잔이 있었대. 그런데 다빈치 친구가 와서 하는 말이, 잔이 너무 실제 같다고 칭찬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다빈치가, 사람들 눈에 예수님보다 잔이 더욱 눈에 띄는 것이 맘에 안 들어서 지워버렸대. 그런데...있잖아, 나는... 이 예수님 손에, 그 잔을 돌려 드리고 싶어. 내 눈에는 이 손에 들고 계신 잔이 보이는 것 같애. 나는 그 잔을 다른 거 다 마치고 난 담에...맨 마지막에 만들어 드릴 거야....그러면 왜 그런지, 내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와.”

대문께 까지 따라 나온 정희 언니가 무슨 말을 할 듯이 나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자매...그 사람....내게 보내줘서....고마워....애기, 삼 개월 되었어....그 사람, 아직 이 소식 몰라....그치만 언제고....돌아올 거야....그 사람이 돌아오는 날, 나는 예수님 손에 들려있는 포도주 잔에 마지막 종잇조각을 붙이기로 했어.”

정희언니 눈에서 눈물이 반짝하고 빛났다. 나는 반달이 떠있던 밤하늘과 훈훈한 바람을, 그리고 그가 어깨를 떨며 흐느껴 울던 그 밤을 기억했다.    


  한낮이면 라디오에서 아모레 화장품 선전이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나면  삼양라면만이 쌀이 부족한 나라를 구제라도 한다는 듯이, 너도나도 삼양라면, 하면서 구호를 외쳐대는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머잖아 장마를 몰고 올 더운 바람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밀려들어오고, 하루하루를 반복되는 라디오 선전에 파묻혀 나는 질식이라도 할 듯했다.

그 때 한조교에게서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일본 출장을 가면서 보낸 간단한 편지였다. 나는 그가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던 날을 계산해서 집을 나섰다. 그가 내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은, 일본 출장행이 아니라 그가 머무르고 있는 농장 주소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한 시간을 급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완행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리자 4H 표시를 한 마을 표지판이 나타났다. 주소로는 그 마을이었는데, 근처에서는 수목원이나 자연농장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 입구에 있는 잡화가게를 찾아들어갔다.  

가게 주인 여자는 내 설명을 한참 듣더니 손뼉을 치며 아하, 소리를 냈다.
“그, 풀 키우는 총각 말이구나! 알지. 시간만 나면 저어기 논둑, 밭둑 뒤지고 다니는 걸. 어느 때 보면 저 뒷산까지 헤집고 다녀. 그러면서 풀만 캔다니까, 아니, 나물도 아니고 약초도 아니더구먼, 그런 잡초를 그 아까운 땅에 심어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가르쳐준 대로 마을 뒷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로 얼마쯤 걸어가자, 이석 생태원이라고 써 붙인 나무 표지판이 나왔다.

한 이석,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그의 이름이 낯설었다.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는 곳에 출입구가 있었다. 활짝 열려있는 문 안쪽으로는 막 지나간 듯한 트럭의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막상 문 앞에 서고 보니 선뜻 발자국이 내디디질 않았다. 내 발로 찾아왔는데도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을 결정짓는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사람으로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신의 노력은 형통과 고난을 씨줄과 날줄로 엮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이 발자국은 씨줄과 날줄 중, 어디쯤에 가 닿을 것인가....그러자 안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개 짖는 소리가 마치 들어오라는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길 양쪽에 동그랗게 다듬어진 옥향들이 주욱 늘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옥향 뒤로는 널따란 밭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분재용 묘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분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철사 줄로 칭칭 동여매어 놓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자국이 나무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한조교가 말했을 때, 나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왜요? 하고 물었다.

“관상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야. 쉽게 말하면 상품으로써 값이 떨어진다는 말이지.”  
“이렇게 인공적으로 비틀어 놓고 자국이 안 남길 바란다는 게 이상한 거 아녜요?”
한 조교는 비죽 웃으면서 내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래서 싫다는 거지? 사람들이 대부분 분재에 거부감 갖는 게 이것 때문이거든, 성장을 억제하고 수형을 잡기 위해 철사로 감아 놓는 거 말야. 그 생각을 조금만 바꿔봐라. 분재는 자연을 내 눈 앞에 끌어다 놓는 창조적인 예술이야. 자연스럽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또 자연스러운 것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거칠기도 하거든. 자연을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뱀이나 독충, 그런 것들도 받아들여야 하고 독초라든가 뭐, 그런 것들도 수용해야 하는데 실제는 모두들 기피하잖아.

그러니까 자연을 그리워하는 그런 부분들, 그것들을 마치 카메라 속에 담아내는 것처럼, 그렇게 축소해서 눈앞으로 끌어 오는 거라고 생각해봐. 난, 뱀이나 지네, 거미, 달팽이 그런 거는 싫다하면서, 철사만 갖고 어쩌고 하는 사람들 땜에 진짜 열 받는다.”  
  

안으로 제법 걸어 들어갔을 때, 나를 먼저 알아 본 갈색 셰퍼드가 으르릉 소리를 내었다. 셰퍼드는 다행히 기둥에 묶여 있었다.
동시에 슬래브 양옥집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거름흙을 체에 거르고 있던 중년 부부가 나를 보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한조교는 서울 집에 다니러 갔다는 말이었다.
“해지기 전에는 오실 텐데.... 기다리시지요....”  
나는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아녜요, 담에 다시 오지요. 약속을 하고 온 건 아니예요.....”
나는 홀가분한 맘으로 농장을 빠져 나왔다.

집안에 몰려들어 온 습하고 더운 공기가, 그리고 반복되는 아모레 선전이, 삼양라면 먹자고 줄창 유혹하는 여자의 높은 목소리가, 날 여기까지 몰고 온 것뿐이야,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찍어내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여간해서 오지 않았다. 그늘 하나 없는 길에서 태양 볕이 고스란히 몸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눈조리개가 조절이 안 될 정도로 부서지는 햇볕 아래에서, 나는 오월 밤에 불어오던 그 훈훈한 바람을 기억했다.

정말 그랬을까....그 때 내 머릿속에 누군가 들어와 있었을까....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가슴 속은 슬픔으로 차오르고, 머릿속은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으로 혼란스럽던 시간과 장면....그 속에서 정화된 불꽃처럼 나타날 누구인가를 그리워하기는 했던 것일까....

희망에 반하여 내 시간들은 언제나 뒷걸음을 치고 있는데.... 아직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래에,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나 주길, 그래서 햇볕이 온통 어깨에 쏟아져 내린다고 노래해도, 물위를 쓰다듬는 햇살이 아무리 사랑스럽다고 외쳐도, 내 눈을 파고든 햇살로 인해 눈물이 나는, 여전히 쓸쓸한 세계에서 나를 건져 주길 바랐다.

그래서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세계에서, 이것은 저것이고 저것도 이것인 세상에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세상에서, 내가 쓸 수 있었던 말은, 단지 무엇이 무엇이냐 뿐이었다는 것을, 아주 길게 그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2009년 미주문학 여름호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