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오늘:
5
어제:
24
전체:
43,629

이달의 작가

떠나온 사람들 (단편 소설)

2004.01.08 07:51

최영숙 조회 수:1230 추천:186

                      
                      떠나온 사람들
                                              
                                               최 영숙


   남자는 재차 물었다.
“김경인씨 맞으시지요?”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싹 갖다대며 남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말이 한덩어리가 되어 굴러 가듯이 넘어가는 그래서 어딘지 사투리 같기도 하면서 딱 집어 말할수 없는 어색한 톤으로 남자는 묻고 있었다. 누구일까. 돌아 가신 아버지의 이름까지 대가며 나를 찾는 이 남자는.

“..... 김경애라구 아시지요?..... 저는 경애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경애라구.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약국 유리문에 머물고 있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삼월의 아침은 아직 추웠다.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오면 금새 후끈해지고 그렇다고 벗어던지면 어깨가 시려왔다.
“저어, 여기는 미국입니다. 벌써 소식을 전했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연락이 됐군요.”

남자는 말 끝에 먼길을 달려온 사람처럼 긴 숨을 내쉬었다. 내가 네 소리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 챈 그는 잠시 주저하는 듯 하다가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와이프가 캔서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브레스트예요.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봤지요. 그래서 전화 했습니다......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가족들한테 누구한테라도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남자가 가족이라는 말을 들이대었을 때 경애가 유방암이란 사실보다도 그 말이 더욱 나를 흔들어 대었다. 이십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이제서야 병을 담보로 나타나 보겠다는 거라면. 그러자 나는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 올랐다.

“가족이라구요? 그 애가 그러던가요?”
내 목소리가 높았던지 첫손님의 약을 조제하고 있던 이약사가 눈이 동그래져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창가의 긴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엉덩이를 들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암만해도 저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는 이 약사한테 관심이 있는 모양이야. 지르텍 하나를 사가도 꼭 이약사를 찾는 남자였다. 나는 이약사를 향해 괜찮다고 손사래를 저으며 수화기를 바꿔 잡았다. 남자는 자신을 이 정섭이라 소개했다. 이제 남자는 목소리가 차분해져 있었다. 어쨌든 피차간에 첫 만남인데 예를 갖추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나도 마음이 다소 가라앉아갔다.

“ 여기 좀 다녀 가시면 안될까요?  오실 수 있으시다면  제가 비행기표를  이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내 이멜주소와 여권의 영어표기 이름을 받고 사진을 첨부하겠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못갈지도 몰라요, 사실은 만나고 싶지 않아요,라고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전화기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다시 시작이 되다니. 그것도 예전처럼 그 애 편에서.

     내가 열두살 되던 해 늦은 가을이었다.  몇 해전에 혁명정부가 들어섰고 학교에서는 조회 시간마다 혁명공약을 낭독해대던 때였다. 아직도 읍내 길가 풀숲에는 조잡한 인쇄로 된 불온 삐라가 굴러 다니고  곳곳에는 “거룩하게 흘린피 더럽히지말자” 그런 글자들이 축대위에도 쓰여 있었던 시절,  전쟁은 겪지 않았지만 넘쳐나는 반공 영화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생생하게 가르치던 시절이었다.

    과외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불도 켜있지 않은 내 방안에 오똑하니 앉아 있던 여자애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 넌 누구니? ”
하지만 그 애는 잠깐 움찔했을 뿐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 어둑한 방안에서도 아이가 나를 쏘아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밀어낼 듯한 낯선 눈길 앞에서 나는 가방을 내려 놓지도 못하고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 참에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얼굴을 내밀고 나를 손짓해서 불렀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냉냉한 부엌 귀퉁이에 앉아서 한숨을 먼저 내쉬었다.

“이제부터 우리집에서 살꺼야. 니 동생이란다.”
아버지가 실수로 얻은 아이였다. 부득불 아이 엄마가 키우겠다고 해서 그러마했는데 느닷없이 아이의 등을 떠다밀 듯이 우리집으로 보내 버렸다는 것이었다.
“ 그런 년들이 다 그렇지 뭐, 새 서방이 생긴 모양이지”

그래서 그 아이가 불쌍하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우리 집안에 서서히 덮쳐오는 어두움을 예감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의외로 씩씩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아이를 다잡아 재봉틀 의자 위에 앉혔다. 어깨 위에 보자기를 씌우고 어머니는 가위를 손에 잡았다. 긴 머리를 잘라서 나처럼 상고머리를 만들 참이었다.

“ 머리하고 촌스럽긴, 요새 누가 이런 리봉을 머리에 달고 다니냐?”
아이의 긴머리 끝에는 어른 주먹만한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몇겹으로 주름을 잡은 노란색 나일론 리본은 아이의 작은 뒷통수에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머리를 자르기 전에 어머니가 아이의 노란 리본을 떼어 바닥에 던져 버렸을 때였다. 순간 아이가 기겁을 하고 리본을 채어갔다. 어머니는 엉겁결에 피하다가 가위를 떨어뜨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기집애가 사람 잡겠네! 그까짓꺼 낙하산 잘라 만든 게 뭐 대단해서 그러냐? ”
어머니는 눈꼬리를 치뜨고 아이를 노려 보았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어 댔기 때문에 어머니는 결국 상고머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후 어머니는 분풀이 하듯이 아이를 부득부득 소리를 내며 씻겨댄 다음 양키장수한테 색색의 리본과 머리핀을 사들였고 가까운 수원에 있는 제일 백화점에 나가 멜빵 달린 치마. 고리땡 바지. 빨간 긴양말 같은 것들을 사다 입히고는 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야단스럽게 가꿔 갔다. 아이는 머잖아 까칠하던 태를 벗어 버렸고 그 후로는 한 번도 그 노란 색 리본을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가 니것들 좋으라구, 흥! 어림도 없다. ”
어머니는 배추를 다듬다가도 불현 듯 생각이 난듯 아이를 불러 앉혀다가 멀쩡한 머리를 풀러서 살쩍이 일어나도록 암팡지게 다시 묶어 놓고는 했다. 나는 이런 어머니 밑에서 말수가 적은 아이로 변해 갔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작전대로 볼모로 잡힌 아이 곁에서 점차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이름이 우리 남매의 돌림자를 따서 경애라고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오빠는 하룻밤도 묵지 않은 채 도망 가버렸고 이래저래 따돌림을 받는 아버지는 목재소 가겟방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갔다. 집안에는 세 여자만 남아서 콩나물을 다듬고 라디오 연속극을 듣고 밥상에 둘러 앉아 숟가락을 부딪치며 냄비에 든 찌개를 떠먹었다.

어머니는 영화관에 다녀온 날이면 눈이 퉁퉁 부어서 들어오고는 했다. 이불을 들쓰고 누워서 하염없이 훌쩍거리는 어머니의 말인즉 영화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거였다. 버림받은 여자, 짖밟힌 여자, 시앗을 보고도 내색 않고 남편을 지극히 섬기는 가련한 여자. 그 여자들의 일생이 어쩜 자기 팔자와 한가지인지 모르겠다며 울고 또 울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경애와 나는 발자국 소리조차 조심해야했다. 경애는 나보다 한 살 어리기는 했지만 키도 비슷했고 어찌보면 더 숙성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런지 경애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를 꼭 불러야 할 때도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그것도 어머니를 큰 어머니라 부르는 것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어머니는 경애 뒤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근자근 씹으며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욕을 해댔다.

같은 아버지를 둔 자매치고 우리는 닮은 데가 없는 편이었다. 경애는 턱이 뾰족해서인지 날카로운 인상인데다 얼굴 선이 뚜렷해 사람의 눈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오빠는 이런 경애를 두고 뒷편에서 가끔 중얼거렸다.
“ 쟤는 눈빛이 안좋아. 일 저지를 애야 ”
거기에다 비하면 나는 덤덤하고 동그스럼해서 별로 특이한데가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어찌 되었던 경애는 아무일 없이 학교를 다니고 또 아무말 없이 자라가고 있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우묵한 눈으로 경애를 건너다 보았지만 어머니의 서릿발 같은 눈초리에 금새 눈길을 거두고는 했다.

그 이듬해부터 아버지의 제재소 사업이 기울어 가기 시작했다. 원목값은 오르는데다 제재가 필요없는 베니아판은 값싸고 편리했다. 그것은 무쇠솥을 파는 철물점에서도 살수 있었다. 일곱명 되던 일군을 세명으로 줄였어도 제재소는 매냥 그 타령이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변해가는 세상에 대처하기에는 자신이 역부족인 것을 알았지만 자칭 시인이었던 오빠는 쓰러져 가는 아버지의 사업을 일으키기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오빠가 법대를 가기를 원했지만 오빠는 영문학을 하고 싶어했다. 게다가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흘러 나온 합판을 사들였던 아버지는 그 일로해서 하마터면 감옥살이를 할 뻔했다.  이런저런 안면으로 벌금을 무는 정도로 그쳤지만 안그래도 기울어 가는 집안사정에 그것은 치명타였다.
                                  *

근 열흘만에 이정섭이 이멜을 보내왔다.
비행기 이티켓과 함께 첨부된 사진 속에는, 제라늄이 가득 피어 있는 화분 옆에서 경애가 하얀 강아지를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플라스틱 야외 의자에 앉아 있는 경애 뒤로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보이고, 경애 남편은 두다리를 뻗은 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누구를 향해서인지 파안대소 하고 있었다. 햇살은 그들의 얼굴 위에 쏟아져 내리고, 경애가 입고 있는 푸른 색 블라우스는 빨간 제라늄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사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애 남편 정섭은 자그마한 체구였다. 웃는 얼굴이 어딘지 어린애 같은데가 있는 남자였다.

경애. 나는 그애가 나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생머리를 조금 잘라내고 살짝 웨이브를 주면 내 얼굴 그대로 일 정도로 닮아 있었다. 눈매가 변해서인지 어디선가 본듯한 동그스름한 얼굴로 경애는 사진 속에서 끊임없이 웃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꺼풀만 남아버린 어머니에게 경애의 재등장은 고문일테니까.  나는 서둘렀다. 약국은 이약사한테 일주일만 부탁을 하고 어머니에게는 미국행을 함구하라고 했다. 시집을 뛰쳐나와 혼자 사는 딸, 그래서 남들 입에 지금껏 오르내리는 당신의 딸에게 혹시나 팔자 고칠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지레짐작할까봐 더 조심을 시켰다.

   워싱턴의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입국조사대를 거쳐 출입문을 밀치고 공항대기실로 나오자 순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시선이 몰려 왔다가는 곧 사라져갔다. 나는 잠시 멈추어서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나는 여기에 지금 왜 와있는지. 머리 속이 현실감을 잃고 혼란해졌다. 그때 사람들 속에서 까만 가죽 자켓을 입은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경애 남편 정섭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 금방 알아봤어요. 정말 많이 닮으셨네요”
상기된 정섭의 첫마디였다.

나는 그의 다리에 시선을 안주려고 노력을 하면서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경애는요?”
“ ....... 죄송합니다. 병원에 들어갔어요”
“그렇다면?”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

정섭은 진심으로 미안해 했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동안 내내 다리가 헛짚어 지는 것같았다. 주차장은 빗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차를 갖고 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아갔다. 경애가 팔년을 같이 살았다는 남자.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경애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공유한 팔년이란 세월은 어떤 것이었을까? 차안에서 정섭은 한시간 정도를 달려야 자기가 사는 볼티모어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 괜찮으시다면 병원으로 먼저 갈까요? ”
정섭이 물어왔을 때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가라앉아 버린 탓에 목소리를 냈으나 겨우 신음 같은 소리가 났을 뿐이었다. 막 물이 오르고 있는 길가의 나무가지 끝이 발갛게 일어나 있었다. 이렇게 오는 게 아니었어. 한켠에서는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약국의 아침.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쳐들어오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커피향이 가득찰 때 쯤이면 앞길에는 노란 유치원 버스가 와서 멈춰서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조르르 올라 타겠지. 창가를 지나는 분주한 발걸음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손바닥을 보듯이 훤한 정경들이 그리움으로 몰려 오는 건 이곳이 이국이라는 뜻이겠지.
66번 숫자가 적혀 있는 파란 표지판을 고개를 빼면서 바라보는 내게 정섭은 말했다.

“파란색 길은 주와주를 연결해 주는 도로예요. 짝수는 동서로 뚫려 있고 홀수는 남북으로 연결되지요. 미국은 처음이신가요?”
“예에, 처음이예요.”
“아아, 그러세요. 근데 어쩌지요, 이런 일로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은 언니가 온다는 얘기를 와이프한테 아직 못했습니다. 깜짝 놀래주려고 전날쯤 얘기를 할까 했는데 어제 아침에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져서 급히 병원으로 데려 갔어요. 그러는 바람에 얘기할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차는 29번 도로로 접어 들고 있었다. 나무는 아직 마른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 사이로 드문드문 집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시간을 달려도 그 나무에 그 숲이었을 뿐 그렇게도 흔한 사람들이 여기에는 보이지 않았다.  제너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 있었다. 구름은 여전히 해를 가리고 있었다. 화단에는 이미 훈기를 머금은 바람 아래에서 튜울립 싹이 단검의 모양을 하고 솟아나왔고 성급한 팬지는 노란 꽃망울을 밀어올리는 참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였다.

  병실문이 열리고 창턱에 놓인 하얀 사기병과 그곳에 꽂힌 양란이 보였다. 그리고 침대가 하나. 경애는 그곳에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황달기가 있는 얼굴은 부어 올라서 경애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암이 간으로 전이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애의 눈과 마주쳤다. 아니 나는 경애의 눈을 보고 있었다. 이미 영혼이 빠져 나가고 있는 텅비인 눈. 초점이 없어진 그애의 눈을 보면서 나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정섭이 경애의 손을 잡으며 귀에 대고 말했다.

“ 경아, 언니가 왔어. 한국에서 경인이 언니가 왔어. 인사해야지.”
정섭이 경애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경애가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의미가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게는 그 소리가 영혼이 육체를 빠져 나가기 위한 안간힘으로 들렸다. 육신은 영혼을 붙들려 하고 이미 분리가 일어난 영혼은 될 수 있는한 빨리 고통의 육신을 벗으려하고. 정섭이 자리를 비키자 나는 경애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온기가 남아있는 손.

“....... 경애야.... ”
이름을 여러 차례 불러대도 경애의 손은 축늘어져 있었다. 이 손으로 하얀 레이스 실로 파인애플 무늬를 넣어서 테이블 보를 뜨고  우단 치마에 수를 놓아서 맵시 있게 만들고는 했는데..... 움직이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 내던 손.  손을 꼭 잡아 보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저 어딘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가는 얼굴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탈색 된 듯한 경애의 입술 아래로 가늘어진 목줄기가 보이고 거기에는 은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목걸이에는  작은 은색 알루미늄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계속해서 경애의 손을 잡고 있던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정섭을 바라보았다.  경애가 갑자기 내 손을 힘주어 잡았기 때문이었다.

                                *

아버지의 열망을 저버린 오빠가 후기 대학의 영문학과를 들어가자 아버지는 급속도로 늙어갔다. 급기야 그 불똥은 내게 떨어졌고  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희망을 이뤄드리기 위해 약대를 가야만 했다. 아버지는 내가 약사가 되는 날이면 제재소를 때려치고 읍내 안쪽에 약국을 차릴 은근한 꿈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국어 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긴머리를 어깨로 넘기며 교실로 들어서는 여선생이 되어서 아이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만의 여행도 즐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의 배신으로 구겨진 아버지의 상심이 너무 깊어보였기 때문에 나까지 반기를 들 자신이 없었다.

그 해 겨울, 군에 입대한 오빠한테서는 황금종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왔고 그 속의 보라색 종이 위에는 진작 군대에 못들어간 게 후회가 되는 사람처럼 힘을 주어 쓴 애국시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카드를 철모를 쓴 오빠의 사진 옆에 나란히 올려 놓았다. 카드를 볼때마다 무너져 가는 오빠의 꿈을 보는 듯해서 나는 목이 메었다. 너무 빨리 타협해가는 오빠의 모습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대학 입시를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이래저래 추웠던 겨울에 나는 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갔다.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경애는 겨우내내 털실로 스웨터와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졸업하는 대로 양재 학원에 등록하겠다는 경애는 눈썰미가 좋아서 보기만 하면 스웨터이든 조끼이든 장갑이든 그대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날은 야멸차게 춥고 간간히 눈발도 날리던 아침녘이었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던 나는 대문간이 소란해지는 바람에 눈을 떴다. 웅성거리는 듯 싶더니 아버지가 황급히 어머니를 불러댔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문간으로 나갔다가 잠시후에 애구애구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왜그래? 엄마!”
내 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린 어머니의 눈에서는 파란 불길이 뿜어 나왔다.
“ 그, 미친 년이, 아이구 그년이 집안을 망치는 구나”
“ 누구우?”
“ 누군 누구야, 그 잘난년이지”
경애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제재소에서 먹고 자는 승만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데 우리 식구들만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어제 밤에도 친구를 팔고 뜨개질 바구니를 들고 나갔는데 알고보니 가겟방에서 승만이 하고 같이 잤더라는 이야기였다.

“ 글쎄에 두 연놈이 이런 추운 날에 발가벗고 자다가 연탄까스를 맡았댄다.”
“ 그래요오? 그럼 지금 어디있어요? 괜찮대요?”
“ 이씨 아저씨가 끌어내서 땅바닥에 엎어 놨는데도 정신을 못차린대요. 아버지가 기함을 하고 가셨는데 모르겠다. 얘, 너 빨리 그년 옷 좀 챙겨라. 꼴쌔를 보니 담요에 둘둘 말려서 병원에 실려 갔을꺼다.”

경애는 가까스로 살아났다. 하지만 승만이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집도 절도 없던 승만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언제나 톱밥을 머리에 얹고 다녀서 부옇게 바래보이던, 고지식 하다못해 바보 같았던 승만이에게 어디 그렇게 맹랑한 구석이 있었는지 알길이 없어진 채 승만이는 화장이 되었고 경애는 뱃속에 가지고 있던 석달짜리 아기를 유산했다. 퉁퉁 부어서 집에 돌아온 경애를 나는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자기 방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어쩌다 보게 되더라도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나는 가슴에 구멍이 숭숭 난 것처럼 허전하고 추웠다. 어머니는 독이 올라서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한결같은 소리를 해댔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뭐. 그 피가 어데루 가아. ”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인상을 썼지만 경애 일로 기가 많이 꺾인 것은 사실이었다..
“피는 못속여!”
어머니는 이런 말을 예사스럽게 경애의 면전에서 퍼부었다.

또 한번의 회오리 바람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불어왔다. 대학 본고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경애가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간다는 말은커녕 쪽지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없어져 버렸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동안 키워줘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나가버렸다고 어머니는 욕을 해댔지만 기실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서 속이 시원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며칠 가지 않아 어머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년이 집안을 기둥 채 뽑아 버릴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에나......”
경애는 어머니가 계를 들어서 소 장만 하듯 해 놓은 내 대학 등록금을 들고 나갔던 것이었다. 삽시간에 초상이라도 난 듯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악을 써댔다.
“당신이 뿌린 씨는 당신이 거둬욧!”

머잖아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두겠다는 듯이 아버지가 덜컥 쓰러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회복이 되었지만 반신을 추스리지 못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옆으로 누운채 타구에 침을 뱉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합격 통지서를 조용히 찢어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런 뒤 일년 동안을 나는 분노 속에서 으르렁 거리며 살아야 했다. 내 인생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신과 등돌리는 나의 운명이 야속해서 오기와  치기로 버틴 한해였다.

그리고 그 일년이 지난 뒤에 시작한 나의 대학 생활은 이미 낭만이나 꿈같은 것은 사라져 버린 뒤였다. 경애가 미국으로 건너 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시난고난 앓으시던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들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돌아 가셨다.

                                    *

경애는 그날 저녁을 넘기지 못했다. 정섭은 마음의 준비를 했던 듯 담담했다. 경애를 공원 묘지에 묻고 돌아서면서 나는 묘지를 휘돌아 나가는 바람 냄새를 맡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보이는 새들 한떼가 우르르 날아 왔다가는 또 떼를 지어 묘지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이곳 저곳 묘비명 위에는 야단스러운 색깔의 조화가 화병에 꽂혀 있었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에는 긴 나무 의자들이 여기는 죽은 자들의 장소만은 아니라는 듯 저만큼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바람은 새들 위로, 포에버 투게더,라고 쓰여진 묘비명 위로 그리고 누군가 방금 꽂아 놓고 간 빨간색 카네이션 위로 서둘러 돌아 나왔다. 솔 숲 냄새 같은 그러면서도 눈발이 날리는 저녁에 다가 오는 알싸한 내음 같은 것이 코 끝에 와 닿았다. 양 손바닥으로 코끝을 감싸자 손가락 위로 한방울 두 방울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묘지에서 돌아온 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래야 혹시나해서 가지고 왔던 까만 수트와 옷가지 몇 개를 가방에 집어 넣는 일이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온몸이 지쳐 있었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 가고 싶었다. 가방을 챙기고 난 다음 거실로 나오자 정섭이 커피를 끓여 내왔다.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말해서 경애가 언니를 만나면 다만 얼마라도 생명을 연장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괜찮아요, 오히려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적어도 경애가 어디쯤에 잠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해도 다행이예요. 이제는 막막하게 상상해 보는 일이 끝났으니까요.”

정섭은 하와이섬 지도가 그려진 머그 잔을 천천히 두 손으로 돌리면서 이미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 보고 있었다. 나는 정섭의 물기어린 눈에서 경애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보았다.

경애는 영어를 배운답시고 만나기 시작한 미군 군속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곧 미국에 들어와서 정착을 했다. 무난한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성실한 데가 있어서 쉽게 안정을 했다. 그런데 십여년을 그렇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경애에게 자기가 집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자신을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나는 이제 솔직하고 싶다며 뱉은 말이 자신이 게이라는 고백이었다. 남자는 떠났고 경애는 약을 한웅큼 삼키    는 걸로 삶을 마감하려 했다.

“바로 그때 경애를 만났어요.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걸 봤지요. 저는 그때 가벼운 교통 사고로 들어 갔다가 치료를 받고 나오는 참이었는데  너하고 같은 코리언이라는 걸 간호사가 알려 주었어요. 저는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까 해서  남아 있겠다고 했는데  위세척을 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저는 금방 무슨 일이 일어 났는 지를 알아챘지요.”

정섭은 자신이 불구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다. 자신의 다른 이름은 병신이었고 동네 가게에서조차 자기가 첫손님이라도 되는 날이면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리는 그런 존재였다. 앞에서는 내색을 안했지만 뒤에서는 누구든지 저거 사람구실이나 할까하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일찌감치  터득을 하고 있었다.

이건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에 불구자가 있다는 게 무슨 악성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숨기고 집안의 내력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히 강조하려는 식구들을 보면서 정섭은 언젠가 떠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저는 그사람이 깨어날 줄 알았어요. 사실 수면제로 자살한다는 건 실패율이 높거든요. 깨어나서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린 서로 상대방의 상처를 본능적으로 알아챘지요. 정말 그랬어요.”
정섭은 눈을 가늘게 뜨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이었다.
“참, 이걸 드린다는게 깜빡 했군요”
정섭이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목걸이였다.
“이건..... 경애가 걸고 있던 거네요.”
“네, 그 사람이 늘 목에 걸고 있던 거지요. 병원에서도 검사를 할 때를 빼고는 언제나 걸고 있었어요. 이걸 빼고 있으면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드릴게 있어요 ”

정섭이 일어나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걸이에 달려 있는 작은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웠다. 어쨌든 그건 가느다란 목걸이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층에서 내려온 정섭의 손에는 회색 브리프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가방을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올려 놓으면서 정섭은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이 열쇠가 이 가방에 필요하지요”
정섭이 열쇠를 꽂아서 돌리자 가방이 열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얼른 정섭을 바라보았다.

“경애가 살아서 언니를 만났다면 이 가방을 언니 앞에서 열었을 겁니다.”
가방 속에는 여러 개의 누런 서류 봉투가 들어 있었다. 뚜껑에 달린 포켓 속에도 들어가 있었고 바닥에도 몇 개가 깔려 있었다. 그 중에 하나를 나는 천천히 집어 올렸다. 봉투 전면에 쓰여 있는 “언니로부터”라는 글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봉투를 열어서 안에 있는 것들을 꺼냈다. 엽서가 한 장 손에 잡혀 나왔고 그 위로 나무 펜대 하나가 툭소리를 내면서 굴러 나왔다. 설악산 흔들바위 그림 엽서였다. 그 뒤에 깨알같이 써있는 건  내 글씨였다. 색조차 바래버린 그 엽서는 내가 고등학교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경애에게 보낸 것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동해,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고깃배, 산사의 향냄새, 깊은 산의 적요. 이런 것들이 관광지의 들뜨는 분위기와 합해져서 나는 그 날밤 이국에라도 온 것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뒤척이고 있던 중 경애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고 웬지 가슴이 싸아 해지면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친구를 데리고 오는 적도 없었고 자신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든가 또 나도 학교 생활이 어떻다든가 물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관방 구석에 기대고 앉아 경애에게 엽서를 썼다. 설악의 벌레 우는 가을 밤이 내 가슴을 온통 흔들어 댔기 때문에 곧이라도 울어 버릴 것같은 감상에 젖어 거기에다 그리운 경애에게 라고 적어 놓고 동해 얘기며 흔들 바위가 정말 흔들리더라는 이야기들을 썼다. 네게 잘 못해 줘서 미안하다는 둥 너와 나의 운명의 고리는 어떻고 각색의 실로 짜여 지는 인생의 양탄자는 어떻고, 아무튼 그 작은 엽서에 웬말을 그리 많이 썼는지. 그리고 네 선물을 사가지고 돌아 가겠다는 마지막 말 끝에 설악에서 언니가 라고 쓰고는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샀고 아버지에게는 대나무로 된 효자손을 그리고 오빠와 경애를 위해서는 향나무 펜대를 하나씩 샀다. 광택이 없는 펜대는 향나무 그대로의 결이 나타나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향이 좋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정신이 때록때록해지면서 밤잠을 설치게 했던 감상이 서서히 엷어지기 시작했다.

경애를 만날 시간이 가까와 지기 시작하자 나는 엽서 보낸 일이 후회 되었다. 거짓은 아니었지만 속살을 드러낸 것처럼 부끄러웠다. 집에 도착하자 경애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고 뛰어 나와 여행가방을 받아 들었다. 안그래도 무안했던 나는 경애에게 차마 그 펜대를 건네 줄 수가 없었다. 설악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집에 와서 다시보니 펜대는 촌스럽다 못해 초라했다. 나는 주저 하다가 결국 경애에게 주지 못하고 그걸 책상 서랍속에 집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는 머잖아 잊어 버렸던 그 펜대였다.

  펜대를 집어서 코 끝에 갖다 대었다. 향은 사라졌지만 설악의 만추와 함께  가슴 속이 불에 데인 것처럼 쓰라렸던 그날 밤이 생각 났다. 그대로 솔직해도 좋았을 나이였는데 왜 나는 그 때 그렇게 다시 벽을 쌓고 그곳에 들어 앉아 버렸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서류 봉투 밑에는 투명한 작은 플라스틱 상자가 있었다. 나는 그 속에 들어 있는 낯익은 물건을 보았다. 노란 리본이었다. 뚜껑을 열고 리본을 꺼냈다. 곰팡이 냄새 같은 묵은내가 풍겨 나왔다. 점점이 얼룩진 리본은 퇴색이 되어 샛노랗던 빛깔이 누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경애의 첫날 모습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아이의 작은 뒷통수에 터무니 없이 커 보이던 그 리본을 향해 어머니와 나는 야릇한 경계심을 품었다.  분명 어머니에게 꽂혀왔을 그 여자의 질투와 천박한 계산이 그리고 부박한 삶이 샛노란 색깔에 그대로 묻혀 오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던 그 리본이었다.

리본을 다시 상자에 넣으려 하다가 나는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경애와 경애 어머니가 헤어지기 전에 사진관에서 찍은 모양이었다. 경애는 긴 의자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고 경애 어머니는 경애 어깨위에 짐짓 한 손을 올려 놓은 채 희미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입을 꼬옥 다물고 앉아있는 경애의 땋은 머리 끝에는 그 노란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경애 어머니는 별 특징이 없이 곱상해 보였다. 내가 상상했던 야단스럽고 천하기조차한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입고있는 잔잔한 꽃 무늬 한복이 차분하게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조금은 용서가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침을 맞지 못하는 고통도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매일 아침을 함께 한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일 이 두 가지 고통을 다 갖고 계셨다면 아버지의 삶은 얼마나 처절했을 것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정신적인 영역은 아버지 같이 세상살이 다 겪어 알거 모를 거 다 안다는 듯 얼굴에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도 나는 아버지를 혐오했다. 하지만 그제서야 나는 경애 어머니의 가느다란 손과 목줄기, 웃고 있어도 그늘져 보이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자 두 사람을 용서했다.

  나는 천천히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 정섭에게 열쇠를 돌려 주었다. 너무 늦게 가방을 열어 보았다는 생각과 때가 잘맞았다는 생각이 번갈아 스쳐갔다. 정섭은 가방을 받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나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남자 직원들이 손가방까지 뒤져대는 검색대를 지나자 그 바깥에 서있던 정섭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게이트를 가리키는 화살표 아래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정섭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손을 흔들었지만 그는 그저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게이트를 향해 걸어 갔다. 이내 정섭은 보이지 않았다.

긴 통로가 앞에 나타났다. 저만큼에서 경애의 노란 리본이 나풀거리고, 흔들바위가 찍혀 있는 그림엽서가, 경애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이, 경애의 무덤 위로, 그 위를 나르던 새들 위로 후우욱 날아갔다가는 다시 내게로 날아 왔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 발 한짝을 디디면서 휘청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 보는 순간, 발등 위로 눈물 한방울이 투욱 떨어졌다.

<이민 백주년 기념 소설집에 발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 블루피쉬 (단편 소설) 최영숙 2004.01.08 1145
» 떠나온 사람들 (단편 소설) 최영숙 2004.01.08 1230
53 우리는 날아가나이다 최영숙 2004.01.08 1040
52 겨울 이야기 최영숙 2004.01.08 1012
51 배아기 (단편 소설) 최영숙 2004.01.08 1195
50 로열 패밀리 최영숙 2004.01.08 1188
49 여섯번째 성경 최영숙 2004.01.08 1148
48 하란땅 최영숙 2004.01.08 1589
47 어떤 진혼제 (단편 소설) 최영숙 2004.01.08 2148
46 고해 (단편 소설) 최영숙 2004.01.09 2163
45 하늘의 다리 최영숙 2004.01.10 1580
44 토지 (독후감) 최영숙 2004.02.04 1779
43 불꺼진 창 (꽁트) 최영숙 2004.09.21 1587
42 실종 (단편 소설) 최영숙 2004.12.08 1549
41 끼께를 위하여 최영숙 2006.11.29 1541
40 평화약국 뒷집 (단편 소설) 최영숙 2008.07.23 1853
39 어느날 내가 (단편소설) 최영숙 2009.01.19 1023
38 반지 연가 (단편 소설) 최영숙 2009.01.19 1731
37 오해 최영숙 2009.03.19 1052
36 테리와 다이아나 최영숙 2009.05.04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