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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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끼께를 위하여

2006.11.29 22:58

최영숙 조회 수:1541 추천:263

                              끼께를 위하여

                           
   나는 오라시오 노인의 목장 울타리를 지나며 차의 경적을 두 번 울렸다. 맥고모자를 쓰고 장미꽃 밭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는 끼께를 향해서 하는 인사법이다. 제대로 울리면 경적 소리는 마치 끼께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끼께는 경적 소리를 기다렸다가 한껏 웃음을 띠운 채 손을 흔든다. 그의 정식 이름은 엔드리께, 하지만 모두들 그 이름을 끼께라고 불렀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이곳 멕시코 남부로 불법 입국한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다. 그는 싼 임금을 받고 하루 종일 햇볕 아래에서 칸나와 장미 그리고 각색의 과꽃을 가꾸고 있다. 불법 입국자들은 아무리 싼 임금을 받아도 어디에고 호소할 곳이 없다. 그저 이민국에 신고 안하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인 형편이었다. 나는 농장을 지날 때마다 끼께가 키워 놓은 꽃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특권에 감사한다. 석회와 돌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 그 정도의 꽃을 키워 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었다.
  끼께는 키가 작다. 남편이 의자에 앉으면 그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살이라고는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를 정도로 마른 몸매에 얼굴은 기미가 슬어서 똑바로 보기가 민망했다. 웃을 때 보이는 앞 이빨은 금으로 틈새를 막아서 나이가 훨씬 들어 보였다. 가끔 그가 우리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바로 이웃에 있는 목장이었지만 도대체 저 짧은 다리로 언제 도착할 수 있을까 염려 될 정도였다.

  남편은 끼께의 이름을 가끔 께끼라고 혼동하기도 했다. 경적 소리가 내 귀에는 완벽하게 끼께로 들리는데 그의 귀에는 께끼라고도 들리는지 몇 번이나 이름을 바꿔 말하곤 했다. 그 ‘께끼’가 살고 있는 목장을 남편이 들러 온 날, 우리는 밤잠을 못 이루었다.
  상상은 했지만 듣고 보니 생각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의 숙소는 축사로 쓰던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축축한데다 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 전기불도 없는 그곳에서 끼께는 침대나 해멐은 커녕 시멘트 바닥에 종이 상자를 깔고 그 위에서 담요 하나 덮고 자는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냄새마저 풍겨 나오는 그곳에다 끼께를 두고 돌아서면서 남편은 분명히 분노하고 그리고 속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다음 날, 중고 침대 매트리스와 슬리핑 백, 옷가지, 라면을 챙겨서 갖다 주고 돌아와서도 남편의 얼굴은 영 펴지질 않았다.
   끼께는 수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성경 공부 반에 참석했다. 대부분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에 와서 부엌 창문을 두드리다가 내가 창가로 다가서면 발돋움을 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들어오라고 연신 손짓을 했지만 그는 몸을 비비꼬기만 했지 들어서질 않았다. 나는 서둘러 출입문 쪽으로 돌아가 문을 열어 주었다. 문도 잠겨 있지 않건만 그는 번번이 그렇게 부엌 창문을 두드렸다. 누구에게서 얻어 입었는지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 덮이는 셔츠를 입고  교재를 허리에 낀 채,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우산까지 들고 들어서는 그를 보고 나는 얼른 우산을 받아 들었다. 우산이 너무 커서 발에 걸릴 것 같이 위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글도 쓸 줄 모른다. 대충 읽기는 하는 모양인데 이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묻는 말에는 무조건 씨익 웃기만 하지 대답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같이 웃고는 다시 묻지 않는다. 그래도 꼬박꼬박 참석하는 걸 보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라시오 노인이 돈독이 오른 사람이라는 것은 소문난 사실이었다. 농장의 흙을 할 수 있는 데까지 긁어서 팔아먹는 바람에 곳곳에 서있는 키 큰 소나무들이 쓰러져 가고 있었다. 꽃나무를 그렇게 정성들여 가꾸는 사람이 몇 십 년 키운 나무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 꽃들이 꽤 돈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곳 멕시코에는 과달루페 성모의 발현으로 카톨릭이 상당히 퍼져 있다. 특히 마야인들이 사는 남부지방에는 카톨릭이 오랜 시간에 걸쳐 토착 종교와 합쳐진 특유의 종교 형태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 보면 곧 알 수 있다. 정도가 심한 곳은 발걸음을 떼어 놓기가 거북할 정도로 천정에까지 원색의 인조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느 곳에서는 사제가 카드 점을 쳐주기도 하고 술이 담긴 유리잔에 계란을 깨뜨려 넣어 길흉을 점 쳐 주기도 한다. 집 마당에도 성모나 아기 예수, 성인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작은 집을 짓고 그 곳에 꽃과 초, 과일 그리고 음식까지도 바치는데 여유가 안 되는 사람들은 값비싼 생화를 대신해서 플라스틱 꽃이나 물감들인 종이꽃들로 천정까지 채워 놓는다. 아무튼 이들의 생활에서 꽃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기 때문에 장날이면 꽃을 뿌리째 뽑아 들고 나온 산마을 사람들과 그걸 사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한다. 하지만 꽃을 사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오히려 생활의 곤고함을 한 다발 들고 가는 것 같이 보인다. 그들의 시름없는 얼굴들이 각색의 꽃들 속에서 더욱 어둡게 보이는 건 어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꽃과 함께 소원을 올리면서 무릎을 꿇는 저들의 절절한 사연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나도 품어 볼 때가 있다.
   남편은 소원을 품기 시작했다. 끼께를 오라시오 노인의 손에서 건져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일은 뼈 빠지게 시키고 게다가 먹을 것이나 제대로 주면 모르겠는데 가서 보니 돌멩이에다 녹슨 양철 조각을 얹고 불을 피워서 그 위에다 덥힌 옥수수떡, 또르띠아 몇 장으로 끼니를 때우는 지경이라는 말이었다. 끼께의 얼굴에 생긴 기미가 영양 상태가 나빠서 그런 것이라는 진단까지 내리면서 남편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오라시오 노인은 시내 중심가에 살고 있었다. 시내의 중요한 비지네스들은 거의 그 노인과 그의 친척들 손에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남편은 끼께를 빼내기 위한 공작에 들어갔다.

우선 임금을 얼마씩 받는지 알아보았다. 역시 생각한 대로 적은 금액이었다. 남편은 그 위에 천 페소를 더 얹어 주고 우리와 같이 먹고 자는 조건을 제시했다. 센터 건물 청소와 일 킬로미터가 되는 진입로의 정원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오라시오 노인의 농장에 비하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흙과 싸우고 맘대로 흩어져 있는 소들을 몰아들이고 먹이를 주고 하는 일들이 여간 힘든 일이겠나. 하지만 끼께는 난색을 표명했다. 주인이 기쁜 맘으로 보내 주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그랬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집으로 간다는데 오라시오 노인의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러다가 불법 입국자로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끼께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계약 기간이 두 달 후에 끝이 나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이곳에서는 고용 계약을 일년 씩 한다. 오년이 지나면 해고할 수 없는 노동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당장이라도 데리고 오고 싶어 했지만 할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데려 와서 잘 먹인 다음 얼굴 꼴이 펴지게 되면 장가도 보낼 생각이었다. 지금 같아서는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남편은 혀를 차댔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끼께가 찾아왔다. 그 날은 평소와 달리 청바지에 커다란 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하고 몸에 딱 맞는 초록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할 이야기가 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수줍은 얼굴로 부엌 기둥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미 우리는 끼께가 올 때를 대비해서 그가 쓸 방을 준비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놓고 침대 씨트 까지 빨아 놓고 난 다음이었다.
끼께가 돌아가고 난 후였다. 웬일인지 남편은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끼께가.... 하고 시작하고 나서도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작은 끼께가, 수줍어서 문도 열고 들어오지 못하는 끼께가, 못 먹어서 얼굴에 기미가 새카맣게 내려앉은 끼께가, 월급을 우리가 제시한 것에 오백 페소를 더 요구하고 일하는 시간도 7시에서 5시까지, 그리고 일주일에 5일만 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집을 샀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살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남편은 끼께가 내세운 조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모셔 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좋은 일이고 좋은 얘긴데, 남편은 그 말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도 시세에 비해 높은 편이었건만 남편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끼께는 이미 오라시오 목장을 그만 두고 찾아왔던 것이었다.
   끼께는 다음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건물 청소를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청소다운 청소를 하고 난 타일 바닥의 건물은 물걸레질로 반들거리고 그가 끌고 다니는 걸레통의 요란한 소리조차 경쾌하게 들리는데다 화장실에서 풍겨 나오는 클로락스 냄새마저도 깔끔하게 느껴졌다. 복도에서 만나면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부에노스 디아스!  부에나스 따르데스!  
여전히 수줍어하면서도 그는 금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키를 넘어가는 대걸레를 추스르면서 끼께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가끔 걸레통의 물도 쏟아주고 쓰레기통을 비워주기도 했다. 그래도 그 작은 끼께가 땡볕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삼주가 지났을 때 갑자기 끼께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유를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기만 하는 그를 놔두고 남편은 우리가 뭘 잘못한 일이 있는 가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모르고 있었다. 좋은 음식에 좋은 대우에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다 들어 주었는데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끼께를 다그쳐대었다. 어렵사리 얻어 낸 대답은 일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뙤약볕에서, 그것도 그슬리다시피 뜨거운 햇볕에서 일하는 것보다 힘들다니. 좋은 일도 힘들어, 남편의 얼굴이 쓸쓸해졌다.

  아무튼 끼께는 우리를 떠났다. 그는 다시 오라시오 목장으로 돌아가서 장미를 돌보고 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끼께가 일하는 장소를 지나치면서 경적을 울렸다. 차가 마치 끼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 다 걷히지 않은 안개 속에서 여전히 흰 맥고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었다. 아침 안개는, 변함없이 뜨거운 날이 시작될 거라는 조짐이었다. 머리카락이 노랗게 타 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그곳에서 끼께는 오늘도 땅을 파고 거름을 옮기고 잡초를 뽑고 꽃밭에 물을 주고 소 먹이도 주면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그 옆에 고만한 아내가 서 있을 테고 또 끼께를 닮은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겠지. 그래, 끼께, 우리가 너를 주인공으로 소설 한편 썼어... 그것도 해피 엔딩으로 말야.

끼께는 자기 키 만큼이나 되는 괭이를 고쳐 잡고 땅을 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마냥 손을 흔들며 그곳을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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