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과 유명

2013.07.26 14:07

김학천 조회 수:341 추천:64

  지난 4월 영국에서 로버트 갈브레이스라는 무명의 남자 신인 작가가 소설을 출간했다. 전직 군인출신의 사립탐정이란 이 작가가 지은‘뻐꾸기의 외침’이란 제목의 이 소설은 작가와 같은 경력의 주인공이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은 수퍼모델의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출간한지 2-3 달이 되었는데도 겨우 1,500부정도 밖에 팔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글쓴이가 무명인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밝혀지면서 갑자기 판매수가 무려 5천배나 뛰어올라 베스트셀러 1위로 되었다는 게 뉴스거리다. 작가의 본명은 바로 해리포터로 유명한 조앤 로링이었다.    
  실제 이 사실이 밝혀진 데는 영국신문기자의 의구심과 집념의 결과였다. 소설을 읽으며 어딘가 등장인물 여성의 치장에 너무 자세한 부분이 남자가 썼다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이 소설 출판에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조사하면서 한편으론 피츠버그 대학의 법언어학자의 도움으로 작품 속의 문장과 단어들을 분석해 결국 이 소설의 작가를 밝혀 낸 것이었다. 비밀이 공개되자 이 소설은 단번에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을 끌어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씁쓰름하게 느껴지는 것은 현대인의 브랜드를 쫓는 일방적 외길 흐름이 보여서다. 브랜드를 우선으로 따라가는 현대인들의 무취향, 무개성의 성향이 작품성보다 우선하는 게 아닌 가해서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과시욕으로 브랜드를 쫓아가고 최고를 좋아한다. 그리곤 쉽게 인정하고 후한 점수를 준다. 어쩐 일인지 개성을 존중한다는 현대인들이 누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따라가 모두 다 같아지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명인 들의 명품을 보면 거기에 집착해서 허영이나 체면만이 아닌 그 유명인과 동등시 된다고 믿고 만족하는 명품의존화에 중독 되어가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이 착각 때문에 어느 것이든 나름대로 좋아하는 게 있고 싫어하는 게 있음에도 이미 내 개성이나 취향은 어디로 갔는지 시대의 흐름에 스스로 흡수되어서 개성이 아니라 오히려 균일화되어간다. 유행이나 브랜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흐름의 한 줄기일 뿐인데도 말이다.    
   아무튼 로링은 가명을 쓴 이유에 대해 광고나 이름에 대한 기대 없이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듣는 것을 즐기고 싶었고 그렇게 오래도록 지내길 원했다고 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사전에 기획된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사실이야 어찌되었던 너무 쉽게 노출된 비밀소식에 작으나마 실망감은 든다.
   그것은 프랑스의 노작가 로맹가리와 너무도 비교되기 때문이다. 젊어서 프랑스 최고상을 받았던 그는 늙었다는 이유하나로 한물 간 작가로 작품을 홀대하는 사회비평에 반격하기 위해 본명을 감추고 다른 이름으로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여 또 다시 최고상을 받음으로서 자신의 저력을 과시하고 사회에 본 때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사실 조차 그가 자살을 한 후에야 그가 남긴 글에 밝혀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명성을 감추고 위장무명으로도 작품성을 당당히 인정받았던 그와, 본명을 밝히고 나서야 그 이름값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듯한 그녀의 기사를 대하면서 이 둘을 비교한다면 너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는지 모르지만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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