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넘는 삶

2014.03.11 15:22

김학천 조회 수:320 추천:34

  올해 86회 오스카상은 실화의 주인공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노예 12년’에 돌아갔다. 자유인으로 살아가던 바이얼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이 1841년 어느 날 백인에게 납치돼 노예로 팔려간 후 혹독한 시련을 겪고 12년 만에 겨우 탈출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흑인노예에 관한 영화를 만든 흑인감독이 작품상 등 3개 부문의 중요한 부분에서 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지 86년 만에 처음이다. 한 신문은 ‘노예가 주인이 되었다’라는 제목을 달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이유는 단지 노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빈정거림도 있었다. 백인들이 갖는 노예제도로 인한 죄책감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하면 흑인을 도운 착한 백인도 있었고 흑인들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산 경우도 있는데 노예학대에만 초점을 맞춘 거라는 깎아내리는 푸념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여우조연상의 루피타 니용고는 수상소감으로‘이 기쁜 최고의 순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의 영혼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고 했다.  
  ‘조롱박을 따라서’ 란 노래가 생각난다. 다른 말로‘북두칠성을 따라서’란 이 노래는 탈출한 노예들에게 길가나 어느 집 창틀에 묶어 논 식별표를 보고 계속 북쪽으로 가라고 인도해 주는 노래였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길 안내를 해주고 그러면 자유로운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는 흑인노예들을 비밀리에 탈출시키는 도망루트를 말하는 지하철로였다. 그 뒤에는 노예들의 모세로 불리는 해리엇 터브만이나 외발이 조 같은 그들을 돕는 비밀결사위원들이 있었고 간혹 백인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북전쟁 후 노예 제도가 종식되고 노예 금지법이 공포되었지만 법은 법일 뿐 실제로 노예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그 후로도 1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노예들의 탈출노래 ‘조롱박 (북두칠성)을 따라서’는 죽지 않고 살아있더니 근세의 인권운동이나 민간부흥운동에 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오늘날 초등학교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드디어 흑인을 대통령으로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흑인노예를 잡아다 강제노동으로 지은 백악관에 그들의 후손을 상징하는 검은 대통령이 자유인으로 들어서는 데 거의 2 세기 이상이나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곳곳에서 차별에 대한 일들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흑인의 지성 윌리엄 뒤 보아는 인간의 삶에는 4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고, 배워서 알고, 사랑하며, 꿈을 갖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노예나 억압 받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3개의 선택만이 주어질 뿐이다.‘복종하느냐, 싸우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허나 이것마저도 역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한다.  
   이번에 작품상을 받은 영국계 흑인감독 스티브 맥퀸 감독은‘모든 사람은 생존을 넘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노에제도는 페지됐어도 바로 그런 솔로먼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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