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제6막 (하니 듀)

2011.12.13 05:47

김학천 조회 수:773 추천:162

아주 섹시한 건달 아가씨 부파딥. 남친도 많고 연애도 잘하는 몸짱, 얼짱이다. 그 중 한 녀석이 대그우드인데 이 또한 바람둥이이고 철도사업으로 돈을 번 억만장자의 아들이다. 그는 집안에서 짝 지워준 정혼자가 있지만 별로 흥미가 없다. 따로 마음에 둔 허리가 잘록하고 말괄량이 금발미녀 부파딥 때문에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가난뱅이 건달아가씨 부파딥과의 결혼은 절대 안 되고 만약 뜻을 따르지 않으면 유산은 둘째고 아주 호적에서 파내어 버린단다.
그러나 사랑이 무엔가. 드디어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개미허리 금발과 결혼식을 치른다. 세간에선 그녀가 돈 보고 시집간다하여‘Gold digger’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대그우드는 집안에서 완전 파문된다. 그래도 이 둘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사랑을 양식으로!’라는 맹세로 180° 달라진 서민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이 일은 아주 센세이셔널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칙 영의 가정만화 불론디 이야기이다.
1930년 미국에 공황이 닥치자 미국가정에 활기를 넣어주기 위해 칙 영이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만화이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 아들 딘 영이 이어받아오고 있는데 미국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삶이 그대로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이야기는 주로 집안에 한정되어 있고 집밖이래야 출근이나 쇼핑, 방문판매, 우편배달 등 정도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돈 버는 일, 가족을 돌보는 일, 먹는 일, 잠자는 일’ 4가지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그가 출근시간에 대려고 허둥대다가 파자마만 입고 집을 나서기도 하고, 곧잘 방문객과 부딪치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근무 중에 졸다가 혼나기도 하고, 월급인상을 요구하다가 사장에게 궁둥이를 차이는 등의 모습은 모든 샐러리맨의 공통된 모습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소파에 누워 쉴 틈만 보는 그에게 불론디는 이런 저런 집안일을 부탁한다.
집안일이라는 게 끝이 없고 더욱이 여자가 하기엔 어려운 일이 많다. 해서 아내는 종종 남편을 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보, 이것 좀 해주세요, 여보 저것도 좀 부탁해요.’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honey'하고 부르면 달콤하기보단 도망가고 싶어 한다.
왜? Honey 뒤에 붙는 말 때문이다. 달콤하고 즙이 많은 honeydew가 honey-do로 들리기 때문이다. ’Honey, do this, Honey, do that‘ 그야말로 온갖 집안일투성이다. 해서 소위 ’honey-do list'에 따라 설거지부터 지붕 고치기, 잔디 깎는 일은 물론 부인이 부르면 달려가 무엇이든 하명 받은 대로 해야 하니 달콤하게만 들리겠는가.
미국의 차고 벽을 보라. 온갖 도구, 장비들로 즐비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기다 차까지 한 대 정도는 Wagon이나 Van 아예 트럭 정도는 있어서 집 일을 손수들 하기에 웬만한 기술자들을 뺨치게 할 줄 아는 실력들을 갖고 있는 것이 미국사람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광활한 이 땅 위에 정착하느라 토착민과 싸우고 서부로 이동을 하면서 한 가족이 오로지 총 한 자루에 의지하여 낯선 곳으로 옮겨가며 외부인과 싸우다가 아버지가 죽으면 아내가 그 후엔 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가던 그 전통과 허허벌판에 새집을 짓고 야생동물과 외부 적과 싸워야 했던 역사의 습관이 가족끼리 똘똘 뭉치게 해서 요새 같은 가정이 된 결과가 아닐까?
아무튼‘불론디’는 워킹맘의 모델로 부부간의 불화는커녕 서로 우대하며 위트와 유머로 일관한다. 미국인의 생활의 여유와 여성의 사회진출상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매기와 지그스’는 아이리시 출신의 부유한 상류층을 등장시킨 하이 화이트칼라임에도 남편은 언제나 야단맞고 무시당한다. 그래서 ‘honey’는 커녕‘insect’로 불리면서도 아내를 이겨보려 하지만 그게 어렵다. 미국사회의 여성의 권리와 위치가 만만치 않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사회 속에서도 남성의 우상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아치 벙커씨. 좀 무식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와 지극정성 헌신적인 아내 이디스가 그려내는 블루칼라 가정이야기 ‘All in the family’는 그야말로 인기 톱을 달렸던 미드의 리더였는데 특이하게 미국에선 드물게 보는 가부장적 드라마다.  
무뚝뚝하고 고집이 세고 아내를 구박하고 사회에 대해 불만투성이어서 언제나 말을 거칠게 내뱉어 버린다. 특히 반정치적인 발언이나 인종적인 발언 특히 유대인이나 흑인 아시안 등을 싫어해서 서슴지 않고 욕설들을 쏟아내다가는 평등주의를 주창하는 딸과 사위에 부딪쳐 결사적인 언쟁에 지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방 끈이 짧아 그들과의 말다툼에서 논리가 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틀린 지식이나 어려운 단어를 몰라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자란 무학에 자조 섞인 그러나 감추려 하거나 비겁하지 않는 모습에서 강한 자존심과 배짱 그리고 그의 가시 돋친 말들 속에서 시청자들의 맘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에 비해 아내 이디스는 마치 우리네 유교적 정서에 의한 남편에 인내하고 견디는 소위 순종형 아내의 모습이다. 끽소리 안하고 무조건 남편에게 예스, 예스로 살지만 가끔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당당히 일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남편에 맞설 때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권리를 주저 없이 주장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을 본다.
아치는 언제나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찾고 세상을 안주삼아 질근질근 씹어대고 기껏해야 동네술집 바에 가서 샷 한잔에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에서 자위할 수 밖에 없는 능력의 한계와 외로움을 보여준다. 그래도 쑥스러워 겉으로 표현 못할 뿐 맘속으로는 사실 누구보다도 아내와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치, 그의 독설을 통해 미국의 사회문제를 들추어내어 제시하고 비판한다.
사회의 규범이나 규칙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위선이나 형식을 꼬집어주는 것으로 치면 근래에 등장한 ‘심슨의 가족’이 단연 선두를 달린다.
이전의 가정이야기는 절제 있고 예의 있는 가정의 그림이었던 것이 어느새 버릇없고 게으르면서도 뻔뻔한 쉬레기같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바뀌긴 했지만 위선과 가장이 없는 모습으로 사회를 꿰뚫어보는 것은 공통의 소재이다.
노동 중산층의 심슨은 일하기 싫어하고 먹고 자는 걸 좋아하며 맥주나 들이켜고 도넛에 환장한 남편으로 다시 말해 무능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며 예의도 없고 단순하고 멍청하고 무모하고 거짓말도 잘하지만, 적어도 남을 속여 이득을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BBC 방송설문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미국인 1위에 올라 링컨을 누른 사나이가 되었다. 그런 그가 가족에 대한 사랑만은 또 역시 헌신적이어서 푸른 머리의 아내 마지는 그러한 남편을‘내 사랑, 불완전하지만 완벽한 당신’이라고 부른다.
결국 심슨은 말세 같은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내 마지와 딸과 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떠받치고 있는 저력을 대표한다. 아울러 미국은 열린 사회이고 어디까지나 가정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사회임을 과시한다.
이러한 사랑과 예의 그리고 가족애 외에도 가정은 청교도의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는 사회 속에서 하나의 작은 신앙의 장소로, 교육의 장소로, 사회를 구성해가는 소단위의 공동체로 인성과 인간형성의 장소이었다. 그 속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제각기 맡은 역할을 독립적으로 잘 지켜냄으로 하나의 작은 정부처럼 살아가는 게 미국인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불론디와 같이 대 공황을 거치면서 미국인에게 감동을 준 드라마인‘월튼네 사람들’이었다. 이는 버지니아의 한 작은 통나무집에 미국에선 보기 힘든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이야기인데 그들의 목가적인 잔잔한 삶을 통해 보여준 예의와 질서 그리고 성결된 가정의 표상이었다.
그러했던 가족상이 언제부턴가 깨어져 가는 느낌이다. 사회학 교수인 앤드루 첼린도 ‘이제 미국에는 전통적인 가족상이 없어졌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조지 부시도‘심슨네’보다는 ‘월튼네 사람들’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혼이 늘어나는 건 둘째 치고 이제는 아예‘결혼 뒤에는 이혼’처럼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되어가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이혼의 비율과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과 죄의식의 결여 그리고 이혼 후에도 가족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지함으로써 지속적인 가정교육을 하게 되고 정서적 불안감을 덜어주게되어 가정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 외롭고 소외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하게 된다.해서 대개 미드에서 중산층들의 무대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것이 동네 술집 바(bar)이다. 아치가 가는 켈시 바나 Three's company의 식구들이 자주 가는 리걸 비글 바가 사교장소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묶어보는 공감대이기도 하다. 거기서 웃고 떠들며 놀면서 사회적 이슈를 유쾌하게 비꼬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해보기도 한다.
동네술집이야기 ‘치어스’를 보자. 보스턴의 바를 배경으로 하는 몇몇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재로 그린 시트콤. 주제가 'you want to go where everybody knows your name'이 그들의 삶의 모습이며 마음에서 바라는 메시지이다. 가족들 다음으로 어디를 가든지 나를 아는 곳, 피곤하고 외로운 나를 반겨주는 곳에 찾아가고 싶은 것은 거기서 나를 위로하고 나에 대해 말하고 남의 경험을 통해 삶이 다르지 않고 같다는 공통점을 찾으면서 위안을 얻고 삶의 용기를 놓치지 않는 길을 찾고 싶어서다. 결국 개인의 도덕성과 양심과 행동은 때론 별개의 것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론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진실한 사랑과 정직성이나 심슨이 인기 끄는 이유인 남을 속이거나 해를 주지 않는 정직함이나 아치가 미드의 리드가 되었던 사회의 부조리나 위선에 비굴하지 않았던 용기가 가족을 보호할 줄 아는 남편의 의무감과 가족을 보살피는 아내의 책임감에 더해지면서 오늘도 미국의 부부들은 나란히 손잡고 평행선을 달린다.
미국의 힘 그 가운데에는 남편과 아내간의 균형 잡힌 관계에 있는 것이다. 윌리엄 펜이 말했다.‘아내인 동시에 친구일수도 있는 여자가 참된 아내이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여자는 아내로도 마땅하지가 않다.’라고. Vice versa!
그러하니‘Honey-Do list(HDL)’를 거추장스러워 마시길. 이는 부부간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HDL은 바로 우리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 (HDL:High density Lipoprotein)이 되는 것처럼 사회에도 유익한 것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계속) (아크로,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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