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2012.01.16 01:27

김학천 조회 수:472 추천:136

  새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가? 기도하는 사람, 담배부터 한대 무는 사람, 커피 한잔 마시는 사람 등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나는 물을 한 컵 마신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하루의 시작이다. 하루의 시작점에 서서 갖는 습관 중에 좋은 습관도 있지만 나쁜 습관도 있을 수 있다.
  중독성 습관도 그 중에 하나다. 보통 우리는 중독이라고 하면 약물을 떠올린다. 내 환자들 중에서도 치료와 더불어 반드시 약이 필요한 것이 아닌 데도 처방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다. 강한 진통제 안에는 마약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약을 복용하면 묘한 기분에 들어 갈 수가 있으므로 즐기고 싶은 게다.
  허나 중독은 약물뿐만이 아니다. 후배 병원에 방문 차 들렀다가 잠깐 기다리는 동안에 본 잡지에 화이트맨이라는 작가가 쓴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이란 책의 소개가 있었다. ‘왜 지적인 여자가 폭력적인 남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능력 있는 여자가 무능력한 남자에게서 헤어나질 못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했다. 그것은 모르는 사이 사랑에 중독되어 매여있는 강박관념 때문이란다. 사랑 중독이다.어느 기사에선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화제가 되었을 때 힐러리도 그에게 강한 중독이 되어 있어서 분노를 누르고 살아간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누군가 쇼핑을 하다 그 자리에서 죽으면 행복할 것 같다던 말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쇼핑 중독자일 게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겠다 여긴 것은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가지에 대한 중독증이 곧 그의 삶으로 이어져 표현 될 수도 있어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졌을 때 ‘바로 이거야’라며 펄쩍 뛸 만큼 밀려오는 행복감. 하지만 여기엔 글자가 담고 있는 뜻과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걸만한 투자가치라 여겨 매혹된 것이 독이 되어 자신의 삶은 물론이려니와 인연 지어진 이들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받는 무서운 중독의 아픔이 감춰져 있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독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닐 게다. 몇 년 전 한국 TV드라마 ‘허 준’에서 본 극약처방의 장면은 독이 해독작용도 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렇듯 인생이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라는 수학 공식의 셈보다 정답 찾기가 훨씬 복잡하다.
  사랑의 방정식 또한 이와 같아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제로도 되고 열도 될 수 있으니 무엇에 중독 되어 사는가 하는 것은 그 중독증이 병도 되지만 삶의 힘도 되어주니 정말 병 주고 약 주기다.
  마치 산을 끔찍이 좋아했던 분은 그 산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고 술이나 담배를 좋아했던 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건강을 헤쳐 목숨을 앗아감에도 그 즐김의 대가에 대한 경고를 못들은 척 하는 것도 중독증 때문이리라.
  기왕이면 허탄한 유혹에 길들여져 거기에 감금되는 파멸의 중독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끼리 베풀고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에 중독 된다면 어지러운 사회를 해독시키는 귀한 약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미천한 감정을 일으키는 음악을 들은 사람은 그 성격도 미천해 진다.’
  아직 황혼이 멀었을 줄 알았는데 저녁 성당 종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이를 들을 때마다 밀레의 그림 ‘만종’이 기억나는 것은 밀레가 온 생애를 바쳐 그려낸 신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이를 보는 이까지 성화 속으로 끌어들여서이다.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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