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와 Infatuation

2012.02.15 02:31

김학천 조회 수:448 추천:140

  양녕대군은 세종대왕의 형님이시다. 왕명을 받고 평안도 감사를 가게 됐다. 형님이 워낙 한량인 것을 아는 왕은 여자를 멀리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그러겠노라고 장담했지만 평북 정주에 이르렀을 때 가야금을 구슬피 켜고 있는 소복 단장한 여인을 보는 순간 마음이 사로잡힌다.
  밤을 같이 지내게 되자 여인은 자신의 속치마자락에 사랑의 정표를 써 달라고 한다. 아무도 모르리라 자신한 양녕은 사랑의 시 한 수를 일필휘지 써주었다. “밝은 달도 비단으로 만든 우리의 베개 속을 엿보지 않는데 맑은 바람은 어이하여 신방을 가린 비단 장막을 걷어버리는가.”
  세종은 감사를 마치고 돌아온 형님을 위해 베푼 연회자리에 그 여인을 불렀다. 깜짝 놀란 양녕은 시치미를 뚝 따지만 속치마의 징표에 꼼짝 못하고 만다. 형님의 풍류를 생각하여 미리 배려했던 동생의 마음이었다.
  사랑의 약속은 영원한가. 한 사내가 자신의 신부가 될 연인에게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서 열렬한 러브레터를 써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운다. 십 년 후 그 병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그 연인에게 보내지지만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온다. 우여곡절 끝에 신문사로 보내지고 드디어 그녀의 행방을 찾는다. 허나 정작 감동적인 이 러브스토리는 결혼 생활 일 년만에 끝나버린다.
  불붙은 감정은 영원할 것처럼 이성을 마비시킨다. 왜냐하면 파스칼의 말처럼 마음의 논리는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굴곡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직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믿는다.
  폴란드 귀족의 딸 카타리나는 스웨덴의 왕자와 결혼을 하였다. 헌데 남편이 모함에 빠져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녀는 왕에게 엎드려 눈물로 호소했다. “폐하, 남편과 저는 하느님이 짝 지워 주신 한 몸의 부부입니다. 남편의 반역죄는 제게도 반역죄입니다. 저도 그와 함께 감옥에서 살도록 해 주십시오.” 왕은 거절했다.
  허나 그녀는 물러 설 기색이 전혀 없이 손에 끼고있던 반지를 빼어 왕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폐하, 이 반지를 잘 보십시오. 거기에는 ‘Mors Sola(오직 죽음만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남편이 무죄이건 유죄이건 제겐 상관없습니다.”
  왕은 그녀의 간청을 허락하여 남편과 함께 감옥에서 살게 하였다. 17년이 지나서 왕이 죽은 후에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후 결혼식장에서 성직자는 Sola Mors를 선언했고 사랑의 징표에도 새겼다 한다.
  사랑엔 두 가지가 있다. Love와 Infatuation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편안한 사랑’과 ‘불안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혹시 마음이 변했을까 불안하고 전화라도 제때 받지 못하면 의심스러우며 근사한 치장에 더 끌리는 감성적인 사랑.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적인 사랑. 공연히 약점 잡힐까봐서 눈치 보아야하는 사랑.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야 하는 짜증나는 사랑들이 후자이다.
  그것에 비해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듯이 마음이 편안하고 연락이 없어도 의심이 안가는 관계. 상대를 더 아끼고 존중하며 부족한 점도 열어놓고 서로 감싸주는 그런 관계.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건 상대로 인해 서로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가는 관계가 전자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뿌리가 먼저 내리고 나서 잎과 줄기가 한번에 조금씩 자라 성장해 가는 관계이다. 깊은 뿌리의 신뢰 속에서 자라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이 사랑이 바로 Love이다.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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