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그램

2012.03.23 02:32

김학천 조회 수:747 추천:114

술에 취한 어느 신사 한 분이 급한 김에 골목어귀에서 실례를 하고 있었는가 보다. 경찰이 다가와 벽에 써 붙인 ‘소변금지’란 경고 문구도 안 보이느냐고 하면서 연행하려하자 이 양반 하는 말이 걸작이다. ‘경관나리, 한자어는 자고로 오른쪽에서부터 읽는 것 아니요? 그러면 이것이 ’지금 변소‘ 이니 내가 규칙을 어기고 있는 게 아니라오.’ 했단다.
  우스개 소리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생활 속에서 이렇듯 억지와 무리로 뒤죽박죽으로 얽히거나 거꾸로 돌아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Live(삶)이란 글자를 거꾸로 하면 Evil(악마)가 되고 이 철자의 순서를 바꾸어 보면 좋지 않은 의미의 Vile이 되니 순리가 아닌 역행은 옳지 않은 것 같다. 허나 Roma의 철자를 거꾸로 하면 Amor(사랑)가 되어 퍽이나 낭만적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단어뿐이 아니라 문장을 가지고도 철자의 자리를 바꾸어서 전혀 다른 문장을 만들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변형해서 뜻을 바꿀 수도 있다. 예를 들어 Psychotherapist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Psycho, the rapist’가 되어 끔찍한 단어로 되는가 하면 ‘The IRS’의 경우 두 단어를 합치면 ‘Theirs’가 되어 상당히 냉소적이지만 재미있다. 이런 것을 Anagram(글자수수께끼)라고 한다.    
  이것은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마치 이른 아침 맑은 이슬 한 방울을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들어내지만 꽃이 먹으면 달콤한 꿀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내 손에 쥐어진 막대기 하나는 기껏해야 동물을 쫓거나 지팡이로 쓰이지만 모세의 손에서는 홍해를 가르는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내 손에 있는 농구공은 20여불 어치이지만 마이클 조단 손에 잡힌 농구공은 3천만 불의 가치로 올라간다. 내 손의 작은 새총 하나는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다윗의 손으로 가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조국을 구하는 무기가 된다. 내가 갖고 있는 못은 벽에 박아서 그림을 거는 정도이지만 예수의 손에 있는 못은 인류를 구원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 걱정이나 두려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희망과 꿈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사회 정의에 관한 이 모든 문제들도 우리가 사고방식을 바꾸고 의식구조를 고치면 확실히 큰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과거에 시작된 일이 지금 엉망으로 뒤틀려 있을 때조차도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시작을 새로 다시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판단여하에 따라 새 모습의 끝맺음으로 마칠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Anagram의 의미가 아닐는지.
  어느 가톨릭 학교의 교리시간에 있던 일이다. 선생님께서 ‘양을 치는 목동이 신부님이고 양들이 우리라면 목동을 도와 양을 지키는 이를 무엇이라 할까요?’물었더니 한 어린이가 손을 들고는 ‘개’요 했단다. 졸지 간에 ‘보좌신부’가 ‘개’가 된 것이다.
  허나 이는 맞는 말이다. 우리말에 ‘개’라 하면 대개가 부정적인 단어들을 만든다. ‘개차반’이니 ‘개살구’처럼. 하지만 ‘개’는 실상 ‘세퍼트’라 하면 지켜주고 돌보아 주는 고마운 양치기이다. ‘개(dog)’의 Anagram은 ‘하느님(God)'이 되어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분이 되고 ‘개 같은 인생’(It's a dog's life.)의 Anagram은 It is false, God.이다.
  우리의 마음에 따라 ‘God is nowhere.’도 ‘God is now here.’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칼럼)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54,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