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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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할머니의 복주머니

2023.07.01 22:25

조형숙 조회 수:23

 복주머니는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여러가지 길상무늬를 수놓은 주머니다. 갖가지 색깔의 비단이나 무명천으로 만든 주머니는  윗쪽이 열리게 되어있고 둘레를 끈으로 꿰어 열었다 닫았다 할 수가 있다. 색이 고운 천에  좋은 뜻을 지닌 한자를 무늬처럼 수놓아 만든다. 물건을 넣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주로 정초나 특별한 날에 선물하며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복주머니를 지니면 일년 내내 만복이 온다하여 친척이나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조그만 것이지만 정성을 다해 글을 쓰거나 수를 놓는 장신구여서 매우 귀하게 여겼다. 
 
    마루에 누우면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린 시절 느티나무 그늘 평상에서 가슴으로 받던 바람은 짜랑짜랑 귀를 흔들던 매미의 열창과 함께 내게 왔다. 그 바람이 할머니의 부채에 실려와 잠든 얼굴 위로 퍼진다. 
초록초록한 들판에서 불어오는 풍요로운 바람이 가슴으로 스쳐온다. 잠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가 뜨면 나를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선잠 깨기를 기다렸다는듯이 꺼내 주시는 달달한 과자 몇개. "너 줄라꼬 감차아 났다"  치마속에 달린 주머니에서 나온 과자는 따뜻했다. 온기가 전해졌다. 밀크카라멜이 나왔다. 때로는 미국 과자 리츠도 있었다. 커다란 눈깔 사탕은 먹기 좋게 잘려져 있었다. 한입에 먹기 좋았다.
 
    할머니의 속바지에는 항상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열었다 닫을 수 있는 주머니는 오래된 천으로 손바느질 하여 만든 작은 복주머니였다. 손으로 듬성듬성 홈질하여 바늘땀이 촘촘하지는 않아도 얌전했다. 할머니의 속주머니는 색상도 곱지않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소중한 내 추억들이 담겨져 있다. 주머니속에는 할머니의 기쁨과 즐거움 소망과 기다림이 골고루 들어있다. 그 속에는 꼬깃꼬깃 접은 용돈이 있었고 하얀 무명으로 만든 손수건도 있었다.  유독 나에게만  감추어 놓았다가 꺼내 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이, 아득히  먼 할머니와의 추억을 불러온다. 할머니 냄새 난다고 손사래를 쳐도 굳이 먹을 것을 꺼내어 주셨다.  작고 소박한 것에 담겨있던 할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정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시골집을 팔아 사위가 하는 사업에 넣고 나서 서울 딸네로 올라오셨다. 고향이 그리우신 할머니는 집안 마당을 뺑돌려 꽃을 심으셨다. 여름에는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에 빨간물을 들여 주셨다. 잘익은 봉숭아 꽃잎을 따서 백반(명반)과 으깬다음 손톱에 얹고 큰 깻잎으로 손가락을 둘러싸고 실로 꼭꼭 묶어 고정시켰다. 행여 움직이면  빠질까봐 열손가락을 펴고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었다. 겨울에는 마당에 눈이 쌓였다. 가마니로 덮어 놓은 김장독을 열고 할머니 몰래 꺼내 먹는 총각김치의 맛은 일품이었다. 아삭아삭 상큼한 총각무우의 맛이 다 가시기 전에 자꾸 꺼내 먹었다. 친구를 데려와 함께 꺼내 먹다가 혼이 났다.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할머니가  미웠다. 정초가 되면 마당에서 널을 뛰며 놀았다. 할머니는 넘어지면 다친다고 뛰지 못하게 했으나 친구들과  뛰는 널은 더 높이 오를수록 까르르 까르르 재미있었다.
 
어려서는 할머니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할머니로 생겨 나는 줄 알았다.  그저 그렇게 우리 곁에 사는 것인가보다 했다. 늘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썼다. 때로는 간섭하는 것으로 여겨 귀찮을 때도 있었다. 철이 없던 어린시절이었다. 내가 나이들고 보니 그것은 다 사랑이었다. 할머니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꽃다운 청춘이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자손위해 쓰셨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자손을 위한 사랑의 보물단지 였다. 복주머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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