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0

2011.03.18 11:45

김영강 조회 수:458 추천:47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0회


   집에 온 후, “정말 이상하네. 임신이 될 리가 없는데··· ···.” 하는 그의 말이 다시 나를 괴롭혔다. 혹시 그가 ‘나를 의심해서 한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건 절대 아닐 거라고 마음을 놓았다.  

   어쨌든 진단은 받아야 하니, 이주일 후 병원 예약을 했다. 예약도 그가 다 알아서 해주었다. 그 이주일 동안 나는 내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서 나를 나무랬다. ‘그가 끝까지 유산을 고집하면 혼자 나아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유학생이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도대체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아기는 다음에 얼마든지 나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그에게 저절로 넘어가버렸다. 언제나 나는 이민우 원하는 대로 따랐으니 마땅한 일이었다.  
  
   병원에 갈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무서웠다. 병원 앞에 서니 더 무서웠다. 예약이 된 병원은 종합병원에 부속된 산부인과가 아닌 자그마한 개인병원이었다. 그가 병원 문을 여는데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얼른 나를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태어나서 산부인과라고는 첫 발걸음이었다. 배가 아주 부른 젊은 여자 두 명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신혼부부로 비쳤을 것이다. 나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는 태연하게 모든 수속을 밟았다. 신상조사서 등, 모든 것을 작성해주었다.  
  
   임신은 확실했다. 그 날로 바로 수술을 할 줄 알았는데 검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주겠고 했다. 내 마음은 또 흔들렸다. 아무 대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애를 낳고 싶었다. 그와 나 사이에 태어나는 아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예쁠 것 같았다. 위대한 인재로서 온 세계를 위해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그런 아기가 태어날 것 같았다. 얘기를 비쳤다가 나는 또 설득을 당했고, 그가 원하는 쪽으로 내 마음도 굳어졌다.  

   며칠 후,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수술 역시 큰 병원이 아닌 그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부분 마취를 했기 때문에 정신은 말짱했다.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눈을 감았는데 목구멍으로부터 치솟아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만 벌떡 일어나고 싶었다.  
  
   그는 자상스럽게 나를 부축하여 차에 태웠고, 시트 벨트까지 매주며 신경을 썼다. 그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오직 이민우라는 남자만 바라보고 있는 유해주가 불쌍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있는데 또 눈물이 흘렀다.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잔기침을 했다. 그가 얼른 “어디 아퍼? 속이 안 좋아?” 하고 놀래서 물었다.

   “속이 메슥메슥해요 막 토할 것 같아요. 차 좀 세우면 좋겠어요.”

   “그래그래. 다 왔어. 여기 바로 약방이야. 의사가 처방해준 약 먹으면 괜찮을 거야.”

   그는 부리나케 차를 세우고 나를 부축하고는 한쪽 구석으로 가, 토하라면서 등을 두드렸다. 그러나 속만 메슥거렸지 토해지지가 않았다. 그는 얼른 약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내가 혹시 잘못될까 봐 무척이나 염려하는 태도였다. 약에 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그가 내게 남편 노릇을 해주었다.

   “간호사가 그러는데 유산한 것도 아기 낳은 것과 똑 같다고 몸조리 잘 해야 된다고 했어. 며칠 동안은 푹 쉬어야 돼.”

   며칠 동안이었지만 그는 음식에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아주 빵점짜리 남편이었다. 미역국을 끓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마른 미역을 그대로 국을 끓였다.  “미역이 왜 이렇게 자꾸 많아지지? 아이구, 자꾸 넘치네. 해주야, 해주야, 일루 잠깐만 와 봐."  

   나 역시 부엌하고는 거리가 먼 여자다. 끼니는 라면으로 때울 때가 많고, 음식은 아주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미역국은 물에 불려 깨끗이 씻은 다음에 끓여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이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나는 즐거웠다. 아기를 없애자고 제안한 그가 무책임하게 보였던 감정도 다 사라지고 그의 제안에 잘 따랐다고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임신과 유산의 경험을 절대 비밀에 붙였다. 이민우 앞에서도 그 얘기는 입에 담기가 싫었다.    
    
   우리는 학교에 적을 둔 채 일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졸업은 자꾸만 멀어져갔다. 그는 전공을 공과 쪽으로 바꾸고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다행히 우리는 과외공부 지도로 돈을 벌 수 있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신문에, 유학 온 여학생들이 술집으로 빠져 곤욕을 겪는 기사가 더러 나도, 내게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고, 차라리 식당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지 왜 술집에서 남자들의 추태를 받아주면서 그 곤욕을 치를까 하고 의문을 갖는 내게 과외 선생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학생들은 거의가 다 한국 아이들이었다. 가르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과외를 시킨 후로, 성적이 부쩍 올랐다면서 기뻐하는 학부형을 볼 땐, 나 역시 보람을 느껴 즐거웠다.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아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붙들고 나도 팔짝팔짝 뛰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수학시험이 있는 날에는 일찌감치 학교에 가서 나는 반 친구들의 질문을 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이 아예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들이 그랬다. “선생님이 설명할 때는 잘 이해가 안 됐는데 네가 풀어주니까 금세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열심히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입소문이 나, 과외지도를 해달라는 의뢰가 늘어났다. 한두 명씩 개인지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다섯 명씩 조를 짜서 그룹지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르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늘 피곤에 쌓였지만, 내 몸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가르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지루해 하지 않을까 하고 방법을 연구하며 공부했다. 학교공부보다도 가르치는 일에 더 몰두했다.

   그러나 떨쳐버릴 수 없는 한 가지 걱정, 그것은 학생신분에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뭔가에 쫒기는 듯한 불안한 마음에 때로는 가슴이 오그라들었으나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주는 과외지도는 내게 있어 구세주였기에 도저히 그만둘 수는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나는 학교로부터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받고 있었지만 그 돈만 가지고는 어림없었기에 과외지도는 내게 튼튼한 생활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자연히 졸업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이민우도 내게서 멀어져갔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과외지도가 적성에 안 맞는다며 일을 그만 두어, 나는 그의 학생들까지 떠맡게 되었다. 그에게는 여학생들이 유난히 따랐다. 학부형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생, 그 이상으로 처신하는 적은 절대로 없었다. 잘못하면 루머에 말려들어 황당한 일을 겪을지도 모르니 가르치는 데만 전념하라고 내게도 충고를 해주었다. 그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선생 노릇은 했지만  나처럼 가르치는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그가 그만 둔 후,  내 몸과 마음은 더욱더 피곤에 절었다. 눈앞에는 자욱한 연기들이 날이 갈수록 짙어만 갔고, 가슴속에도 연기가 쌓여 숨을 쉬어도 답답했다. 그와 만나는 횟수도 점점 더 느슨해졌다. 사실, 오후 시간을 쪼개 여러 그룹을 뛰다 보니 저녁도 차에서 먹어야 할 정도로 바빠 한가롭게 그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항상 이민우가 우선순위에 있었기에 아무리 바빠도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미국에 첨 왔을 땐, 그로부터 일체 무소식이었는데도 나는 씩씩하게 공부에 몰두했고, 이민우 생각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로부터 전해오는 싸늘한 냉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초조한 가슴을 안고 전화를 기다렸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그의 그림자라도 찾으려고 학교의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녔다. 약속시각이 지나 한 시간씩 기다리기는 보통이었고, 그가 나타나면 화를 내기는커녕 그냥 반갑기만 했다. 그는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는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푸른 나무였다. 그리고 그 푸른 나무는 내 맘속에서 늘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린 다시 만나 새로 시작했지만 역시 미래는 불투명했고, 강미경이 등장한 후부터는 캄캄한 터널이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똑똑하고 예쁜 여자, 같은 여자가 보아도 어딘가에 끌리는 매력을 가진 강미경, 그리고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다. 나하고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되는 상대였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내 형편은 뛰어도, 뛰어도 넘어야 할 험난한 고개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강미경은 확 뚫린 고속도로를 승용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으니, 이민우는 그 옆자리에 타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아직까지 영주권도 해결하지 못한 처지이니 더 이상 같이 있어봐야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그리고 이 상태로 가다간 언제 공부가 끝날지도 모르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자고 했다. 말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예리한 칼로 무를 싹뚝 잘라버리듯한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갑자기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충격이 왔다. 아찔함에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퍼졌으나 잠시 숨을 고르고 나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영주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우린 한국으로 나가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잖냐고. 마음속에서는 ‘그래요? 도움이 되는 삶이 어떤 건데? 그게 바로 강미경을 택하겠다는 소리예요?’ 하고 부르짖고 있었으나 나는 끝까지 냉정을 지키며 침착했다.      

   그의 말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조차도 없었다. ‘미안해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어.’ 하고 그가 곧 말을 번복하리라는 한 가닥의 끈을 붙잡고 나는 기다렸다.

   그러나 이민우는 한걸음에 훌쩍 강미경의 영토에 발걸음을 옮겨버리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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