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1

2011.03.25 08:57

김영강 조회 수:548 추천:94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1회



    뇌에서는 분명히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가슴 한구석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그대로 멎어버려 내 인생도 멈추어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온통 안개비와 같은 눈물기가 뿌옇게 어렸다. 몇 남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들이 후득후득 떨어지고 있는 길거리에는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땅거미가 짙어가는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기도 했다. 환하지도 않은 불빛들이 하나 둘 꺼져가는 거리의 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불 꺼진 내 좁은 아파트밖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은 어둡고 초라했다. 그 방에서 나는 허리를 꺾고 통곡을 했다. 고아가 되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을 실감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강의실에 앉았다가도 그만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 살그머니 빠져나와 화장실에 앉아 소리를 죽이며 흐느꼈다.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라디오의 볼륨을 아주 작게 낮춘 것처럼 숨을 죽여 울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밤마다 시커먼 돌덩이 하나를 삼킨 듯한 무거움에 가슴이 짓눌려 나는 신음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막막해서 창문의 커튼조차도 젖히기가 두려웠고, 숨을 쉴 때마다 바늘로 속을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이럴 때 어머니가 곁에 있기만 해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이 다 맞았어요. 그는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어요. 아이까지 생겼는데, 그는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였어요.’ 하고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이 그리웠다. 퇴색되어 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고, 가슴이 저미게 보고 싶어 어떤 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신기한 인생이지만 내 20대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치리라고는 참말로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이민우마저 떠나고 나니 부모의 자리가 내게는 우주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부모가 떠난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사실이었다.

   이렇게 울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음을 모질게 먹으려고 했으나 그게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안 됐다. 공부도 귀찮고 일도 귀찮고, 슬프기만 했다. 그리고 허무하고 나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서다가 어지러워 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저앉기도 했고, 발걸음을 떼다가도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옆으로 쓰러지며 걷다가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가끔 경험했던 빈혈기가 아주 심해진 것이었다.  내 온몸이 가루가 되어 침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누웠으면 천장이 혼란스럽게 어른거리다가 밑으로 살살 내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주 무서운 꿈을 꾸었다.

   침대와 벽 사이에서 작은 몸집의 여자 하나가 발발 기어 나왔다. 하늘하늘한 감으로 만든 연두 색깔의 몸베 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샛노랑에다 바글바글 볶은 쇼트커트였다. 그리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반듯이 앉아 두 팔로 내 옆구리를 싹싹 밀었다. 미는 힘이 아주 약해 별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나는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이 같은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으나 얼굴은 분명히 어른이었다. 나는 “아아---악”하고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꿈같지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그 생김새가 너무나 뚜렷하게 기억났다.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에 코도 동그랬다. 입은 작았으나 도톰했다. 나를 내려다보며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은 무서웠다. 자려고 도로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뭔가 무섬증이 몰려왔다. 전신에 서늘한 기운이 퍼지면서 가슴이 조여들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모로 누워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면서 온몸을 돌돌 말아 구기고는 눈을 꼭 감았으나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반듯하게 단발머리를 한 소녀 서넛이 난데없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옷도 똑같이 무릎 밑에까지 내려온 꺼먼 드레스를 입고 머리도 새까맸다. 하나같이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며 침대 시트를 붙들고 벌벌 떨었다. 바닥에 떨어진 꺼먼 소녀들이 침대로 기어오르는 것 같아 얼른 돌아누워 눈을 질끈 감고는 어금니를 꽉 물고 온몸에 힘을 주며 가쁘게 숨을 쉬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섬증을 모르는 아이였다. 텅 빈 집에  혼자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이 안 올 때는 귀신 나오는 영화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곤 했다.

   수학여행 가서 밤에 화장실을 갈 때, 아이들은 꼭 나를 깨웠다.

   "너, 가버리면 안 돼. 나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돼."

   그때는 지금과는 달라 여관이라는 곳에 학생들이 단체로 묵었고, 화장실이 건물 안에 붙어 있지 않고 일단 신을 신고 마당을 지나야 했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좀 발전을 한 데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을 때였지만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재래식 변소가 그대로 있었다. 더구나 서울이 아닌 시골은 더 그랬다. 컴컴한 여관 마당이었으나,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두 손을 펼쳐들고 심호흡을 하는 것이 나는 아주 상쾌했다.
  
   그런데 꿈을 꾼 다음부터는 괜히 가슴이 오싹오싹해지고,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이 서서히 엄습해왔다. 혼자 있기가 불안했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누구라도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너무나 절실했다.

   어느 날 밤에는, 액자 속의 꽃잎과 나비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내 좁은 아파트에 날아다녔다. 꽃이 나비인지 나비가 꽃인지 분간이 안 되게 그들은 어우러져 날아다녔다.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하고 눈을 아주 크게 뜨고 미간에 힘을 주며 시선을 꽂아도 꽃잎들과 나비들은 한데 어우러져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신경이 약해져 헛것이 보이는 게 분명했다. 마음이 쇠약해지고 보니 이민우가 더 생각났다. 그가 곁에 있으면 무섬증이 단번에 해결될 것 같았다.  
  
   바보스럽게도 나는 가끔, 그가 ‘미안해.’ 하고 내게 도로 돌아올 것 같아 침묵하는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가 벨 소리가 나면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곤 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을 헤매면서도 전화통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가슴만 조였다.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슬픔과 아픔과 비참함까지도 모두가 한순간에 다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붙들고 있는 한 가닥 끈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강미경과 결혼을 했다.
  
   그때 나는 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나와 이민우를 갈라놓았어요. 교회에 안 나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책임지세요. 하나님이 책임지세요.’

   사실, 내가 교회에 나간 기간은 극히 짧았다. 이민우가 내게서 등을 돌렸을 때, 나도 교회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도 없었고 목사와도 별 안면이 없는 처지였는지라 내가 발길을 끊은 것을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애경이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들도 교회에 안 나왔으나 결혼식은 어느 미국교회에서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고 했다. 이민우 쪽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아무도 참석을 안 했다고 한다.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 모두가 다 신부 쪽 손님뿐이었다면서 애경은 깔깔대고 웃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이민우 말야. 고아니? 부모가 없어?”

    하지만 나는 그런 얘기조차도 듣기 싫었고 더더구나 이민우의 집안 얘기는 입에 담기조차도 싫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애경이의 말은 뇌성번개가 되어 내 정수리를 후려쳤다.  

   “근데 빅 뉴스가 있어. 강미경의 혼전임신. 어때 너한테는 빅빅 뉴스 아니니? 우리 부모가 결혼 반대한 거 너도 알지? 그런데 금세 허락을 받아내고 결혼을 한다기에 이상하다 했더니, 언니가 임신을 했더라고.”  

   ‘뭐라고. 내 아이는 그렇게 죽여 놓고 강미경과는 아이 때문에 급히 결혼을 했단 말이지?’

  부르르 치가 떨리며 어금니 사이에서 소리가 부서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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