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3

2011.04.08 16:24

김영강 조회 수:728 추천:99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3회



   그 다음날부터 매일 거울에 비춰보며 자꾸 퍼지고 있는지 그리고 색깔이 더 진해졌는지를 비교해봤으나 크게 진전된 것은 없었다. 피부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냥 차일피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반점들이 온몸에 퍼지고 얼굴에까지 침범을 한 괴물 형상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친 적도 있었다.
    
   닥터는 50 중반쯤 돼 보이는 동양여자였다. 그녀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왔을 때, 어찌나 반가운지 오래된 지인이라도 만난 듯해 가슴이 찡해 왔다. 그녀는 애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한국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척추신경전문의인 줄은 몰랐다. 그녀는 먼저 맥을 짚어 봤다. 순간, 나는 맥만 짚어도 임신과 유산 사실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충격을 느꼈다. 그녀는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심신이 많이 피로해 있어요.”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녀는 나를 침대에 누이고 허리에 목각으로 된 기구를 받쳐놓고 내 몸을 요리조리 틀었다. 그리고 내 오른팔을 치켜들고 왼편어깨를 팔꿈치로 꾹꾹 눌렀다. 나는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체격도 크지 않은 여자가 어찌 그리도 힘이 센지 놀랄 지경이었다. 동작을 멈춘 그녀가 말했다.

   “아팠죠?  이제 조금 나아질 거예요.”

   잠시 후, 닥터 윌헴은 나를 엎드리게 하고는 허리와 어깨, 발등과 손등에까지 침을 꽂고,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질 거예요. 삼십 분 후에 올 테니 푹 쉬고 있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문을 닫고는 병실을 나갔다. 재깍재깍하고 초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 말대로 통증도 덜했고 마음도 점점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침 치료를 끝내고, 그녀는 물리치료 기구로 어깨와 허리를 마사지했다. 순간, 겨드랑의 반점들이 생각났다. 사실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피부에 더러운 것이 생긴 것 같아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해주 씨의 몸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어요. 정상적인 궤도를 돌아야 하는데 그 궤도를 이탈한 거지요. 자꾸 딴 데로 가는 것을 궤도에서 잡아당기니 몸이 찢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우선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생활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몸에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야 하니 먹는 것에 특별히 신경 쓰고, 숙변도 제때에 잘 봐야 하고요.”
  
   갑자기 애경이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예전에 그녀도 닥터 윌헴과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해주야, 너 그렇게 안 먹으면 어쩌니.  요것조것 골고루 먹어야 해. 귀찮다고 안 먹고, 하기 싫어서 있는 거 한 가지만 깨작깨작 먹고, 그러니까 변비에 걸리지. 음식이 여러 가지 다른 종류가 들어가고 나올 만큼 분량이 있어야 나오지, 너 그 따위로 먹는데 뭐가 나올 게 있겠니? 너 일주일에 한두 번 변소 간대매? 언젠가 너 나한테 그랬잖아. 지금도 그래? 그러다가 너 정말 큰일 나. 내가 보기엔 너 생활습관부터 바꿔야 될 것 같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한 얘기였지만 나는 애경이 말이라면 무조건 시답잖게 들려 코웃음을 쳤었다. 어느 날, 어쩌다 화장실 얘기가 나왔는지 기억에는 없으나, 그날 애경이는 모든 병의 근원은 숙변에 있다면서 한바탕 연설을 했었다.

   사실, 나는 그간에 계속 변비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런데 아프고부터는 힘을 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온 엉덩이가 둘러빠지고, 왼쪽 허벅지 뒤쪽이 시큼시큼하며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

   “선생님, 요즘 변비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요. 힘을 주면 아랫도리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같이 아프고 양다리까지 찌릿찌릿해요.”

   “아플 때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충분하게 먹어야 해요. 다른 종류의 음식들이 들어가서 서로 섞여야 숙변도 부드럽게 나오고요. 그리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해요, 힘이 들면 우선, 눈뜨면 바로 물에다가 올리브 오일을 몇 방울 타서 마셔 보세요.”  

   애경이 말을 좀 일찍, 조금이라도 귀담아 들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닥터 윌헴은 반점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피부과에 가지 말고 우선은 좀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잘 하면 저절로 없어질 수도 있어요. 큰 병은 아니니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이런 이상 현상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우선 일을 줄이고 몸을 쉬게 해야 됩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엉망으로 살아왔다. 마음의 괴로움이 몸을 학대해 감정이 그대로 육체로 전이된 것이었다. 나쁜 꿈을 꾼 것도 그렇고 헛것이 보이는 것도 몸이 약해졌기 때문일 게다. 무섬증에 시달리고 있는 애길 할까 말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그날은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병원에 입원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엘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애경이한테는 연락이 안 됐다. 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으나 끊고 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을 나오니 애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나를 부축하며 업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괜찮아요. 친구가 데리러 올 거예요.’

   이렇게 말 할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도 떠나버려, 외톨이로 세상에 남은 나 자신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그간에 나는 내 속을  터놓을 만한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소극적인 내 성격 탓일 게다. 더구나 이민우한테만 나의 전부를 걸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올 때는 정신이 없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업혀왔다. 하지만 맨 정신에는 도저히 그에게 업힐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탔다. 너무 뻔뻔스럽게 비춰지고 있는 나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친구한테 연락이 안 돼서····. 정말 죄송해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처럼 ‘부끄럽다.’ 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좀 어떠냐고 그가 물었다. 통증은 여전했으나 아까처럼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통증이 없는 척, 괜찮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도착해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우겨, 겨우 그를 돌려보냈다. 그는 내 맘을 정확히 읽고 차를 돌렸다.
  
   앉아 있을 때보다, 걸으려고 하니 다리가 찍찍 당기면서 통증이 심했다.  “아,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나는 왼다리를 질질 끌며 방에 들어오자마자 마룻바닥에 널브러졌다. 겨우 몸을 움직여 천장을 쳐다보며 똑바로 누웠다. 엉덩이가 배겼다. 배기는 정도를 지나 꼬챙이로 콕콕 찌르는 것같이 살갗이 아팠다. 바닥에 닿는 면을 바꾸어보려고 꼬리뼈를 약간 들어 엉덩이를 오른편으로 틀었다가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처음 넘어졌을 때와 같이 왼다리가 뻣뻣해지며 통증이 전신으로 몰려와 숨쉬기도 힘들었다.

   조금 숨을 고른 다음 나는 벌벌 기어서 침대로 향했다. 침대 옆쪽을 겨우 집고 서서 구르듯이 시트 위에 몸을 부렸다. 허리 아플 때는 딱딱한 데에서 자야 한다는 것, 내게는 맞지가 않았다.

   외로움이 죽을 것 같은 통증보다 더 강하게 온몸을 에워쌌다. 반듯이 누웠는데 눈물이 눈가장자리로 주르르 흘렀다.        

   언뜻 ‘애경이한테 연락해서 병원 갈 때 라이드라도 부탁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민우가 떠올라 포기했다.

   꼼짝을 할 수가 없으니 우선은 며칠을 푹 쉴 작정이었다. 학교도 학교지만 과외지도에 차질이 생겼으니 아이들한테 전화를 해야 했다. 그곳에 행운의 여신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한 학부형이 자청하여 라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민우 반에서 넘어온 학생인 크리스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반찬도 만들어 가지고 왔고 집안 청소도 해주었다.

   여러 가지 반찬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닥터 윌헴의 말대로 열심히 먹고 올리브 오일을 물에 타서 부지런히 마셨다

   크리스틴은 키도 크고 체격도 커 고등학생인데도 어찌 보면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이 서글서글했다. 눈뿐이 아니라 입도 코도 다 큼지막하고 광대뼈도 나온 편이라 어찌 보면 좀 억센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피부색은 창백하리만치 하얬다. 빠짝 마른 몸매와 더불어 그 생김새가 꼭 모델 같았는데,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늘 밝은 얼굴로 나를 깍듯이 대해 주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큰 것은 비슷했으나 성격은 아주 딴판이었다. 어머니는 활짝 갠 날에 밝게 살고 있는데, 크리스틴은 우중충한 날씨에 추위에 떨고 있었다.

   ‘입양이 되어 그럴까?’  <계속>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
전체:
74,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