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4

2011.02.04 12:41

김영강 조회 수:510 추천:60


-장편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4회



    언니는 애경과 인연이 끊어진 2년 동안,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았고, 걱정이 되기는커녕 어디서 죽었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솔직하게 표현을 하면서도 핏줄은 어쩔 수 없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지금은 어디서 어찌 지내고 있을까?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하는 의문이 언뜻언뜻 머리를 스쳤다고 서술하고 있었다. 갑자기 쓴 웃음이 인다. 언니라는 호칭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고 정겹기까지 해서다.

    ‘그렇지. 언니, 언니 하고 부르며 우린 친자매처럼 친했던 한때가 있었으니까.’

    그 당시, 나는 애경이한테 어쩜 이런 언니가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워했다. 도무지 애경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미경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내 마음에 애경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하루는 애경이 말했다.    

    “야, 네가 꼭 강미경 친동생 같다야. 너 가져. 네 언니 하라고. 하지만 강미경을 너무 좋아하지 마. 끝에 가선 너를 꺼꾸러뜨릴지도 모르니까.”

    일침을 가한 애경의 말이 맞아떨어지긴 했으나 이민우가 변심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를 정말 좋아했다.

    “해주야, 너는 세상 보는 눈이 왜 그리 바보 같으냐? 친언니지만 내가 우리 언니 싫어하는 거 너 잘 알지?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너한테 무지 잘해주니까 지금 네가 홀딱 속고 있는데 하여튼 조심해.”

    ‘거기에 이유가 있긴 있겠지. 언니를 못 따라가는 네 질투겠지. 그리고 언니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너는 속상할 거야. 네가 보기엔 너한테 문제가 있지, 언니는 정말 착한 사람이야.’

    사실이 그랬다. 언니는 누구에게나 선을 베풀며 친절했고 교회에서도 봉사에 앞장 서는 여자였다. 애경은 언니가 교묘하게 술수를 써서 내게서 이민우를 빼앗아 갔다고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을 다 안 좋게만 얘기하는 애경이가 내게는 도리어 이상했다.

    칭찬할 점이 많은 사람도 그녀는 항상 단점만을 후벼 팠다. 교인 중에서 환자 방문에 앞장서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내가 칭찬이라도 하면 “애, 그까짓 죽 끓이는데 돈이 얼마나 든다고 그래? 그 여자, 사람들 보라고 겉으로만 하는 척하는 거야.” 하고 내 말을 묵살했다. 자기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그랬다.  

    “아니 저렇게 못생긴 게 주인공이야?”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 여느 때 같으면 무시를 해버리는데, 그 날은 내가 한마디 했다.

    “저만함 아주 예쁜 거 아냐? 저 눈 봐. 얼마나 예쁘니?”
    
    내 눈엔  정말 예뻤다.

    “저거 말야. 다 뜯어 고친 거야. 쌍꺼풀하고 코 높이고 턱 깎고····. 다 고쳐서 만든 인공 미인인데 뭐가 이뿌냐? 내 눈엔 하나도 안 이뿌다.”

    앞뒤 말에 늘 일관성이 없는 애경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킥킥 웃고 있었다. 애경이가 성형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를 생각하면 둘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녀인지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친 게 뻔하다.

    “저 새끼 저거는 눈이 쭉  찢어진 게, 꼭  쓰리꾼처럼 생겼네. 쟨  또 왜 저래.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가지고····. 저게 바로 과부상이야. 과부상.”  애경은  한국어의 상스러운 어휘들을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알며, 또 그 어휘들을 마구 사용했다. 불쾌했지만 귓결로 흘려버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나는 또 반박을 했다.

    “너는 왜 그러니? 남의 얘길 왜 그렇게 꼭 안 좋게만 하니? 그런다고 너한테 뭐 이익 되는 거라도 있어? 돈이 생겨? 밥이 생겨?”

    “저런, 세상을 좀 똑바로 보고 살아. 하여튼 너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 안 통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치관과 사고방식과 모든 것이 너무 달라 말이 안 통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언니가 소설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때는 나 역시 애경이와는 인연을 끊고 싶었기에 소식이 없는 것이 차라리 더 좋았다. 사실, 나하고도 큰 사건이 있었다. 내게는 그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언니한테 하던 식으로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내게 뒤집어씌우며 협박까지 했다. 나는 그녀가 이민우의 처제라는 인간관계에서도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불쑥불쑥 찾아와서는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해야 돼” 하고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하면서, 괜찮은 남자 물어서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나를 끈질기게 들볶는 것은 정말로 지겨웠다. 그 당시 나는 남자라면 그 ‘ㄴ’ 자도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이었고 훗날, 남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애경을 통해 소개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 결국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죽은 지 한참 후에야. 애경의 무덤에라도 찾아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애경은 화장으로 처리되어 한줌의 재로 산산이 흩어져버린 후였다. 찾아가서 용서를 구할 무덤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의 타버린 재가 어디에서 흩어졌는지, 그 바닷가에라도 가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남편이라는 호칭으로 이민우를 묘사하고 있었으나 나는 그냥 담담한 기분으로 ‘이건 그가 아닌데, 어마 이건 바로 잘 그렸네.’ 하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스무고개를 넘듯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이민우는 다 스쳐갔으나 애경의 죽음은 스쳐갈 수가 없었다. 그 죽음엔 분명 어떤 흑막이 가려져 있을 것만 같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애경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쪽으로 심증이 굳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남자편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녀는 “야, 일편단심.” 하고 나를 불렀다. 한 남자하고만 사귀고 있는 것이 좀 우습다는 식이었다.

    “뭐 볼게 있다고 이민우한테만 그렇게 목을 매고 있니? 너 정도면 더 좋은 남자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앞만 보지 말고 고개를 두루두루 돌려보라고.”

    그녀의 주위에는 늘 남자들이 서성거렸다. 이상하게도 애경이가 사귀는 남자는 거의 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박사나 교수, 그리고 사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부인이 있는 남자도 개의치 않았다. 대학생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으나 그녀는 공부보다도 남자하고 노는 것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녀는 꼭 한국남자들만 사귀었다. 미국남자들을 아주 싫어했다. 남자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한국적인 것을 선호했다. 음식은 물론이고 옷까지도 한국백화점에서 샀다. 이름 역시 미국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미국에 온 사람들도 영어이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수가 허다한데 애경은 그 이름을 고수했다.  

    언어도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중학교 때에 이민을 왔는데도 그녀는 한국어에 유창했다. 나보다도 어려운 어휘를 더 많이 알았다. 말의 구사능력도 탁월했다. 영어 역시 유창했다. 그 타고난 언어의 자질을 좋은 쪽으로 사용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그 능력 때문에 오히려 손해 볼 적이 많았다. 주로 남자들한테 당했다.  
  
    남자들이 처음엔 그녀의 능란한 화술에 휘말려들지만 서너 달도 못 돼 다 도망을 친다. 그러면 애경은 배반을 당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여자처럼 끈질기게 남자를 추적하곤 했다. 살인은 나지 않았으나 칼을 휘둘러 피를 본 적도 있었다. 한 유부남은 애경을 만나 적당히 놀고 치워버리려고 하다가 가정과 사업이 완전히 절단 나고 감옥신세를 지고 한국으로 추방되기까지 했다. 애경은 입에 거품을 품고 그 유부남을 짓이겼다.

    “그 개새끼 말야. 내가 그냥 안 둘 거야. 꼭 이혼한다고 철석같이 맹세를 했기에 몸도 마음도 다 주고 돈까지 갖다 바쳤는데, 이제 와서 나를 버려. 며칠 전에 와이프한테 장장의 편지와 함께 사진까지 우송했으니 지금쯤 난리가 났을 거야. 그뿐인 줄 아니? 좀 있음 그 회사 문 닫아. 그리고 그 새끼는 감옥으로 갈 거고. 두고 봐 내 말이 거짓말인가.”

    그때 애경은 분명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미친 사람이라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꼭 미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 묘사된 애경의 폭력이 그것을 더 입증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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