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젊은 시어머니

2007.10.15 00:52

김영강 조회 수:1025 추천:142

    남편의 장례식 날엔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사월인데도 몹시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장지에 모인 사람들은 우산으로 비바람을 막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이곳 엘에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날씨였다. 시어머니는 그 비를 함빡 맞으면서 자식을 잃은 슬픔에 관속에라도 따라 들어갈 듯이 몸부림을 쳤다. 미친 듯이 통곡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자식을 잃은 슬픔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따지고 보면 피 한방울 안 섞인 아들 아닌가?
  시어머니는 남편보다 겨우 아홉 살이 위이다. 남편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남편으로부터 생전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설렜던가?
  그 말 한마디에 숫한 나날들을 고뇌 속에서 헤매던 의문을 떨쳐버렸는데,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 그 의문은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남편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먼 훗날, 늙은 다음에 담담한 마음으로 옛날 얘기 듣듯 그 답을 들으리라.’ 하고 미루어 왔던 의문이다. 그러나 그 회답을 영원히 들을 수가 없게 돼버렸다.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내가 대학 삼학년 때 한국에 나와 영어 학원 강사로 근무했다. 우수에 잠긴 듯한 신비스러운 표정과 훤칠하게 큰 키, 그리고 유창한 영어, 허름한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윗옷을 걸쳐도 그의 모습은 멋이 있었다. 여학생들간에 그의 인기는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변호사에 소설가라는 직함까지 붙어 민영구라는 그의 이름은 학원가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나도 그 중의 한 여학생으로서 그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키가 작고 외모도 변변치 않아, 나는 잘생긴 남자에게는 늘 거부감을 느껴왔는데 그를 만나고부터는 내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이 원망스러워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사랑이라고는 받지도 주지도 못하면서 외롭게 자랐다. 항상 그늘에서 의붓아버지 눈치를 보며 살았다. 내가 열 살 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재혼을 했다. 아래위로 의붓형제들이 다섯 명이나 있는 높다란 저택으로 처음 들어가던 날 받아야 했던 그 차가웠던 눈초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시려온다. 그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피부를 헤집고 들어왔으나 나는 그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면서 십 년이라는 세월을 잘 넘겼다. 그리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나는 그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밤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는지 모른다. 묻어나게 짙은 어둠 속을 망연히 바라보며 가슴속의 불빛을 그를 향해 밝혀놓고 한마디 표현도 못하고 가슴을 앓았다. 그러던 중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가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기에 우리는 영어를 사용했다. 나의 영어 실력은 학원 내에서도 아주 뛰어난 편이었다. 모든 서러움을 공부로 달랬던 긴 세월의 결실이 내게 기적을 안겨다 준 것이다.

  그는 가끔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철저하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자기가 따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지금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했다. 대학 졸업반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후 일 년도 채 못돼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서 그는 쓸쓸히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 한국으로 피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가슴은 가뭄에 바짝 메말라 있었다. 그 메마른 가슴을 내가 사랑으로 촉촉이 적셔주리라 결심을 했다.

  그는 변호사 겸 소설가로, 한국에 나온 주목적은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 때문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허나 그의 말을 빌리자면, 변호사는 이미 포기를 했고 아직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쓴 글이 선생님의 눈에 띠여 어느 책에 실린 적이 있어, 그것이 와전된 것이었다. 계속 글을 쓰고 있기는 하나 출판사와의 계약이 성립되지 않아 아직 발표가 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꼭 이름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결혼 말이 오가게 됐을 즈음에 나는 모든 사실을 집안에 알렸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워낙 관심 밖이라 반대고 찬성이고 없었다. 십 년이라는 나이 차도 문제 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혼자만의 삶을 살았기에 결혼도 예외는 아니었다. 혼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저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모든 시련을 참고 묵묵히 견뎌온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항상 모든 일을 잘 처리하며 앞길을 개척하는 아주 착하고 똑똑한 아이로 착각하고 있었다. 온갖 서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많은 나날들을 눈물로 지새웠지만 그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조금도 몰랐다. 어머니가 가슴 아파할까봐 나는 서러움을 더 꽁꽁 싸매 놓았었다. 그가 계약 기간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즈음에 나는 졸업을 했고 그를 따라 미국 땅을 밟았다. 떠나기 전 날 밤, 어머니는 내 손을 붙들고 울면서 말했다.
  “넓은 세상에 가서 더 많이 공부해 네 뜻을 펴고 살아라.”

  미국에 도착한 첫날, 시아버지에 비해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너무 젊어 나는 깜짝 놀랐다. 젊은 여자와 재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렇게 젊은 줄은 몰랐다. 시아버지보다는 남편과 더 어울려보였다.
  시어머니는 키도 크고 체격도 컸으며 부리부리한 눈에 코도 크고 입술도 두툼했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광대뼈도 나온 듯해, 어찌 보면 좀 억센감을 풍기기도 했으나 개성 있는 화려한 인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젊은 시어머니를 남편은 가정부처럼 취급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머니라는 호칭도 쓰지 않았다. 시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그녀를 무시하는 행동도 서슴없이 했다. 두 남자가 너무 쌀쌀맞게 대해 도리어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쓰며 따듯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다. 시아버지가 일터로 나간 후, 남편은 글을 쓴다고 서재에 박혀 꼼짝을 안 해 나는 주로 시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자칫 잘못하면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는 사이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어머니라는 호칭도 서슴없이 나왔다.
   시어머니는 힘이 장사였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바깥일도 잘 해냈다. 정원사가 미처 치우지 못하고 한쪽으로 모아놓은 굵은 나뭇가지들도 손으로 척척 꺾어서 쓰레기통에 차곡차곡 담고, 무거운 화분들도 잘 들어 날랐다. 음식솜씨 또한 뛰어났다. 그녀는 식구들의 입맛에 맞게 온 정성을 들여 반찬을 만들었다.
  한데, 그녀는 미국 온 지가 십 년이 훨씬 넘었다는데도 영어는 거의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히스피닉 정원사한테도 한국어를 사용했고 그들도 낄낄 웃으며 용케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억양이 아주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위에서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참 정겹고 구수했는데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참으로 무지막지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시아버지는 규모가 큰 미국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툭 터인 바다를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고급식당이었다. 요리사를 비롯해 일하는 사람들이 열 명이 넘었다. 결혼하겠다고 내가 그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의붓아버지의 첫마디는, 뭐하는 집안이냐고 물은 것이다. 식당을 한다고 했더니 ‘시익따--아--앙’ 하고 목청을 높이며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한국에서 생각하던 그런 식당이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전체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점점 커져 얼마 전부터는 큰조카가 참여를 했다고 한다. 남편은 일체 관여를 안했다. 남편은 그저 서재에 박혀있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남편의 서재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소파는 물론이고 자그마한 식탁에서부터 침대까지 있었다. 그리고 널직한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붓을 꺾고 변호사가 되었으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잘 닦여진 변호사의 길을 즐겨 걸을 수도 있었건만 그 길은 그가 갈 길이 아니었다. 글은 그냥 취미로 쓰라는 아버지와 또다시 대 전쟁을 치렀지만 그는 아버지를 거역했다. 글에만 매달려 글만 쓰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죽기살기로 매달려도 좋은 글이 나오기가 어려운데 그냥 취미로 써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결국은 아버지가 손을 들고 말았고, 그는 계속해서 글공부를 하면서 작가의 문을 수없이 두드려 보았으나 그 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결혼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고 그는 소설의 소재도 얻을 겸 서울에 있는 어느 학원과 계약을 맺어 한국엘 나왔고, 그리고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미국에 발을 디딘 지 두 달이 돼갈 즈음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일 때문에 뉴욕에 갈 일이 생겼다면서 훌쩍 집을 떠났다.
   “아니 지 색시를 집에 갖다 놓고 이럴 수가 있나? 결혼한 지 울매나 됐닥고. 지 혼자 훌쩍 나가뿌리모 니는 우짜라꼬...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도는 방랑벽이 결혼을 하고도 그대로니 이 일을 우짜노? 정말 큰일이다. 큰일이야.”
  시어머니는 그가 아주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듯이 안절부절못했으나 시아버지는 의외로 침착했다.
  “곧 들어올 테니 걱정 마라. 그리고 차차로 고쳐질 거야.”
  시아버지 말대로 남편은 사흘 만에 집엘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듯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 갑다. 니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난 또 옛날모양 몇 달을 안 더러오믄 우짜노 하고 마이 걱정했다 아이가.”
  사흘 만에 들어온 것이 무슨 기적이나 되는 듯이 기뻐 야단을 하다가 그녀는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참, 내 팔자도 기구하지 기구해.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이십 년이나 우인 남자한테 시집을 왔으니 이 무신 팔잔지 모리겄다. 느이 시아버진 나를 닭 보듯 한단다. 원, 무슨 남자가 그리 비리비리한지... 그래도 속상할 때, 영구만 치다보면 그만 내 맘이 봄눈 녹듯 다 녹아내리고 했는데, 어디 집에 붙어 있어야 말이지. 소설가가 될끼라고 지 이베지랑 실랑이를 할 때, 내가 속 썩은 거는 말도 몬한다. 집에 붙어 있으려나 하면 후딱 뉴욕으로 가삐리고, 눈 빠지게 기다리도 오지도 않고, 또 서울 가서도 소식 한 자 없고. 하여튼 영구 때매 내가 애간장 태운 거는 말도 몬한다. 전화통이 울릴 때마다 혹시 영군가 하고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고, 밤중에도 문소리에 귀 기울이느라고 잠도 깊이 못 잤다 아이가. 이제 새식구가 들어와 한시름 놓는가 했더니 방랑벽은 여전하니, 지금부터는 니 책임이 크다.”
  할말 안할말을 분간을 못 하는 것인지 너무 솔직한 것인지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나와는 딴 세상에 사는 여자 같았다.
그래도 남편은 소설 때문에 취재를 하러 갔었다는 얘기는 해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따라 가면 안 돼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으나 그냥 고개만 끄떡였다. 그 후에도 그는 자주 집을 비웠다. 그리고 일주일 안에는 반드시 들어왔다.

    집 밖에서 떠도는 것, 그것은 그의 생활의 일부였기에 결혼을 하고도 고쳐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시어머니 말대로 몇 달씩 집을 비우지 않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했다. 아내와 집안 식구들에겐 그렇게도 무책임하게 굴면서 학원 강사 시절에는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준비가 철저하고, 아주 잘 가르치는 강사였다.    

  시아버지는 이렇다 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부자간에도 통 대화가 없었고 서로 얼굴을 대하는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해 시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시어머니 말대로 나는 이 집안의 새식구가 되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내 집 같지가 않았다. 왠지 불편했다. 해가 질 무렵,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겐 돌아갈 집이 없었다.

    차츰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믿고 있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내게 레스토랑 일을 배우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우선 공부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하루는 시아버지가 학비는 얼마든지 대줄 테니 공부를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내 의향을 물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으나 학교는 좀 뒤로 미루어야만 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임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임신과 학교 공부를 병행할 용기는 도저히 없었다. 남편은 별 내색이 없었으나 시아버지는 정말 기뻐했다. 공부는 다음에 하고 애부터 낳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남편은 언제 작가가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렇게 만날 글 쓴다고 매달려 있으니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네가 최선을 다해서 밀어주어라.”  
  갑자기 그는 유언 비슷한 말을 했다.
   “식당 일은 큰조카한테 맡겨놓으면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잘해 나갈 거다. 내 살아생전에 그 녀석이 쓴 소설책을 볼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언젠가는 꼭 성공을 하리라고 이 애비는 믿는다.”

  그리고 배가 차츰 불러오기 시작한 그 몇 달 후, 시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이 세상을 떠났다. 정말 뜻밖의 사고였다. 술하고는 거리가 먼 시아버지가 음주운전으로 프리웨이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는 그 자리에서 숨진 것이다.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의 시아버지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나 한 듯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다 처리를 해 놓았었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여러가지 보험을 들어 놓았고 비즈니스 문제도 완벽하게 마무리가 지어져 있었다.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배분도 완전하게 금을 그어 놓았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지만 생활 자체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남편에게서 여러가지 변화를 발견했다. 첫째 말을 잃어버린 점이다. 워낙에 말이 없는 성격이라 예사로 넘겼으나 최근에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 때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그의 차가움에 소름이 끼쳤는데 모든 절차가 다 끝난 후부터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저러다가 정말로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자신의 아이를 뱃속에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배부른 것이 확연하게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는 나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말대로 내가 그에게 좋은 글을 쓰도록 밀어주는 것은 그를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그가 훌쩍 집을 떠나버렸을 때는 갑작스런 죽음 앞에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 오래도록 안 돌아오면 어쩌나 하고 나는 마음을 졸였다. 아니 아주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허망감에 울고 또 울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그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내 눈은 그의 뒤통수를 따라다녔다.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을 땐, 가슴이 옥죄어 숨통이 막히는 듯했다. 문소리에만 귀를 곤두세우고 어두운 거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그의 기척이 나면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와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고 또 외웠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꼭 돌아온다는 확신이 생긴 다음에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그가 집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마음이 편안한 적도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그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쌀쌀맞게 대했다. 그럴수록 그 불똥은 내게로 튀었고 남편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구는 것이 다 내 책임이라고 했다. 남편 앞에서는 입 다물고 있다가 꼭 남편이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때나 외출을 했을 때, 나를 들볶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잘해주면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고 시어머니 대접을 깍듯이 했으나 다 허사였다. 내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셔 허전한 마음을 내게 화풀이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모든 것을 꾹 참고 아기 낳을 날만 기다렸다. 아기를 낳으면 집안 분위기가 좀 밝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와는 계속 같이 살지는 않을 테이니, 조금만 참기로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시어머니가 남편을 바라보는 눈에서 뭔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께름칙한 느낌을 가끔 받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과 나 사이에 끼어들어 내 가슴을 조일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다. 침묵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눈을 떠보니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었다. 서재 문을 살짝 열어보고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그대로 나올 참이었는데 뜻밖에 시어머니의 말소리가 문틈으로 새 나왔다. 남편은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깎아 놓은 사과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내게는 서재에 들랑거리지 못하게 하면서 왜 그녀의 출입을 막지 않았는지 이상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그 며칠 후, 어둠이 바닷물처럼 온 집안을 침몰시키는 한밤중이었다. 뭔가 시커먼 물체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름이 온몸을 훑으며 살갗이 도르르 일어섰다. 깜짝 놀라 아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는 나오지 않고 갑자기 저 깊은 나락의 밑바닥, 아주 컴컴한 곳으로 몸 전체가 굴러 떨어지면서 무서움이 온몸을 파고들어 나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시커먼 물체는 내 앞에 우뚝 섰다. 아무리 일어나 보려고 애를 써도 손가락 하나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름이 확 끼치면서 내 몸속의 알맹이가 훌러덩 빠져 나가버리는 듯했다. 빈껍데기뿐인 허물만 남은 내가 침대 위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나면서 숨이 찼다. 나는 숨을 세차게 몰아쉬면서 시커먼 물체가 내게 달려드는 것을 피하려고 한참을 몸부림을 쳤다. 옆에 누운 남편을 깨워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손가락 하나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살며시 눈이 떠졌다. 캄캄한 밤중은 아니고, 회색빛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섬뜩했다. 무슨 물체가 침실 밖으로 휙 사라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써야 할 판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부리나케 그녀의 침실을 향했다. 침실 문은 열려있었다. 살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곤하게 자고 있었다. 모로 누운 채 벽을 향해 코를 달달 골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한밤중에 시어머니의 침실에 와 있지?  

  나는 아들을 낳았다. 갓난아이인데도 남편을 빼 박아 놓은 듯 그대로 닮아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붙들고 수고했다면서 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좋아서 야단이었다. 들들 볶을 때와는 완연히 딴 사람이 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했겠느냐고 부산하게 수선을 떨었다. 아기를 들여다보면서도 계속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고, 우찌 이리 지 아배하고 똑 같노. 내가 지금 꼭 영구 안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구 징그러버라.”
  아기를 안고는 남편을 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신기한 것이나 보는 듯 아기의 고추를 들여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이구! 갓난아아 고추가 와 이리 크노? 이것도 지 아배 닮았는가배”
   그러면서 아래에 늘어진 부분을 밑에서 위로 쓱쓱 쓸어 올리면서 손은 계속 아기의 사타구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확 쳐들고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런나? 영구 것도 이리 크나? 정말로 이리 크나?”  
   나는 깜짝 놀랐다. 크나? 크나? 하는 그녀의 목청 역시 어찌나 큰지 귀청이 쩡쩡 울렸다. 그냥 우스개 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의 그것을 자꾸 만지작거려 기분이 안 좋았는데 남편 것까지 들먹이면서 심각한 얼굴을 해 그녀가 참말로 이상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어머니는 별 걸 다 물어신다면서 계면쩍은 웃음을 띄우고 아기를 뺐어 안았다. 눈빛에 뭔가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다시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아기 낳고, 병원에서 사흘을 지내고 집엘 온 날이었다.
  “어젯밤, 한밤중에 무신 발자국 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리더라. 도둑이 들은 줄 알고 깜짝 놀랬는데, 그기 아이고 영구가 물먹으러 나왔는갑더라. 그런데 그냥, 영구가 내 방으로 쿵쿵 걸어 들어오는 거 같애서 어찌나 가슴이 떨리는지 혼이 났다.”
  말 끝부분에 가서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목소리까지 떨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려 죽겠다는 듯이. 그리고 자기 방에 들어와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는 듯이. 영구라는 이름을 부를 땐, 아련하게 꿈을 꾸는 듯한 그녀의 눈빛이 참 묘했다. 예전에도 감지한 바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것저것 마음에 좀 걸렸지만 대수롭잖게 넘겨버린 일들을 다시 돌이켜보니 시어머니의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 있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이 남편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었다.
  또 육체적으로도 건장한 의붓아들을 한 남성으로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구나 시아버지가 자기를 닭 보듯 한다면서 내게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지 않은가?
  젊은 후처와 의붓아들... 영화에서만 전개된다고 생각했던 줄거리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의심의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남편이 한국에 나온 것도 젊은 그녀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세 사람의 갈등 속에서 탈피하려고 남편은 나와 결혼을 했을까? 그럼 난 남편에게 뭐였단 말인가? 피난처였을까?
  그러다가 갑자기 시아버지의 노한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녀와의 관계를 눈치 채, 부자간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것이 아닐까?
  그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안 좋아 한국으로 피해 왔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음주운전도 커다란 의문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시아버지가 죽은 후, 남편이 그토록 괴로워하며 말을 잃어버린 것도 어떤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아기를 낳으면 집안 분위기가 좀 밝아지려니 했는데 어둠의 그림자는 더 짙게 스며들고 있었다. 자기와 똑 닮은 아들을 낳았는데도 남편은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관심 있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와 아이는 그의 마음에서 완전히 밀어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집을 떠나서 며칠씩 안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저 서재에만 틀어박혀 살았다.
  혹시, 소설의 줄거리가 남편과 그녀와 시아버지에 얽힌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집안 청소는 항상 그녀가 하기에 그때마다 서재로 따라 들어가 도와주는 척하며 프린트해 놓은 것이 있나 하고 유심히 살폈으나 소설의 흔적은 없었다. 글을 쓸 땐, 사람이 얼씬거리는 것조차도 싫어해 나는 남편의 컴퓨터 화면을 훔쳐볼 기회가 없었다. 컴퓨터를 몰래 열어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내가 말을 시키는 것조차도 귀찮아했다. 애초부터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짙어져 가고 있었다. 메말라 있는 남편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리라던 내 마음까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나는 아기한테 시달려 잠을 제대로 못 자 늘 피곤에 절어 있었고, 아기 자는 시간에 좀 자려고 잠을 청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이 들려고 하다가 그냥 깜짝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곤 했다. 어떤 때는 괜히 눈물이 났다. 그녀와 남편이 맞부딪칠 때는 그들의 낌새를 살피느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차라리 남편이 어디라도 훌쩍 떠났다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서서히 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서재에서 꼼짝을 않고 가족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으며, 그리고 나는 자주 가위에 눌러 혼자 신음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또다시 가슴이 짓눌리는 압박감에 숨을 헐떡이다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역시 남편은 글 쓰느라 밤을 꼬박 새는 모양이었다. 재빨리 서재로 가 보았다. 그냥 한번 살짝 문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이 잠겨있었다.
  그 순간, 왜 내 가슴이 그리도 심하게 철렁 내려앉았을까? 그리고 왜 나는 또 시어머니의 침실로 부리나케 향했을까?
  그녀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벽에 기댄 채 심호흡을 했다.
  서재 문을 쾅쾅 두드려 볼까?
  남편과 그녀가 벌거벗고 뒤엉켜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핏줄이 팽팽하게 곤두서며 금세 툭 끊어져질 듯한 절박한 긴장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숨이 막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정원으로 나갔다. 찬 공기를 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런데 저쪽 등의자에 뭔가 허연 물체가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살펴보니 시어머니였다. 순간,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확 치솟았다. 나는 한참을 선 채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항상 단정하게 틀어 올리던 머리가 산발로 풀어 내려져 있는 그 뒷모습이 흡사 귀신 같았다.
  한밤의 허리가 휘어지도록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저렇게 골똘히 하고 있을까? 서재 문을 두드렸으나 잠겨있어 정원으로 나온 것일까? 가슴속에 타오르는 욕정의 불길을 끌 수가 없어 찬 공기를 쐬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미동도 않은 채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아는 체를 하려다가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왔다. 서재 문을 다시 한번 살며시 비틀어 보았으나 여전히 잠긴 채였다.
  왜 서재 문을 잠가 놓았을까? 그녀가 느닷없이 들어와 남편을 방해해 잠가 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한밤중에 남편 서재엘 가는 것일까? 지난번 모양 밤참을 핑계로 여전히 서재에 들락날락 한단 말인가? 한 지붕 아래서 내가 모르는 일들이 한밤중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끔 살짝 문을 열어보는 것이 싫어서 잠가 놓았을까?
  슬픔이 온몸을 휩싸며 눈물이 났다.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몰려오면서 무섬증이 엄습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다음날 아침, 시어머니는 평상시와 똑같이 한국식 아침을 준비해 놓고 나와 남편을 재촉했다. 나는 남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어젯밤에는 서재 문을 잠가 놓았어요?”
   남편은 의아한 얼굴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다. 서재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려고 손잡이를 틀었는데, 안 열리던데요?”
   “그 이상하네. 저절로 잠겨졌나?”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그 표정은 우리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간밤에 꿈을 꾸었나 하고 멍한 기분이 된 나는 다시 골똘히 생각을 했다. 무거운 침묵 속에 밥알이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겉돌았다.
  그럼 노크를 하지 그랬어.
  자는 줄 알았어요.
  아냐. 나 안 잤어. 밤새 글 썼는 걸.
  이런 대화라도 오고갔으면 내 맘이 조금은 편안해졌을까?  
  남편과의 대화는 항상 그가 중간을 잘랐기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랑 언제까지 한집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집은 시아버지의 유언장에 따라 남편이 물려받았다. 젊은 그녀는 넉넉히 자립을 할 수 있다. 남겨준 재산만 가지고도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기를 핑계 삼아 남편과 같이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언젠가 남편에게 그녀의 문제를 슬쩍 비친 적이 있다. 내 이러한 마음이 바깥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그녀를 위하는 척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당장 아기 때문에 그녀가 없으면 안 되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그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사람을 하나 구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으나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그의 표정을 살피는데, 남편 역시 그녀와 같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남편이 그녀랑 같이 외출을 하는 것도 그렇게 싫었다.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이었는데도 무조건 싫었다.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그들을 내보내놓고 시계만 보며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시간을 재곤 했다. 조금이라도 늦어질 땐 그만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같이 외출을 할 때, 아기 때문에 나는 어차피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데도 그녀가 앞자리에 남편과 나란히 앉는 것이 싫었다. 뒤에 앉아 그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괴로웠다.  
  한번은 남편의 부재중을 틈타 그녀에게 이제는 자립을 해 재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넌지시 꺼냈다가 혼이 났다.
  “그 몸에 아아 하나 갖고도 쩔쩔 매면서, 내가 없으면 영구가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을 기다. 또 집안일은 다 우짜고.”
  언제나 시어머니에게는 남편이 일 순위였다.
  “내가 나간다 케도 붙잡아야 할 형편에 뭐 내보고 나가락고? 나야 나가면 편하고 좋지. 나야 충분히 자립할 수 있응께. 한데 니는? 내가 나가믄 니 혼자 살림할 수 있껀나?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내가 니 속셈을 모릴 줄 아나?”
  괜히 말만 꺼내놓고 그녀의 강한 반발에 당하고만 있는데 속셈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나를 내쫓고 사람을 하나 쓰믄 된다 이거 아이가?”
  순간 나는 후유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어머니의 말은 끊이지 않고 줄줄이 이어졌다.
“사람을 쓰믄 누가 내처럼 해줄끼고? 그리고 돈은 또 울매나 비싼지 니 알기나 하나? 미국을 몰라도 우찌 그리 모리노? 내는 지금 완전 무료 봉사하고 있닥고. 그것도 마음을 다해서. 고마워서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니가 내한테 그라모 못 씬다. 내는 영원한 내 식구로 생각하고 있는데 니는 그기 아인가 보구나.”
  급기야는 눈물까지 흘리며 어찌나 서운해 하는지 나는 도리어 시어머니를 위로해야만 했다. 혹 떼려다가 도리어 혹 하나 더 붙인 셈이 됐다.      
  사실, 따져보아도 그녀의 말이 맞다. 그녀는 재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하면서 서럽게 울었다. 남편 곁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녀이기에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남편의 서재로 가는 대신 그녀의 방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머니가 자기를 한 남성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 알아요?
  어느 날, 나는 이런 의문을 남편한테 던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물론 육체적인 상상을 한 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고 그냥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남편의 입으로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도 그런 눈치를 옛날부터 채고 있었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났다. 또 나 자신이 그런 더러운 상상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가 나와 결혼을 한 것도 그녀로부터의 끈적거리는 시선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물으나마나한 질문이 아닌가? 지금은 묻어버리자. 이담에 늙은 후에, 담담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때 물어보자.
  
  남편의 침묵이 시커먼 연기가 되어 나를 질식시키는 가운데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기는 건강하지가 못해 늘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남편은 무심한 채 소설에만 전념했다. 어릴 때부터 참는 데는 이력이 나 그냥 꾹꾹 참고 살았다. 내 몸도 날이 갈수록 허약해져 아기조차 안을 기운이 딸린 터라 시어머니는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점점 더 자리를 굳혀갔다. 그리고 두려운 존재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왠지 그녀가 무섭기까지 했다. 쳐다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편 역시 두려웠다. 시어머니와 둘이 작당을 하여 언젠가는 나를 내쫓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가슴이 조마조마해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조차도 겁이 났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한가운데 얹혀 있는 것 같아 늘 답답했다. 한바탕 혁명을 일으켜서라도 진작에 그녀를 내보냈어야 했을 것을, 그러지 못한 나는 정말 바보였다.

  드디어 소설을 끝냈는지 남편은 탈고한 소설을 들고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내 병은 점점 더 깊어갔다. 얼굴엔 기미까지 끼고, 몸은 날이 갈수록 바짝바짝 메말라 마치 땅 바닥에 벼려진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같았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점점 세련되어 얼굴은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훤해졌고 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해졌다. 그녀가 나보다도 남편과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짝처럼 보였다.
  애를 낳은 후에 공부를 계속 하겠다던 내 결심은 그녀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진 지 오래고, 나는 그저 아기에게만 매달려 살았다. 내가 쓰러지지 않고 이렇게 몸을 지탱한 것은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마침 어머니가 미국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미국에 온 후, 어머니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의붓아버지에게 젊은 여자가 생겨 이혼을 당한 것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자그마한 양품점을 경영하면서, 나보고 한번 다녀가라고 했으나 시어머니와 남편을 단둘이 두고 집을 비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라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집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아기를 가슴에 꼭 안고도 눈물을 흘렸다. 나도 왜 그렇게 눈물이 자꾸 나오는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못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 서러움이 그냥 봇물처럼 쏟아졌다.
  어머니는 나를 한국엘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내 꼴이 이렇게 되도록까지 어떻게 보고만 있었느냐고 어머니는 남편에게 그 책임을 돌리면서 서울엘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엘 갔었는데, 나의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으니 안정을 취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냐면서 나의 회답을 유도하는 의사에게 나는 함구했다. 나만 아는 그 비밀은 죽을 때까지 나만 알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조한 가슴을 안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왜 나는 병원에 가볼 생각을 못 했을까?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병원 출입은 거의 안 하고 살았다. 크게 아픈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몸살감기 같은 것은 그냥 아무도 모른 채 혼자 앓으면서 넘겼다. 그만큼 병원은 나와는 연관이 없는 곳이었기에 내 삶에 병원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어머니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처방해준 약 먹고 병원에 다니면서 미국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이러니까 대우를 못 받고 사는 거야. 그 똑똑하던 애가 왜 이렇게 바보가 돼버렸니? 너 이대로 말라 비틀어져 죽고 싶어?”
  남편과 시어머니가 들으라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나를 끌고라도 한국에 데리고 갈 기세였다. 시어머니는 아기를 데리고 가면 제대로 쉬지를 못하니 두고 가라고 했다.
  아기를 두고 가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그녀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우면서 아기의 고추를 만지작거리던  커다란 손 생각이 나 아찔하니 현기증이 났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단둘이 남겨두고라도 나는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일단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담담해졌다. 이대로 말라 비틀어 죽기보다는, 어떤 방도든 간에 그들을 한번 떠나보는 것이 나를 위해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한 후 바로 나는 어머니를 따라 병원에 가서 종합 진단을 받았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시 우울증 증세 외에는 별 이상은 없었다. 어머니는 혹시나 하고 걱정을 많이 하셨던 모양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옛날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내게 눈길 한번 주지 못했던 어머니였다.  
  “너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너 얼굴이 어쩜 그렇게도 못쓰게 됐던지.., 시어머니가 마나님 같고 너는 꼭 식모 같더라.”
  어머니는 또 눈물이 글썽해지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식모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었다. 얼마 전, 화장실이 고장 나 수리공을 불렀는데 그 사람도 시어머니를 집주인으로 보고, 나를 메이드로 보았었다.  

  담담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그게 아니었다. 한국엘 도착한 첫날부터 밤마다 나는 상상에 시달렸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은근 슬쩍 안부를 묻는 체하며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 싶었으나 꾹 참고 있었는데 뜻밖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나 반가워 가슴이 뛰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드디어 책이 나오게 됐다면서 그는 흥분했다. 그리고 따뜻한 음성으로 내 건강을 걱정했고 아기의 안부도 물었다. 남편의 한마디에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가슴이 촉촉이 젖어왔다. 그리고 단비는 계속 내렸다.
  책이 빛을 보게 되어 이제야 마음 문이 열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자기 곁을 떠나고 나니 회개를 한 것일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한번 떠나볼 걸 그랬지?
  갑작스레 변한 남편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으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쁨이 되어 내 가슴에 차올랐다. 입맛이 돌아와 밥을 달게 먹었고 잠도 잘 잤다. 남편과 그녀와의 사이를 괜히 의심했나 싶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그 동안 자기에게 너무 무심했어. 자기 얼굴이 그렇게 못 쓰게 된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야. 정말 미안해. 어쨌든 만나서 얘기할게. 할 말이 많아.”
  너무 말이 없어 속상했는데 할말이 많다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 동안 아껴 두었던 말을 한꺼번에 할 모양이지? 그 말속에 혹시 내가 궁금해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까?
  “아기도 잘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 돼. 어떻게 내가 내 아들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 소설 때문에 그 땐 내가 내 정신이 아니었나봐.”
  아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의 냉정함에 가슴이 저려서 아기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지만 나는 한 마디도 불평을 않고 꾹꾹 참았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국에 나온 후, 아기도 조금씩조금씩 살이 붙으면서 그 비리비리하던 모습이 부들부들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너무나 예뻐했다. 어머니가 경영하는 양품점에 아기를 데리고 나가면 손님들이 다들 아기에게 한마디씩 말을 걸면서 미소를 띄웠다. 아기도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그들을 따랐다.  
  그의 따뜻한 말들이 봇물이 되어 나의 우울증도 말끔하게 씻겨지고 있었다. 처방 약이 따로 없었다. 나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갈 즈음 그는 내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그러면서 내가 보고싶다고 했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정말 보고싶다고 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려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남편에게서 들어보는 사랑의 고백이었다.

  결혼 전에도 그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체념을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또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항상 초조한 마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내게서 눈길이 멀어진 듯하면 그만 그가 나를 떠나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아니 언젠가는 그가 꼭 내 곁을 떠날 것 같은 생각이 늘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나보다 예쁘고 늘씬하고 집안 좋은 여대생들도 그를 좋아했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내 맘을 들킬까봐 그들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그 중에서도 그와 같은 학원 강사였던 유 선생님에겐 특히 더 그랬다. 빼어난 미모에 매력적인 미소, 온화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에 화술 또한 뛰어나, 학원가에서는 민영구 못지 않게 인기가 높았다. 그녀에겐 가르치는 재능이 있었고 사람을 끄는 어떤 힘이 있었다. 한데 그녀가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만 천길만길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한데 어느 날, 나는 유 선생님이 결혼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주위의 친구들은 다 아는데 왜 나만 몰랐단 말인가? 그도 알고 있었을까?
  항상 무덤덤한 그에게 나도 무덤덤한 척하며 물었다.
  “난 유 선생님이 결혼 안하신 줄 알았어요. 선생님은 아셨어요? 유 선생님 결혼하신 거.”
  그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애가 둘인데 아직 몰랐느냐고.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선생님이랑 친한 것 같아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밤잠도 제대로 못 잤어?”
   너무나 행복했다.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낸 것이다.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잠을 설쳤다. 빨리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열 시간 후,  나는 남편이 죽었다는 비보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완전히 실성한 사람 같았다. 아침 준비를 다 해놨는데도 기척이 없어 찾아 봤더니 남편이 죽은 듯이 서재 마룻바닥에 누워 있더라는 것이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정말로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까무러칠 뻔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옆집으로 뛰어가 사람을 불렀고, 남편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식어 있어 앰뷸런스가 도착해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그 편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는 자꾸 괴상한 상념 속에서 시달렸다.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병이 없는 남편이 자다가 그대로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정사장면이 영화 필림이 되어 머릿속에서 막 돌아갔다. 숨이 끊어진 남편을 그녀가 옷을 입히고 마루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장면도 연출이 되었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남편도 병원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뭔가 이상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삼 년을 넘게 날밤을 새면서 소설에만 매달려 살았으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했겠는가?
  나는 이렇게 위로를 하면서도 두 갈래 길에서 계속 갈팡질팡 헤맸다.
  사람은 죽을 때 안하던 짓을 한다는데, 남편은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사랑의 고백을 한 것일까?
  남편의 죽음은 자연사로 처리가 되었고 심장마비로 판정이 났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리고 나의 고뇌도 끝났다.
  남편이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소설은 세상에 나왔고 미국신문과 한국신문에서 대서특필을 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소설을 폈다. 첫장에 쓰여있는 한 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 소설을 사랑하는 아버지께 바칩니다.’
알파펫 활자들이 살아서 움직이듯 시야에 펼쳐지면서 남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소설에다 자기의 혼을 다 불어넣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아! 불쌍한 사람, 나의 고뇌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그가 그냥 살아만 있다면...

  <2007 년, 미주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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