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SAT II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2004.04.03 07:50

김영강 조회 수:944 추천:176

    한국학교에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이곳, 남가주 밸리한국학교에 <SAT II 한국어> Class가 신설되어 내가 그 반을 맡게 된 것이다.

    요즘은 대학 입학시험에 <SAT II 한국어>를 택하는 학생들이 날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에 의하면 매년 3000 명 정도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선택한다고 한다. 물론 학생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보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스페인어 등 다른 과목을 택하는 것보다 한국어를 택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만점을 받는 학생수도 계속 늘고 있다. 그렇다고 시험문제가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늘 접할 수 있는 모국어가 한국어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러한 실정으로 보아 <SAT II 한국어> Class가 따로 편성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매년 우리 반 학생 수는 보통 이십여 명 정도이다. 거의 다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며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아주 극소수로 10% 안팎에 불과하다.  대학입시를 겨냥한 반이기에 다들 고등학교 학생으로 평균연령은 십육,칠 세쯤 된다. 그 중에서 미국학교 10학년 이상 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험에 응시를 하는데, 점수는 비교적 높게 나오는 편이다. 만점자도 매년 서너 명 정도는 나오고 있다. 신문에 보도된 전체 평균이 늘 700점을 훨씬 웃돌고 있으니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학생들이 다들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날에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적사항을 쓰게 한다. 이름에서부터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취미, 특기, 장래희망, 가족사항 그리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 학과목, 색깔 등이다. 또한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몇 살 때 왔는지, 그리고 한국학교에 얼마나 다녔는지에 관한 항목도 포함된다. 질문에 관한 답변은 완전한 문장으로 쓰게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금세 알 수가 있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수준의 차이가 있으나 세월이 길수록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년 느낀다. 물론,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즐겨 보는 것도 크나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아주 어릴 적부터 한국학교에 계속 다닌 것도 단단히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 모두가 부모님의 노력이 큰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곳, 남가주 밸리학교에서 한국어를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1979년도이니, 벌써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들랑날랑하다가 근 10년만에 돌아왔는데도, 아직도 나를 반겨주는 교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여간 감사하지 않다. 그리고 훤한 대낮에도 돋보기가 없으면 사전을 볼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내게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준 것에도 감사한다.
    
    세 시간의 과정을 위해 선생님들은 그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준비한다. 또한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연구한다. 세월 따라 한국어의 흐름에도 많은 변화가 있기에 바뀐 문법, 그리고 맞춤법도 새로 익혀야 한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한 것들이 내게는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띄어쓰기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이제 와, 26년 전을 되돌아보니 무척이나 감회가 깊다. 그 때 가르친 아이들이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릴 땐 엄마 때문에 할 수 없이 한국학교에 다녔었는데, 그것이 이리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엄마한테 감사해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룬다는 속담이 있듯이 일주일에 세 시간이라는 연륜이 쌓이고 쌓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히 기반이 다져진 것일 게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중고등 학생이라 해도 한국어를 읽기는커녕 말도 전혀 못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인데도 한국말은 기본이고 읽고 쓰는 것도 완전히 익힌 상태라 그 실력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되어 있다. 물론 맞춤법이나 문장구사에는 완전하지 못하나 다른 항목에서는 별문제가 없는 것이다. 2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만큼 한국학교가 큰 기여를 한 결과일 게다.

    우리 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한국학교에 첫발을 디뎠을 때를 생각해 본다. 그 땐 그들의 키가 엄마의 허리에도 못 미쳤던 것이 이제는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섰다. 아이의 키가 자란 만큼 거기에는 엄마의 정성이 담겨져 있다.
  
     지금 미국정부에서는 한국어 프로그램에 막대한 자금을 배정하고 교포계 학생들과 한인 2세들을 특별 지원하고 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는 장학금 전액을 지급하는 각 분야의 전문인 양성 프로젝트도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한인 2세를 비롯한 교포계 학생들을 특별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를 완전히 구사하는 데, 미국인은 2500-3000시간이 걸리고 교포 2세는 200-30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국정부에서는 교포 2세를 포함한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가진 이중언어 능력을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기관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어에 큰 비중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미국 실정이다. 직장을 구할 때에도 한국어를 잘하면 다른 이들보다 몇 배의 기회가 더 주어지고 또 혜택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미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새로 배우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의 모든 여건들이 앞으로도 한국학생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야 하고, 또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일찌감치 방향제시를 해주어야 한다. 외국어교육은 어릴 때부터(대체로 만 10세 이전) 받아야 완전한 이중언어 구사자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영어문화권 속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만 2세들이 부모를 통해 전수받은 한국문화와 언어에 대한 이해는 미국 학생들이 대학 4년 내내 한국어를 수강하더라도 도달하기 힘든 귀한 자원인 것이다.
    
    실리 면을 떠나서 생각해 보더라도, 부모가 우리의 언어를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가장 값진 유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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