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과 순이 삼촌

2009.04.18 00:56

고대진 조회 수:545 추천:107

4월이 오면 유채꽃이 내 고향 제주도 전역을 노랗게 물들인다. 푸른 바다, 길옆의 검은 돌담 그리고 밭들마다 가득히 피어있는 노란 유채꽃의 세 가지 색이 어우러져 보는 이마다 감탄사를 유발할 만큼 장관을 이룬다. 요즘 본국에서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올인’의 배경에 나오는 제주의 봄의 경치를 보면서 “역시 제주도는 아름다워…”라는 감탄이 절로 난다.

  어디 유채꽃 뿐이랴. 5월이면 한라산의 천백고지 일대에는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하얀 겨울의 잔상과 더불어 화려한 분홍빛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해 그 아름다움에 어지럼증을 느끼게 한다. 한라산 허리를 감싸고 억새꽃이 너풀대는 가을 들녘 ‘으악새 슬피 우는’ 의 ‘으악새(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 또한 제주의 매력중의 하나이다. 매운 바람이 부는 겨울 드넓은 설원을 걸으며 고사목 가지에 피어난 한라산의 매혹적인 눈꽃의 자태까지 포함하면 제주는 사계절 꽃으로 싸여있는 꽃의 섬이다. 관광객들은 제주의 꽃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화려한 꽃 송이 송이에서 맺힌 한과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꽃에 맺힌 눈물 자국을 본다. 특히 유채꽃이 만발한 4월초에는 더욱 그리하다. 제주 4·3 사건의 비극 때문이다.

  ‘제주 4·3 사건’이란 55년 전 1948년 4월 3일 군·경·서북청년단의 횡포와 잔혹행위 그리고 남한의 단독선거에 저항해 남로당원들을 포함한 일부 도민이 무장 궐기했던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빨갱이 잡기’가 전개되고 그해 11월 17일에는 계엄령 하에 제주도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자행됐다. 남로당 쪽의 무장 게릴라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있지만 주로 군경에 의해 어린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죄 없는 양민이 3만 혹은 5만명 이상 희생됐다. 불타거나 파괴된 가호가 15,228호, 피해 가옥이 35,921동에 이르렀고 이재민 수는 당시 전체 인구의 35%가량인 91,732명이라고 나타났으나 실제로는 인구의 절반인 1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의 진상규명 운동은 당시의 ‘태워 없애고 굶어 없애고 죽여 없애라’는 초토화 작전의 책임자들이 정권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에 무산되었고 오랜 기간 침묵이 강요되었다. 이 긴 침묵은 어두웠던 유신시절 한 소설가에 의해 깨어졌다.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그것이다. ‘순이 삼촌’은 1949년 1월 16일 제주도의 동쪽 마을 북촌리에서 500여명의 주민이 군인에 의해 념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된 소위 북촌리 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의 체험을 함께 섞어 가공한 사실주의 기법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군인의 대 양민 학살의 현장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 참혹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 학살의 와중에 극적으로 생존한 순이 삼촌의 정신이 어떻게 황폐화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4·3의 여파가 지금까지 제주도민에게 어떠한 정신적 상처를 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긴 세월 금기시 됐던 4·3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문학, 미술, 연극계 등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현기영은 공안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소설집은 판금됐다. 이후 다시 4·3이 논의되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는데 지금은 관련된 많은 자료를 ‘제주 4·3’ (http://www.cheju43.org)이란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2년에는 당시 토벌대에 의해 연기에 질식사했던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11구의 시신이 다랑쉬 오름 근처의 굴에서 발굴되었다. 4·3 당시 공포에 쫓긴 도민들은 산 속, 동굴 혹은 해안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들 중 당시 토벌대에 의해 연기에 질식사했던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11구의 시신이었다. 이것을 소제로 ‘다랑쉬의 슬픈 노래’란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다.

  제주 4·3 사건은 2차대전후 미군정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의 이라크의 점령이 목전에 있는 지금 혹시나 이 같은 일이 전후 이라크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해방후 좌익과 우익의 싸움에서 희생된 수많은 한국의 민간인들을 생각하며 전후 이라크에서는 ‘순이 삼촌’과 같은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주 중앙일보 2003년 4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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