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1 17:15
그때 생각이 - 이만구(李滿九)
내가 무슨 일로 깊이 잠겨 있을 때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 못 이루어 뒤척이다가 곤한 잠이 들었을 때
심연의 깊은 곳에서
내게로 다가와 머무는 것이 있었다
그때와 나는 똑같은 나일뿐인데
지금은 무척이나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그때가 순수했다면 지금은 더 진실하다고 할까
그리 변한 것 없는데 스쳐가는 생각들이
더 많아져 나를 앞서서 간다
많은 낙엽이 바람에 스치고 간 뒤
크게 떠오르는 생각들, 그 진실을 이제야
잿빛 진주라 여기며 되새김하고 있는 걸까
잠시 고개 흔들고 다시 또 바라보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꿈은 사라지고
먼 세월 속에서 응축된 시어들이 있어
가을 들판에서 벼 이삭 줍듯 지울 수 없는 것들이
계절은 가고 무성했던 나무가
움츠린 고목, 겨울 나목이 되어 그때 생각조차
얼어붙은 동면을 취할 때 잊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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