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장독대

2012.12.07 07:22

김수영 조회 수:912 추천: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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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독대                                                    金秀映


   유약을 발라 윤기가 반지르 흐르는 질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독대는 어머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다 장독대를 만들어야 된장, 고추장이 잘 숙성이 된다. 장독대에는,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무 장아찌, 오이장아찌, 고추 장아찌, 메실 장아찌 등 밑반찬 장아찌들이 가득 담겨 있는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옆에 김치 독들이 땅에 묻혀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님께서 메주콩을 큰 가마솥에 삶아 발 방앗간에서 빻아 목침처럼 메주를 주물러 만든 다음 짚으로 엮어 천정에다 매어 달아 놓았다. 겨우내 메주 뜨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맛있는 된장 먹을 생각에 꾹 참고 겨울을 보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된장, 고추장 담그는 일은 겨울철 김장과 함께 우리나라 주부들이 해야 할 삼대 일거리로 일 년에 큰 행사로 꼽히었다. 

   눈이 펄펄 내리는 설날, 맛있는 떡국을 끓여 살얼음이 낀 동침이 국물을 깨고 무, 배추를 끄집어내어 썰어서 시원한 국물과 아작아작 씹어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시원하고 이가 시린 동침이 국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국물을 계속 들이켰던 추억이 떠오른다.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을 때도 동침이 국물 한 사발이면 거뜬히 깨어났다. 추운 겨울날에도 온 가족이 온돌방에 앉아 겨울 포기김치를 죽죽 찢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이밥에 얹어 먹는 맛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를 정도로 별미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어디에서 그 옛 맛을 찾을 수 있을까. 냉장고가 없었던 그 시절, 항아리를 가마니로 싸서 땅속에 묻어야 겨울에 김치가 얼지 않았다. 항아리 뚜껑도 짚으로 덮고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철에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운치는 별다른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 시장에 장 보러 갈 수가 없어도 장독대만 바라보면 모든 걱정이 사르르 사라졌다. 쌀만 있으면 장독대에 먹거리가 다 있으므로 집안에서 따뜻이 겨울을 날 수가 있어서 날씨는 추워도 마음은 부자처럼 늘 따뜻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의 조상은 된장, 고추장, 김장을 스스럼없이 거뜬히 가족을 위해 해내었다. 육이오 전쟁 직후 잘 먹지도 못할 때인데도 어디서 그 에너지가 솟구쳐서 주부들이 힘든 일을 해내었는지 정말 장한 어머니들이었다. 정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요즈음은 된장이나 고추장 혹은 김치를 담그면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에 담는다. 

   질 항아리에 담는 김치 맛이 왜 더 맛이 있을까 하고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질항아리는 진흙(황토)으로 만든다. 빨간 벽돌이나 빨간 기와도 모두 진흙으로 만든다. 나는 진흙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최근에야 알았다. 진흙은 태양 에너지의 저장고라 불리울 정도로 동,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여 일명 살아 있는 생명체라 불리기도 한단다. 또한, 공기 중의 비타민이라 불릴 정도로 음이온을 방출하여 산성화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바꾸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 준단다. 그래서 두통을 없애고 치매 예방에 좋고 기억력 향상을 돕고 소화기능을 개선하며 당뇨 예방에도 좋고 피로회복에 좋고 불면증도 없애 준단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대전 봉황산에 황톳길을 만들어 놓아 맨발로 황톳길을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황토 성분이 직접 피부에 닿아 황토의 효소성분이 흡수되도록 한다고 하니 많은 등산객이 모여 맨발로 황토 체험을 하고 간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이렇듯 좋은 진흙으로 구운 질항아리에 김치나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그니 얼마나 우리 몸에 좋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은 김치보다 맛이 좋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 수보다 된장, 고추장을 많이 담그셨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하루는 어머니께 물었다. 적당히 양을 알맞게 담그시지 왜 많이 담그시냐고 말이다. 어머니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쟁 후 춘곤기에 보릿고개가 심해 하루 두 끼 혹은 한 끼 먹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흘 굶으면 담 안 뛰어넘는 사람 없다.’라고 했듯이 된장, 고추장 도둑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혹시 도둑이 들어 된장, 고추장을 퍼 가도 우리 가족 먹을것을 고려해 많이 담근다고 했다. 

   살아생전 늘 베풀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 겨울철만 다가오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인색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어머니 닮기를 소원해 봅니다. 마당 한 모퉁이에 아담하게 장독대를 만들어 놓으시고 아침저녁으로 물행주로 질 항아리를 닦으시며 정성스레 장독대를 가꾸시던 어머니. 항상 윤기가 번쩍이던 질 항아리 속에 먹을거리가 항아리마다 가득 담겨 있던 솜씨 큰 어머니. 늘 친구를 초대하시고 음식을 나누시던 어머니. 오늘따라 유별나게 어머니가 생각나 보고 싶습니다. 

   경북 안동 풍산에 있는 부모님 선영에서 하얀 목련꽃과 노란 개나리꽃이 만발한 나무 옆에서 당신을 그리며 찍은 사진을 꺼내 봅니다. 너무나 꽃이 아름다워 어머니를 보듯 황홀해 찍은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저의 수필집에 이 귀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그 옛날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위에 쏟아지던 별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눈빛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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