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의 명강의

2010.03.23 04:46

김수영 조회 수:968 추천: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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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의 명강의 


   오라버니께서 6.25전쟁 직후 고등학교가 폐허가 된 교정에서 천막 수업을 받으면서 '기'란 시로 제 1회 학원문학상 시부분 최우수상을 받으셨다. 그 후 시인의 길을 걷기를 원하셨으나 우리나라가 전쟁 후유증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게 되자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꾸시고 35년을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좌교수로 계신다. 올해에  희수를 맞이하셔서 60여 년 만에 시문집을 출간하신다니 여간 기쁘지가 않다. 평생 경제학과 경영학에 관한 책은 많이 저술하셨지만, 시문집은 처음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면서 뒤돌아보면 인생의 삼 분의 일은 학교에서 스승에게 배운다. 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정말로 나를 변화 시키고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훌륭한 스승이 과연 몇 명이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특히 훌륭한 스승 가운데도 명강의로 우리들의 지성을 일깨우고 감동시킨 스승이 있다면 그 제자는 참으로 행복한 제자가 아닐 수없다. 일생 그 스승의 사상과 인격이 그 제자에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교회 집사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얘기 도중 그 집사님이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라버니가  김동기 경영학과 교수님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 아니 이럴수가 있담’ 하고는 별안간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나에게 큰절을 했다. 그분 얘기가 김 교수님이 고려대에서 최초로 유창한 영어로 강의하셔서 자기는 너무 놀랐고 강의 내용도 훌륭하셔서 감탄했다면서 큰절을 드려야지요 하고 한바탕 웃었다.        

   나는 오라버니께서 우리나라 경영학의 선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명강의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오라버니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모두가 한결같이 김 교수님은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 합니다 라고 해서 재작년 한국 나갔을 때 오라버니의 강의가 한번 듣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쾌히  승락해 주셔서 평생 처음 고려대 국제대학원 강의실에 들어가  오라버니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동생 김영교 시인과 내 친구 박영숙 권사님과 나를 포함 세 사람이 국제대학원 원장 허락을 받고 청강생처럼 오라버니의 강의를 경청하게 되었다 .  

   어언 반세기가 훨씬 지난 다음 고려대학교를 가보니 대학 건물들이 몰라보리만큼  많이 지어져 있었고 특히국제대학원 건물은 초현대식 건물로 호텔처럼 잘 지어져 나의 눈길을 끌었다. 국제대학원 건물은 외국  학생들과 외국인 교수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수강생 대부분은 큰 기업의 CEO와 경영진들이었다. 강의를시작하시기 전에 영시를 한편 낭독하시고 번역하신 후 강의 서론으로 들어 가셨다. 딱딱한 경영학 강의시간에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함으로 부드러운 분위가 되었다.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뇨 루즈벨트 여사의 시였다. 그 시가운데 나는 끝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a gift.’             

   강의 내용은 최고 경영자 를 위한 주제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부강한 나라가 되기위한 경영학 전략이었다.          

   경영학에 문외한인 우리가 들어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강의 내용이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명강의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오라버니와 동생과 나 친구 넷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들은 뒷좌석에 앉아서 이구동성으로 너무나 훌륭한 강의였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는  오라버니 집까지 오는 동안 차속에서  옛날의 기억이 떠 올랐다. 하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너무나 뚜렷하게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절대로 잊히지 않는 소중하면서도 아름답기 까지 한 오라버니에 대한 짜릿한 추억이 활짝 피어올랐다.         

   오라버니께서 고려대에 입학하시고 첫해 겨울방학 때에 고향에 내려 오셨다. 문학을 좋아하는 내 친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오라버니께서는 문학강의 비슷하게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모아놓고 훌륭한 위인들의 명언들이나 명작소설 독후감이나 좋은 시들을 소개해 주셔서  우리는 문학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얼마나 하시는 말씀이 재미있고  유모어와 위트가 넘치는지 친구들은 오빠의 무궁무진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빠의 문학강론에  매료되어 넋이 빠져있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손수 떡국을 맛 있게끓여 놓으시고 빨리와서 먹으라고 여러 차례 부르셨다. 우리는 따끈한 아랫목에 모여 앉아 오라버니 이야기에 푹 빠져서 어머니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어머니께서는 화가 나셔서 방문을 활짝 열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깜짝 놀란 친구들은 신발도 신지않고 혼비백산 뒷문으로 삼십육 개 줄행랑을 쳤다. 달아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나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해프닝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오라버니의 강론은 늘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그러한 소질이 그 명강의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수필을 쓰고 시를 쓰게 된 것도 소녀 시절부터 오라버니의 영향과 지도의 덕이라 생각이 들어 감사를 하게 된다. 오라버니께서는 지금도 고려대 국제대학원의 영어 강의를 맡고 계신다니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것 같아 여간 기쁘지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경륜을 바탕으로 시와 산문도 많이 쓰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2010년)/늘 추억의 저편

 *올해(2016)에는 대한민국 학술원 부회장이 되셔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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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석좌 교수 김동기 박사의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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