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야시장

2010.02.28 14:53

김수영 조회 수:811 추천: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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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야시장   


   나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많은 친구가 있어도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는 많지가 않다. 그녀는 한국에 살고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둘 사이는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마음씨가 너무 착하고 곱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변함없이 희생적으로 나를 대하는 그녀는 정말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가진 어진 친구다. 침이 마르도록 그녀를 칭찬해도 필설로는 부족하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는 정말 천사 같다. 옆에서 지켜본 오빠들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런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오늘은 그 친구와 서울 시내를 함께 구경하고 점심에 초밥과 대구 매운탕을 먹고 동대문 건어물 시장에 건어물을 살까 하고 돌아다녔다. 저녁때가 되어 저녁 식사를 대접하려고 식당을 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좋은 곳이 있다며 나를 끌고 동대문 야시장으로 갔다. 시장 한복판에 좌판대를 가져다 놓고 즉석에서 녹두를 맷돌에다 갈아 숙주나물과 김치를 넣고 빈대떡을 구워 파는데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빈대떡을 시식해 보니 어찌나 맛이 좋은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손님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렸다가 자리가 비어서야 앉아서 친구와 둘이서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한 개가 얼나나 큰지 둘이 먹고도 남았다. 오빠 드리려고 하나 더 주문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이런 야시장이 어디 있는 줄도 몰랐을 텐데 친구 덕택에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이 야시장을 오게 되어 매우 기뻤다. 불린 녹두를 맷돌에 즉석에서 갈아 넓은 쇠판에다 구워내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빈대떡 하나가 얼마나 큰지 둘이서 반을 먹고 나머지 반은 싸 가지고 오빠에게 한 개 반을 갖다 드렸더니 너무 맛있다고 내일 당장 사 먹으러 가시겠다고 했다.

   옛날 반세기 전 시골에서나 볼 수 있던 맷돌가는 여인네들을 보니 그 옛날 어머님이 잔칫날 맷돌 가시던 정겨운 모습이 생각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뭉클 솟아올랐다. 그리고 육촌 오빠가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한 후 얼마 안 있다가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고 슬퍼하던 올케. 마음을 추수리고 명절 때 마다 시골에 가면 빈대떡을 구워서 쟁반에 담아 상을 차려 따로 두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상시 육촌 오빠가 빈대떡을 무척이나 좋아 했기 때문이란다. 부부 금슬이 너무 좋아 혼자 평생을 수절하고 농사지으며 오빠 생각만 하고 살아가는 그 육촌 올케 언니가 매우 장하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맷돌 질하는 여인을 보니 그 올케언니가 생각나 한참을 넋을 잃고 맷돌 가는 여인만 쳐다보았다.    

   친구 옆에 앉아 둘이서 빈대떡을 먹고 있는데 옆 좌석에서 손님 한 분이 빈대 떡을 안주로 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손님에게 무슨 술이냐고 물으니 막걸리라고 했다. 막걸리가 시판되고 있음에 놀라니 옆에 앉아 있던 내 친구가 술맛 좀 보겠냐며 그 손님에게 한잔을 받아와서 나를 마셔보라고 컵에 조금 따라 주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니 막걸리는 술이 아니니 맛이나 보라고 자꾸 권해서 옛날 술처럼 취하지 않겠지 하고 친구와 건배를 나누고 싶었다.    

   비록 내가 산 술은 아니었지만 "변 사또" 하고 술잔을 치켜들고 건배를 나누었다. 친구는 어리둥절해서 변사또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변은 변치말고 사는 사랑하며 또는 또 만납시다." 란 뜻이라고 했더니 한바탕 웃었다. 조금 들이켰는데 옛날 시골 집에서 만든 걸쭉한 막걸리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어린 시절 잔칫날 어머님께서 막걸리를 만들어 큰 독에다 담아 두었을때 나는 어머님 몰래 한 사발 떠 가지고 와서 설탕을 타서 단술인양 훌훌 마신 추억이 되살아났다. 몰래 마신 술기운 때문에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죽는 줄 알았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누가 보면 영락없이 술 취한 사람으로 볼까 봐 겁이 덜컹 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술이 깰 때까지 아무도 안 만나기로 작정하고 방문을 잠그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에 안절부절못하며 맹물을 계속 들이킨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몇 시간 고통 끝에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안정을 되 찾을 수가 있었지만 그 후 부터 막걸리가 맛이 좋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와도 절대 마시지 않았다. 지금 시판되고 있는 막걸리는 진짜 막걸리 흉내만 내는 것이지 막걸리라 할 수가 없다. 술맛만 조금 나고 옛날 막걸리 맛은 전혀 아니었다. 그 옛날 그 맛있던 막걸리는 요즈음도 시골에서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내가 친한 친구의 권유로 몇십 년 만에 술맛을 다 보고 정말 흥겹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는 지금부터 동대문에서 종로 일가까지 걸어갈 테니 단단히 결심하고 자기와 같이 걷자며 내 손을 꽉 붙잡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며 열심히 걸었다. 삼사 십 년전 걷던 서울거리와는 격세지감이 있었다. 호화 찬란한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거리에는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었고 남녀 쌍쌍이 팔짱 끼고 활보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는 내가 산 건어물 김 미역 등 짐 보따리를 혼자 들고 어깨에 메고 나는 손가방만 들고 가볍게 걸었는데 친구는 나보다 더 빨리 걸었다. 전철을 갈아타고 오빠 집에 까지 짐 보따리를 들고 와서 건네주며 자기는 3번이나 전철을 갈아타야 집에 간다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친구 덕에 전철 타는 방법도 배우고 많이 걷게 되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 친구를 볼 때마다 희생적으로 나를 대하는 마음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고개가 숙어진다. 남편을 수년 전에 여의고 혼자 알뜰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볼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헤어지면서 내 손에 꼭 쥐어 준 한 봉지의 은행알을 아직도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고 있다. 은행알로 차를 끓여  마실 때마다 그 차 속에 친구의 우정이 베어들여 한결 맛이 좋으면서 은행알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 맛이 별미라 고마움으로 목이 메곤한다. 

   친구 덕에 정말 맛있는 빈대떡을 동대문 야시장에서 오랜만에 먹을 수 있어서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고마운 친구, 천사 같은 친구 오늘따라 이다지도 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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