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2016.08.18 18:20

김수영 조회 수:192

스코필드박사_애국지사_묘역_참배.jpg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I Wish to Be Buried in Korea)

                                                김수영

   나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도 내가 죽은 다음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길 수가 없다. 자녀들이 모두 미국에 살고 남편이 미국 땅 로즈 힐에 잠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건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코필드 박사님은 돌아가실 때 아들 손자 손녀들이 있는 캐나다에 묻히고 싶다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자기의 조국 캐나다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과 동고동락했던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해서 나는 큰 감동을 하였다.

   올해 4 12일 스코필드 박사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서울에서 큰 행사가 있었고 이곳 엘에이에서도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시회가 지난 6 1일에서 12일 까지 열렸다. 이때 나는 스코필드 박사 영문 자서전인 ‘I Wish to Be Buried in Korea’를 선물받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장낙 교수가 한글로 스코필드 박사 자서전을 썼고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최진영 교수가 영문으로 번역하였다.

   두 분 교수에게 이 귀한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최진영 교수님은 수려한 영어를 구사해서 독자가 계속 읽게 되는 영어의 연금술사로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우리나라 3.1독립운동 때 독립운동을 도운 독립유공자로 34인에 속한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현충원에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1919 3 1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민중들이 궐기하여 시위할 때 총 칼에 쓰러지는 민중들의 사진을 일일이 찍으셨고 4 15일 수원 제암리 학살현장에 한쪽 팔다리가 불편하신데도 수원에서 제암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셔서 참상을 일일이 사진을 찍어 세계만방에 일본의 만행을 알렸던 분이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대학교 2학년 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구내에 있는 외국인 교수회관에서 처음 뵈었을 때 소아마비로 불편한 몸으로 고생하고 계신 것을 알았다. 도움의 손길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은인이고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드신 귀한 분이시다. 가난한 학생들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국에 장학금 모금 편지를 밤늦게 쓰셨는데 도와드릴 수 있게 되어 아주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영어통역으로도 도와드리고 영어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다.

   참으로 인격적으로도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신 분인데 불의와 부정과 부패는 신랄하게 비평하시고 단호하게 호통을 치시는 호랑이로 유명하셨다. 자기는 비둘기처럼 온유한 사람인데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과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의 부정부패 때문에 호랑이로 돌변하셨다고 웃으시며 유모를 잊지 않으셨다.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건국훈장을 수여 받으셨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세계적인 수의학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세균학과 병리학에서도 혈액 응고제 디 큐마린(dicoumarin)을 처음 발견하여 캐나다와 미국과 독일에서 여러 번 큰 상을 받으셨다. 전 유럽수의학계에서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수의학자들이 없었다. 이런 훌륭한 분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

   성격이 매우 엄격하셨지만, 사춘기문학 소년처럼 감성이 풍부하시고 다정다감하셨다.유럽에여행 갔다 오시면서 에델바이스 꽃 말린 것 액자에 넣은 기념선물을사오셔서 너무나 예뻐 감격했던 일 잊을 수가 없다. 내 수필집 늘 추억의 저편에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올렸다.

   이번 자서전을 통해 내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고 더 존경하게 되었고 그를 더욱 높이고 싶었다.

3.1 운동을 상세하게 심혈을 기울여 장장 289 페이지에 달하는 다큐멘타리를 썼다. 제목은 꺼지지 않는 불꽃(An Unquenchable Fire)였다.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독립을 갈망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가슴 속에 열망이 불타올라 삼일 독립운동을 일으켜 전국 방방곡곡에서 항쟁의 불꽃이 타 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였다고 했다.

   일본경찰의 미움의 눈총을 받고 강제추방을 당해 캐나다에 이 원고의 사본을 갖고 돌아 가 출판하려고 했지만 캐나다에서나 미국에서 출판비가 비싸서 출판을 못하고 나중에 돈을 마련하여 출판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출판사 사장이 원고를 송두리채 잃어 버린 뒤였다. 한국을 떠나기 전 원본을 세브란스 의과대학 창고 마루 바닥 밑에 두었는데 어느 의과대학 교수가 발견하여 소장하고 있던 것 사정하여 돌려 받았지만 마루 밑에있는 습기로 인해 원본이 곰팡이가 피고 첫째 둘 째 장이 손실이 되었지만 되돌려 받았다. 다시 보완을 해서 출판하시겠다고 하고는 그 뒤 일절 언급을 안 하셔서 꺼지지 않는 불꽃은 어떻게 되었는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사업회에서는 이 원본을 꼭 찾아내어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되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키리라 믿는다. 삼일운동 때 일본의 만행을 직접보고 사진을 찍고 기록한 역사적이 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19세기 소설가 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이 쓴 Uncle Toms’s Cabin처럼 큰 반응을 일으키리라 믿는다.

   과학자로 수의학자로 또 선교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지만 개인 생활은 21살 때 자신이 영양실조로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아내는 피아니스트였지만 선교사의 아내 자리가 힘들어 캐나다로 돌아가 평생 정신병으로 입원해 있다가 1957년에 죽었고 어릴 때 태어난 지 3일 만에 친 어머니가 돌아가셔 세 살 때 들어 온 계모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불우한 삶을 살았다. 돌아가시기 전 옆에서 딸처럼 간호해 주었던 분에게 숨겨 두었던 비밀을 다 말했다.

   말년에 사랑했던 여인 마라에 대해서도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아파 병원에 평생 입원해서 부부의 정이 없었던 스코필드 박사는 생애에 처음으로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놀랐다. 이 여인의 이름은 Mara Lazarhvis이고 유고슬라비아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스코필드 박사님을 매우 사랑해서 한국에 같이 오겠다고 했지만, 스코필드 박사님 역시 그녀가 한국에 오면 고생한다고 못 오게 했다는 것이다. 이 여인이 아름다운 꽃무늬가 있는 거위 털 베개를 선물로 주었는데 더러워도 절대로 세탁을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체취가 묻어있고 사랑이 배여있는 베개라서 못 빨게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고 했다. 옆에서 돌보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기어이 빨겠다고 했더니 매우 화를 내셨지만, 나중에 사과하는 바람에 그 여인과 사랑하는 사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 자기를 돌보던 간호사에게 그 베개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부부의 정 없이 평생 떨어져서 살아왔는데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여인과 마지막 생애에 로맨스를 갖게 되어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숨을 그들 때 자기 연인에게 스코필드 박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꼭 알려 주라고 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다. 위대한 인간 뒤에 숨어있는 참으로 인간 다운 여린 감성을 보게 되어 연민의 정을 느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가신 한 인간드라마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한국울 매우 사랑하셔서 돌아 가실 때 유언으로 한국에 묻히고 싶다(I wish to be buried in Korea)라고 자필로 써서 남겼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현충원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했다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애국지사묘역에 안장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는 그만큼 캐나다 의료선교사로 우리나라 삼일독립운동을 도운 고마운 은인이기 때문이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1
어제:
32
전체:
225,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