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11
전체:
8,393

이달의 작가

아침에 눈을 뜨니 웬 낯선 남자가 / 수필

2021.07.08 17:05

민유자 조회 수:15

아침에 눈을 뜨니 웬 낯선 남자가

 

 아침에 자리에서 눈을 뜨니 웬 낯선 남자가 옆에 누워 있다. 돌아누운 뒷머리가 아주 섬뜩한 나쁜 인상을 주는 모양새다. 흠칫 놀라서 꿈인지 생시인지 얼른 분간이 안 다.

 

 요즈음 날씨가 화창하고, 며칠 전엔 흙 한 포대와 분을 몇 개 사다두었기에 마당에서 올망졸망한 화분들을 늘어놓고 분갈이를 하던 중이다.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와 숨차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다. “여보 나 어떡해? 글쎄, 이발을 했는데 엉망이 됐어! 어떡하면 좋지?”

 

 보통은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마중을 나간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며 찾아온 우편물이나 물병, 외투 등 소지품을 나에게 먼저 건네주고 나서 신을 벗는다.

 

 오늘은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도 싱크대에서 하던 일을 그냥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낮에 이발소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얘기 도중에 끼워넣는 나의 물음에 대답을 해가며 이야기를 다 끝낼 때까지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드디어 그는 나에게 “나 좀 봐!” 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머리는 돌리지 않고 눈만 옆으로 돌려 천천히 아래서부터 살짝 위로 곁눈질해 보았다. 여차하면 눈을 감아버릴 심산이었다. “영락없이 해병대 제대하고 방금 귀가한 사람이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곧 자랄텐데 뭘 그러느냐고 했다.

 

“아냐, 이 뒤 좀 봐” 하며 돌아서는데 그 모양이 참 해도 너무 했다. 보통 아래에서 사분의 일쯤은 머릿속이 보이고 그 위로는 머리가 덮여 있어야 할 것을, 반대로 위에서 사분의 일쯤만 머리가 남아 있고 나머지는 완전히 밀어버렸다. 볕을 본 일이 없는 창백한 피부가 마치 흰 가루를 발라놓은 듯 머릿속이 하다. 본 적이 없음에도 언뜻 감옥에서 금방 나온 사람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나는 미용실에 갈 때 꼭 한국 사람을 찾아간다. 말도 잘 통할 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굵은 머릿결을 다루는 솜씨가 훨씬 좋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 깎으면 세밀하고 정교하게 깎는 건 좋은 데 머리형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발소에서 히스패닉 여자 이발사가 머리를 깎았다 했다.

 

 그곳에 간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에 처음으로 갔었을 때는 잘 깎고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심을 했나 보다. 순서대로 먼저 온 어린아이의 짧은 머리를 끝내고, 남편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의 머리를 깎던 전기 커터를 머리에 대는 첫 번 손길에 이상하게 섬뜩한 느낌이 들더란다. 깜짝 놀라 “어! 어!” 소리치며 거울을 달래서 보니 머리 뒤 가운데를 그렇게 위까지 올려 깎았다. 이발소 안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남편에게 집중됐고, 곧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은 단골집에서 머리를 깎고 와도 나에게 여기저기 다듬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여자 이발사는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듯, 눈 둘 곳을 몰라 하며, 덮어놓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이 옆자리의 다른 남자 이발사가 와서 잘못 깎인 뒷머리 중심을 따라 머리를 최대한 다듬고 보니 지금의 모양이 된 거였다. 앞은 아주 짧고 우습지만 그래도 봐줄 수 있겠는데 뒷모양은 긴 도토리 모양이 됐다. 머리가 모양을 잡으려면 3개월 은 걸려야 하겠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족히 6개월은 걸려야 할 것 같았다.

 

 그 여자 이발사의 나이가 사십 정도로 보였다는데, 아마도 무슨 자기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어떤 복잡한 생각에 매여 골똘하다가 무심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겠지. 되 돌릴 수도, 변상해 줄 수도 없는 이런 실수를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미안했을까.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슬펐을까! 그 여자 이발사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이 솟았다.

 

 남편의 생소한 모습에 눈길이 자꾸 그를 따라 다녔다. 머리가 짧으니까 굵은 목은 더 굵어 보이고, 넓은 어깨는 더욱 넓다. 옆 으로 비스듬히 바라보니 이마에 주름과 턱 밑에 군턱도 더 드러나 보인다.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단의 두목을 보는 듯하다. 식탁에서 식성 좋게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니 머리통이 작은데 상대적으로 넓은 어깨와 가슴이 역도 선수 같기도 하고, 카우치에 함께 앉았다가 급히 일어서서 돌아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수사반장 같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35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머릿속에 있는 작은 흉터도 이번에 처음 발견했다. 미국에 와서부터는 사업체를 일구 느라 30년 가까이 낮에도 같이 지냈건만 아직도 이 사람에게 이런 구석이 있었나 하고 놀란다. 속은 확연히 다 몰라도 겉이야 확 실히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도대체 내가 저 사람을 얼마나 알고, 또 얼마큼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먼저 깨어 있었던지 남편이 아침 인사를 이렇게 했다. “여보 나야! 나라구. 놀라지 말아?” 그동안 눈에 익어 그런가? 머리가 그새 조금 자랐나? 나를 안심시키며 씽긋 웃는 남편이 씩씩하고 더 젊어 보였다.

 

https://youtu.be/1ZQifk7_J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