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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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감사의 조건 / 수필

2021.07.08 18:46

민유자 조회 수:10

감사의 조건

 

 저녁식사 후 앞마당에서 마른 더위에 힘겹게 늘어진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지니 여사가 손짓하며 불렀다. “저 녁은 먹었느냐구 응? 이리 좀 와봐요.”

 

 그녀를 따라 대문을 들어서니 반짝이는 새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에서 내 눈길을 확 잡아당겼다. “어머! 새로 사셨네요!” “응. 아무래두 그냥 안 되겠어서 사버렸어. 돈 다 뭐해?” 그 자리에는 커다란 전자오르간이 있었다. 피아노는 힘들어서 싫고, 그냥 살살 눌러도 소리가 잘 나는 그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라 했다. 이화고녀와 이화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대 초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 음악계의 떠오르는 새별의 촉망을 받으며 미국에 왔다. 당시 유수 명문으로 부와 명성과 권력이 함께한 가문에서 부족함이란 전혀 모르고 자랐다고 자랑한다.

 

 미국에서 사업가와 결혼하여 프란시스코에서 삼십여 년을 살았고 한때는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 듯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여러가지 정보에 어두웠고 가난했던 시절이라 국익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업을 알선하면서 여러 면에 특혜를 누렸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사업도 크게 번창했다. 그때는 한국의 좁은 상층 사회에서 연고가 닿고 연줄이 좋으면 안 되는 일이 없던 때가 아니던가?

 

 “우리는 세컨드 메리지라구.” 첫 번 남편은 급성 암으로 갑작스레 사별하고 남편의 병과 같은 병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둔 지금의 남편을 병원에서 만난 인연으로 함께 살고 있다. 그분은 수도 육군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주치의였고, 미국에 와서는 종합병원에서 오래 일한 심장내과 전문의사다.

 

 지니 여사는 나를 보면 언제나 붙들고 늘어진다. 때때로 과일 이나 야채를 사왔는데 다 먹을 수 없으니 가져가라고 전화로 부른다. 가면 많지도 않은 과일 한두 개나 야채 한줌을 쥐어주고는 잠시만이라도 앉았다 가라고 권한다. 동년배 같으면 거리를 좀 두겠으나 한국 사람이 드문 이 동네에서 외면할 수도 없다.

 

 그녀는 우리 부부가 자기보다 나이가 십여 년 젊어서 의지가 되는지 “내가 저녁이면 유you네 집에 불이 켜 있나 살펴본다구. 저기까지도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야 하구 내 마음을 위로한다구” ‘응? 이건 무슨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람?’ 얼른 알아듣기 어려운 이 얘기를 몇 번을 들은 뒤에야 알아차렸다. 전에는 큰 저택에만 살던 자기가 지금은 오막살이에 사는 게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의 아는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 집까지 자기 집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는 거다. 그 댁은 건평이 2,700평방피트의 새집이니 노부부가 살기에 적은 집이 아니다.

 

 평생을 자기 손으로 음식을 만들지 않아서 요리 실력이 기본부터 바닥이다. 어제는 갈비탕이 먹고 싶어서 뉴욕에 살고 있는 옛 날 찬모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깔깔대고 웃으면서 얘기해 주면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란다. “오, 야! 그래도 내가 요즘은 많이 안다구! 말해 봐.” 우리가 사는 동네에 아직 한식 음식점이 없다. 한국음식을 먹으려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으로 30여 마일 나가야 하는데 그 분들에겐 운전이 큰 부담이다.

 

 아직은 소유한 재산이 있어 쓰기에 넉넉하고 나 같은 가난한 이웃이 있어 자랑도 할 수 있다. 허나, 화려했던 과거의 족쇄로 인해 이야기 내용은 자랑을 하다가도 곧이어 탄식이 흘러나온다. 돌아보니 자기 일생에서 주어지고 누린 것은 많지만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구김 없는 성격의 자신감 속에서도 자긍심이 약하여 자랑의 끝을 언제나 “요모양 요꼴”이라는 탄식으로 맺는다.

 

 생각하면, 평생 살아오는 동안 그녀에게 주어졌던 모든 화려한 조건들이 그녀를 살맛나게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리기에만 적합한 사람으로 꼴 지어져서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아매는 조건들이 된 상태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다 갔나 몰라!” 하고 풀 죽은 탄식을 뿜어낸다.

 

 나는 지니 여사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은 조건과 상관없이 참 깨달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오늘도 그녀의 자랑과 탄식의 오르내림을 흥미롭게 들으며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미처 깨닫지 못할 때라도 믿고 감사하면 복이 된다는 생각도 한다.

 

 https://youtu.be/EKhQ3PXfz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