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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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거울 속의 여인 / 수필

2021.07.08 19:00

민유자 조회 수:6

거울 속의 여인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생각하며 거울 속의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던 거울인데,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이 새삼스레 점점 생소해진다.

 

 윤기 없이 까스스한 흰머리가 반백이다. 눈까풀이 내려 덮어서 눈꼬리가 축 처졌다. 눈이 작다는 소리는 안 들었는데 지금 보니 눈이 작은 편이다. 눈썹도 성글 뿐만 아니라 희어졌다. 광대뼈가 봉긋이 솟고 입도 앞으로 튀어나오고 입술도 조금 삐뚤어진 것 같다. 양 볼이 약간 늘어져서 좀 심술스럽게도 보인다. 양미간에 팔자 주름이 이미 깊게 터를 잡았다. 피부에 작은 점들이 많이 생긴 건 물론 관자놀이 부근에 페니 크기의 검은 반점도 생겼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도 다르고, 내가 되고 싶은 나와는 많이 동떨어졌다.

 

 얼마 전, 남편이 내가 교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 이마를 찡그린 다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러나보다 생각하고 알았다며 또 그러면 일러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그다음 주일 찬송 시간에 옆 구리를 쿡 찌르기에 알았다고 눈짓을 하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바로 며칠 전, 교회에서 찬송시간에 남편이 팔꿈치로 또 툭 쳤 다. 돌아보니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무릎 위의 손으로 자기 이마를 가리킨다. 얼른 고개를 바로 하고 다시 찬송을 불렀다. 조금 있다가 또 툭툭 쳤다. 이번엔 모른 척하고 그냥 있었더니 드디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얼굴 펴”라고 말했다. 즐겁게 찬송 부르던 마음이 그만 갑자기 짜증이 나면서 바닥으로 확 내려앉았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이상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내가 얼굴 찡그리지 말라고 가르쳐주는데 왜 언짢아하지?” 나는 기가 막혔다. 전혀 찡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에는 맘먹고 일부러 신경을 많이 써서 표정 관리를 잘했다.

 

 거울을 보고 다시 생긋 웃어봤다. 웃으니까 그런대로 나쁜 인상은 아니다. 이번엔 활짝 웃었다. 기쁜 표정인데 어딘가 충만한 기분이 안 들었다. 더 크게 웃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들이 잡혔다. 기쁜 표정 뒤에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귀가 처지지 않도록 조금만 웃어보았다. 그런대로 그중 만족한 얼굴이다.

 

 나는 일생을 돌아보면 몸무게가 크게 늘거나 줄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 전 제일 가벼울 때에 비하면 20파운드는 늘었다. 아이 둘을 낳고 10파운드 늘었고 중년 이후에 10파운드 더 늘었다. 그런데도 얼굴은 통통하기는커녕 눈까풀이 들어가고 얼굴에 굴곡이 많이 생겼다. 물론 이마도 햇솜 당져 넣은 방석처럼 반듯하고 탱하던 옛 모습이 아니다.

 

 피부 밑에는 얼굴 표정에 쓰이는 근육들이 있다. 자주 쓰이는 근육이 더 튼튼하게 발달할 것은 정한 이치다. 즐거운 표정을 자주 지으면 행복 근육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부정적인 표정을 자주 지으면 험한 근육이 더 발달할 것이 분명하다. 내 이마에는 양 미간을 모으고 눈살을 찌푸릴 때 쓰이는 근육이 잘 발달했다. 탄력을 잃고 얇아진 피부가 이제는 이 근육들을 더 이상 온전히 감추지 못하여 드러났다. 그래서 찡그리지 않았는데도, 아니 생각으로는 웃는다고 웃었는데도 옆에서 보면 이마가 찡그린 표정이 된 거다.

 

 살집이 좀 붙은 사람에게서는 드믄 일이나 마른 사람들 중에 가까이 가기 무섭도록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사람을 가끔 본다. 가까이 사귀고 보면 의외로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경우를 본다. 그러나 그건 한참을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반대로 나이나, 성별, 인물과 관계없이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인상을 준다. 특히 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 중에 웃는 주름이 얼굴에 터를 잡은 분들은 사람을 편하게 하고 가까이하기 쉽도록 여유를 준다. 실제로 그런 분들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젊은이나 어린이와도 소통이 잘되는 걸 봤다.

 

 나는 거울 속 여인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가장 예쁜 얼굴로 자꾸 웃는 연습을 하기로 약속했다. 찬송을 부를 때도 그냥 부르지 않고 힘써 웃으며 부르기로 했다. 평소에 헤픈 여자를 싫어하는 편이나 앞으로 웃는 일에는 헤픈이가 되기로 했다.

 

https://youtu.be/TWyrBAFLP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