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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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세월의 꽃 / 수필

2021.07.09 10:56

민유자 조회 수:20

 세월의 꽃

 

 젊음은 참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세월이 가고 늙으면서 우리는 잃는 것이 많아진다. 반면에 나이가 들면서 얻어지는 것 또한 많다.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 나보다 세 살 아래로 동생뻘 되는 사람이 자기는 나이든 분들 옆은 피하고 되도록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공연히 참견하는 잔소리를 듣거나 물질에 지나치게 욕심 사나운 모습을 보게 되어 골치가 아퍼 싫다고 했다. 나도 생각나는 바가 있어 슬그머니 웃으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나의 딸과 아들, 며느리가 합석을 한 자리여서 듣기가 거북했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그랬다면 모를까. “언니는 안 그래요?” “그래요? 나는 나이든 분들을 보면 아주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랬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며 의외라는 표정이다.

 

 내가 갱년기를 통과하는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보다 먼저 겪었을 연배의 주위 분들이 존경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려운 고비들을 꿋꿋이 잘 넘어오신 분들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욱이 지금은 음식이 훌륭하고, 약도 좋다. 안방극장에서부터 취미 생활이나 여행할 수 있는 기회 등으로 위로받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은 또 얼마나 좋은가? 우리의 선배 그리고 갱년기라는 말조차 모르고 지내던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면 공경하고 존경해야 할 당연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존경심이 더해졌다. 마치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과 같이.

 옛날에 비하면 요즘의 노년은 이삼십 년은 젊다. 요즘 육십은 옛날의 사십대처럼 싱싱하고 팔십이 넘어도 옛날 오십대처럼 정정하게 사시는 분들이많다. 그럼에도 기피증상은 날로 더해간다. 나이 든 이유만으로 괄시와 천대까지 받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가족이 많았다. 우리 집도 4대가 함께 살았다. 팔십이 넘으신 백발의 할머니께서 새 옷을 입으시면 꽃이 핀 것같이 집 안이 다 환해졌다. 지금도 작아진 체구에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께서 흰옷을 입고 양지바른 마루에 앉아계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예외의 특별 우선 순위에 계셨다. 장수하는 할머니가 집안의 자랑이고 영광이었다. 노년의 품위는 가풍이 세워주었고, 교육이 지켜주었으며, 젊은 사람들이 받들어주었다. 젊은 세대는 이런 풍토에서 자라가며 질서와 양보와 인내와 사랑을 배웠다.

 

 이런 아름다운 풍습은 이제 좀처럼 볼 수 없다. 핵가족 안에서도 대화가 단절되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소통하며 컴퓨터가 키워주는 세대의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지 자못 염려가 된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가속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늙음은 피한다고 면해지는 것이 아니며 또 욕심을 부린다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속상하고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다. 또 젊음을 꼭 연령에 의해서만 구분할 수는 없다. 나이가 어떠하든지 그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과 자세, 마음에 품은 이상을 이루려는 의지에 있지 않을까? ‘노인을 기피하는 젊음은 ‘젊음을 수용하는 노인’보다 오히려 늙어버렸다고 말하고 싶다.

 

 독일의 전설에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동굴이 있었으나 누구도 선뜻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가 있다. 모두가 젊음을 원한다지만 아련히 향수를 느낄 뿐 정작 돌아가는 일에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얘기다. 어느 시인은 이십대의 방황, 삼십대의 불안, 사십대의 번민이 싫어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생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음이란 낡음이 아니며, 꼭 젊음을 송두리째 잃는 것만도 아니다. 육체가 늙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정신과 마음까지 같이 늙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음을 지나온 후에 더하여 주어지는 삶이기에 삶의 소중함, 생의 아름다움을 더 진솔하게 느낄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요 선택받은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어깨를 보듬고 등을 토닥이며 귀엣말로 일러주고 싶다. 노년이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세월의 수없 는 골짜기와 등성이를 넘어온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며, 바라고 부러워할 축복의 꽃이라고. 이 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지혜의 꽃을 이미 손에 쥐었다고.

 

https://youtu.be/nCLbMZgJ7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