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11
전체:
8,393

이달의 작가

그러니언Grunion을 보려고 / 수필

2021.07.09 11:43

민유자 조회 수:7

그러니언Grunion을 보려고

 

 신문에 주말 특집으로 실린 기사에서 ‘달빛에 은빛 생명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그렇지 않아도 봄바람에 실려오는 봄 내음과 밝아진 햇살이 나를 들뜨게 하던 차에 남편과 함께 그 길로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해마다 3월에서 8월까지는 매달 초승과 보름에 8일 동안 남가주 해안에 그러니언이라는 물고기 떼가 짝짓기를 하거나 알을 낳기 위해 해안으로 몰려와 물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특히 3월 말과 6월 초에 피크를 이루는데 3월에는 낚시 허가증이 있으면 잡아올 수도 있다. 이번 주말에는 보름달이 밝으니 고기를 잡기에는 아주 좋다는 얘기다. 고기를 잡으려는 생각은 없지만 달 밝은 백사장에 은빛으로 반짝이며 으로 올라와 뛰는 물고기들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러니언은 정어리과에 속하는 5~7인치의 크지 않은 고기다. 그물이나 장갑도 사용하면 안되고 손으로만 잡아야 한다. 신문에 소개된 산페드로의 카브리요 해변은 집에서는 너무 멀어서 우리가 늘 가던 벤추라 해변으로 갔다.

 

 바다는 물이 그득 들어와 있었다. 해가 막 수평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고 바람이 세차지는 않아도 잔잔한 편은 아니라 파도가 우르릉거리며 하얗게 밀려들었다. 완전히 어둠이 깔리자 동녘에서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활절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보였다는 국립기상대의 발표대로 낮에는 무척 더웠는데 해가 지니까 꽤 쌀쌀했다.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도 불어오는 바람이 찼다.

 

 바다를 마주하고 서면 나는 설레다가도 언제나 빨려 들어가듯이 위압당한다. 파도는 계속 거품을 품고 달려 들어왔다가 경사진 모래사장을 핥아 내려갔다. 바다가 만들어내는 파도의 굴곡과 밀려들어오는 힘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니 조금씩 시차를 두고 다양한 모양이 만들어진다. 아마도 태초 이래 한 번도 같은 모양은 만들지 않았으리라. 멀리서부터 기세 높게 밀려오던 파도가 멀리까지 밀려들어오리라 예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먼저 들어온 파도가 내려가면서 나중의 파도를 안아 내려 주저앉힌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정말 짓궂게 예상치 못한 상당한 거리의 안쪽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기도 한다.

 

 파도를 바라보다가 아마 우리의 세상사도 이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 이래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그러니 같은 사건도 없었을 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주장으로 세상의 물결은 언제나 예상치 못하는 파도를 만들어내고 또 끊임없이 이어질 게다.

 

 일반적으로 분별이 있는 사람이나 진정 똑똑한 사람이 꼭 역사를 주관하지 않는다. 또 부당을 감내하면서도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직한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이끌어 나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만이 승승장구하면서 세상을 쥐고 흔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밀물과 썰물이 틀림없이 있는 것처럼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어길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방향으로 세상은 이끌려 간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반바지 차림으로 한 시간쯤 낚시를 드리웠던 남편은 해가 꼴딱 넘어가자 옷을 갈아입고 마른 양말과 새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그래서 바닷가를 거닐자는 내 청도 마다하고 멀찌감치 서서 고기떼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온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기까지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단념하고 돌아가자고 얘기하며 바다를 등지고 막 돌아섰는데 갑자기 파도가 발목까지 밀려와 신발과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셨다. 새 운동화를 더럽히지 않으려던 남편이 분을 내는 바람에 나는 한참 더 깔깔 웃었다. 졸지에 당한 작은 재난이 세상 파도가 아니고 고작 바닷 물에 적신 신발일진대 크게 웃을수록 좋을 일 아닌가?

 

 그러니언은 못 봤어도 가는 길에 봄비로 새파래진 산과 들, 흐드러진 들꽃들을 보았고, 겨우내 답답하던 마음속 먼지를 바닷바람에 털어내고 바다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고, 휘영청 보름달에 밤바다를 느꼈으니 돌아오는 길에서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https://youtu.be/lDKjn18_7_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