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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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금잔의 축제 / 수필

2021.07.09 11:57

민유자 조회 수:9

금잔의 축제

 

 파피꽃15) 철이 왔다. 올봄에는 비가 많이 왔으니 앤텔로프 밸리Antelope Valley엔 파피꽃이 필경 많이 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늘 파피를 보고싶어하던 나는 싫다는 남편을 졸라 또 파피꽃을 보러 갔다.

 

 전에도 남편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두 번 다 내가 우겨서 갔는데 한 번은 서울에서 온 손님까지 데리고 갔다. 아무 볼거리가 없는 황량한 벌판과 낮은 구릉에 파피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먼 길을 달려가 구경할 만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려갈 듯 차가운 바람이 품속을 파고들고 바람에 섞인 흙먼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결국 고집스럽게 우기던 내 입장만 미안하고 난처해졌다. 싱겁게 그냥 돌아올 수 없어서 차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바람에 클어진 머리로 잔뜩 움츠리고 얼굴마저 찡그린 채 찍힌 사진조차 영 볼품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많은 파피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10여 마일 전부터 아지랑이 핀 먼 산이 주홍색 거대한 담요를 덮어놓은 듯 붉게 보였다. 물 주어 가꾼 정원의 꽃이 아니다. 사막성 기후의 초원과 구릉의 마른 땅에 철따라 야생으로 핀 꽃이다. 차에서 내려서니 눈이 닿는 온 땅이 노랑과 주홍색 물결로 넘실댔다. 파피꽃이 밝은 봄볕 아래 얼굴을 반짝 들고 웃음을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니 솟구치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왔다. 절로 나비가 된 듯 온 들을 마구 쏘다니며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꽃밭을 누볐다.

 

 파피의 또 다른 이름은 Copa de Ora(Cup of Gold)라 하는데 이름과 같이 종지 모양을 하고 있다. 파피는 코스모스와 같이 꽃대와 잎이 가늘다. 여린 꽃대가 활짝 핀 화려한 꽃을 받쳐들고 작은 바람에도 간들거리는 모습이 가녀린 소녀의 화사한 미소를 보는 듯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무리 진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는 작은 종들의 합주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이 꽃은 낮에 피었더라도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다. 낮에도 해가 구름에 가리거나 날씨가 차면 꽃이 오므라들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다. 전에 갔을 때도 제철이었지만 그날의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니 활짝 핀 파피꽃 사진들도 물론 아름다웠거니와 꽃물 흠씬 든 인물 사진들도 하나같이 예뻤다. 지금도 봄 햇살을 가득 담은 작은 금잔을 높이 들고 축제 노래를 부르는 파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5마일에 걸친 1,800에이커의 광활한 야생 파피꽃 단지는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앤텔로프 밸리에 살았던 제인 핀헤이로Jane Pinheiro(1907-1978)라는 한 여성의 꿈을 향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1942년 로라도 버에서 이주해 온 그녀는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 아님에도 자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그 지역의 야생화와 동물들의 소상한 그림들도 많이 남겼다.

 

 아무 특징도 없는 메마르고 광활한 볼품없는 사막, 지금도 인가가 거의 없고 점심을 먹을 변변한 버거 가게조차 없다. 짐작컨대, 단조로운 일생을 살았을 제인이 자기의 소박한 꿈으로 처음부터 이런 장한 설계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일생을 두고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룬 것에 감탄하면서 환경과 조건을 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도 작은 일에 성실을 다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두고두고 오는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가녀린 소녀들이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금잔에 햇살을 가득 담아 축배를 들자고 청한다

 

한 여인의 소박한 꿈이

 

성실의 방석에 앉아 미풍의 마차를 타니

 

손끝에서 떨어진 한 줌의 작은 씨앗에

 

광활한 산과 들이 파피로 물들었다

 

금종을 울려 만인을 부르니

 

금잔의 축제에 초대된 손님들

 

홀연히 나비가 되어

꽃바람 타고

 

꽃물결 위를

흥에 겨워 날며 노니네

 

 전에는 파피꽃을 제대로 못 봐서 다시 한 번 가기를 늘 원했지 만 이제는 한 마리 나비로 금잔의 축제, 꽃물결 위를 나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 한 또다시 가고 싶다.

 

 

 

15) 리포니아 파피California Poppy - 캘리포니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야생 파 피. 1903년 캘리포니아의 주화로 정해졌다. 파피는 다년생 식물로 거의가 밝은 노 란색 아니면 붉은 주홍색이다. 그러나 간혹 흰 꽃도 있고 보라색이나 섞인 색의 꽃이 있다지만 드물다. 키는 6인치 정도이고 커봐야 18인치 정도로 작다.

 

https://youtu.be/zOdJ7M4Y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