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11
전체:
8,393

이달의 작가

우리 가락과의 조우 / 수필

2021.07.09 12:47

민유자 조회 수:4

우리 가락과의 조우

 

 첫 손자가 첫돌을 맞았다. 산호세에 살고 있는 아들네를 가려면 자동차로 편도 다섯 시간이 걸린다. Fwy 5는 경치가 비교적 단조로운지라 집을 떠나면서 오가며 들을 음악과 설교 테이프를 챙기다가 옛날에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두었던 민요 모음집을 가져갔다.

 

갈 때 남편에게 민요를 듣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꾸 나중에 듣자고 해서 미루다 올 때서야 민요를 들었다. “정선 아리랑 먼저 틀어봐.” 여러 곡을 다 듣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CD 두 개에 들어 있는 스물일곱 곡을 다 듣고도 정선 아리랑은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를 휘돌아서...’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갔다가, ‘칭칭 늘어진 능수나 봄버들이 제멋에 겨워 흥흥’대는 천안 삼거리로 갔다. ‘봄버들에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지금의 노량진, 노들나루에서 만고 풍상 비바람에 씻긴 빛나는 흰 모래를 밟아보고, 장산곶 마루에서는 임도 만나본다.

 

 경치 좋은 잣나무 그늘에서 울산 아가씨를 만나 실백자 얹은 전복쌈도 먹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라는 밀양으로 돌다보니 종횡무진 날개 달린 발걸음엔 절로 신이 난다. 나는 얼마 전에 배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세마치와 굿거리장단 으로 무릎을 치고 남편은 간간히 “얼쑤우”, “조오타”를 신명나게 곁들인다.

 

 어느 날, 신나게 드럼 치는 공연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 저렇게 신명나게 드럼을 두들겨봤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음악을 좋아는 했지만 1인 5역의 삶을 살아내느라 음악과 별로 친숙하지 못하며 살아왔고, 더구나 드럼과 관계있는 젊은 음악은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동네 신문에 난 국악 학원 광고에 내 눈이 머물고 드럼 대신 장구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던 50년대나 60년대 시절에는 세간에서 국악을 좀 무시하던 때였다. 나는 자연스레 국악에 대해 무지했다. 그래서 서너 달만 배우면 장구를 꽤 칠 수 있으리라 가볍게 생각했다.

 

 장구를 대하고 앉으면 왼쪽은 궁편, 오른쪽은 열편이다. 왼쪽을 치는 궁채와 오른쪽을 때리는 열채를 장단에 맞추어 가장 간단하고 느린 장단인 세마치부터 배웠다. 그다음 굿거리,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로 점점 빠르고 복잡한 장단으로 나간다.

 

 세마치장단은 4분의 3박자로 옛날 악보 없이 입소리로 구전되던 구음으로 하면 ‘덩 덩따 쿵따, 덩 덩따 쿵따, 덩 덩 따, 덩 덩따 쿵따’. 쿵은 궁채 소리, 따는 열채 소리, 덩은 열채와 궁채를 같이 치는 소리다. 네 마디 한 소절 중에 셋째마디는 변조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간단한 3박자를 치는 것도 강약을 조절하고 타점을 정확히 때려가면서 장단이 몸에 배일 때까지 반복 연습이 꽤 필요했다. 조금 알고 보니 한국음악의 장단이 서양음악의 장단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조가 많아 익히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드럼은 3개월 열심히 배우면 어느 정도 칠 수 있다는데 장구는 3년을 배워도 어느 경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용도 그랬다. 서양 춤은 힘 있는 직선이 강조되고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중심을 잡는데 고전무용은 발뒤꿈치에 중심을 두고 되도록 땅에 붙인다. 특히 우리 고전은 부드럽게 흐르는 선이 정, 중, 동을 따라 유연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보기에는 참 쉬워 보이나 그 맛을 먼저 알기 전에는 흉내 내어 배우기가 꽤 힘들었다.

 

 탁발승이 집집이 시주를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다. 어느 날 탁발승이 대문 앞에 와서 염불을 했다. 어린 내가 얼른 쌀독에서 쌀을 담아내오니 마루에서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께서 돋보기 너머로 눈짓을 하며 잠시 중지하라는 손짓을 하셨다. 영문을 몰라 한참 서있었는데 나중에야 알아챘다. 어머니는 그 탁발승이 부르는 회심곡의 청이 듣기 좋으셨던 거다. 라디오도 없던 시절의 얘기다.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어설프나마 조금 맛을 들였더니 내가 직접 표현해 내지는 못해도 국악을 들으면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에 묵은 체증이 봄바람에 얼음 녹듯 풀어지는 후련한 느낌을 맛본다.
서양음악에 없는 엇박자나 토속적인 창법에서 가슴속에 눌어붙은 향수의 앙금을 긁어내는 시원함과 한국 서정의 진솔한 멋을 느낀다. 무엇이든지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가까이하면 알게 되며, 즐긴다는 것은 아는 것과 비례하니까 아는 깊이만큼 즐거움도 커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가락과 조우하면서 볼거리가 없는 밋밋한 Fwy 5를 지루한 줄 모르고 다녀왔다.

https://youtu.be/ti_2h8jiN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