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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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백의민족 / 수필

2021.07.09 12:37

민유자 조회 수:3

백의민족

 

 인터넷을 통해서 지인이 1954년과 1955년 사이에 찍힌 한국의 풍물 사진을 보내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진들을 보았을 게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 흰옷들만 입고 있네!”

 

 조선의 백성들이 백의민족이었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고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사진을 실제로 보고는 많이 놀랐다.

 

 처음 사진은 소시장 풍경이다. 넓은 마당 한가득 소를 흥정하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영화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제복을 맞춰 입힌 듯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흰옷을 입었다. 전에도 그 시절 사진들을 본 적이 있지만 모두 흑백사진들이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것은 라사진이라 더 뚜렷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사진들에서도 어린이와 젊은이, 군인들은 유색 옷을 입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흰옷만 입고 있다.

 

 이 사진들은 미국에 유학 간 유학생의 아내가 현지에서 영어를 배우던 아담이라는 80대 노 선생님의 집에 초대되면서 우연히 발견됐다. 아담은 당시 의대를 갓 졸업하고 자원봉사로 교회를 통해 한국으로 갔다. 그때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 속에는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방 둥이인 난 그때의 그 사진 속에서 우유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선 볼이 통통한 단발머리 소녀, 바로 그 모습이다. 폭격에 무너진 폐허의 잔해 빈터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다.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인파 속에는 언니와 오빠가 있고, 쪽 진 머리에 수건을 쓴 여인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찍힌 당시 어머니의 모습이다. 불과 육십여 년 전인데 이렇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다니!

 

 그러고 보면, 한국은 놀랍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음을 자 타가 공인하지 않을 수 없다. 몸체가 두 동강이 나고 동족이 서로 적대시하면서 코앞에 숙적을 두고도 단군 이래 있어 본 적이 없는 초유의 번영을 이룩했다.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서 있음을 생각하면 작은 나라에서 이룩한 성과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모르겠다. 그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그리 불만이 많을까?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왜 그리 높으며, 오늘의 부국을 이룩한 장본인인 노인들은 대책 없이 비참한 빈곤 지경에 내몰리게 되었는지?

 

 듣건대, 2003년 이후 13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쓰고 있고,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53.3명으로 국민 평균 자살률의 2.1배에 달하며, 불만지수는 OECD 평균의 4배라는 어이 없는 통계다.

 

 빈한한 가운데서도 칼같이 지켜왔던 예의범절은 다 어디 가고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이제는 ‘동방 무례지국’이라 거꾸로 읽어야 할 판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군 이래 최고의 강성부국

 

경제대국

 

무역대국

 

기술대국

 

과학대국

 

문화대국

 

무궁화꽃이 활짝 피었어요

 

그런데

 

국민 행복지수는 꼴찌

 

자살률은 첫째

 

머리가 배탈이 났을까

 

배가 두통이 났을까

 

 어찌 보면 부모 세대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허리띠를 조여 매고 불철주야 앞만 보고 여유 없이 달려온 때문일 게다. 뒤도 돌아보고, 옆도 돌아보고, 위도 올려다볼 여지 없이 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과열경쟁 속에 내몰렸던 자녀 세대는 과보호 아래 풍요를 누리는데 적합하고 일구는 데는 미숙한 연약한 귀동이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버겁고 나를 할애하여 예의를 지켜나갈 힘이 달린다. 그러니 감사할 여유는 도무지 없다. 불만이 쌓이는 이유다. 실업률이 높고 취직자리가 없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은 봉급이 많고 편한 직장을 찾으니까 그렇지 외국인 노동자의 무시 못할 상당수가 한국에 와서 어렵사리 일하며 공부하는 현실을 보면 일자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자립심과 창의력이 있고 더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면 젊음을 불사를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리라.

 

 빈한해도 나눌 줄 알고 체면을 지키며 예의를 존중했던 그 시절을 한번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을 게다. 올챙이 적 생각을 해보자는 게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 사관이 바로 서야 방향을 제대로 잡아 망국의 길로 접어들지 않고, 관성이 붙은 발전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확고한 강성부국을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게다.

 

 흰옷 입고 짚신 신고 미덕을 지키며 살아온 백의민족. 그 역사를 철저히 배워서 교훈을 얻고, 구악의 고리는 끊어내어 새로운 동방예의지국의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배탈도 두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조국에 그런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https://youtu.be/OTd2bwWAM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