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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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은사시 단풍 / 수필

2021.07.01 11:09

민유자 조회 수:15

은사시 단풍

 

산타페 북동쪽에 있는 산 발디Baldy PK(12,622피트)는 10월 중하순 이 되면 서남쪽인 산타페에서 바라보면 산봉우리만 빼고 온 산이 갑작스레 노랗게 물들어 노란 산이 된다. 이때는 관광객 차량이 줄을 이어 산길을 오른다. 산타페가 뉴멕시코주의 주청소재지이기는 해도 작아서 도시 외곽을 자동차로 한 번 돌아오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관광객이 몰리기로는 프란시스코와 함께 산타페가 미국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다. 물론 인디안 페어가 주말마다 열리는 여름 철에 관광객이 가장 많다. 하지만 겨울에는 혹독히 지도 않으면서 눈이 5월까지 많이 오므로 스키장이 여름 석 달만 빼고 언 제나 성업 중에 있다.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의 풍속을 따라 지어진 서까래가 밖으로 툭 튀어나온 토담집 아도비의 인기도 많다. 게다가 이 지극히 토속적인 풍물 위에 얹힌 독특한 크리스 마스의 색다른 정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비기 때문에 연중 어느 때나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아스펜 비스타Aspen Vista가 있는 스키장까지는 산타페 시내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처음 30분 정도 올라가는 중에는 잡목 속에 가끔씩 섞여 있는 은사시나무가 있지만 보통 낙엽처럼 누런색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 시간 가까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활엽수는 없어지고 침엽수 가운데 가끔 노랗게 물든 아스펜 단풍으로 눈이 즐거워진다.

 

고지대로 올라가면 아스펜 단풍은 은행잎처럼 밝은 노란색으 로 물든다. 아스펜은 은행잎보다 기 때문에 햇빛을 조금 통과 시키므로 아름답게 밝은 노란색이고 이 투영된 빛의 조명으로 나무 주위는 더욱 환하게 밝고, 하얀 줄기와 나뭇가지는 더욱 희다.

 

아스펜 잎은 역삼각형 중심에 꼭지가 길게 달려 있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나뭇잎이 잘 흔들린다. 한국말에 ‘사시나무 떨듯 한다’는 말이 있다. 실바람에도 팔랑거리며 흔들리는 노란 등불의 아름다움이 생동감으로 다가와 사람의 마음을 기쁨으로 흠씬 물들인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올라가면서 3,000미터 가까이 이르면 다른 활엽수는 살 수 없다. 오직 상록수만이 푸르게 울창한 가운데 여기저기 아스펜들이 가늘고 하얀 줄기로 가파른 산비탈에 무리지어 서 있다. 산길을 한 구비 돌아갈 때마다 빽한 전나무의 청록색 배경에 무리져 물든 노란 아스펜 단풍의 대비는 신선하고 아름답다.

 

깊은 산길을 오르면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록새록 아름다운 경치를 펼치는데 북향 비탈에는 전나무 숲이 질서 정연히 하늘을 향해 빈틈없이 빼곡하게 푸르다. 아스펜은 남향과 서향 비탈에 많다. 높은 봉우리를 돌아갈 때 산봉우리는 푸르고 산허리는 아스펜으로 온통 노랗다. 좀 낮은 산을 돌아갈 때는 온 산이 노란 을 입고 있다. 산자락을 돌면서 시야에 온통 밝은 노란색이 들어올 때엔 저절로 감탄의 탄성이 터진다. 노란색이 이렇게 아름답고, 밝은 기쁨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할 수 있음에 새삼 놀란다. 어느새 마음의 찌꺼기와 우울한 염려는 송두리째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볍다.

 

아흔아홉 고개 구비 구비

 

폭마다 짙푸른 청솔 울창한 사이사이

 

수줍고 가녀린 노란 아스펜 무리 져 어우러져

 

실바람에도 간지럼을 타는가

 

환한 등불을 켜들고 연신 팔랑거리는 그 손짓에

 

내 마음도 노랑 물 흠뻑 들었네

 

구치는 기쁨의 춤사위는 돌개바람이 되어

 

노랑 꽃단풍 흐드러진 계곡을 휘돌고 넘나들고

 이런 아름다움은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빠르게 겨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중에도 눈이 내리면 길은 차단되고 갑작스레 기온이 내려가면 단풍잎들은 모두 떨어져 버린다. 노란색이 희망과 환희의 색인 것을 눈으로만이 아닌 온몸으로 체험하며 노란 계곡을 넘나들던 그 생생한 기억은 산타페의 아름다운 추억들과 함께 언제나 내 기억 속에 환한 기쁨의 결정체로 남아 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미국 중남부 산타페에서 들썽이는 은사시 단풍의 노랑 함성이 나를 부르는 듯 가에 들려오곤 한다.

 

 https://youtu.be/cST_uEzPr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