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30 17:16
2003 미주 한국일보 수상 작품
효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근우회로부터 사회 여러 부문의 공로자를 표창하는 중에 효부상을 받았다.
이게 웬 날벼락? 받고 싶지도 않은 상을 받고 맷돌짝을 지고 다니는 것같이 무거웠다. 난 내가 효부라고 생각지도 않았고 효부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조선시대에 태어난 어머님이 기대하는 효부의 전설과 남편의 생각 속에 있는 효부의 그림을 수긍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화가 올라서 얼굴이 불그레했다. “아니 그래, 네가 무슨 효부냐? 응? 효부는 아무나 되는 줄 알어? 나 참! 남들이 뭘 안다구.” 언성을 높이고 말을 다 더듬으며 “그, 그래 네가 나한테 뭐, 뭘 그리 잘했냐? 어? 어서 말해 봐라.”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는 안다. 어머니의 속을.“난 첫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장독간 소제 다 하고 나서 새벽밥을 지어먹었다”그리 말하시니 난 주말 아침에도 샤워하고 머리를 정돈하지 않고는 부엌에 들어서지 않았고, 늦잠은 엄두도 못 냈다.
늦동이 외아들의 대한 사랑이 지극했으니 나에 대한 기대도 크셨다. 난 그를 다 충족시킬 수 없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정말로 효부가 가당치 않았으니 그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이참 저참 해서 눈물만 펑펑 쏟았다. 효도라는 명분으로 내게 강요되는 노력과 희생. 그러면 나는 이렇게 계속 썩어가도 되는 것인가? 끊임없이 울리는 양심의 소리와 누르고 밟아도 다스려지지 않는 욕구의 갈등을 어찌할 것인가?
웃지 못할 얘기로, 친정 오빠가 고생한다며 당시 처음 나온 전 기밥솥을 사주었는데 밥맛이 없다는 이유로 6개월이 지나도록 사용을 못했다. “에구 요즘 사람들은 참, 아니 밭을 매나 길쌈을 하나 바느질을 하나 옛날 같았으면 똥을 싸구 뭉개겠다 쯧쯧.”
아들이 중했으니 손주도 귀애하셨다. 난 딸을 먼저 낳고 다음에 아들을 낳았는데 내가 만일 아들을 못 낳았으면 쫓겨났을 거라고 말하면 지금도 남편은 그랬을 거라고 수긍한다.
“낳기는 네가 낳았어도 네 아이 아니다!”
어머님이 나들이 가신 날, 남편을 부추겨서 애기를 목욕시켰다. 평소 내 손으로 한번 아들을 목욕시켜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디 가도 오래 머무는 성격이 아닌 어머니는 대문에 들어서며 “물 데워라 애기 목욕시키게.” 흠칫 무슨 잘못을 저지른 양 목욕시키었노라 하니 “그새 시켰어? 내가 어련히 시켜줄라 구!”라고 투정 같은 꾸중을 들었다.
미국에 와서 한번은 독립기념일 연휴에 캠핑을 갔다. 그때 우리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할 때였다. 모처럼 밤을 새워 준비하고 온종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중전화에 가서 어머니에게 밤 인사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과 남편은 어이없게도 내일 아침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집에 혼자 남아 있는 할머니가 쓸쓸 하실 것 같아 견딜 수 없다고. 덥기 전에 일찍 일어나 짐을 싸서 돌아왔다. 어찌나 마음이 무겁고 아쉽던지!
이민자의 삶이 녹록지 않으니 우리 부부는 눈 돌릴 새 없이 사업에 전심으로 매달렸고 어머님은 집안에 초석이 되어 아이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주셨다. 어느덧, 나는 없고 며느리와 아내와 엄마만 있는 세월이 쉼 없는 강물처럼 흘러갔다.
아들은 대학원 졸업식 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아들 장가를 들이기 전 기념으로 딸도 휴가를 내어 며칠 온 가족이 꿈같이 함께 지냈다. 다음 날 새벽에 아들이 먼저 떠나고 딸은 그다음 날 떠나기로 되었다. 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자정을 넘어 각방으로 들어간 후, 나는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해놓고 이층으로 가려다 아들의 가방 위에 놓인 한국 마켓 영수증을 봤다. 아들이 친구들을 위해 딸에게 간식거리를 부탁했나보다.
“아유 깍쟁이같이 꼭 이렇게 받아야 하나? 내가 대신 주어야지” 하며 영수증을 내 주머니에 찔러 넣다가 문득 머리가 확 트이는 생각이 들었다.
- 아아! 하나님도 그래서! 저들에게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당 연하겠지만 부모인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되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신 아들 예수님은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고, 요한 사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일러주셨구나!
요즘 중증 치매로 투병 중인 어머님 때문에 내 마음 한편엔 아직도 능력 있는 내가 많은 기회를 잃고 꼭 우물 속에 갇힌 것 같 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로 인해 많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알았다. 책을 읽고, 틈틈이 글도 쓰고,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며, 컴퓨터도 익히고, 요리와 정원 가꾸기, 블로그까지 만들었다. 차안대 씌운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내가 눈 길 돌리지 못했던 일들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효부라고 생각지 않는다. 허나 지금의 나는 효부가 되고 싶다. 효부가 무엇인지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요, 가정 안에서 함께 아프고 함께 느끼며, 약하므로 먼저 싸매고 보호해야 하는 한 지체고, 나를 바라보며 “나를 아느냐?” 물으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찬 얼굴이다.
때때로 불쑥불쑥 털고 일어서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 금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어머님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 효부상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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