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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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거멀못 / 수필

2024.05.03 15:34

yujaster 조회 수:27

거멀못 / 민유자

 

  소중히 여기던 크고 예쁜 화분이 깨졌다. 에고나! 서운한 마음에 그냥 버릴 수가 없다. 예전에 거멀못을 치던 생각이 나서 도자기 풀을 사서 붙이고 스텐레스 밴드를 주문하여 목을 동여매었다. 

 

  물자가 귀하던 옛날에는 물건들을 소중히 여겼다. 설사 그것이 사용중에 깨지거나 터져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수선하고 보수하여 애지중지하며 수명을 늘려 사용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 우리집에서 쓰던 나무 함지박도 깨져서 금이 갔다. 그냥 두면 조만간 쪽이 떨어져나가고 것을 아버지가 거멀못을 박아 고정시켜 것을 기억한다. 고사를 지내기 위해 떡을 때나 장을 담글 때같이 그릇이 필요할 때는 유용하게 쓰이며 몫을 단단히 해내던 함지박이다.

 

  아득한 유년시절의 기억에는 집안 살림살이에 거멀못을 박아서 수선을 해주는 공인이 있었다. 사람은 크고 작은 거멀못을 준비하여 장비를 둘러메고 다니다가 주문을 받으면 멍석이나 가마니를 그자리가 바로 공방이 된다. 한나절이 걸리거나 하루에 끝내면 다음날까지 끼니 대접을 받아가며 일을 하곤 했다. 

거멀못은 나무제품만이 아니라 항아리나 술독, 자배기 같은 옹기 그릇에도 박았다. 나무제품에는 그냥 두드려 박으면 되지만 옹기 그릇에는 먼저 깨어진 금을 따라 양쪽으로 작은 구멍들을 뚫어 놓고 구멍에다가 거멀못을  겸쳐 박아 고정시키고 옹기의 입구는 철사로 동여서 깨지는 것을 방지했다.  

일년에 두번 오는 사람은 지금과 달리 주소지도 연락처도 없는 지라 금이 옹기와 자배기는 장독대 쪽에서 계절을 거르며  마냥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물자를 아끼며 사용했고 시간은 천천히 여유있게 흘렀다. 그러던 것이 웬걸! 생애 안에서 이미 지구는 폐품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이고 보니 격세지감이 들고 빠른 속도의 경각심으로 두려움마저 든다.

 

  사람의 인품에서도 거멀못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하는 몇분의 지인이 그렇다. 그분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닮고져 노력하는데 작은 손익에 희비를 나타내지 않고 그렇다고 크지 않은 일에 더더욱 생색을 떠벌이지 않는다. 시답잖은 일로 상대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고 책임지지 못할 일을 장담하며 큰소리 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거멀못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인격을 가만히 살펴보면 지나친 자신감이나 자만심이 없다. 도에 지나친 겸손함이나 열등의식도 가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학력이나 빈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고마움도 알고 부끄러운 줄도 안다. 유연성이 좋고 매우 상식적인 분들이다. 

 

  거멀못은 사용처인 나무나 질그릇보다 재질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이음과 벌어짐의 방지 역할을 감당할 있다. 쉬이 부서지거나 깨지고 끊어지면 소용이 없다. 강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강하지만 때로는 굽히고 접을 있어야 한다. 우선 걸쇠 역할을 하자면 ㄷ자로 구부려야 하고, 나무에는 박아넣기만 하면 되지만 옹기나 질그릇에는 겸쳐 박아넣고 끝을 접어놓아야 빠지지 않고 단단히 고정된다. 

사람에게 있어 거멀못 역할의 능력은 보통의 인격에서는 나올 없는 류다. 학식과 재능만 가지고 일도 아니다. 먼저 자신을 비우고 절제할 있어야 한다. 인격의 그릇 크기가 넓고 생각의 깊이 또한 깊은데서 비롯되는 전체를 아우르고 조망하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더하여  따뜻한 인간애가 있지 않으면 생성될 없는 능력이다! 진정한 휴머니스트일 때에 가능하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예수의 산상수훈에 있는 팔복 중의 7번째 복이다. 화평케 하는 자란 바로 거멀못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함이 아닐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했으니 가히 최고의 인정을 받은 복된 덕목의 사람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비록 예수 뿐이랴? 석가도 공자도 장자도, 성인, 사상가, 철학자를 비롯하여 하고 많은 위인들이 화합과 평화를 가르치고 이를 위해 수많은 의인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뤄왔지만 인류는 분열과 분쟁으로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

 

  사람은 족보를 따라 혈통을 이어오는 가문 안에서도, 아니 아비를 두고 같은 어미에게서 형제간도 오롱이 조롱이다. 제각각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진 개체로 태어나므로 모든 인간관계는 쉬지 않고 마찰과 분열이 엉키는 것은 불가피하다. 남녀의 만남이 그러하되 사랑의 거멀못이 있으면 티격태격 하다가도 종내는 가정을 꾸리는 관계로 발전한다. 가정 안에서도 가족애를 바탕으로 이해와 용서와 희생의 거멀못을 유효적절하게 많이 사용할수록 가정은 단란해진다. 이렇게 건강한 가정안에서 부디치며 훈련된 성숙한 거멀못의 역할은 나아가 소속된 사회 각처의 단체, 기업, 국가에서 소임을 다하고 이바지하게 된다. 결국 가정을 탄탄히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사회나 국가에 알찬 공헌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로써 가정에서 시작된 온기는 나비효과를 가져와 지구촌의 평화를 조성하는 일에 몫을 담당하는 형국이 된다. 이는 평소에 미처 깨닫지 못할 지언정 틀림 없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행복한 공생의 복록을 편만하게 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랑스런 거멀못! 너는 작은 존재로 신통하고 기특한 역활을 해내는구나! 네가 물건에 쓰이면 자원 절약과 환경 정화로 몸살 지구를 살리게 되고, 네가 인격에 쓰이면 지구촌의 평화에 기여하여 인류를 살려내니 진정 귀엽고도 고마운 존재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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