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詩 · 눈 속에 갇혀서…

2008.12.25 05:50

arcadia 조회 수:667 추천:20




설경(雪景)에 詩를 놓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이 내리는 詩, 설경(雪景)안에 詩놓으며….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사랑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눈오는 地圖 ㅡ 윤동주





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것처럼 窓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우에 덮인다

房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과 天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前에 일러둘 말이 있는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을 눈이 자꼬 나려 덮어 따라 갈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어 나서면

一年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눈 속에 갇혀서 ㅡ 유 봉 희







눈 내리는 레드우드 숲으로

세 시간쯤 차를 달려

작은 통나무집에 갇히면

사랑하는 사람과

눈 속에 갇혀보고 싶었던 사람

혼자서라도 행복할까

눈은 내리고 쌓여 창문을 가리고

이름 몇 개 밀물과 썰물로 오가다

하얀 모래톱 사이로 사라지면

눈감아도 환한 창문을 향해

두어 시간 닻 내린 배처럼 그저 흔들리고 싶어

그러다가 문득 가까운 듯 먼 듯 밤새가 울면

그냥 감사기도를 하겠어

가끔 그분께 물어보고 싶었던 것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두고.

이제 새들도 잠들어

고요함이 고요함에 업힐 시간

어찌할까 풀어진 두 손

처음으로 내가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으면

눈 속에 혼자 갇혀서.
















한계령을 위한 연가 ㅡ 문정희






한겨울 못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기는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것 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하여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맣게 포탄을 뿌리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와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까지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바를 모르리
















대관령 옛길 ㅡ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ㅡ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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