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9 06:47

벌레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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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그녀



이월란(09/08/26)



내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 자라고 있을 때 엄만 참빗으로 머리밑이 파이도록 긁어내셨다 그리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지손톱으로 톡톡 죽이셨다 날개도 없는 방추형의 이들은 신문지 위에 홑눈으로 쓴 혈서들을 유서처럼 남기고 쭉쭉 뻗었다 나의 비명은 그녀에겐 음악소리에 불과했다 그녀는 날 위해 뭐든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주었다 거미도 개미도 지네도 송충이도 난 내게 이를 옮긴 그 지저분한 아이도 엄마의 손톱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피비린내나는 손이 지은 밥을 먹고 자랐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벌레들을 잘 잡아죽일 것 같아서였다 과연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파리도 휙 낙아챌 정도니 우리가 계속 붙어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이 벌레들이 줄창 나타나주기 때문이다 정말 미울 땐 이처럼 내 몸을 스물스물 기어다니기도 하지만 파리 한 마리 낚아챈 주먹을 높이 들고 호탕하게 웃고나면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눈 앞에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다 남편이 올 때까지 따라다니는 방법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때리고 적당한 위치에서 투명한 유리컵을 엎어 사형집행 때까지 포로수용소를 임시로 건설하는 방법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반성하게 하는 방법 여러 가지 전근대적인 방법이 있지만 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한다 도시락 싸들고 밤새 따라가는 것 남편은 오늘 야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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