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83
어제:
306
전체:
5,023,096

이달의 작가
2008.05.10 11:28

기억이 자라는 소리

조회 수 239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억이 자라는 소리


                                                                        이 월란




기억을 낳았다 하혈 한 방울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으로 머리카락 성긴 그 두상을 내밀었을까
남루한 영혼에 기생하는 기억은 때로
망막에 비친 호숫물만 마시고도 쑤욱 자란다
애저린 휘파람 소리를 뗏목처럼 타고 누워 자라기도 하고
풍향계가 가리키는 저 바람의 골을 따라
국경의 봄을 먹고 자라기도 하고
햇살이 맥박처럼 뛰고 있는 저 창가에 몸을 누이고 두근두근
붉은 심장 만하게 자라 있기도 한다
제라늄 꽃잎 아래 벌레처럼 오물조물 모여 자라기도 하고
막비를 물고 검은 새떼처럼 날아오기도 하는 저 기억들
그렇게 한 순간 내 키보다 더 훌쩍 자라 있을 때
새벽 한기같은 기억의 그늘에 앉아 울기도 했었나
기억은 그 큰 몸집으로도 날 달래주지 않는다
드라이브인 극장의 대형 스크린처럼 생생해도
필름 속에 갇혀 있어, 입이 없어,
한번씩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온 몸을 부딪쳐 창을 두드리는
저 지친 겨울의 진눈깨비로 밖에 태어나지 못하는 기억들
가슴이 도려내어져 뻥 뚫린 상체를 끌어안고 서 있는 기억들
어느 한 구석 몸저림이 올 때까지 눈을 맞추다
급히 돌아서는 기억의 몸은
수수억년의 능선 너머로 전생의 잔상인 듯
푸른 고요를 토해 놓고 손금같은 길을 한 순간에 거쳐
다신 돌아오지 않을 듯 소실점으로 멀어져 간다
놓아 준 기억 밖에 없는데, 놓은 자리, 파묻은 자리
더 깊은 내 가슴 속이었음을
기억의 태반에 씨를 뿌린 바로 나의 가슴 속이었음을
파랗게 날 세운 불립문자 한 조각에 가슴이 벤 후에야
아픈 머리채를 흔들며 돌아서는 기억

                                            
                                                                   2008-01-30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5 시가 내게 오셨다 이월란 2009.08.13 441
184 Ms. Jerilyn T. Solorzano 이월란 2010.01.29 441
183 집 속의 집 이월란 2010.07.09 441
182 요가 이월란 2010.09.20 441
181 눈이 목마른, 그 이름 이월란 2010.11.24 441
180 B and B letter 이월란 2010.12.14 441
179 사막식당 이월란 2009.06.17 442
178 주차위반 이월란 2010.02.28 442
177 눈별 이월란 2010.03.15 442
176 단풍론 이월란 2010.07.09 442
175 투어가이 이월란 2010.12.26 442
174 동시 7편 이월란 2008.05.09 443
173 그녀는 동거 중 이월란 2009.05.12 443
172 안개 이월란 2010.03.30 443
171 대박 조짐 이월란 2011.12.14 443
170 전설의 고향 이월란 2010.12.14 444
169 마로니에 화방 이월란 2009.08.06 445
168 푸드 포이즌 이월란 2009.12.20 445
167 회灰 이월란 2010.07.19 445
166 악몽 이월란 2008.05.08 446
Board Pagination Prev 1 ...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