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14
어제:
276
전체:
5,025,536

이달의 작가
2009.11.11 11:46

바람의 그림자

조회 수 430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바람의 그림자



이월란(09/11/07)



어느 작가의 서문에서, 그녀는
달빛 찬연한 밤이면 아버지가 찾아와
세상 사는 지혜를 알려 주실 거란다


쫓기듯 차려 입으시던 검은 그림자
골목 모퉁이를 유연하게 훑고 꺾이며 사라지던
이국의 꽃내음 같은 살내 나던 봄날
저 양반은 절대로 살림은 안차린다


영혼의 냄새는
시리고 부어터진 풍치환자의 입바람 같아서
사카린처럼 교묘히 뿌려 놓은 담장 안의 웃음소리 같아서
어린 날들은 그리 길고만 아득해서


밀봉된 고통이 문지방을 넘나들 때마다
휘휘 새어나와 헛발을 딛곤 했던 것인데
한 번도 길이라 여기지 못했던 길들이
돌아보면 넘보며 살아온, 바로 그, 길


아버지가 지나간 자리마다 피어난 꽃들은 왜
속속들이 밉지 않았는지
그 꽃들이 오래도록 모여 사는 정원에 왜
침을 뱉지 못했는지


묻지 않아도 대답해버린 생의 한가운데
정수리에 탄 가르마처럼 선명하기도
폐교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휑하기도
펑, 폭파된 산속 터널처럼 눈앞에 명시된
나의 길


바람의 그림자가
가려진 빛을 서늘히 들여다 볼 때마다
이름도 짓고 팻말도 세워 놓아야 할
낯설게도 걸어온, 익숙한 외길


블랙홀 같은 자궁 속에서 육신을 입은 것이
이미 외도의 시작이 아니었나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5 바람 맞으셨군요 이월란 2008.05.08 317
604 바람개비 이월란 2010.08.22 463
603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이월란 2012.01.17 511
602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2 1 이월란 2014.10.22 578
601 바람아 이월란 2008.05.10 306
600 바람에 대한 오해 이월란 2009.10.21 477
599 바람에 실려온 시 이월란 2009.12.15 425
598 바람을 낳은 여자 이월란 2008.05.18 298
597 바람의 교주 이월란 2009.10.24 275
» 바람의 그림자 이월란 2009.11.11 430
595 바람의 길 3 이월란 2008.05.10 264
594 바람의 길 6 이월란 2010.08.08 287
593 바람의 밀어 이월란 2008.05.08 376
592 바람의 뼈 이월란 2008.05.10 290
591 바람의 자식들 이월란 2010.02.12 434
590 바람의 혀 이월란 2008.10.21 298
589 바람이었나 이월란 2014.08.25 183
588 바벨피쉬 이월란 2010.04.13 495
587 바이바이 스노우맨 이월란 2011.01.30 446
586 반지 이월란 2010.09.06 422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