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8
어제:
306
전체:
5,022,921

이달의 작가
2010.06.07 12:23

헌혈카페

조회 수 472 추천 수 4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헌혈카페


이월란(10/06/06)
  


한 방울
뽑아선 커피잔에 떨어뜨렸다
원두의 혈액은 아메리카노포비아의 메뉴판 위에서
다분히 이국적이다
취향대로 조절되는 카페인처럼
피도 눈물도 말라버린 커피의 땅
잎겨드랑이에 흰 꽃이 핀다는 아프리카의 나무도
적도가 척추처럼 걸쳐 있다는 검은 대륙의 분꽃도
더 이상 관상적이지 못하다
여과기에 담겨 열탕으로 진이 빠지는 가루처럼
에스프레소의 소꿉 같은 도기잔 속에서
서로의 피가 엉겨 붙는다
노폐물을 운반하기엔 너무 붉었던 날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세월로
수혈을 감당하기에 우린 너무 느렸었다
피가 솟는 정수리를 맞대고도 우린 너무 식어 있었다
골육 사이에 뻗친 남다른 친화력처럼
썩는 살점으로도 서로를 휘감아야만 피가 돌았다
고갈되어버린 천생의 효소처럼
비이커에 담긴 발효 원액처럼 숙성 중이라 여겼다
우리, 감염된 서로의 지병을 생태계의 질서로나마 헤아려 둘까
커피를 마시고 나서 오줌이 마렵던 시절을 지나오면
몸 밖에 테이블을 내놓고 의자들을 다 내어놓아도
손님이 들지 않아
피가 마렵고, 가을이 마려워지는
가슴 속 노천카페에서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 향수(鄕愁) 이월란 2010.05.18 639
44 허물벗기 이월란 2009.04.05 294
43 허아비 이월란 2008.05.09 440
» 헌혈카페 이월란 2010.06.07 472
41 형이상학의 본질 이월란 2010.07.19 519
40 호감 이월란 2008.05.09 472
39 호스피스의 유서 이월란 2010.03.22 435
38 호텔 YMCA, 채널1 이월란 2010.05.25 464
37 혼돈의 꽃 이월란 2011.05.10 340
36 홀수의 미학 이월란 2021.08.16 74
35 홈리스 (homeless) 이월란 2008.05.31 268
34 홍엽 이월란 2008.05.10 318
33 홍옥 이월란 2010.08.22 398
32 화상을 입다 이월란 2016.09.08 304
31 화석사냥 이월란 2009.09.12 337
30 화양연화(花樣年華) 이월란 2009.10.14 330
29 환각의 아이들 이월란 2012.04.10 337
28 환승 이월란 2008.10.17 279
27 환절의 문 이월란 2010.10.29 575
26 황태자의 마지막 사랑 이월란 2009.02.04 345
Board Pagination Prev 1 ...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