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카페
이월란(10/06/06)
피
한 방울
뽑아선 커피잔에 떨어뜨렸다
원두의 혈액은 아메리카노포비아의 메뉴판 위에서
다분히 이국적이다
취향대로 조절되는 카페인처럼
피도 눈물도 말라버린 커피의 땅
잎겨드랑이에 흰 꽃이 핀다는 아프리카의 나무도
적도가 척추처럼 걸쳐 있다는 검은 대륙의 분꽃도
더 이상 관상적이지 못하다
여과기에 담겨 열탕으로 진이 빠지는 가루처럼
에스프레소의 소꿉 같은 도기잔 속에서
서로의 피가 엉겨 붙는다
노폐물을 운반하기엔 너무 붉었던 날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세월로
수혈을 감당하기에 우린 너무 느렸었다
피가 솟는 정수리를 맞대고도 우린 너무 식어 있었다
골육 사이에 뻗친 남다른 친화력처럼
썩는 살점으로도 서로를 휘감아야만 피가 돌았다
고갈되어버린 천생의 효소처럼
비이커에 담긴 발효 원액처럼 숙성 중이라 여겼다
우리, 감염된 서로의 지병을 생태계의 질서로나마 헤아려 둘까
커피를 마시고 나서 오줌이 마렵던 시절을 지나오면
몸 밖에 테이블을 내놓고 의자들을 다 내어놓아도
손님이 들지 않아
피가 마렵고, 가을이 마려워지는
가슴 속 노천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