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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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최선호의 "나의 엘로힘이여", 향기롭게 육화된 Effect

 

 

                                                                                                                                                     곽상희 시인

 

 


  최근에 나는 내 영혼에 기쁨의 나래를 달아주고 깊은 감동으로 젖게 하는 한 권의 시집을 만났다.

 

  최선호 목사의 "나의 엘로힘이여"란 한 권의 시집은 인간의 고뇌와 절망에 힘이 되고 대답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결과물의 그 위에 있다. 이번 79 편의 시편은 한결같이 그의 기독교 생명사상과 진리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주님을 향한 피와 사랑이 아름답게 침윤(浸潤)된, 시인의 관념이 아닌 삶의 현실에서 표출된 사랑 고백이다.

 

  그의 시집 전체에 흐르는 그의 호흡은 아름답다. 신선하다. 그래서 무척 감동적이다. 독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영적 자유의 성역(聖域)으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그의 시어(詩語)들은 진솔하고 순결하다. 쉽게 이해되면서 깊은 곳을 찌르고 어루만져 준다. 그의 목사로서의 신앙이 인생의 고뇌와 아픔 절망까지도 가슴 깊이 품어 말간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다소곳 서 있다. 평소의 그의 무척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그 모습 그대로 시편 속에 육화(肉化)된 지(智)와 영(靈)이 평범한 시적 대상 속에서 잔잔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평범하고 사소한 존재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들과 자연 속에서도 커다란 손, 그의 엘로힘(Elohim: 하나님)을 본다. 그러한 시 구절들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산재해 있다. 그는 그의 "아침"에서 "새하얗게 눈부신 당신을" 만나고, "바람"에서는 "하늘뿐인 바람"을 본다. "피아노"의 "그 육중한 몸에 눈물 괸다", "가을 풀잎"의 "가을볕바람에/돌이킬 수 없는 너의 넋은/ 몇 만 가슴 다시 흐느껴야/ 이 땅에 가득할/ 새싹으로 태어나느냐// 빈들에서", "기도"에서 "영혼 마른 백골 위에 새 살 돋게 하시고".... , 평자(評者)가 무작위로 든 예 속에서도 느끼는 그의 시적 배경정신은 매우 긍정적이고 밝다.
 
  나는 이러한 그의 시적 방법론에서 나비의 effect란 말을 붙이고 싶다. 이것은 나의 신앙 시에서 나온 크리스천 시인이 가질 수 있는 시적 어법(語法)이 아닌가 하는 나의 평소 생각이라 하겠다.

 

  물론 그의 시는 결코 톤이 약하지 않다. 가볍지 않다. 휴머니즘, 인간실존의 고뇌와 생명감이 넘치는 석양의 노래이다.

 

지금도 들에 나가 보면
해마다 떼죽음 당하는 건초들이
두고 간 마지막 말을 듣는다

 

우리의 삶도 자연의 울음 곁으로 가는 것
지금 내 전신의 피는 마르고 있다

 

뿌리친 생애 저 편
적막한 죽음을 조명하는
우수의 평야를 건너
갈대바다를 지난다

 

휘청거리는 백골
피 흘리며 달리는 바람
생채기로 떨어져 묻히었으나
그리운 눈물 고여 마르지 못하는
그대들 깨어 있는 땅으로
내가 간다

                                                          -'만추여행' 전문

 

  위의 시를 인용한 이유는 그의 시가 결코 기독교적 신앙시에 머물고만 있지 않다는 예를 들고 싶어서 이다.

 

  그러나〈나의 엘로힘이여〉에서 엘로힘의 가슴 언저리를 맛 본 자의 행복과 도도한 그 피 흐름을, 환희에 찬 빛의 춤 같은 생명력을 놓칠 수가 없다.

 

  그의 시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의 시집을 마지막 놓았을 때의 평자의 느낌은, 그는 그의 시편을 빌려 우리들 몰래 우리 안으로 조용히 방문하여 우리의 아픔, 소망을 다 알아버린 후, 우리의 말로 다시 우리에게 들려주는 시적 상승의 묘한 어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목회를 하면서 수십 년 시력(詩歷)을 쌓은 그의 시편들은 전 생명을 바쳐 사랑하며 인생을 송두리째 헌신하기에도 모자란 그의 엘로힘을 향한 그리움과 갈증, 사랑이 발하는 영혼의 소리를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절망과 고뇌가 깊고 티없이 진솔하기에, 짙은 인간적 향기와 감동의 울림으로 독자의 심금을 끌어당겨 함께 신비의 향연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나 떠난 후
사망했다는 말
말아주오

 

.............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벗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기에
육신을 땅에 묻어두고
홀가분히
바깥바람 쐬러 갑니다

 

................

 

사랑하는 이여

 

잠시 외출했다고만
조용하고 부드럽게
속삭여 주오

                                                                  -'사랑하는 이여'에서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고뇌를 바위를 깎아 내리듯 압축된 긴장이 감도는 시적 백미(白眉)로 표현된 〈백사장〉은 그의 시문학의 금자탑이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억 천만 번 깨져서도/오히려 견고한 침묵으로/ 바람보다 낮은 자리를 찾아/ 바닷가에 나와 앉았다//입김만 스쳐도 부어오르는 살갗/ 밟으면 사각사각 소리뿐인 이 외로움/순수의 속살이 보일 때까지/씻겨진 홀로의 목숨//...이제 무엇이 더 그리우냐/들려다오/들려다오/고운 빛 알로 남기까지/....〉

                                                                                            -'백사장'의 일부

 

  그러나 몸부림치는 실존의 모래사장으로도 그의 엘로힘은 오신다.〈"..../별을 딛고 하늘을 건너서 오시는/나의 엘로힘/그 피 흐름이여"〉

 

  여기서도 음미할 수 있듯 그의 시의 소중함은 평면적이고 단층적이 아닌, 언어조직의 갈피갈피 올 속에 은밀하게 흐르는 고요한, 때로는 강렬하게 우리의 영혼을 찌르는 육화된 말씀의 호소력에 있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두어 편의 그의 시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자연과 영혼과의 환기작용을 여실하게 들어낸〈단풍〉과 〈겨울 산책〉을 들어보겠다.

 

"철철 우는/저 불바다를 어쩌랴//와서 살다 가는 빛//가지마다/은하 저 편 수억 년을 건너 온/별빛들의 열림 그 아우성//누가 펼치는가/이 뜨거운 통곡을",

 

 "..../이대로 한 열흘/흐느끼면//나를 얼싸 안아 줄/그 커단 손/차고 맑은 가슴을/만나리라"

 

그러나 아무래도 목사 시인으로 행복한 모습의 그를 놓칠 수는 없다.

 

깨어 있게 하소서
주검으로 누웠을지라도
눈을 뜨게 하소서

 

새벽닭 울 때마다
뉘우치게 하시고

고독의 강을 건너
황금나팔 불게 하소서

 

영혼 마른 백골 위에
새 살 돋게 하시고

나를 맑게 씻기시어
다시 살게 하소서

                                                             -'기도' 전문

 

  그의 언어는 그의 엘로힘을 향한 헌신된 삶과 영혼의 불가마 속에 연단 된 눈물의 결정체이다.

 

  이번 시집에서 신앙과 자연의 상관교감을 능숙한 언어구조로 형상화 한, 형식을 초월한 그의 성취를 나는 신과 자연과 언어의 아름다운 삼중주(三重奏)라 말하고 싶다.

 

  최선호 목사님 같은 기독교 진리를 순정된 언어로 표현한 시인을 우리 문단에서 만날 수 있음은 우리 시문학의 감격스러운 자산이며 위로와 자랑이다. (September 16,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