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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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성에서 영성으로의 지향

- 이어령 시집 〈어느 불신자의 기도〉를 읽고


                                                          

평생, 지성과 이성의 화신으로만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 그가 세례를 받고 영성 세계의 문을 열어 생애에 극적인 획을 그으며 첫 시집 〈어느 불신자의 기도〉를 문학세계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금세기를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구석들을 잽싸게 먼저 보고, 먼저 듣고, 먼저 터득하여 정신문화의 등불을 밝히면서 산문으로만 자신을 무장하여 50여 년 동안 문단생활을 해오던 그가 평론, 에세이,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문학 전반을 섭렵해 오더니, 급기야 그 예리한 감각의 붓을 들어 문학의 꽃이라 불리는 순수시에 접근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감성과 지성의 오솔길을 걸으며 이성의 정상에 올라 있는 그가 영성의 세계로 지향하는 뚜렷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부르면서 자신의 절절한 심경을 널리 펴 보이고 있다. 이제 시 분야에의 접근은 그의 문학에서의 마지막 작업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의 시에는 영적 승리를 갈구하는 목마름이 있다. 하나님 앞에 눈을 뜨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사람으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고, 송강 정철이 목멱을 그리워하듯 자기 영혼의 집을 그리워하는 영적 기다림이 담겨져 있다. 그의 잔에 가득한 맹물이 맛 좋은 포도주로 변하는 감동을 만나게 된다. 군중 속에 숨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몰래 잡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시정으로 녹아 흐르고 있다. 기독교 문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언제부터 그의 예리한 붓끝에서 이토록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던가!

 

“하나님/당신의 제단에/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절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중략//아! 정말 하나님/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중략//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부분.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끝연.

 

“내 영혼의 집을 짓게 하소서”-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의 부분.

 

산문의 대가로 반세기를 주름잡아 오던 그가 왜 시를 쓰는 걸까? 산문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적 하늘을 보았음일까! 딱딱한 산문의 껍질을 깨고 운문의 세계로 발돋움하는 몸부림이 더욱 신선한 바람을 불게 한다.

  

“//꽃들이 지는데 지금/천 송이 또 천 송이 꽃이 지는데/계백이여 불타는 고향을 지키던 계백이여 지금 어디에서 칼을 가는가.//"-지금도 떨어지는 꽃들이 있어(낙화암에 부쳐) 끝연.  

 

한편, 그가 간직해 오던 이지가 시정으로 승화 되어 재치 있게 건축된 언어와 언어들의 틈새에서 삶의 애환을 노래한다.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미래의 문명은 반짇고리에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모더니즘의 첨단을 오르내리는 몸짓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 묻은 이야기들을 끌어오는가? 신앙적인 것, 교훈적인 것, 가정적인 것, 지성적인 것, 이성적인 것, 현대적인 것들로 이토록 가슴을 치는가!

 

그의 시집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만나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폴 사르트르의 주변을 둘러보는 듯, 그의 고백 속에 흐르는 눈물의 감격을 뜨겁게 경험한다.

 

                                                                                                                                                  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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