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 성백군

 

 

출근길

공원 가시나무에 가오리연이 걸려있다

바닷속에서 살던 가오리가 하늘을 날아 보려고 뭍으로 나왔다가

가시나무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제 살만 찢고

이민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은 바람을 등지고 벤치 위에 누워있다

 

간혹

그녀의 이동식 홈, 쇼핑카에서는

헌 옷가지들이 펄럭거리며 세상을 향하여

오늘은 바람이 왜 이리 드세하는데도

담요 속으로 움츠러드는 그녀의 맨발의 속도는

좀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그녀도 한때는 펄펄 날랐을 것이다

넓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탯줄 끊어내던 날의 아픔도 잊은 체

이국 하늘을 자기의 하늘로 만들겠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햇빛이 비치면 비치는 대로 빛을 주워담고

닥치는 대로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박히면 다시 일어나고

날고 날아서, 돌고 돌고 돌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은 동내 공원 한 귀퉁이 낡은 벤치 위

다 떨어진 담요 속,

세상을 등지고 돌아누운 엉덩이에는

팽팽한 긴장으로 조이던 본능마저 허물어지고

바람만 멋쩍게 치마를 들썩거린다

실바람 속에서도 폭풍우 속에서도 도무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

얼핏 드러나는 허벅지의 굵은 핏줄과 종아리의 퍼런 멍 자국

쩍쩍 갈라진 발바닥의 깊은 골이 그녀의 이력을 말해주고 있다

 

누가 그녀의 얼레에 손을 대었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연줄을 끊게 했을까

이른 아침 빈 공원에 가오리 한 마리 가시나무에 걸려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세상을 향하여 욕을 하는지 하소연을 하는지 몸살을 앓고

쇼핑카의 헌 옷가지들은 한 번만 더 세상에 나가보고 싶다고

마지막 여력을 다해 그녀를 깨우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67 초승달이 바다 위에 강민경 2014.01.04 419
966 등외품 성백군 2014.01.06 216
965 담 안의 사과 강민경 2014.01.17 287
964 나무 요양원 강민경 2014.01.23 340
963 낙엽 한 잎 성백군 2014.01.24 210
962 강설(降雪) 성백군 2014.01.24 165
961 문자 보내기 강민경 2014.02.03 365
960 겨울 홍시 강민경 2014.02.08 337
959 2월 이일영 2014.02.21 165
958 몽돌과 파도 성백군 2014.02.22 379
957 태아의 영혼 성백군 2014.02.22 188
956 낙원동에서 강민경 2014.02.23 245
955 십년이면 강, 산도 변한다는데 강민경 2014.02.25 241
954 길동무 성백군 2014.03.15 196
953 내다심은 행운목 성백군 2014.03.15 276
952 설중매(雪中梅) 성백군 2014.03.15 203
951 봄 날 이일영 2014.03.21 205
950 회귀(回歸) 성백군 2014.03.25 217
949 하얀 산과 호수가 보이는 집에서… 이승욱 2014.03.26 699
948 지상에 내려온 별 강민경 2014.04.03 20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0 Next
/ 50